여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쪽 소파에 앉았다.스카이웨어의 여자들은 바깥 거리에 서 있는 여자와 달리, 적어도 이목구비가 모두 청초하고 단정하며, 게다가 학력도 있고, 몸매도 좋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들의 편애를 받지 못하니 말이다.반승제는 샤워를 하고 도우미를 방에 들여보내 소독하도록 했다. 그의 안색은 온통 검게 변해있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그 여자가 아직도 네이처 빌리지에 있는 게 보였다. 그러자 반승제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온시환에게 시선을 돌렸다.온시환은 서둘러 손을 들어 항복한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네가 어제 계속 나한테 전화해서 성혜인 씨가 인정사정없다느니, 너를 배신했다느니 했잖아, 그리고 나한테 여자 찾아달라면서 말이야. 내가 거절하니까 승제 네가 또 직접 나가서 찾아보겠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 봐봐, 내가 성혜인 씨랑 완전 비슷한 사람 보내줬지? 나는 사실 쫓겨날 줄 알았는데, 둘이 잘 줄이야... 뭐 암튼, 일단 이분한테 돈은 결제해 줘야 하지 않겠어?”이윽고 반승제는 직접 수표를 꺼내 상대방에게 던졌다.여자는 몸을 움츠리더니 한참 후에야 말했다.“반... 반 대표님, 저는 S.M과 계약하려는 연예인입니다. 돈은 원하지 않으니 S.M이 촬영하는 드라마의 배역에 저 좀 꽂아주실 수 있나요?”옆에서 차를 마시려던 온시환은 이 말을 듣고 그만 뿜고 말았다.“S.M 연예인이에요?”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 밑에는 질투심이 가득했다.“원래는 그랬는데 누군가가 저를 떨어뜨렸어요.”그리고 그녀를 떨어뜨린 건 바로 성혜인이었다.‘내가 성혜인의 대역이 될 줄이야...’S.M에 계약한 모든 연예인은 성혜인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성혜인은 이 방면에 있어 경계가 아주 심했다. 당시 그녀 역시 성혜인의 심사를 거쳤는데, 여자는 연기실력도 괜찮고 꽤 이름 있는 인플루언서이기도 했다.하지만 성혜인이 조사해 본 결과, 여자는 인성에 문제가 있어 결국 떨어뜨리기로 했다.어젯밤은 밤이 너무 어두운 데다가 자신이
라미연은 의기양양하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반승제가 자신을 요구했으며 침대에서 심하게 뒹굴었다고 말이다.하지만 모두 믿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조금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일 뿐이고 팔로워가 겨우 십여만 명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전에 라미연이 S.M의 오디션을 볼 때 사람들은 전부 그녀가 계약에 성공할 줄 알았다. 그녀의 연기실력은 꽤 좋았으니 말이다.그러나 자신이 곧 대스타가 될 거라며 자랑하려던 라미연은 단번에 성혜인에게 퇴짜를 맞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때문에 그녀가 말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농담처럼 여겼다.라미연은 이들이 믿지 않자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반 대표님이 나한테 S.M의 배역을 주기만 하면, 바로 나 라미연한테 와서 아부할 것들이...’성혜인은 전화를 끊은 후 앞에 놓인 서류를 보며 멍해 있었다. 더 이상 아무런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젯밤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어놓고 또 다른 여자랑 할 에너지가 남아있었단 말이야?’그녀의 자조 섞인 웃음소리가 곧 들려왔다.하지만 이내 설우현과의 약속이 떠올라 성혜인은 입술을 굳게 오므렸다.그렇게 깊은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의 씁쓸함을 억누르며, 유해은과의 채팅창을 열었다.유해은 역시 이번에 캐스팅된 할리우드 배역 중 하나로, 손이 완전히 회복되면 바로 제작팀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 시각, 그녀는 하얀 병상에서 일어나서 무엇이 뭔지 분간할 수 없는 빨간 쓰레기 덩어리를 바라보며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이 작은 진료소는 그녀의 친척이 운영하는 곳인데, 빨간 것들은 다름 아닌 유해은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었다.워낙 약한 데다가 날씨까지 추워 많이 껴입다 나니, 아무도 그녀가 입신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심지어 부모님조차도 말이다.“해은아, 너 정말... 어휴...”유해은은 옆에 있는 휴지를 뽑아 들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어느새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말이다.“태어나지 않는 한, 그 아이
마음이 저도 모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유해은과 백지영의 오해는 잠시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더 기다렸다가 적당한 기회를 찾아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오빠, 그럼 오늘 성혜인을 해치울 사람 몇 명 보내줘.”“그래.”그는 즉시 핸드폰을 꺼내어 자신의 사람들에게 몇 통의 전화를 걸고는 성혜인을 상대하도록 했다.그러고 나서 그는 백씨 저택을 떠날 예정이었다.하지만 대문 앞에 한 택배기사가 그를 막아 나섰다.“도련님, 이건 유해은 씨께서 보내신 겁니다.”순간 백현문의 안색이 변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웃음이 얼굴에 나타났다.‘내 신분을 알고 해은이가 엄청 화를 내면서 나를 쫓아냈는데... 갑자기 선물을 보냈다고? 화해하자는 건가?’입꼬리가 구부러지고, 얼굴의 날카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내용물을 본 그는 확 밀쳐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이게 뭐죠?”그러자 택배기사는 매우 전전긍긍해 하며 대답했다.“유해은 씨가 말하시길... 이건 자신이 품고 있던 천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제때 발견해서 다행이라면서요...”백현문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처음에는 충격을 받았고, 그다음에는 흉곽이 마치 무엇인가에 의해 뭉개진 것처럼 피와 살이 뒤섞이는 듯했다.분노에 차오른 그는 눈앞이 캄캄해져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다시 한번 말해봐요, 이게... 이게 뭐라고요?”택배기사는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놀라서 얼른 자전거를 타고 도망쳤다.그때, 백현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해은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다.“백현문 씨.”그녀는 어떤 감정도 없이 그를 불렀다.“유해은, 너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거야?”백현문은 음산한 말투로 말했지만, 핸드폰 너머에서는 뜻밖에도 그녀의 웃음소리가 전해져왔다.“아니, 그것과 정반대야. 나 갑자기 잘 살고 싶어졌거든. 나는 절대 백씨 집안의 천한 애새끼를 임신하지 않을 거야
유해은의 부모 앞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음에도 백현문은 개의치 않았다.그녀의 엄마는 화가 나다 못해 기절해 버렸고, 아빠는 눈을 뒤집어 깠다.“꺼져!”결국 백현문은 이곳에서도 유해은을 기다리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그 시각, 유해은은 S.M에 있었다. 그녀는 수술대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약을 먹고 바로 이쪽으로 와 연기연습을 했다.이곳에는 전문적인 연기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유해은을 본 성혜인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손이 다 회복한 다음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안 그러면 후유증이 남아서 일에 더 해가 될 수 있습니다.”“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저 잠시 동안은 손 안 쓸 겁니다.”성혜인은 그녀의 안색을 살펴보았다.‘어딘가 좀 아파 보이는데?’“유해은 씨, 어디 아파요?”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으나 유해은의 얼굴색은 오히려 더 하얗게 되었다.성혜인은 그녀를 진흙탕에서 건져낸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임신 소식을 숨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게 처리되었기 때문에 유해은은 자신의 여생으로 성혜인에게 보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성혜인을 위해 죽을지라도 눈 깜박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아니요.”성혜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휴지를 들고 그녀의 땀을 닦아줄 뿐.“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됩니다. 길은 이미 제가 다 닦아놨으니 해은 씨가 할 일은 자신의 몸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누구도 부드러운 성혜인의 카리스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물며 사막에서 오랫동안 혼자 걸어온 사람이라면 그녀의 배려는 감천이나 다름없다.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유해은은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아내야 했다.모든 어둠과 고난을 견디며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반드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두 배로 되찾을 거야.’“알고 있습니다. 잘 돌볼게요.”성혜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
하지만 성혜인이 명령을 내렸으니 장하리는 그대로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최근 인터넷에는 S.M에 대한 욕설이 빗발치고 있다. S.M이 포드를 상대로 사기를 치더니 이제 을 타겟으로 삼았다며 말이다.사장인 성혜인은 특히 SNS에서 수십만 건의 욕을 먹었다.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살찐 할머니라 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온수빈을 원했지만, 그에게 거절당하자 완전히 망칠 계획을 벌이고 있다 한다.게다가 TJ 엔터의 백선우까지 나선 덕에 온갖 괴소문이 돌며 네티즌들은 성혜인을 무너뜨리려고 들었다.현재 여론은 거의 정점에 다다랐기 때문에 더 이상 막지 않으면 S.M이 받을 파장은 돌이킬 수 없다. 장하리는 서둘러 감독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감독은 매우 관대하게 오프라인에서 자신이 선택한 아시아인의 명단을 공표했다. 온수빈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올라와 있었다.그 사실을 본 네티즌들은 전부 멍해지고 말았다.“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진짜 온수빈? S.M의 온수빈?”“감독님이 사진도 다 내보냈어요. 진짜 온수빈이네요. S.M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그렇게 오랫동안 욕을 먹었는데... 정말 할리우드에 뛰어든 거였어? 세상에, 이거 국내 최초 아니야? 그것도 이라니.”“욕한 거 사과해야 하지 않나... 요즘 온수빈이 어떻게 욕을 먹었는데, 그리고 성혜인도. 그 사람이 정말 온수빈을 위해 이 배역을 따낸 거잖아. 다들 성혜인이 온수빈을 망가뜨리려는 거라고 했는데... 만약 감독이 이걸 발표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성혜인은 욕을 먹고 있었겠지?”“사과는 무슨 사과? 포드 일에 대해 잊어버린 거야? S.M이 확실히 잘못한 건 맞잖아. 할리우드에 들어간 게 뭐 어때서? 포드 쪽에서도 백선우도 직접 말했잖아. 성혜인이 온수빈한테 마음이 있는 건 확실하고 심지어 반승제 대표님까지 원하고 있다고. 그 여자 인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위에 있는 댓글은 틀린거임. 할리우드에 관한 얘기는 진짜잖아? 그리고 포드
저녁 일곱 시. 성혜인은 퇴근 후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장하리는 여전히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그녀를 포레스트로 데려다줄 준비를 했다.오늘 성혜인은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심인우가 반승제의 소식을 알린 후 그녀는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아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그렇게 장하리가 차를 한적한 길로 몰고 갔을 때, 갑자기 몇 대의 차가 그녀들을 미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사장님, 뒤에 몇 대의 차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 있던 차들이 속도를 내더니 곧장 그녀들이 타고 있는 차를 향해 돌진해 왔다!놀란 장하리를 힘껏 가속페달을 밟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이다.하지만 장하리의 운전 실력은 평범했던지라, 결코 이 무법자들을 따돌릴 수 없었다.이윽고 세 대의 차가 성혜인네 차를 겹겹이 에워쌌다.뒤에 앉아있던 성혜인은 등을 꼿꼿이 펴며 한참 후에야 차가운 눈매로 장하리를 보며 말했다.“장 비서, 수영 잘해요?”“괜찮은 편입니다.”“자기 몸을 잘 지킬 수 있을 정도로요?”“네.”“그럼 강으로 차를 몰아요. 물에 들어간 후에는 나 신경 쓰지 말아요. 장 비서는 일단 자기 자신만 잘 돌보면 됩니다.”“하지만 사장님...”장하리의 손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으로 뛰어들면 그냥 틀림없이 죽는 거 아니야?’“장 비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라도 도박을 거는 수밖에 없어요.”몇 대의 차들은 한눈에 봐도 기세등등한 게, 반드시 그녀들을 죽일 것처럼 보였다.“도박”을 걸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는다.장하리는 눈을 질끈 감고 바로 다리 위로 돌진했다. 그러자 이내 다리 난간이 부서지며 자동차는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그리고 이런 큰 움직임은 주변 차들의 주의를 끌었고, 많은 차들이 그 바람에 멈춰 섰다.장하리는 물에 들어가는 순간 창문을 열었고, 성혜인도 도와 창문을 열어주었다.성혜인은 헤엄쳐 나가려고 했지만, 물에 들어갈 때 무거운 서류 가방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심한 어지러움이 동
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왠지 내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반승제는 두 손으로 침대를 받치고, 길고 예쁜 손끝으로 이불 위를 두드렸다.“성혜인, 이게 무슨 뜻이야? 내가 널 구했다는 사실에 뭔가 실망한 것 같다? 다른 남자가 널 구해주길 바랬던 거야, 뭐야?”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분노에 찬 눈빛을 반짝였다. 입꼬리마저 씩 올라간 게 확실히 질투를 하는 모습인 듯했다.하지만 성혜인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고 반승제가 인정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제원대 다음으로 이번이야.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라 제원대의 일은 그냥 잊기로 했지. 하지만 이번은...’그녀는 미심쩍은 듯 반승제를 바라보았고, 그 역시 성혜인과 눈이 마주쳤다.하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은 성혜인의 눈빛을 알아채고 반승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윽고 그는 한껏 차가워진 안색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정말 다른 누군가가 널 구해주길 바랬던 거야?”“아니요.”그가 혹여라도 병원을 부숴버릴까 봐 성혜인은 서둘러 대답하며 눈을 감고 몸을 뒤로 기댔다. 그러고는 피곤한 듯 다시 잠을 청했다.“왜? 그렇게 내가 보기 싫어?”그는 일부러 트집을 잡듯이 한쪽에 앉았다.성혜인은 눈을 뜨지 못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좀 피곤해요.”그러자 순간 반승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심지어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기까지 했다.“그럼 더 자. 내가 여기서 지켜줄 테니까.”정말 피곤했던지라, 성혜인은 반승제에게 반박 한마디 하지 않았다.그때, 문득 장하리도 자신과 함께 물에 빠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장 비서는요?”“괜찮아. 다른 병실에서 지금 자고 있어.”그제야 성혜인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정말 곤히 잠이 들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의 옆을 지키며, 가끔 휴지로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그러나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에 서툴러, 그는 땀을 닦아준답시고 성혜인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잡아당기기도 했다.잠에 든 성혜인이 눈썹을 찌
그의 시선은 마치 칼처럼 그녀를 한 조각 한 조각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침대 밑의 침대 시트를 조용히 꽉 쥐고 성혜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반승제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강한 질투심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고, 심장은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통과된 것 같았다.그런데 바로 이때, 심인우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점심을 가져왔습니다.”그녀가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반승제가 특별히 분부한 것이었다.그는 시선을 푹 늘어뜨린 채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른 다음 도시락을 건네받았다.심인우는 병실 안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빠져나갔다.문이 닫히자 반승제는 병상으로 돌아가 몇 가지 정갈하게 포장된 반찬을 내놓았다.그는 죽을 숟가락으로 두 번 저어 뜨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죽 한 숟가락을 떠서 그녀의 앞에 갖다 놓았다.“먼저 뭐 좀 먹어.”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반승제는 일단 밥을 먹인 다음 보자고 생각했다.성혜인도 이 상황이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내가 잠꼬대를 했다니...’머리를 여러 번 돌렸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아니 잠시만, 근데 자기는 다른 여자랑 잠도 자면서 왜 나는 안돼? 심지어 현실도 아니고 꿈에서 그냥 다른 이성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이런 생각이 들자 성혜인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내로남불이면 안되지, 게다가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어차피 지금도 어떻게 그 라미연이라는 여자 환심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텐데.’곧이어 그녀는 마음 편히 입을 벌렸다.하지만 사람을 돌보는 데 워낙 서툴렀는지라 반승제는 죽을 먹이는 것조차 자꾸 흘려댔다. 심지어 죽을 식히려고 후후 부는 동작마저 서툴러 보였다. 그렇게 한 숟가락씩 반 그릇쯤 먹였을 때, 성혜인은 한쪽에 있는 반찬 몇 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반찬도 좀 먹여주시면 안 돼요?”반승제는 그제야 줄곧 죽만 먹이고 반찬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