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의 표정이 너무도 태연한 나머지 반승제는 자신이 너무 단순해서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 싶었다.반승제는 마치 조각상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성혜인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이라도 회사의 미래를 위해 쟁취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체면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깟 체면에 비해 반승제가 줄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반승제 씨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만약 마음에 안 든다면 돈을 받지 않고 포기할게요.”반승제는 도대체 어떻게 이 여자를 형용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한참이나말문이 막혀서 가만히 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고객이라면 이미 있잖아?”성혜인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혹시 본인의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까 봐 이러는 건가?’동시에 여러 고객의 일을 하는 디자이너도 물론 있지만 성혜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반승제 씨를 맡게 되면 다른 고객은 받지 않을 거예요. 만약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한테 5분만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관심 없어.”반승제는 먼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섰다. 양한겸을 부축하고 있는 성혜인은 어찌 따라갈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양한겸을 데리고 대리 기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양한겸은 술에 취했어도 성혜인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성혜인이 문라이트 밖으로 나서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차 안에서 예쁜 여자한 명이 내려왔다.여자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성혜인의 뺨을 때렸다.“너지?! 회사에서 물어볼 게 있다며 귀찮게 굴 뿐만 아니라 집으로 ‘사랑의 커피’를 보낸 사람이 너지?! 내가 진작에 발견했어. 너 오늘은 내 남편이랑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양한겸을 부축하고 있느라 미처 피하지 못한 성혜인은 뺨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여자는 화를 주
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메이크업으로 간신히 뺨에 난 자국을 가리고 출근했다.양한겸의 회사는 한 건물에서 2층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성혜인은 아르바이트생으로서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회의는 꼭 참가해야 했다.예전 같으면 가장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할 양한겸이 오늘은 반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는 어제와 같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행색도 단정하지 못했다.성혜인은 바로 양한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늦어서 죄송해요.”양한겸은 가장 앞으로 가서 앉았다. 성혜인의 걱정하는 눈빛을 보고 그는 멋쩍게 미소를지어 보였다.직원들이 순서대로 보고를 끝내고 회의도 끝이 났다.성혜인은 다른 직원과 함께 나가려고 하다가 가만히 앉아있는 양한겸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요?”양한겸은 피곤한 듯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재이 친정에 문제가 생겼어.”그는 밤새 골머리를 앓은 듯 목소리가 걸걸했다. 그리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머뭇거렸다.“많이 심각해요?”양한겸은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결심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금 회사를 팔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직원들한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성혜인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타이밍에 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양한겸은 돈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다.이 회사는 양한겸이 다년간 노력한 결과이기에 그도 마음 같아서는 팔고 싶지 않았다.“아직 얼마나 필요한데요?”“적어도 40억 정도.”양한겸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반승제의 일이 성사됐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게 됐네.”“제가 계속 얘기해 볼게요.”성혜인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일을 아직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마요.”양한겸은 한숨을 쉬었다.“너도 반승제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는 마. 그리고 어제는 내 아내가 전적으로 잘못했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회의실에서 나온 성혜인은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던 성혜인은 바로 답장했다.‘제가 직접 반승제 씨와 얘기할 수는 없을까요?’이미 BH그룹까지 온 마당에 반승제만 원한다면 두 사람은 바로 만날 수 있었다.변호사는 반승제와 상의해 본다고 답장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BH그룹의 가장 위층.반승제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이때 심인우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성혜인 씨가 대표님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반승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거절해요.”반승제는 이것 또한 이혼하지 않을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나랑 만나면 뭐가 달라질 줄 아나? 퍽이나...’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변호사더러 이혼 서류를 성씨 저택으로 보내서 직접 사인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라고 해요.”심인우는 반승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성혜인의 얘기를 그만하고 스케줄을 확인했다.“HD은행 이문호 대표님과의 골프 스케줄은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반승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정리하며 말했다.“그래요.”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성혜인은 가만히 앉아서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마치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이 말이다.기다림은 아주 평화로웠다. 성씨 저택에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혜인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승제가 왜 너랑 이혼해?”성휘는 다급하게 말했다.“둘이 싸우기라도 했어? 일단 집으로 와서 잘 좀 얘기해 보자.”성혜인은 약간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아빠,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저희는 남과 다를 바 없어요. 그리고 승제 씨가 귀국한 이상 저를 아내로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ㅂ성휘는 급한 나머지 랩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혜인아, 이혼은 절대 안 된다. SY그룹에서 곧 투자 유치를 시작할 건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혼한다면 주가가 무조건 하락할 거야.”휴대전화 건너편에서는 소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혜인이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성혜인은 반승제의 차가운 표정에 몸이 흠칫 떨리는 것만 같았다.그의 일행은 빠르게 성혜인을 스쳐 지나갔다.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은 반승제와 얘기하느라 주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보였다. 뒤에 있는 사람은 전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이는 성혜인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낯선 세상이었다.성혜인은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골프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평범한 생김새의 이승주는 명품 운동복을 입고 가볍게 공을 치고 있었다. 성혜인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골프채를 캐디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드디어 만났네요, 페니 씨. 일 한 번 같이 하기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앉았다“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직원일 뿐인데요.”이때 골프장 직원들이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거물이 방문하려는 모양이었다.성혜인의 시선을 느낀 이승주는 허풍을 치기 시작했다.“BH그룹이라고 알아요? 제 아버지가 오늘 BH그룹 대표랑 4조짜리 경기를 준비했어요.”성혜인의 경험으로 허풍 치기를 좋아하는 고객을 상대로는 무조건적인 칭찬이 가장 옳았다.“도련님께서 금방 산 땅만 해도 600억은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4조쯤은 HD은행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요?”이승주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그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반승제가 금방 귀국하고 나서 첫 합작 기회가 생겼으니 이쯤은 준비해야죠.”“반승제 씨의 귀국이 확실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죠.”성혜인은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칭찬만 했다.이때 이승주가 캐디가 건네는 물을 받아들며 몸을 일으켰고, 성혜인도 어쩔 수 없이 따라 일어났다.“제 아버지 말로는 반승제가 이미 결혼했다고 하더라고요.”“그래요? 보기에는 전혀 결혼한 사람 같지 않던데요.”성혜인은 골프채를 꺼내면서 말했다. 갑이 하고 싶은 얘기라면 그녀는 뭐든 맞춰줄 수 있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결혼을 했으면 와이프를 보여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이쯤 되면 사람들이 비웃을 정도
이승주는 성혜인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밖에는 그의 경호원으로 쫙 깔려 있었다.반승제가 우월한 몸매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은 채로 우아한 자태로 걸어오고있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의 휴게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이승주는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성혜인에게 말했다.“남편이 왔는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요?”성혜인은 숨을 잠깐 고르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반승제가 휴게실 문을 빼꼼 열었을 때 여자의 손길을 느끼고 동작을 멈췄다. 여자는 그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휴게실 안으로 밀어버렸다.반승제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나가.”성혜인은 빠르게 휴게실 문을 잠그고 간절한 표정으로 반승제를 바라봤다.“정말 죄송해요. 저 여기 잠깐만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반승제는 말없이 성혜인의 무릎을 바라봤다.그의 시선을 따라 성혜인도 자신의 무릎을 바라봤다. 샤워하면서 따듯한 물이 닿아서인지 무릎의 상처는 더욱 선명해졌다. 마치 ‘잘못된 자세’로 이렇게 된 것처럼 말이다...“이건 차에 부딛혀서 이렇게 된 거예요.”성혜인은 발그레한 얼굴로 약간 어색하게 설명했다.‘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왜 설명하고 있는 거야!’“여긴 뭘 하러 왔어?”반승제는 눈을 깔아 그녀는 바라봤다.“일하러요.”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반승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복잡한 표정으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녀를 쫓아낼 생각은 없는 듯했다.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성혜인은 눈을 피했다. 반투명한 욕실 문 뒤에서 반승제의 그림자가 은은하게 보였다.반승제의 몸에는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진 물은 단단한 가슴팍을 따라 은밀한 곳으로 흘러내렸다.성혜인은 그의 온도와 힘이 또다시 생각날 것만 같아서 눈을 꼭 감고 몸을 돌렸다.이승주에게 보여줄 건 다 보여줬으니, 성혜인은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반승제와 하룻밤을 보낸 것만으로 해도 이미 충분히 어색했는데 그녀는 이혼을 앞두고 다른 에피소드를 만들고
이승주는 잠깐 멈칫하다가 뒤늦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차린 듯했다.‘감히 부승제의 이름으로 나를 밀어내다니... 담도 크군.’당사자가 직접 아니라고 말했으니, 이승주는 조만간 다시 만나면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골프장에서 나온 성혜인은 아직도 이승주의 역겨운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녀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간 후 방법을 생각해 볼 작정이었다.성혜인의 초라한 차는 주차장의 고급 차량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차에 올라탄 성혜인은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오던 차의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 버렸다.성혜인의 차는 앞으로 3m나 밀려났고 바로 앞에 세워져 있던 벤틀리와 연이어 부딪치게되었다.차에서 내려온 성혜인은 한 중년 여자와 마주쳤다. 깔끔한 메이크업을 한 중년 여자는 성혜인의 차를 보고 약간 무시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성혜인을 돈 많은 남자를 쫓으러온 여자로 여기는 듯했다.중년 여자의 표정을 읽은 성혜인은 머리를 돌려 벤틀리를 바라봤다. 번호판이 무려 같은숫자인 자동차를 중년 여자는 봤는지 모르겠다.“그쪽 차는 내 보험회사에서 배상해 줄 테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여자는 손을 휘적이며 대놓고 귀찮은 티를 냈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앞에 있는 차는...”성혜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자가 먼저 가로챘다.“내가 시간 낭비하기 싫다고 했잖아. 앞 차도 내가 알아서 배상할 테니까 빨리 나가. 나도 주차해야 돼!”앞 차는 아무래도 2000만 원 정도 배상해야 할 것 같았지만 중년 여자가 알아 한다고 했으니, 성혜인은 개의치 않고 떠나갔다.중년 여자는 이제야 앞 차가 최고급 벤틀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차주를 찾을 생각이 없는 듯 재빨리 주차하고 골프장 안으로 들어갔다....반승제는 이문호 부자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심인우는 차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앞으로 달려갔다가 처참한 현장을 바라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주차
성혜인은 머리카락을 닦다 말고 골프장에서 부딪힌 벤틀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차라면 이미 얘기가 끝나지 않았던가?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옷을 갈아입고 경찰서로 따라갔다.“성혜인 씨, 이건 차량 번호 11111의 사고 현장 사진입니다. CCTV에 따르면 저녁 6시 20분경, 성혜인 씨가 사고를 내고 아무런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도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성혜인 씨의 책임입니다.”성혜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른 차 한 대를 가리켰다.“이분이 급한 일이 있는데 앞 차도 알아서 배상해 준다고 해서 제가 떠난 거예요.”“벤틀리의 차주분은 성혜인 씨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건 보험 회사의 청구서이니 확인해 보십시오.”6000만 원.이는 성혜인이 배상하지 못할 정도의 거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억울해서라도 배상하고 싶지 않았다.“만약 저희의 말을 따르지...”경찰이 말을 끝내기 전에 한 젊은 경찰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성혜인 씨는 이미 석방되셨습니다.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성혜인은 약간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아무한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경찰을 따라 밖으로 나오자 경찰서 바로 앞에 검은색 차량이 보였다. 경찰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족분이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네. 감사합니다.”성혜인은 경찰이 떠난 다음에야 다가가서 상대가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차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누군가가 그녀를 힘껏 끌어당겼다.이상함을 눈치챈 성혜인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살...!”코와 입을 막은 손수건에서는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성혜인은 잠깐 버둥거리다가 금세 힘없이 축 늘어졌다.그녀는 정신이 몽롱해서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도련님이 호텔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야. 얼른 데려가자.”“근데 진짜 예쁘게 생기기는 했네. 얼굴 하고 몸매가 아주 요물이 따로 없어. 어쩐지 승주 도련님이 CCTV를 보자마자 찾아오라고 한다고 했어
성혜인은 입술을 약간 벌렸고 약의 영향으로 인해 눈빛에 물기가 돌았다.애써 잊으려고 했던 기억의 파편들은 반승제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며칠 전의 그날 밤에도 그녀는 이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무엇이라 표현할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그리고 성혜인도 이 분위기를 타 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이승주는 반승제가 그녀를 밀어내지 않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분명 낮에 반승제의 입으로 그녀는 자기 부인이 아니라고 부정하였는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이승주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성혜인에게 말했다.“페니 씨, 저 여기 있어요. 이쪽으로 와야죠.”이승주는 성혜인의 반응이 약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성혜인은 그 누가 데려간다고 하여도 반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성혜인을 향해 손을 내밀던 이승주는 이내 반승제의 눈치를 보며 다시 손을 거두었다.반승제도 바보가 아니니 그녀가 낮에 자신의 탈의실로 뛰어 들어온 게 이승주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주의 여자친구일 리가 없었다."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죠..."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자기 목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힐끔 봤다.성혜인의 눈빛은 매혹적이었고 행동 또한 대담하였다.그녀는 이미 반승제의 목을 잡고는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그의 목에 매달려 자신의 몸을 맞대며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더웠다. 그녀는 불같은 자신의 지금 이 상태를 식히고 싶었고 때마침 눈앞의 남자는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더운 기운에 그녀는 더 차가운 걸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 이 행동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꼴밖에 되지 못하였다. 갈증이 났다.그녀의 행동을 본 이승주는 아랫배가 당겨 오는 것을 느꼈고 성혜인의 청량한 분위기와 표정은 독을 품은 장미의 가시처럼 남자의 가슴을 찔러댔다.설마 반승제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여자와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