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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여보, 저... 저것 다 헛소리예요.

성혜인은 머리카락을 닦다 말고 골프장에서 부딪힌 벤틀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차라면 이미 얘기가 끝나지 않았던가?

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옷을 갈아입고 경찰서로 따라갔다.

“성혜인 씨, 이건 차량 번호 11111의 사고 현장 사진입니다. CCTV에 따르면 저녁 6시 20분경, 성혜인 씨가 사고를 내고 아무런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도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성혜인 씨의 책임입니다.”

성혜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른 차 한 대를 가리켰다.

“이분이 급한 일이 있는데 앞 차도 알아서 배상해 준다고 해서 제가 떠난 거예요.”

“벤틀리의 차주분은 성혜인 씨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건 보험 회사의 청구서이니 확인해 보십시오.”

6000만 원.

이는 성혜인이 배상하지 못할 정도의 거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억울해서라도 배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저희의 말을 따르지...”

경찰이 말을 끝내기 전에 한 젊은 경찰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성혜인 씨는 이미 석방되셨습니다.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성혜인은 약간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아무한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을 따라 밖으로 나오자 경찰서 바로 앞에 검은색 차량이 보였다. 경찰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족분이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성혜인은 경찰이 떠난 다음에야 다가가서 상대가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차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누군가가 그녀를 힘껏 끌어당겼다.

이상함을 눈치챈 성혜인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살...!”

코와 입을 막은 손수건에서는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성혜인은 잠깐 버둥거리다가 금세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녀는 정신이 몽롱해서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도련님이 호텔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야. 얼른 데려가자.”

“근데 진짜 예쁘게 생기기는 했네. 얼굴 하고 몸매가 아주 요물이 따로 없어. 어쩐지 승주 도련님이 CCTV를 보자마자 찾아오라고 한다고 했어.”

‘승주? 이승주? 반승제의 이름으로 겁을 줬는데도 포기를 안 하다니...’

성혜인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손톱으로 살을 힘껏 찢었다. 만약 정신을 잃은 채로 이승주의 방으로 간다면 오늘 큰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얼마 후 차가 멈춰서고 성혜인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성혜인은 두 남자에게 들린 채로 VIP 엘리베이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익숙한 이름 석 자가 그녀의 귀에 박혔다.

“반승제 대표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대표님의 방은 이미 다른 스위트 룸으로 교체했으니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호텔 총지배인은 불안한 모양새로 말했다.

“이건 무조건 저희 측의 실수입니다. 어젯밤부터 재차 검사하고 심 비서님께서도 소독하셨는데 욕실에 고장이 생겼을 줄은...”

예전에도 이런 일이 한 번 일어나기는 했지만 반승제에게 와서 재발할지는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로또 맞을 확률보다도 낮았다.

“혼자 갈 테니 따라오지 마요.”

반승제는 머리카락이 반쯤 젖어 있는 채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방에는 문제가 없는지 전부 검사해요. 같은 착오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거예요.”

“그럼요!”

총지배인은 식은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새로 올라온 상사 앞에서 이런 실수를 했으니, 그는 자신의 미래가 캄캄해진 것만 같았다.

반승제는 카드를 받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행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앞으로 왔는데 누군가가 휘청거리며 다가와서 그를 확 끌어안았다.

안 그래도 어둡던 반승제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상대를 밀어내려다 말고 익숙한 얼굴을 보고 약간 멈칫했다.

성혜인을 잡고 있던 사람들은 그녀가 갑자기 뛰쳐나갈 줄 몰랐고 반승제의 아우라가 무서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성혜인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본 듯이 있는 힘껏 반승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여보.”

반승제는 눈에 띄게 경직됐고 성혜인을 끌어오려고 했던 사람들도 동작을 멈췄었다. 이승주가 그들에게 성혜인의 신상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으니 놀랄 만도 했다.

여보라는 소리까지 들은 반승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성혜인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자 성혜인이 작은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요.”

성혜인은 반승제의 품에 기댄 채 그의 허리를 꼭 잡고 있어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그녀의 몸은 긴장감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반승제는 머리를 들어 낯선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칼과 같이 예리했다.

두 사람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걸 봐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이승주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이승주를 보자마자 두 사람은 후다닥 달려갔다.

성혜인을 오랫동안 노려온 이승주는 오늘 카메라에 약까지 준비했다. 그는 오늘 밤 찍은영상으로 성혜인을 협박해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장난감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 정도는해야 그의 분도 풀릴 것 같았다.

낮에 이미 반승제를 만났던 이승주는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금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표님, 제 여자친구 페니 씨가 많이 취한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해요.”

반승제는 볼이 발그레해진 성혜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친구?’

약효가 벌써 퍼지기 시작했는지 성혜인은 슬슬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하지만 그녀는 눈앞의 사람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보, 저... 저것 다 헛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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