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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정신이 좀 들어?

작가: 민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7-04 14:53:50
성혜인은 입술을 약간 벌렸고 약의 영향으로 인해 눈빛에 물기가 돌았다.

애써 잊으려고 했던 기억의 파편들은 반승제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며칠 전의 그날 밤에도 그녀는 이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라 표현할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리고 성혜인도 이 분위기를 타 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이승주는 반승제가 그녀를 밀어내지 않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분명 낮에 반승제의 입으로 그녀는 자기 부인이 아니라고 부정하였는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승주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성혜인에게 말했다.

“페니 씨, 저 여기 있어요. 이쪽으로 와야죠.”

이승주는 성혜인의 반응이 약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성혜인은 그 누가 데려간다고 하여도 반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성혜인을 향해 손을 내밀던 이승주는 이내 반승제의 눈치를 보며 다시 손을 거두었다.

반승제도 바보가 아니니 그녀가 낮에 자신의 탈의실로 뛰어 들어온 게 이승주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주의 여자친구일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죠..."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자기 목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힐끔 봤다.

성혜인의 눈빛은 매혹적이었고 행동 또한 대담하였다.

그녀는 이미 반승제의 목을 잡고는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그의 목에 매달려 자신의 몸을 맞대며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

더웠다. 그녀는 불같은 자신의 지금 이 상태를 식히고 싶었고 때마침 눈앞의 남자는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더운 기운에 그녀는 더 차가운 걸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 이 행동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꼴밖에 되지 못하였다. 갈증이 났다.

그녀의 행동을 본 이승주는 아랫배가 당겨 오는 것을 느꼈고 성혜인의 청량한 분위기와 표정은 독을 품은 장미의 가시처럼 남자의 가슴을 찔러댔다.

설마 반승제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여자와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반승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다가는 실수할 것만 같았다.

반승제는 자꾸만 이곳저곳 만지작대는 성혜인의 손을 잡고 힘 있는 팔뚝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데리고 다른 한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이승주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승주는 그를 말릴 수도 더욱이 물을 수도 없었다. 반승제가 그가 맘에 든 그녀를 데려갔다. 아마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데려갔다고 하여도 반승제와 얼굴을 붉힐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승주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킨 것만 같은 느낌에 분노가 차올랐다.

약의 효능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이승주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밤 그녀는 그 누구와 있던 순한 양이 되어 있을 것이다.

뒤에 서 있던 두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도련님, 저희는 그럼...”

“꺼져!”

눈앞의 만찬을 놓쳤으니, 이승주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그바로 호텔을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성혜인은 반승제에게 손목을 잡힌 탓에 그의 허리를 만질 수 없었지만, 그녀의 입술은 쉴 틈이 없었다. 그녀는 셔츠 사이로 나온 그의 살결을 핥고 있었다.

반승제의 반듯했던 표정은 삽시간에 어두워졌고 바로 총지배인을 불러 다른 방을 내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자신을 놓아준 것을 알아챈 성혜인은 갑자기 힘을 쓰더니 남자의 쇄골을 향해 달려들더니 자신의 이빨자국을 남겼다.

“아!”

“더워요...”

그녀는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가는 촉촉하고 눈꼬리는 내려가 가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반승제는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대로 욕실로 향했고 손을 뻗어 찬물을 틀어주었다.

이 기회를 틈타 성혜인은 두 팔로 다시 그의 목을 감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을 만끽하더니 다시 갈증이 생겨났고 자신의 입술을 그의 귓볼에 가져갔다.

“여보.”

반승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그녀를 차가운 욕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찬물은 그녀의 뜨거운 몸을 삽시간에 진정시켰고 성혜인은 차가운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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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반승제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고 온시환과 공지민 사이의 일을 알아내기 시작했다.하지만 지금 온시환은 공지민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과민 반응을 보이며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면서 자꾸 대체품 어쩌고 하는 말을 내뱉었다.반승제는 한쪽 무릎을 굽히며 과일주스를 건네주었다.“무슨 대체품이야? 설마 네가 지민 씨한테 대체품으로 이용당했다는 거야?”‘와, 이렇게 자극적인 일이 벌어지다니.’“맞아! 지민이는 정말, 정말 나쁜 여자야.”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온시환이 떠올릴 수 있는 비난은 고작 이 정도였다.정신이 온전할 때는 입에 담기 힘든 독설도 가능했지만 술에 취한 지금은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 차마 험한 말을 하지 못했다. 공지민이 지금 자신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고 있든지 간에.결국 다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예전에 공지민에게 좀 더 잘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어쩌면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을지도 모른다.그랬다면 지금처럼 그에게 이 정도로 냉담하지 않았을 것이다.온시환은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반승제는 그의 말을 들으며 꽤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그는 모은 정보를 모두 성혜인에게 보냈다.[시환이가 대체품이었대.]성혜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온시환이 대체품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더욱 경악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단 세 글자로 답장을 보냈다.[꼴좋네.]누구나 알다시피 온시환은 바람둥이였다. 과거 여러 모임에서 그는 여자를 농락하는 말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그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여자를 상처 입혔는지 밤마다 잠 못 들게 했는지를 생각하면 이제는 그가 상처받고 잠 못 이루는 날이 오는 것도 당연했다.성혜인은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온시환은 술에 취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서주혁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지인이는 대체 무슨 생각이야?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날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서주혁은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9화 인생사 새옹지마

    온시환은 천천히 손을 놓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래, 알았어.”아무렇지 않은 척 가볍게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온시환의 눈가는 아직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러나 공지민은 이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온시환이 또 심심풀이로 자신을 괴롭히려 한다고 생각했다.차인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여겼다.온시환 같은 남자가 진심일 리 없었다. 설령 진심이라 해도, 공지민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는 식당 밖에 홀로 서 있었다.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공지민이 택시를 타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잠시 후, 그는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야, 오늘 한 잔 하자.”반승제는 흔쾌히 응했다.이상하게 오늘 밤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는 서주혁까지 불렀다.두 사람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온시환은 이미 여러 병의 술을 비운 상태였다.“시환아, 너 대체 왜 이래?”온시환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이미 취기가 가득했다.“뭐 하는 거야? 얼른 앉아. 오늘은 취하지 않으면 못 가!”혼자서 술을 퍼마신 온시환을 보며 반승제는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너 혹시 무슨 고민 있냐?”“고민은 무슨... 그냥 술 마시고 싶어서 그런 거지. 하하.”서주혁은 말없이 나무토막처럼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늘 그렇듯 그는 분위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반승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들을 모두 치우고 온시환 앞에 과일주스를 내밀었다.“솔직하게 얘기해. 무슨 일이야?”그 말을 듣자마자 온시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반승제는 그가 웃는 줄 알았다. 웃을 때도 어깨가 들썩이긴 마찬가지니까.“뭐야, 웃긴 얘기라도 있어?”그는 온시환의 몸을 돌려보았고 그제야 그의 속눈썹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야, 주혁아! 이거 봐. 시환이가 울고 있어!”온시환은 그 말을 듣고 얼른 눈물을 훔치며 소리쳤다.“꺼져!”반승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8화 좋아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자동차가 레스토랑 앞에 멈춰서자 공지민이 먼저 내려서 안으로 들어갔다.곧이어 온시환도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자리를 예약 해둔 터라 직원이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공지민은 고개를 돌리고 창밖의 푸른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온시환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비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왜, 내가 이제 그 점이 없으니까 나를 쳐다볼 생각도 없어진 거야?”공지민은 그가 귀찮을 뿐이었다. 이미 진실을 알았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지, 굳이 이런 말로 둘 다 어색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그러나 온시환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날카로운 말을 뱉었다.“네가 다니던 고등학교 가서 구은우 사진 봤어. 솔직히, 별로 잘생긴 것도 아니던데.”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지민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온시환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지만 오히려 더 그녀를 찌르는 말을 꺼냈다.“그렇게 좋으면 왜 안 찾아가? 아니면 이미 결혼이라도 한 거야? 네가 이러거 있는 거 보면, 그 자식도 너를 기다리지 않은 모양이지? 참 안 됐네.”그때 마침 직원이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말없이 잔을 들어 올린 공지민은 그대로 커피를 온시환에게 끼얹었다.온시환은 이전에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감정적인 반응이 반갑기까지 했다.마치 나무토막처럼 감정 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공지민은 얼굴을 잔뜩 굳히고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정신이 좀 들었어?”온시환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옆에 있는 냅킨을 집어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어쩌지? 평생 정신 못 차릴 것 같아. 공지민, 난 지금도 이해가 안 돼. 왜 날 대체품으로 썼는지. 진짜 그 점 하나 때문이야?”그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는 평생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을 터였다.그래서 그는 더더욱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심지어 그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7화 뭐가 무서워?

    온시환은 공지민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첫사랑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왜 그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그에게 와서 상처를 남겼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더 한심한 건 자신이었다. 대체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몰래 보러 온 자신이 더 우스웠다.온시환의 차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주차돼 있었다. 연예계에서 그의 영향력 덕분에 차를 촬영장 근처에 세워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그는 창문 너머로 공지민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문 장면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아픈 손목을 문지르는 모습, 옆에 있던 낯선 여성과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별다른 장면도 아닌데 온시환은 끝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공지민은 오후 촬영을 마치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때 문보영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공지민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쪽으로는 그날 밤 목격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문보영이 여전히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둘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문보영은 공지민이 그날 밤의 일을 봤다는 걸 몰랐다. 여전히 밝고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걱정했다.“지민아, 요즘 다시 촬영 시작했어? 혹시 회사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내가 대표님께 한 번 말씀드릴 수 있어. 사실 대표님도 꽤 후회되시는 것 같더라. 요즘 네 인지도도 높잖아.”“아니, 괜찮아.”“그런데 너랑 시환 씨... 지민아, 너희 두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파티에 데려왔을 때만 해도 잘 될 줄 알았는데, 요즘은 연락도 안 한다고 하던데.”예전 같았으면 공지민은 문보영의 말을 진심 어린 걱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문보영이 정말 궁금한 건 온시환이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여부라는 걸.“헤어졌어. 이번에는 정말 끝이야.”문보영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넌 괜찮아? 너 시환 씨 정말 좋아했잖아. 혹시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너를 상처 준 거야?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6화 결국 그의 곁을 떠나갔다

    당연히 취했다. 취하지 않았으면 온시환의 성격상 추지성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추지성은 온시환에게 다시 술병을 열어주며 말했다.“아직 덜 취한 것 같으니 더 마셔.”온시환은 희미하게 뜬 눈으로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지성아, 나 지민이 고등학교에 가봤어. 그리고 지민이 첫사랑을 알게 됐지. 꽤 괜찮게 생겼더라.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뭔지 알아?”“뭔데?”“내 코끝 여기.”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끝을 가리켰다. 여전히 흐릿한 눈빛이었다.“여기에 구은우랑 똑같은 점이 있었잖아. 공지민은 아마 그 점 때문에 나에게 잘해줬던 거야. 너도 우습지 않냐?”그는 입으로 우습다고 말했지만 눈빛에는 슬픔이 넘칠 듯 담겨 있었다.추지성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누구를 이렇게까지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매력적인 여자를 보면 가지고 놀고 싶을 뿐이었고 막상 손에 넣으면 금세 흥미를 잃었다.“못 가지는 게 가장 좋은 거지. 손에 넣으면 금방 싫증 나는 법이거든.”“지성아, 나 여기가... 정말 아프다.”추지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야, 네가 진짜 내 친구 아니었으면 벌써 널 집어 수영장에 던져 넣어버렸을 거다. 여자를 두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술 더 마셔야겠어.”“안 마셔. 마시면 더 괴로워질 뿐이야.”온시환은 그 말을 끝으로 옆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추지성은 옆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려다 그의 축축한 속눈썹을 보고 멈칫했다.‘설마 또 울었어? 요즘 완전 여자 같아. 조금만 힘들어도 시도 때도 없이 우네.’온시환은 원래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특히 수년 전 큰 수술을 받은 후, 의사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뒤로 그는 늘 세상을 가볍게 여겼다.그가 쓰는 드라마 대본들도 대부분 막장극이었고 그는 막장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막장이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돌아와 부메랑처럼 자신을 찌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밤중에 온시환은 추위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5화 대체 취한 거야, 안 취한 거야?

    “뭐?”추지성이 어이없다는 듯 묻자 온시환은 긴 속눈썹을 떨구었다. 두 손은 컵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지민이 곁에 다른 사람이 생겼냐고?”추지성은 요즘 공지민에 대해 나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쨌든 그의 친구를 철저히 갖고 논 여자가 아닌가.“없어. 요즘 조연을 맡으려고 하는 것 같더라. 전에 소속사에서 퇴출당했잖아. 제대로 된 역할을 구할 수 없어서 3회 만에 죽는 조연 역할을 맡는 것 같던데.”“그래?”온시환의 대답은 느릿느릿했고 마치 누군가 그의 성대를 누르고 있는 듯 겨우 쥐어짜 낸 목소리였다.‘설마 얘가 아직도 공지민에게 미련이 남아있는 건가?’추지성이 한참 의아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온시환이 입을 열었다.“네가 지금 촬영 중인 작품 있잖아. 거기 서브 주연 역할을 지민이한테 줘.”“뭐야 열이있는 것도 아닌데? 설마 진짜 미친 거야?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곧바로 온시환의 이마를 짚어본 추지성은 당황한 듯 말했다. 그러자 온시환은 추지성의 손을 탁 쳐내며 다시 고개를 숙여 손에 들린 컵을 응시했다.“예전에 누가 감히 너를 이렇게 가지고 놀았다면, 너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당하고도 네가 먼저 나서서 자원을 주겠다고? 좀 말이 되는 소리 해.”추지성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그의 말은 가차 없었다.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너무 비굴해 보였다.온시환은 결코 이런 비굴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냥 좀 줘.”“싫어. 너 새로 준비 중인 작품도 있잖아. 그렇게 달래고 싶으면 아예 걔한테 주연을 맡기면 되잖아.”온시환의 눈가에 순간 씁쓸한 기운이 스쳤다. 그는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내가 주면 지민이가 받지 않을 거야.”이제 그는 대체품조차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는 그저 길거리의 한낱 행인일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불쾌감을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특히 그녀의 첫사랑 사진을 발로 짓밟았던 일을 떠올리면 그녀는 아마 그를 철저히 증오할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4화 요즘 새 남친이 생겼어?

    또 하루를 그렇게 보낸 뒤 온시환은 이튿날에서야 제원으로 돌아왔다.휴대폰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부분은 요즘 왜 밖에 안 나가냐는 질문이었다. 몇몇은 그와 공지민의 관계를 묻기도 했다.공지민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온시환은 마음속에 분노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그 메시지를 삭제했다. 공지민이라는 세 글자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깊은 밤 꿈에서 깨어나면 그 억울함은 온전히 그리움으로 변해 있었다.또다시 꿈에서 깨어난 그는 고통스럽게 딱딱해진 자신의 몸을 보며 휴대폰을 들어 공지민과의 대화창을 열었다.마지막 메시지는 경찰서에 다녀온 그날 이후로 멈춰 있었다.그날 이후 공지민은 단 한 마디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그래. 점이 없어졌으니 이제 더는 첫사랑처럼 보이지 않겠지. 그러니까 나를 신경 쓸 리가 없지.’온시환은 몸을 뒤척이며 마음이 쓰라린 것을 느꼈다.‘구은우가 대체 뭐가 좋다고. 고등학생 시절의 나도 엄청 대단했어. 나 역시 학년 1등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짝사랑 대상이었어. 그저 공지민이 그때 나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그랬다면 분명히 나에게 더 빠졌을 거야.’그는 혼자서 고등학생 시절의 구은우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를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임을 알고 있었다.신경 쓸수록 자신이 대체품이라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분노가 커질수록 그녀가 꿈에 자꾸 나타났다.온시환은 다시 몸을 뒤척이며 휴대폰 화면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다음 날 아침, 그의 휴대폰에는 더 많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왜 요즘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들이었다.‘얼마나 오래됐지?’사실 그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시간이 흐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반달이 지나고 추지성이 직접 그를 집에서 찾아냈다.“시환아, 오늘 밤에는 나랑 술이나 한 잔하러 가자. 너 요즘 밖에 전혀 안 나가니까 사람들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3화 진정한 바람둥이

    차 안은 조용했다. 온시환이 간헐적으로 들이쉬는 숨소리만 들릴 뿐 다른 소리는 없었다.추지성은 몰래 차에서 내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 손으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서성거렸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그의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었다.그들 무리에서 온시환은 항상 가장 자유로운 사람으로 통했다. 여자를 잊는 데 있어 누구보다 빠르고 확실한 사람이었다.전날 밤 그의 침대에서 내려온 여자의 얼굴을 다음 날이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게 온시환이었다.그야말로 진정한 바람둥이였다.그런데 지금 차 안에 웅크려 울고 있는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추지성은 혼란스러웠다. 여자가 그렇게 강력한 존재인가?이해할 수 없었다.반 시간쯤 흐른 후 온시환은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슬픔뿐만 아니라 후회도 함께 밀려들었다. 추지성에게 이런 초라한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공지민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가다니.온시환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생애 가장 큰 망신을 오늘 모두 겪은 것 같았다.땅에 구멍이라도 생겨 그 안으로 들어가 숨고 싶었다.차에서 10분을 더 버틴 후에야 그는 문을 열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멀리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추지성은 그의 부은 눈을 보자마자 다가왔다.“시환아, 좀 괜찮아졌어?”“응.”온시환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울어서인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추지성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온시환은 문을 열고 들어가다 말고 잠시 생각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오늘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추지성은 즉시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걱정 마. 이건 너랑 나랑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야.”온시환은 다시금 눈가가 시큰해지며 무력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시환아, 밥은 안 먹고 그냥 올라가?”추지성이 물었지만 온시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침실로 들어가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추지성은 함부로 따라 올라갈 수 없었다. 그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182화 날카로운 칼에 심장이 관통당한 것 같아

    온시환은 기가차서 웃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경찰이 도착해 집 안을 둘러본 뒤 공지민에게 물었다.“신고하신 분이 맞으신가요?”“네, 제가 신고했어요. 불법 침입에 제 물건을 훼손했어요.”경찰은 곧 온시환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를 보자마자 알아보는 눈치였다.온시환은 연예계에서도 유명 인사였다.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았고 인터뷰에도 자주 얼굴을 비췄으며 뛰어난 외모 덕분에 남자 배우들보다도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경찰은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시환 씨,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온시환은 그 순간 차분해진 표정으로 공지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점을 뺐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매정한 거지, 그렇지?”그의 목소리는 허공을 떠도는 듯했고 눈가에는 비웃음이 어렸다.공지민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녀는 그의 턱을 잡아 좌우로 흔들며 매정하게 말했다.“그래, 이제 정말 하나도 안 닮았네.”그 말은 칼처럼 날카롭게 그의 가슴을 찔렀다. 온시환은 마치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더는 말할 기력조차 없어진 온시환은 고개를 푹 숙이고 경찰을 따라 걸어 나갔다.몇몇 경찰이 그를 데리고 떠났다. 공지민은 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방 안의 엉망진창이 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온시환은 경찰차에 타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는 평생 막장 드라마를 써오면서 언젠가 자신이 그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대체품 취급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공지민, 네가 감히...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억울함과 분노로 속이 끓어올랐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추지성은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자마자 귀를 의심했다.‘시환이가 경찰서에 잡혀 있다니? 그리고 보석을 해줘야 한다고?’그는 어안이 벙벙한 채 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했다. 막상 도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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