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의 몸은 흠뻑 젖어져 있었고 긴 생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로 바닥을 밟고 있으니, 발목마저 뻣뻣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의 발은 하얬고 정갈하게 정리된 발톱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오므리고 있었다.반승제는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쳐다 보았고 노트북을 닫으며 비웃었다.“여보? 이제는 네 속셈을 감출 생각도 없나 봐?”그의 시선을 느낀 성혜인이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불빛 때문에 그녀의 속옷마저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창백하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오르더니 그대로 욕실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그녀의 수작 과정을 보고 싶지 않았던 반승제는 다시 자신의 노트북과 파일을 가져와 자리를 뜨려고 하였는데 파일 안에 있던 사진들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미처 주울 겨를도 없이 욕실의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갈아입을 옷조차 없었던 성혜인이 타올을 두르고 젖은 긴 머리를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뽀얀 얼굴이 드러났고 그녀의 말과 행동도 전보다 많이 진정된 듯싶었다.“대표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사과할게요.”성혜인은 고개를 숙이고는 키를 꺼냈다.“방은 다른 방으로 준비해 드릴게요. 그리고 필요하면 이번 일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도 할게요.”그녀를 이승주 손에서 구해준 자신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기는커녕 그녀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이런 취급을 받자 화도 나지 않았다.“정신적 피해 보상?”반승제는 그녀가 한 말을 다시 반복하며 자신이 들은 게 틀림이없다는 걸 확인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성혜인은 불안감에 타올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는 바람에 타워에 주름이 잡혀져 있었다. 아직 몸 안에 약물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기에...고개를 들어 반승제와 눈을 마주치자 방금까지 말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말들이 금세 공기 속 먼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머릿속에는 그녀가 그에게 붙어 억지로 키스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자, 가슴속에서는 이
성혜인은 이마에 붙어 있는 앞머리를 뒤로 넘겼고 눈빛은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내뱉는 발음은 정확했고 온화한 미소마저 지어 보이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대표님, 제가 자기소개를 다시 할게요. 저는 실내 디자이너 페니라고 해요. 대표님께서 보고 계신 작품도 제가 디자인한 거예요.”반승제의 발걸음은 그대로 멈췄고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자신이 환청을 들은 건 아닌지 싶었다.성혜인은 그가 자신이 내민 손을 잡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자연스레 손을 거두었다.“전에 몇 번이고 대표님과 미팅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별로 흥미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제 작품 사진을 갖고 계시네요. 혹시 생각이 바뀌셨나요?”그녀는 막힘없이 말하였다.“만약 그런 거라면 저도 대표님에게 보상할 기회가 생긴 거네요.”반승제 이십몇 년 생활에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실내 디자이너?그는 고개를 숙여 손에 쥐어져 있는 사진 말미에 있는 디자이너 이름과 일렬번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Penny. 영어 문자로 정갈하게 쓰여져 있었다.그리고 그동안 두 사람 대화들을 떠올린 그는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오해였다고?남자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손에 사진을 꼭 쥔 채 다시 몸을 돌려 소파에 앉았다.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심인우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대표님, 여자분이 입을 옷을 가져왔어요.”성혜인은 자신을 위해 준비해 놓은 옷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심인우가 다시 한번 노크를 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문은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해 열려 있었고 온몸이 물에 젖은 여인이 목욕 타올을 걸치고 있는 게 보였다.심인우의 눈빛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안 그래도 갑자기 미팅을 중단하는 바람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려들어 대표 옆에 있던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심인우도 여기저기서 그녀가 자신의 대표한테 여보라고 했다는 무성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그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다가 급히 봉투에 있는 것을 건네주면서도 눈길은
방안은 시계 소리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반승제는 다시 한번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였다.‘그러니까 나를 여보라고 부른 건 사람을 잘못 봐서라고?’크리스탈 샹들리에의 빛이 그녀의 옆 모습을 비췄고 그녀가 말을 계속하였다.“그날 밤 일에 대해 전 이미 잊었어요. 대표님도 잊었을 거라고 믿어요. 방금 여보라고 한 것도 정식으로 사과할게요.”사춘기 소년 소녀들도 아니고, 그리고 그날 밤 일은 소윤이 꾸민 일이니 그의 문제만은 아니니 당연히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눈앞에 놓여 있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그녀였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았다.“혹시 제 디자인에 흥미가 생기신 거라면 대표님이 원하는 걸 말씀해 보세요.”너무도 자연스레 공적인 얘기로 화제를 돌린 그녀는 마치 그날 일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반승제는 욕실에서 실수로 그녀 옷 밑에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보고서야 그날 자신이 얼마나 이성을 잃었는지 알수 있었다.그날따라 더 심했을지도 몰랐다.그녀가 그 꼴로 집에 돌아갔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이혼하자는 말도 없는 걸 보아서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거나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그는 등을 뒤로 졎혔고, 그 짧은 순간 그는 다시 평정심과 이성을 되찾을수 있었다.“사과해야 할 건 내 쪽이야. 만약 그날 밤 일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혜인이 그의 말을 잘랐다.“아니요.”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였다.“저와 제 남편 사이는 그대로예요.”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모르는 사이여야만 했다. 아무것도 변할 건 없었다.반승제는 사실 기분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더욱이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자 비웃고 싶어졌다. 여전하다고?어떤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바람을 묵인할 수 있단 말인가.자신의 영역 안에서 제삼자의 출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는 성혜인
반승제의 뒤에 서 있던 심인우는 자신의 대표가 회의 시간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알려 주려고 하려다 성혜인의 얼굴을 마주치고는 도로 삼켰다.‘이분이 바로 어제 그 여성분인가? 도대체 우리 대표님과는 무슨 관계일까?’곧이어 엘리베이터가 그들 앞에 멈춰 섰고 성혜인은 손으로 ‘들어가세요’ 하는 자세를 취하였다.반승제는 사양하지 않았고 이어서 몸을 돌려 심인우에게 먼저 회사에 가 있으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발을 내디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호텔의 조식은 아래층 로비에 있었는데 그들이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반승제와 성혜인은 창가 쪽 자리로 가서 앉았고 곧이어 웨이터가 레몬물을 따라주었다.그녀는 레몬물을 마셨고 레몬의 산미 때문인지 몽롱하던 정신이 많이 맑아진 것만 같았다.식사 후 병원에 가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어쩌면 가는 길에 저혈당으로 먼저 쓰러질 불상사를 피할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물잔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대표님, 평소에 무슨 책 좋아하세요? 임 사장님한테 듣기로는 예술 관련된 수업도 들으시는것 같던데요.”고객이 원하는 스타일과 평소의 취미 생활은 그녀의 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이런 간단 대화는 디자인의 모티브를 결정짓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반승제는 아마 아메리칸 스타일은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무겁고 색채도 화려하기에.그렇다고 코리안 스타일도 그에게는 딱딱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였으니 어쩌면 과감한 스타일을 선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간단한 대화로 그의 선호도를 많이 알고 싶었지만 반승제는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당신이 좋을 때로.”성혜인이 제일 난감한 고객이 바로 이런 유형이다. 마치 학창 시절에 내준 과제와 같이 자신의 상상을 바탕으로 하는 문장 짓기 같은 거 말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고 선택지가 많을수록 고민은 깊어지기 때문이다.그에 반해 명제는 범위를 좁혀준다. 비록 발휘할 수 있
성혜인은 레몬물을 마시다가 하마터면 사레 걸려 그대로 내뿜을뻔하였다.그녀도 당연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본인의 내연녀가 될 수는 없으니까.티슈를 손에 든 그녀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입가를 정리하였다.“알아요, 그래서요?”그녀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였다. 마치 반승제의 결혼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듯이 말이다.이런 그녀의 단조로운 태도는 맞은 쪽에 앉은 반승제마저도 그녀를 흥미스럽다는듯이 쳐다보았다.진유나는 순식간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한 꼴이 되고 말았다.그래서? 여기에서 어떻게 그래서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설마 그녀가 보낸 사인이 잘못 전달되기라도 했단 말인가?그녀의 행동은 너무도 기가 막혔다. 뻔뻔하다고 하였으면 좋을지 아니면 이미 반승제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하여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진유나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여기서 자기 멋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반승제를 보더니 다시 원래의 온화함을 보였다.“승제 씨, 삼 년 동안 한 번도 안 왔으니 여기 레스토랑 셰프 바뀐 건 몰랐죠? 여기 이번에 바뀐 새로운 셰프 네덜란드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분이래요. 승제 씨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있어요.”그녀는 자연스럽게 메뉴판을 가져오더니 테이블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였다.반승제의 평온한 표정은 그 어떠한 것도 읽을 수 없었으며 눈빛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거절도 승낙의 대답도 없이 말이다.사실 그녀는 이렇게 냉담한 사람과 어색한 자리를 갖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하지만 고객의 니즈를 맞추고 그의 성향을 맞추는 것 또한 을한테는 업무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가 웃어 보였다.“베어틴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요리는 메뉴판에 없어요. 그리고 오늘의 선약은 저예요. 만약 대표님과 식사 자리를 원하시면 다른 시간으로 약속 잡길 바랄게요.”성혜인의 말은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천하의 진유나도 이런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제 남편은 엔지니어예요.”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한 그녀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같이 하는거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만 노력하면 안 되죠.”그녀는 반승제 쪽으로 커피를 건네며 온화하게 웃었다.“돈벌이는 많지 않아도 책임감 있는 사람이에요.”성혜인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던 남편 될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억지로 연상시켜 말하고 있었다.반승제는 그 어디로 보아도 그녀가 원하는 조건과는 멀어 보였다.“그러는 대표님도 결혼하셨다고 방금 들은 거 같은데요. 와이프는 어떤 사람인가요?”성혜인은 고객과의 뉴대감을 위해서 화제를 찾아서 말한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의 이름도 생긴 것도 몰랐다. 그러는 그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반승제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있는 그대로 말하였다.“나도 몰라.”하지만 이혼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태이다. 이혼 합의서까지 성씨 집안에 보냈지만, 그녀는 아무런 미동도 없다.그녀는 뭘 기다리고 있는 걸까?설마 반가의 집안에서 기생충처럼 붙어 있으려는 작정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성혜인은 그의 솔직한 대답에 당황하였지만, 때마침 웨이터가 가져온 음식 덕분에 화제 전환을 할 수 있었다.“호텔의 베어틴 셰프도 예술 애호가게요. 제일 대단한 건 그 예술을 음식에 담아둔거구요.”정갈한 요리가 눈앞에 놓여졌다. 화려한 색상은 자칫 잘못 보면 어지러워 보일 수 있으나 서로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웠다.“대표님, 드세요.”성혜인은 눈앞이 점점 더 흐려왔고 한시라도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병원으로 가고 싶어졌다.하지만 그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그런데 내가 위병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그녀가 잠시 멈칫하였다.“대표님이 일 중독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면 식사를 제때 못 챙기는 건 당연한 거고요. 한마디로 대표님 상황으로 맞춰본 거에요.”사실 그녀는 그의 할아버지와 연락할 때 반태승이 그녀에게 한 말이었다. 일 중독이라 자주 위병이 발작한다고
“남편은 야근 때문에 바빠요. 그래서 부담 주고 싶지 않아요.”성혜인은 어지러움증을 완화하기 위해 관자놀이를 천천히 눌렀다.반승제에게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녀는 에스컬레이터를 잡고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대표님 차는 저쪽에 있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반승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젯밤 그런 상황에서 혹시라도 그녀가 욕실안에서 쓸어졌다면 아마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생각하고 있으니.바보인 건지 아니면 자신의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이러는 건지 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로 이번에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싶었다.“병원까지 데려다줄게.”성혜인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그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여 자기 쪽으로 당겨왔다.“페니?”성혜인은 이미 극에 달하였다. 사실 레스토랑에서부터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햇빛을 보니 현기증이 더 심해졌다.그녀는 반승제가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목이 막힌 것처럼 대답할 수가 없었다.반승제는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불덩이가 될 지경까지 참아왔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의 차가운 손 덕분에 편안함을 느꼈는지 그녀가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대고 문질렀다.반승제의 손은 잠시 멈칫하더니 감전이라도 된 듯 급히 손을 뗐다.앞으로도 두 사람은 일 때문에라도 자주 만나야 하니 이렇게 사람을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반승제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허리를 굽혀 그녀를 품에 안았다.거리에 막 들어서자, 차 한대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을 내리니 양한겸었다.양한겸은 아직 성혜인이 이 계약 건을 성사시킨 것에 대해 몰랐다. 멀리서 반승제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나누어 좋은 인상이나 남기고 싶었던 것뿐인데 반승제가 성혜인을 안고 있는 걸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반승제도 그를
양한겸은 그녀를 부축하며 그의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성혜인이 결혼을?반승제의 표정을 보아하니 농담하는 건 같지 않았다.그해 성혜인은 졸업하자마자 양한겸에게 스카우트 되었다.이 삼 년 동안 그녀가 이성과 접촉하는 걸 본 적도 없는데 결혼이라니.양한겸의 놀란 표정을 본 반승제는 눈썹을 치켜들었다.“일단 병원부터 가죠.”양한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성혜인을 부축하며 병원 로비로 들어섰다.반승제는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 이것도 앞으로의 파트너쉽을 위해서 한 일일 뿐이었다.차에 돌아와 BH 그룹으로 돌아가는 길, 반태승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승제야. 혜인이는 만났어? 전보다 더 이뻐진 것 맞지?”몇 마디도 못하고 기침을 하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걸 보니 병세가 더 악화한 모양이었다.“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몸조리나 잘하세요. 이쪽은 걱정하시지 마시고요.”“이 늙은이 걱정 안 하게 빨리 손주나 낳아서 효도 좀 해. 혜인이가 원래 내성적인 데다가 예술만 하는 애라 그래. 남자인 네가 좀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안그래?”반승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애초에 그녀가 할아버지에게 무슨 방법을 썼는지 알고 싶어졌다.반박하려고 하자 수화기 너머로 반태승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한마디 더 하면 말이 더 길어질 걸 아는 그는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였다.“노력할게요.”그제야 반태승도 만족하였는지 웃었다.“난 다음 달 돌아갈련다. 외국에 있으려니까 아는 사람들도 없고 그리고 우리 혜인이도 보고 싶기도 하고. 나 없는 동안 네가 잘 돌봐주어야 해. 누구도 괴롭히게 해서는 안 돼.”반승제의 미간이 구겨졌다.당시 할아버지는 외국으로 출국할 때 거기 섬에 있는 요양원에 있겠다고 하였는데 일 년도 안 되는 지금 다시 귀국하려고 하는 것이었다.그는 원래 먼저 이혼을 한 후, 천천히 반태승에게 말할 작정이었다.그런데 다음 달에 돌아와서 갑자기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자리로 쓰러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반승제의 표정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