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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좋아하는 여자

잠깐 놀란 건 사실이지만 성혜인은 상대가 자신을 알아볼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명절에도 반태승만 따로 만났기에 반씨 집안의 다른 가족들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반제승 본인도 자신의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더 알 턱이 없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떠난 반제승을 떠올리며 성혜인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승제 씨는 아무래도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요.”

예쁜 여자라면 직업이고 뭐고를 떠나 사족을 못 쓰는 임경헌은 물씬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혜인 씨의 디자인은 제가 본 것 중 최고였어요. 저희 사촌 형이 경영을 배우는 동시에 예술도 배웠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보아냈을 거예요. 오늘은 그냥 이혼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 같아요.”

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양한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반승제 씨가 결혼했다고요?”

임경헌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작에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이혼하느라 변호사랑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에요.”

임경헌은 성인이 되고 나서 흥청망청 노느라 집으로 돌아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저 반승제에게 할아버지가 찾아준 아내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

결혼 얘기를 처음 들은 양한겸은 궁금한 듯 계속해서 물었다.

“저는 네이처 빌리지의 펜션이 신혼집인 줄 알았어요. 만약 신혼집이 아니라면 혼자 사시는 집인가요?”

임경헌은 성혜인에게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신혼집이기는 해요. 저희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지금의 형수랑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이 집은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면 같이 살려고 준비하는 것 같아요.”

임경헌은 이렇게 말하면서 성혜인에게 주스를 건네줬다.

“형이 곧 다시 온다고 했으니, 그때 다시 혜인 씨의 설계도를 보여주자고요. 형도 무조건좋아할 거예요.”

성혜인은 주스를 받아 들면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제가 후에 꼭 밥 살게요.”

임경헌은 성혜인의 당당한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제 형이랑 같이 일하면 돈은 둘째 치고 혜인 씨의 명성에도 아주 도움이 될 거예요.”

임경헌의 말이 맞았다. 이번 일이 성사되기만 한다면 성혜인의 고객층은 상류 사회로 진급할 수 있었고 양한겸의 회사도 일 없을 걱정을 안 해도 되었다.

복도의 다른 한쪽에서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차가운 아우라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울리는 휴대폰에 반승제는 머리 숙여 확인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임경헌인 것을 보고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시했다.

곁에 있던 남자는 반승제의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왜 그래? 네가 이런 표정을 하고 있으면 누가 감히 가까이하겠어?”

룸은 아주 컸고 사람도 꽤 많았다. 하지만 반승제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전부 권세의 중심에 있는 최상층이었다. 다른 사람은 반승제를 보고서도 멀리 떨어져 앉았다.

온시환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술 한 잔을 건네줬다. 그는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인상을갖고 있었다.

“왜 그래? 혹시 와이프가 사인을 안 해줘?”

반승제가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반태승의 귀에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반승제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댔다. 그는 패왕의 기운을 뽐내며 말했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사인을 안 할 리가 없지.”

반승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반승제가 기분 나쁜 이유는 명의상의 아내가 아닌 방금 전의 여자 때문이었다. 그는 그토록 생소해 보이는 여자가 3년의 경력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때 옆 테이블에서 마침 여자 친구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서슴없이 했는데 평소에는 그다지 관심 없었던 반승제도 오늘따라 몇 마디 듣게 되었다.

“결국에는 순진한 척한 거였다고?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어떡하긴, 당연히 헤어졌지. 병원을 얼마나 다녔으면 의사가 다 알아볼 지경인지... 내가 심지어 결혼까지 생각했잖아. 만약 진짜 결혼했더라면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를 공짜로 키워줄 뻔했어.”

돈 많고 시간 많은 부잣집 도련님에게 가장 재미있는 화젯거리가 바로 여자였다.

“요즘 여자 중에 단순한 여자가 어디 있어? 네가 어떤 유형의 여자를 좋아하든 다 찾을 수 있을 지경이라니까? 그리고 단순해 보이는 여자일수록 사석에서 더 문란하게 놀지도 몰라.”

반승제는 술잔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성혜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어젯밤 일어난 일들도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말 못 한 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때 임경헌이 또 전화 와서 재촉하면서 자신의 룸에서 얼굴을 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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