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들어 앞까지 걸어온 성혜인을 마주했다. 그제야 목걸이의 번호를 확인한 그는 번호가 익숙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겨울이는 성혜인을 보고 흥분해서 일어나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손에 쥔 돈 봉투가 너무도 눈에 띄었기에 성혜인은 반승제에게 주는 대신 심인우에게 주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겨울이가 집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나갔더라고요. 귀찮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심인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덤덤하게 돈 봉투를 건네받았다. 성혜인은 그의 손에서 목줄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제야 목줄의 손잡이에 쓰여 있는 영문을 발견했다.HERMES“...”개 목줄이 에르메스라니. 10만 원으로는 턱도 없었다. 성혜인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물었다. “이 목줄 얼마예요? 제가 드릴게요.”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비난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을 막 쓰네. 개 목줄까지 명품이라니.’“페니 씨, 괜찮습니다.”성혜인은 자신이 10만 원을 준 것이 반승제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반승제의 비서까지 모욕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준 데다가 더 보태주겠다고 하는 것도 애매했고 다시 빼앗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반승제가 컴퓨터를 끄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뺐다. 성혜인은 목줄을 짧게 잡아 겨울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 반승제가 성혜인의 곁으로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겨울이는 반승제가 맘에 들었다는 듯 혀를 내밀고 반짝이는 눈으로 반승제를 바라보았다. 겨울이는 반승제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의 주인처럼 말이다.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페니?”성혜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겨울이가 '멍' 짖으며 먼저 대답했다. 마치 반승제에게 대답하는 듯했다. 반승제는 가볍게 웃고는 그대로 떠나가 버렸다. 성혜인은 부끄러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그대로 자리에 굳어있다가 고개를 숙여 겨울이를 쳐다봤다. “널 부른 것도 아닌데 왜 짖은 거야.”성혜인이 손
성혜인이 집에 들어서자 스물여덟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외숙모인 이소애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었는데 마치 상전을 모시는 듯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여자는 성혜인을 보더니 먹고 있던 사과를 내려놓았다. “어머, 도시 사람이 왔네? 집은 더러우니까 알아서 앉고 싶은데 앉아.”임동원과 이소애, 두 사람의 얼굴에 다 어색함이 드러났지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소애는 성혜인을 끌어다가 걱정하며 물었다. “살 빠졌네, 혜인아. 너희 애비가 혹시 그 여자만 예뻐하느라 너에게 소홀한 것이 아니냐?”“무조건이죠.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몇 년인데. 남자는 원래 다 그래요. 더 예쁜 걸 보면 정신을 못 차리죠.”얘기하는 것은 그 스물여덟 정도의 여자였다. 성혜인의 사촌 형수이기도 했고 이 집안의 며느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깐깐한 모습으로 주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또 말을 이어갔다. “요리도 아직 다 못했으면서 감성팔이는 무슨.”이소애는 먼저 성혜인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혜인아, 일단 앉아. 두 가지 요리만 더 하면 되니까.”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상대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가 말한 게 틀렸어? 네 집 재산은 지금 모두 그 여자 거잖아. 네 아버지는 제사 지내러 안 오신 지 몇 년이나 됐더라? 지금 너를 곁에 두는 건 네가 아직 쓸모 있기 때문이야.”성혜인은 고개를 살짝 들어 사촌 형수를 쳐다보며 속으로 화를 삼켰다. “우리 집 일은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하진희는 또 눈을 흘기며 얘기했다. “그러게. 네 집이 도시에서 그렇게 돈도 많고 큰 회사도 운영하고 차도 몇억씩 한다며? 나 같은 일반인과는 다르겠지. 우리가 평생 벌어도 네가 하루에 버는 돈보다 적을 테니.”임동원은 성혜인을 말리며 둘이 싸우지 말기를 바랐다. 성혜인은 그저 심호흡하며 하진희를 시야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진희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자기 침실로 돌아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세
이 씨도 이런 차는 처음 봐서 자랑하고 싶었다. “혜인아, 저 차 봤어? 듣기로는 몇십억씩 한다던데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셨나 보다. 책임자들이 같이 술 마시러 갔을 때 그분이 벽이 비어 보인다고 해서 네가 생각났다. 이런 분들의 요구가 까다롭긴 하지. 게다가 이런 차를 모는 사람이면 성격도 안 좋을지 몰라. 하지만 부담 갖지 말아.” 성혜인은 그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작게 웃었다. “알겠어요, 아저씨. 먼저 들어가세요.”이곳, 하늘에 리조트는 서촌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었다. 5성급 호텔의 기준으로 만들어졌는데 일반인한테는 개방하지 않고 주로 서촌에 투자하러 온 기업인을 접대했다. 성혜인도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들어서니 정원이 엄청 아름다웠다. 곳곳에 정자와 분수가 있었다. 게다가 목재의 선택도 꽤 많은 공을 들인 것이 보였다. 성혜인이 그림을 그리러 온 것이라는 것을 알자 얼른 그녀에게 방을 소개해 주었다. “물감은 다 준비되었는데, 지금 가서 보실 건가요?”성혜인은 상대가 급해한다는 것을 알고 자기 물건을 빨리 정리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도착한 후에야 보니 그 벽은 너무도 눈에 띄는 곳에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볼 수 있었다. 3미터 정도였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비해 텅 빈 흰 벽은 어딘가 아쉬워 보였다. 성혜인은 준비된 물감을 확인해 보았다. 그녀가 평소에 쓰던 것과 다르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따가 시작할게요.”옆의 사람은 성혜인에게 조심하라고 얘기하려고 했다가 그녀가 제원 미술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말을 삼켰다. 성혜인은 옆의 의자에 앉아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여기에는 물감의 농담을 이용한 수묵화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터치가 너무 많으면 복잡해 보이기에 최대한 적게 그려야 했다. 속으로 생각을 마친 그녀는 물감을 취하기 시작했다. ...접대받은 방에 돌아온 반승제는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오늘 나온 사람들은 모두 현지 회사의 책임자였다. 다 나이가
반승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마구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제는 성혜인의 강아지 때문에 안 들어도 되는 욕을 먹었고, 오늘은 저녁에 서촌까지 와서 옷에 물감을 뿌리고. 반승제는 자신이 전생에 성혜인에게 큰 죄를 지었나 싶을 정도였다. 성혜인은 또렷한 남자의 얼굴에 그제야 이게 환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성혜인도 그녀가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실수를 무마해 보려 했다. “반 대표님, 여벌옷이 있으세요? 이건 제가 세탁해 드릴게요.”반승제는 그녀의 손에 있는 팔레트를 보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성혜인은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싸쥐었다. 왜 매번 이런 일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반승제는 성혜인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얘기했다. “세탁해 준다며? 네가 물감을 뿌렸으니 네가 책임져야지.”성혜인은 총총걸음으로 뒤따라갔다. “제가 꼭 책임지겠습니다.”“1600만.”그는 덤덤한 어투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 성혜인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황당해하고 있다가 그제야 1600만이 셔츠의 가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비싼 옷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검은색 물감 때문에 씻겨질지도 미지수였다. 살짝 긴장된 성혜인은 쭈뼛거리며 얘기했다. “닦을 때 살살 문지를게요...”반승제는 성혜인이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 갑자기 그녀가 도박장에서 이승주를 크게 골탕 먹인 일이 떠올랐다. 완전히 다른 두 모습을 떠올리며 반승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본인의 방으로 돌아온 반승제를 본 심인우는 다가가려고 하다가 그 뒤에 성혜인이 뒤따르는 것을 보고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반승제는 방에 들어와 셔츠의 단추를 모두 풀고 그대로 성혜인에게 던져버렸다. 성혜인이 그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셔츠가 성혜인의 머리를 덮었다. 성혜인은 얼굴이 달아올라 옷을 챙겼다. 그리고 시선으로 방안을 둘러보다가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반승제가 셔츠 하나만 입었었는데 지금 벗어서 성혜인에게 던져줬으
방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관자놀이를 누르던 반승제의 손이 굳어버리고 고개를 들어 성혜인을 쳐다보았다. 말 한 성혜인도 두 남녀가 한 방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게 이상한 것 같아 멋쩍게 웃었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반승제는 성혜인을 보며 그녀가 밖에서 다른 남자한테 이렇게 적극적인 것을 과연 집의 그분은 알까 생각했다. 시선을 피한 반승제의 말투는 더욱 딱딱해졌다. “나가.”성혜인은 그저 반승제가 이성과의 접촉을 싫어하거나 혹은 윤씨 가문의 그분 때문에 다른 이성과 접촉하지 않는 줄 알았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 반 대표님. 그럼 쉬세요.”그녀는 진짜 아무런 뜻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취한 고객을 도와주어 호감을 사고 싶었을 뿐이다. 반승제는 아직도 설계 초고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지 않았다. 성혜인은 자기 작품에 항상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객은 성혜인의 자신감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방으로 돌아온 성혜인은 옷을 갈아입고 물감이 묻은 셔츠를 대야에 넣어 몇 번 문지르고 또 물로 두어 번 헹궜다. 얼룩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창가에 걸어놓고 말리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아까 넘어진 곳에 와서 붓과 팔레트를 한 번 씻고 다시 물감을 묻혔다. 그리고 다시 벽 앞에 와서 남은 부분을 그렸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빨리 그려야지, 아니면 이튿날 아침에는 감을 잃어서 원하는 대로 그려내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성혜인은 계속해서 열심히 그려나갔다. 오른쪽에 있는 가로등이 나방 몇 마리를 불러온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고요했다. 새벽 3시쯤, 피곤한 성혜인은 눈을 비비다가 몸을 일으켜 찬물 세수를 하려고 했다. 세면대 옆에 있는 아치형 문을 지날 때, 저 멀리 정원 안의 복도에서 수려한 몸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는 기둥에 기댄 채 잠이 오지 않는지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나른함이 가득했지만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만드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성혜인은 반승제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그날 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성혜인 등 뒤에 있던 움푹 들어간 두 보조개를 떠올렸다. 엉덩이와 허리를 이어주는 부분에 있는 보조개는 비너스 보조개라고도 불리는데 인체의 섹시한 눈이기도 했다. 지금 성혜인은 반승제를 등지고 있었다. 등과 허리의 곡선을 보니 그날 밤 그녀의 허리를 잡고 끝까지 괴롭혔던 것이 떠올랐다. 반승제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분위기가 오묘해지기 시작했다. 성혜인은 그림을 그리며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성혜인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뒤에서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순간 얼어붙은 그녀 옆으로 반승제가 스윽 지나가 다른 붓을 집어 들었다. 반승제의 가슴과 성혜인의 등이 가볍게 닿았다가 바로 떨어졌다. . 하지만 그 온기가 옷깃을 넘어 피부까지 전해졌다. 성혜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반승제는 붓을 들고 팔레트에서 물감을 묻히더니 벽에 몇 번 터치했다. 반승제는 그림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성혜인의 생각과 똑같았다. 성혜인도 그렇게 그려 넣으려고 생각했었으니까. 머릿속의 잡생각을 날려버린 성혜인이 이성을 붙잡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반승제는 그저 조금 그려보고 싶은 것이었는지 그만 붓을 내려놓았다. “반 대표님, 늦었는데 쉬지 않으세요?”“머리 아파서.”성혜인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홀로 복잡한 심정을 가라앉히며 열심히 그림을 그려나갔다. 한 시간 후, 성혜인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반승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길게 숨을 내쉰 성혜인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승제가 없으니 더 집중해서 그릴 수 있었다. 7시가 되어서야 그림을 완성한 성혜인은 걷는 게 걷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다. 물감과 도구들을 간단히 정리해서 구석에 놓으면 이따가 사람이 와서 처리할 것이다. 성혜인은 간단히 정리한 후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재빨리 샤
성혜인은 그대로 오후까지 자버렸다.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미친 듯이 울리는 핸드폰을 급히 집어 든 성혜인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외숙모 이소애가 건 전화였다. 이소애이 다급하게 물었다. “혜인아,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아서 걱정했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외삼촌더러 널 찾으러 가라고 하려던 참이었어.”성혜인은 부재중 통화를 확인했다. 다섯 통이나 걸었으니 이소애가 걱정할 만도 했다. “전 괜찮아요. 어제 너무 늦게 잤더니 피곤해서 못 들었나 봐요.”이소애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오늘 어머니 제사는 갈 거니?”“네, 이미 일어나서 씻었어요. 이따가 향만 사가면 돼요.”“향은 이미 외삼촌이 샀어. 외삼촌보고 네가 머무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할게. 일어나면 외삼촌이랑 같이 와.”성혜인은 전화를 끊은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나가서 임동원과 만났다. 임동원은 산 물건을 성혜인에게 건네주면서 얘기했다. “외숙모가 그러는데 네가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하다며. 내가 운전할 테니 조수석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자.”“고마워요, 외삼촌.”조수석에 탄 성혜인은 짙은 휘발유 냄새를 맡았다. 임동원은 이 차를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깨끗하게 관리했다고 해도 휘발유와 가죽의 냄새는 빠지기 어려웠다. 목적지에 도착 한 그들은 산 물건들을 가지고 차에서 내려 무덤을 찾아냈다. 성혜인은 해마다 꼭 오곤 했다. 가끔 일이 있을 때는 며칠 전이나 후에 오기도 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그녀의 어머니가 이 이유로 그녀를 탓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성씨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아 엄마한테 꼭 얘기하고 싶었다. 외삼촌은 멀지 않은 곳에서 성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덤 주위는 깔끔하게 정리된 흔적이 있었다. 성혜인은 쪼그려 앉아서 열심히 향을 태웠다. 향을 다 태운 성혜인은 눈을 가볍게 비비고 임동원의 곁으로 왔다. “외삼촌, 이제 가요.”담배를 피던 임동원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반승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서류 더미에서 고개를 들었더니 밖에 서서 환하게 웃는 성혜인이 있었다. 서천의 풍경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 풍경에 성혜인의 웃는 얼굴이 더해지니 마치 따스한 햇볕과도 같았다. 서류를 든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왜 어디를 가도 성혜인을 만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성혜인은 반승제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 번 더 노크했다. “반 대표님?”반승제는 시선을 피하며 얘기했다. “타.”성혜인은 문을 열고 차에 탔다. 밖의 햇빛이 매우 강했다. 게다가 점심이어서 더 따가웠다. 문을 열자마자 더운 공기와 함께 성혜인의 체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뒤에 서 있던 임동원은 성혜인이 차에 타는 것을 확인하고 이 씨의 차에 올라탔다. 3km정도 타고 나왔을 때 앞에 주차된 BMW가 보였다. 임동원이 오늘 끌고 나온 그 차. 하진희는 서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고 그녀의 옆에는 질이 좋지 않아 보이는 남자가 오토바이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반승제의 차를 보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진희야, 너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아?”하진희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 차는 그녀가 본 가장 예쁜 차였다. “얼마인데?”남자는 얘기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2억?”“20억도 넘어!”하진희는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20억이 넘는 차라니. 20억짜리 차는 처음 봤다. 20억이면 집을 몇 채나 살 수 있었다. 놀란 그녀는 문득 그 차 뒤의 차에 앉은 임동원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임동원은 어쩔 수 없이 기사와 얘기하고 차를 세웠다. “아버님, 차에 기름이 다 떨어졌잖아요. 나오면서 주유도 안 해요? 어떻게 운전하라는 거예요.”임동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진희야, 기다려 봐. 내가 동료를 불러서 주유해달라고 할게.”하진희는 차를 훑어보았는데 성혜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20억이 넘는 차를 떠올린 하진희는 설마 성혜인이 그 차에 탔을까 하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