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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자존심을 꺾을 자격

성휘는 창백한 안색으로 서류를 내려놓고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손 떨림이 너무 심한 관계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성혜인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이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힘이 풀린 성휘는 결국 지팡이를 한쪽에 내버려 두고 천천히 앉았다. 그의 눈가에는 며칠 사이에 주름이 잔뜩 늘었다. 하얗게 번진 머리카락을 성혜인은 도무지 똑바로 볼 용기가 없었다.

“혜인아, 우리 집안 진짜로 망할 것 같구나.”

성휘는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미안하다. 너한테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했어.”

성휘는 회사를 팔고 부동산을 팔아야만 겨우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성혜인에게 남겨줄 자산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성혜인은 천천히 성휘를 향해 걸어갔다. 겨울이는 얌전히 성휘의 곁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가서 앉자 성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내려놓았다.

“한평생 고생한 결과가 이럴 줄은 몰랐구나.”

“아빠...”

성혜인은 머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시간 있을 때 엄마를 보러 가세요. 못 본 지도 한참 됐잖아요.”

성휘는 말없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죽상이 되었다.

“내일 바로 가보마.”

성휘의 건강 상태로 차를 몇 시간 동안 타고 서천까지 내려간다면 아마 그 길로 저세상 가게 될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가 1년 시한부 신세로 회사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성혜인은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성휘는 한참 침묵해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SY그룹이 파산한 다음 절대 반승제와 이혼해서는 안 된다. 회장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상 이혼이 성사될 리도 없을 거다. 만약 이혼한다면 너 혼자 돈도 모자라서 괴롭힘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이구나.”

성휘는 자신이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성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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