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성혜인은 서큐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길쭉한 다리, 잘록한 허리, 그리고 우아하게 묶은 검은색 머리칼... 성혜인이여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조합이었다. 만약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면 구역질만 나왔을 것이다.화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반승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성혜인을 훑어보며 말했다.“가까이 와 봐.”낯선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던 성혜인은 잠깐 멈칫하다가 반승제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용기 내서 그의 무릎에 앉았다. 똑같은 바디워시의 향기가 한데 어울렸다.성혜인은 너무 긴장한 탓에 눈초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반승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의 무릎에 앉을 때도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앉았다. 그 모습이 귀엽기만 했던 반승제는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물었다.“이런 속옷 입어 본 적 있어?”반승제는 리본으로 묶은 매듭을 만졌다. 마치 잘 포장된 선물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숨결이 성혜인의 몸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었다.“아... 아니요.”반승제는 미소를 지으며 성혜인의 뒤통수를 잡더니 꽉 끌어안았다. 이대로 두 개의 몸을 하나로 만들 것처럼 말이다.“네 남편도 참 무식해. 이런 물건을 함부로 쓰다니.”성혜인은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등에 부드러운 이불이 닿았다.반승제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특히 성혜인이 몽롱한 표정으로 힘겹게 키스를 받아 주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인지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귀가에 들리는 심장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불타는 밤이 지나가고... 반승제는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성혜인을 놓아줬다.이틀 연속 시달린 성혜인은 끝나기 바쁘게 기절하듯 잠들었다. 발그레한 얼굴만 내민 채 이불속에 파묻힌 그녀와 다르게 반승제는 멀쩡하게 서서 샤워 가운을 걸쳤다. 느슨하게 묶은 매듭 사이로는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이때 반승제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온시
마음이 움직인 반승제는 키스하고 싶어져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성혜인이 얼굴을 돌린 탓에 입술은 볼에 닿아 버렸다.“저 아직 씻지도 않았어요.”보다시피 성혜인은 분위기를 깨는 분야의 고수가 틀림없었다.성혜인의 한 마디에 흥이 깨진 반승제는 경고의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제 풀에 찔린 그녀는 감히 반승제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성혜인은 그렇게 머리를 돌린 채로 한참 방황하다가 마지못해 물었다.“혹시 제가 입을 만한 옷이 있나요?”반승제는 성혜인이 어제도 열어봤었던 옷장 앞으로 가서 자신이 셔츠를 대충 집어 그녀에게 건네줬다“입어.”성혜인은 한숨 돌리며 주섬주섬 셔츠를 입었다. 반승제의 셔츠는 그녀에게 원피스처럼 길었다.어젯밤 너무 급하게 온 탓에 여벌의 속옷을 가져 오지 못했다. 그래서 셔츠 속에는 아무런 가림막도 없었다. 대부분 여자가 불편하게 여길 불안한 느낌에 성혜인은 하나 남은 섹시한 스타일의 속옷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금세 포기해 버렸다.“씻으러 가.”반승제는 성혜인의 귀에 짧게 키스하며 마치 애인처럼 다정하게 속삭였다. 반승제의 다정함에,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느껴 보는 타인의 다정함에 그녀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더구나 몸이 또 속도 없이 반응해 버리는 것 같아서 황급히 욕실로 도망갔다.반승제의 시선은 시종일관 성혜인을 향해 있었다. 딱딱하기만 하던 자신의 셔츠가 이런 느낌을 낼 수 있을 줄은 또 몰랐다.욕실 안으로 들어간 성혜인은 어제 벗어 둔 옷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주머니 안에 담아 매듭을 꼭 맸다. 이대로 집으로 가져가서 세탁할 예정이었다. 그 다음에야 그녀는 세수와 칫솔질을 했다. 마지막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들자 돌연 거울 속에 나타난 반승제가 보였다.반승제는 성큼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녀를 품속에 가두고 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머리를 돌려 키스를 퍼부었다.좁은 환경과 야릇한 분위기에 성혜인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때 반승제의 손은 그녀의 다리를 타고
반승제는 테이블 앞으로 가서 서류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주영훈 선생님의 그림이 최근 해외 경매에 나온다는 말이 있거든. 그래서 혹시 가려면 나도 같이 가겠다고 말하려고 왔어.”윤단미는 마치 마지못해 따라가 준다는 식으로 말하며 반승제의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들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나 아직 아무 것도 못 먹었어. 우리 같이 먹자.”반승제는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차갑게 나가라는 말을 돌려서 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네가 선생님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해외까지 가서 배워온 거 알지? 그러고 보니 우리 선생님 꽤 자랑스럽게 여기던 제자가 있었는데 누군지 몰라. 들어보니 꽤 젊은 것 같더라고.”이렇게 말하던 윤단미는 곧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뭐, 보나마나 어디 가까운 친척이 아니겠어?”“윤단미, 나 지금 바빠.”반승제는 미간을 구기며 또다시 나가라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호텔 방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기분이 찝찝했던 윤단미는 이대로 나갈 수 없었다. 이건 여자로서의 직감이었다.“승제야, 오늘 아직 청소 안 했지?”윤단미는 성큼성큼 침실로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침실 문을 열어보자 침대 위에 놓인 두 개의 베개가 보였다. 반승제의 습관대로라면 절대 베개를 두 개 놓고 혼자 잘 리가 없었다.윤단미는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옷장을 향해 걸어갔다. 하필이면 그 속에 숨어 있던 성혜인은 점점 가까워지는 하이힐 소리를 들으며 숨을 꾹 참았다.‘이제는 피할 데도 없는데... 앞으로 윤단미 씨한테 죽도록 괴롭힘을 당하겠구나.’윤단미가 옷장 문을 열려는 순간 반승제가 방문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로 덤덤하게 말했다.“건드리지 마. 나 결벽증 있어.”반승제는 남이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다. 윤단미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침실 안으로 들어간 것을 후회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너한테 넥타이 선물을 하고 싶은데 평
심장이 북소리처럼 울렸다.기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물고기가 된 듯 했다.옷장 속에 가둬져서 반승제와 키스하게 될 줄은 또 몰랐기 때문이다.반승제는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켜 그윽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승제에게 삼켜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성혜인이 정신 차리기도 전에 반승제가 그녀를 밖으로 끌어냈다. 속옷의 부재를 잘 기억하고 있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배고프지? 나가서 아침 먹자.”성혜인은 시름을 놓고 반승제를 따라 나갔다. 조금 전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을 때는 끼니도 거른 채 또 침대로 향하게 될 줄 알았다. 만약 그녀의 상상대로 되었다면 오늘 내로 침대에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다.그녀는 반승제를 제외한 다른 남자와 만나 본 적 없었다. 그래서 반승제의 정력이 과연 정장인지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그저 자신은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윤단미가 죽지 않고 오래 버티기를 바랄 뿐이었다.거실로 나간 성혜인은 윤단미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지 걱정 되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그녀가 식사를 끝내기 바쁘게 그렇게 두려워하던 초인종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다행히도 이번에 찾아온 사람은 윤단미가 아닌 쇼핑백을 들고 있는 심인우였다. 쇼핑백 속에는 속옷을 포함한 한 세트의 여자 옷이 있었다.성혜인은 쇼핑백을 건네받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침실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나갔을 때는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대표님, 저 다 됐어요.”반승제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이틀 동안 자신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서 편히 쉬어.”성혜인은 반승제의 입에서 나온 ‘쉬어’라는 말이 과연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 물어보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민규였다.그녀는 반승제도 함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수락 버튼을 누르자마자 일부러 반말로 말을 걸었다.“민규 씨, 무슨
그때까지만 해도 성혜인은 반태승이 말한 첫째라는 사람이 반승제의 사촌 형인 줄 알았다. 친형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백연서의 두 아들이 전부 후계자 후보에 올랐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반승제는 형이 죽은 후 반강제적으로 후계자가 되었고 반태승은 결혼과 가정으로 그를 국내에 묶어 두려고 했다. 하지만 반승제는 그의 예상과 달리 바로 해외로 가 버렸고 상업계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남들은 반승제가 일 밖에 모르는 냉혈인 인줄 안다. 진정한 반승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는 아마 절대 없을 것이다.성혜인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직 두 번째인데 벌써부터 반승제와 이런 거래를 한 것이 후회 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을 이미 벌인 이상 반승제가 침대에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 더구나 병원까지 간 적 있으면서 또 겁 없이 찾아온 자신을 탓해야지.성혜인이 침묵에 잠긴 것을 보고 반승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정장을 입었다. 그리고 조금 전과 전혀 다른 고귀한 사람으로 변신해서 그녀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아직 여덟 번 남았어. 연락 잘 받아.”평범한 말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위협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문을 열자 심인우는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페니 씨,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두 사람은 반승제의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렇게 윤단미가 매복하고 있는 호텔 1층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갈 수 있었다.성혜인은 차에 올라탄 다음에도 약간 어리벙벙했다. 반승제가 했던 모든 말이 그녀의 피부를 뚫고 세포에 각인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로즈가든에 도착한 성혜인은 차에서 내려 심인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반승제의 체력은 진짜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 날부터 벌써 근육통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하필이면 이때 강민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락 버튼을 누르자 그녀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자기~ 나 한 5분 있으면 너희 집 도착이
혜인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붉은 흔적들이 하나 또 하나 곳곳에 이어져 있어서, 키스 상대가 얼마나 격정적이었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우물쭈물했다.민지는 ‘요놈 잡았다’라는 표정으로 혜인을 바라보았다.“저번에 그 사람이야? 또 만났어?”어쩔 수 없었던 혜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민지는 그녀를 확 끌어당겨 자기 옆에 앉혔다.“도대체 누구야? 네가 저번에 그 사람 엄청나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 안 믿었거든. 왜냐하면 우리 예준 씨보다 엄청난 사람을 난 여태 본 적이 없어서... 근데 오늘 네 꼴을 보니 믿어지네. 그 사람 평생 여자 한번 못 만나봤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진짜 대단하네, 성혜인. 어떻게 그런 사람을 다 만났대 그래?”민지의 마음 한구석에서 부러움이 몰려왔다.“도대체 누군데! 나한테만 알려줄 수 없어?”혜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민지는 혜인이 말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은, 아무리 떼를 쓰고 달래봐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심통이 난 민지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은 남자 만났는데 절친한테 공유도 안 해주고 말이야. 어휴, 나는 너한테 줄 선물도 사 왔는데, 헛일했네.”민지의 이런 태도를 보자 당황한 혜인이 그녀의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민지야, 이번 일은 진짜 미안해.”진심으로 혜인을 난감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민지의 얼굴은 순식간에 다시 밝아졌다.“이왕 이렇게 된 거, 너한테 가게 하나 추천해줄게. 그 가게 소품이 완전 일품이야.”혜인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그때, 곁에 있던 가방이 그녀가 건드려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안에 있던 채 입어보지 못한 검은 속옷이 밖으로 나왔다.눈치 빠른 혜인은 발견하자마자 재빨리 소파 밑으로 차 넣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개 코였던 민지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바로 집어 들었다. 그제야 옷을 자세히 본 민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와, 성혜인, 너 나 몰래 이렇게 놀고 있었냐!”
혜인의 바보 같은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된 민지는 화가 나다 못 해 눈이 반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남자를 얻은 너의 운이 너무 부러웠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오히려 너 같은 미인과의 잠자리를 얻은 그 남자의 운이 부럽다, 부러워! 어떻게 첫 경험을 준 것도 모자라, 피임약까지 사 먹을 생각을 해? 도대체 너한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게 맞는지 잘 좀 생각해보라고!”민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혜인의 몸에 난 흔적은, 그 남자가 얼마나 그녀를 ‘아꼈는’지 잘 알 수 있었다.공적인 일에서는 냉정하고 이성적이지만 사적인 일, 침대 위에서는 한없이 수줍고 겁이 많은 그런 여자. 혜인이 같은 여자는 남자들이 이상형과 다름없을 것이다.민지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이렇게 하자, 내가 아는 연예인 한 명이 있거든? 팬도 수백만 명에 엄청나게 잘생겼어. 그 사람을 네 잠자리 파트너로 만들어 줄게, 어때? 그 사람 몸이 너무 좋아서 지난주에도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었어. 우리 쥬얼리 엠버서더이기도 하고. 이 정도 남자는 돼야 네가 손해를 안 보지. 지금 당장 사람 시켜서 연락처 알아볼게, 오늘 밤에 한 번 만나봐.”민지네와 같은 진정한 재벌 집의 사람들은 절대 연예인을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하지 않는다.연예인들은 미디어가 만들어 낸 데이터 뭉치와 같은 존재이므로 진정한 재벌에게 그들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민지는 비록 몹시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지만, 결코 문란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그녀가 진짜로 어딘가 전화를 걸려고 하자, 혜인이 다급히 손을 뻗어 말렸다.“됐어. 나도 더는 못 견뎌.”그녀의 입에서 못 견디겠다는 말이 나오자 민지의 표정이 의미심장해졌다.하지만 혜인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뻗었던 손을 거뒀다.그러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뜬금없이 물었다.“남자의 정력을 줄일 방법 같은 건 없어?”민지는 몇 초 동안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더니 이내 뒤로 자빠지며 웃었다.어처구니없는 물
한숨을 돌린 혜인은 그제야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어떻게 됐든 간에,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그때 성휘가 혜인에게 전화를 걸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얘기했다.“혜인아...”그는 나머지 말을 더 뱉지 못했다.너무 놀란 나머지 눈앞이 새까매졌기 때문이다.“아빠, 괜찮아요. 편히 쉬고만 계세요.”성휘는 입을 벌리니 입안이 온통 쓴맛으로 가득 찬 듯했다.1분 정도 지나 괜찮아지자 그가 다시 물었다.“반승제냐?”“네.”침묵이 얼마간 흘렀다. 성휘는 혜인에게 일말의 감정도 없는 것 같았던 승제가, SY그룹의 사업을 가로막아 파산에까지 이르게 한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절벽 끝에서 SY그룹을 도와주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좋아, 알겠다. 내 직접 반씨 가문에 가서 회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구나.”그러자 혜인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아빠, 이제 이런 쓸데없는 일 하지 마세요. 승제 씨가 우리 사업을 가로막은 건 바로 아빠가 할아버지랑 너무 자주 연락했기 때문이에요. 할아버지는 결혼으로 승제 씨를 묶어놓으려고 했는데 아빠도 봐서 아시죠? 그 사람 바로 3년 동안 해외로 나가 있는 거. 승제 씨는 남한테 간섭받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SY그룹이 살아남으려면, 단지 그 사람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으면 돼요.”성휘는 눈물을 닦았다. 아직 SY그룹을 지켜냈다는 놀라움과 충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딸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져 왔다.“알겠어, 혜인아. 아빠가 계속하는 말 알지? 네가 회사를 이어받아야 한다.”혜인이와 같은 실내 디자이너들은 원래 늘 많은 고객을 상대하고 인테리어 시장을 잘 파악해야 했는데 이미 그녀는 관련 분야의 기초적인 실습은 끝마친 상태였다.비록 정신을 잃었었어도 성휘는 단 한 번도 회사를 자신의 딸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바꾼 적이 없다.성한이 아무리 그의 환심을 샀다 해도, 그는 늘 그들이 가지고 있는 SY그룹의 지분만을 고려할 뿐이었다.성휘의 말을 들은 혜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