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멍해졌고 순간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빌리지? 아니면 윤선미 그 일을 얘기하는 건가?’그녀의 시선은 윤단미에게로 향했고 지금 반승제가 특별히 윤단미를 데리고 온 걸 보니 윤선미에 관한 일을 얘기하는 걸로 보인다.“반 대표님, 전 별 생각이 없어요. 윤선미 씨는 이미 사과를 했으니 저한테 도리가 있다고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윤선미 씨도 확실히 피해자고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반승제의 기운이 갑자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그거 말고는?”그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없어?”그의 강렬한 포스에 성혜인은 숨이 막혔고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반승제가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건가?’“그러면 반 대표님이 보시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윤선미 씨는 당연히 저에게 사과를 해야죠. 만약 제가 운이 좋게도 오늘 나타나지 않았다면, 다들 저라고 오해했겠죠. 아무리 대표님이 그녀의 사촌 언니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 한 들 사실을 왜곡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면 안 되죠.”성혜인이 너무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윤단미도 반승제가 자신을 위해 화풀이를 해주려 한 다고 생각했다.‘역시.’그녀는 바로 달콤함에 젖은 눈빛으로 반승제의 팔짱을 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승제야, 이 일은 확실히 선미의 잘못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페니 씨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반승제는 답이 없었고 차갑게 성혜인을 바라보았다.매서운 귀티를 풍겼고 애써 매서움을 억누르려 했지만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다.성혜인은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만약 반승제가 정말 그녀와 따지려 한다면 그녀는 제원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녀도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이 일은 확실히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한참 후, 반승제가 예쁜 손을 내밀어 방금 건네준 따뜻한 우유를 윤단미의 앞으로 돌렸다. 윤단미의 눈빛이 바로 밝아졌다.“난 페니 씨한테 주는 줄 알았잖아.”“그냥 좀 뜨거워서 식으라
자신이 서민규와 같은 남자와 비교당한다는 생각에 반승제는 울화가 치밀었다.그는 천천히 한편에 있는 휴지를 들어 손바닥의 피를 천천히 닦아냈다.“밤새 회의를 했더니 피곤해서.” 온시환은 가볍게 웃었다.“어젯밤에 일찍 회의하러 갔다고 들었어. 그렇게나 바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되지.” “인젠 그러지 않을 거야.”반승제는 이성을 회복하고 일어나 한편으로 가서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주혁은 일층에 없었다.“승제야.”“주혁아, 나의 어젯밤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줘.”서주혁은 멈칫하였다.‘갑자기 왜 그걸 지운다는 거지?’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이유를 묻지 않고 한 글자만 내뱉었다.“응.”전화를 끊고 반승제는 멀지 않은 곳을 힐끗 보았고 성혜인은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떠나려 했다.윤단미도 이때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승제야, 다들 가려고 하는데 우리도 이만 가자.”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머뭇거림이 없이 자신의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윤단미는 그와 함께 차를 탑승하였고 성혜인이 오지 않는 걸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어젯밤 페니 씨가 우리 결혼할 때 자기를 초대하면 올 거래. 그때가 되면 네이처 빌리지의 집 인테리어도 끝날을 테니 아니면 초대할까?”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자 반승제는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얼굴 표정은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알아서 해.”말인 즉, 네가 초대하고 싶다면 초대를 하라는 것이다.윤단미는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반승제가 그녀에게 뜨거운 우유를 건네주면서부터 그녀의 눈매에는 기쁨이 가시지 않았다.아쉽게도 오늘 그녀의 명성을 더럽히지 못했고 선미가 고개를 들 지 못하도록 만들었다.집에 가서 선미를 잘 달래줘야 할 것 같다. 반 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 선미를 섭섭히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차 안.반승혜는 자신의 기사를 불렀고 그녀와 성혜인은 뒷 좌석에 앉았다. 성혜인은 차에 타자마자 그녀에게
성혜인도 조금 놀랐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그녀가 주동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반승제가 신분을 낮추어 그녀를 찾아갈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그때 사촌 오빠가 거절하지 않았어요?”반승혜는 남의 사생활에 대하여 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너무도 궁금했다.상대방은 사촌 오빠로, 그녀가 보기에 반 씨 집안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몇 번 거절했지만 결국 승낙했죠.”성혜인은 웃으면서 말했고 왜 반승혜가 갑자기 이걸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승혜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페니가 사촌 오빠와 잠자리를 하려고 이토록 노력했을 줄은 몰랐다.윤단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화나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하지만 반승혜는 이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러고는 가는 내내 침묵이 흘렀다.작업실 근처에 도착했고 성혜인은 차에서 내리려 하였다.차 문이 닫힐 무렵, 그녀는 반승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반승혜가 이때 입을 열었다.“페니 씨, 우리 앞으로도 친구인 거 맞죠?”성혜인은 멈칫하였다. 그녀가 반승혜의 성격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그녀가 자신이 미움을 받고 있었던 형수라는 걸 알게 되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승혜 씨가 원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친구예요.”그녀는 이렇게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어느 날 반승혜가 그녀와 친구 하는 걸꺼려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반승혜는 한숨을 돌렸다.“걱정 말아요. 저 그런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색안경을 끼고 페니 씨를 보지 않을 테니.”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닫혔고 차는 앞으로 향해 달렸다.성혜인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가 한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바로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작업실로 향했다.하지만 움직이면서 그녀는 자신의 일부 부위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반승제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던 날 밤 너무 시달리다 다쳤었고 그 이후로는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조금 걸었더니 뭔가 이상하
천천히 옷을 입고 그녀는 어젯밤에 발생한 일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수영장에서 신이한이 건넨 술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잠이 들었고 그 사이에 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 같다.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 않았다.혹시 꿈에서 꼬집었던 걸까? 어젯밤 확실히 야한 꿈을 꿨던 것 같다.그녀는 손을 들어 눈을 비볐고 다시는 다른 사람이 건네준 것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숙취 후 머리가 아파와 침대에 누워서 좀 쉬려고 하는데 강민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어젯밤 너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꺼져 있더라고. 아저씨가 곧 깨어날 것 같아.”성혜인은 순간 졸음이 가시는 것 같았고 얼른 몸을 일으켜 앉았다.“의사가 그래?”“응. 의사가 어젯밤에 너에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계속 휴대폰이 꺼진 상태라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만약 너의 사생활이 깨끗하다는 걸 몰랐다면 난 네가 분명 외간 남자와 잠자리하러 갔다고 생각했을 거야.”강민지는 생각하는 대로 내뱉는 스타일이다.성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남자가 어디 있어. 어젯밤에 휴대폰이 잠시 먹통이 됐어. 지금 병원으로 갈게.”강민지는 전화를 끊고 한편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신예준을 힐끗 보았다.이 집은 강민지가 산 작은 아파트이다.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이 작은 집을 살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성혜인에게 이 집은 그녀의 집 화장실보다 더 작다고 불평을 토로한 적도 있다.그러나 신예준이 좁은 식탁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니 행복감이 솟구쳤다.“예준 씨, 그만 닦아. 충분히 깨끗해.”신예준은 동작을 멈추고 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분리 수거함에 버리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민지야, 배고파? 오늘도 오후에 출근하러 가야 돼?”강민지는 신예준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자신은 줄곧 신분을 숨기고 있는데 만약 나중에 그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그녀는 강 씨 집안의 외동딸로 아버지는 분명 그녀가 가
강민지와의 통화가 끝난 뒤 성혜인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의사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어젯밤에 깨어나려는 기미가 보였지만 오늘은 다시 평온한 상태를 보이고 있어요.언제 깨날지 여전히 불확실해요.”성혜인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아파왔다.계속 운전해서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소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혜인아,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에 왔어. 그러니깐 네 아버지 일을 듣고 특별히 온거야.”성혜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다 서천 사람이고 그녀가 서천에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두 분을 뵈러 간 적이 없다.어머니가 그녀를 낳은 그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서천에서 원래 갓 결혼한 며느리는 한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아버지인 성휘는 큰 아들이고 집에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동생 편을 들었기 때문에 맏이인 성휘는 고생을 많이 했다.성휘가 임지연과 결혼을 한 뒤, 부부는 이튿날 낡디 낡은 별채로 배정되었다.신혼 첫날밤, 첫 끼에 밥 한알도 없었고 심지어 빌리러 가야 했다.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임지연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임지연이 있었을 때 며느리를 적지않게 꾸짖었다.하지만 막내를 대할 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였다.하여 성휘는 일찍이 임지연와 함께 제원으로 와서 분투를 하였다. 노점상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회사까지 설립했다.성혜인이 태어날 때도 그들은 손녀가 여자 아이인 걸 알고 아직 분만실에 있는 임지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성휘는 여전히 제원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었고 임동원과 이소애만 있어 임지연도 억울함을 당했다.성휘는 임지연과 어린 성혜인을 데리고 제원으로 왔고 그 뒤로 다시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성혜인은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가 이 일은 참 잘했다고 생각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를 탓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에게 복이 없다고만 생각했다.지금 노부부가 갑자기 제원에 왔다고 하고 성 씨 집안
성혜인의 시선이 차가워졌다.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사람과 단 한 번도 같이 지내본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서천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너무 어릴 때라 사실 기억이 좀 희미하다. 하지만 그녀는 또렷하게 두 노인이 빗자루를 들고 와서 어머니를 때린 걸 기억하고 있다.그때 아버지는 약간의 돈을 벌었다. 임지연은 효심이 있는 사람으로 돈을 벌었으니 부모님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하물며 그들은 확실히 성휘를 양육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임지연과 동생 임동원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두 사람의 관계는 나쁘지않다.하지만 집에 들어가기도 전, 두 노인은 그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돈을 달라고 하는 줄 알고 임지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빗자루를 휘둘렀다.“꺼져! 딸 밖에 낳을 줄 모르는 돼지 같은 년! 우리는 너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을테니 평생 우리 집 문에 들어올 생각 마! 꺼져!”“창피해 죽겠어. 겨우 딸을 낳은 주제에. 우리 막내 봐봐, 둘째도 아들을 낳았어!”성혜인은 그때 임지연 품 속에 안겨있어 빗자루가 등을 때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이것이 바로 성혜인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지금 아버지는 아직 혼수상태인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성 씨 집안으로 향했다.성 씨 집안 거실.성무일과 아내 라정옥은 값비싼 소파에 앉아 계속 여기저기를 바라보았다. 정말 멋진 별장이다. 막내의 30여 평의 집보다 훨씬 널찍하다. 밖에 정원도 있고 이렇게 많은 도우미들이 시중들고 있다.첫째가 제원에서 이렇게 큰돈을 벌었는데도 동생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들은 너무도 화가 났다.소윤은 싱글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버님, 어머님. 혜인이가 곧 돌아올 테니 하실 말씀 있으면 혜인이에게 하세요.”성무일은 콧방귀를 뀌였고 라정옥도 눈을 희번덕거렸다. 임지연도 이미 죽었는데 맏이의 재혼 아내가 낳인 자식마저 또 여자애
라정옥은 서천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잘못된 구시대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아들을 둘이나 뒀을 뿐만 아니라 일도 잘하고 있는 막내 성훈만 편애했다.맏이 성휘가 임지연과 결혼하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반대했는지 모른다. 임지연의 엉덩이가 자그마한 꼴을 보아하니 아들을 낳기는 틀려먹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휘와 한참 다투다가 결국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했었다.라정옥은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임지연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알고 나서는 또 얼마나 속앓이했는지 모른다. 만약 진작에 알았더라면 돈 낭비를 하면서 예물로 60만 원씩이나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라정옥은 곧바로 임신 사실을 숨기고 몸값을 올리려고 한 임지연을 삿대질하며 욕했다. 예물로 준 60만 원도 물론 다시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성휘 부부를 가장 작은 창고 방에 방치해 버렸다.임지연은 그림을 배웠다. 집안도 서천보다 큰 도시에서 장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사도 망하고 사람도 죽어 나간 마당에 지금은 말해봤자 소용없는 옛날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라정옥은 그녀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임지연은 결혼하면서 예단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성씨 집안에 시집간 이후에도 라정옥에게 하녀처럼 부림을 받기나 했다. 그 와중에 임지연의 편을 들어주는 성휘 때문에 집안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아이를 낳고 나서 성휘는 임지연을 데리고 제원으로 올라갔다. 라정옥은 두 사람이 무조건 잘 살지 못할 것으로 단정 짓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괜히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하지 못하도록 말이다.그렇게 포기해 버린 성휘 일가가 제원의 별장에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연락 한번 없이 말이다. 라정옥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숱한 돈을 팔아가며 키운 아들에게 단단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다.성혜인은 덤덤하게 소파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앞으로 죽어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은 할머니예요.”이는 성혜인이 임지연을 따라 서천에 내려갔을 때, 라정옥이
소윤은 라정옥과 성무일이 아주 싫었다. 아니, 혐오했다. 두 사람은 가난에 찌든 냄새를 풍기며 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곳곳을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혜인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라도 소윤은 두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맞는 말씀이세요, 어머님. 대출이 얼마나 남았어요?”“4억 9000만 원 정도 남았어. 달마다 600만 원씩 나가는데 지천명의 나이에 막내가 많이 힘들어하더구나. 요즘 회사에서 정리해고까지 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직장까지 잃게 생겼다. 그러니 너희가 대신 대출금을 갚아주렴.”소윤은 싱긋 웃으며 은행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이 카드에 5억 원 정도 있어요. 일단 이걸로 대출을 갚으세요.”라정옥의 눈동자에는 빛이 돌기 시작했다. 소윤이 어토록 호탕하게 돈을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후다닥 은행 카드를 받아 들며 성혜인을 노려봤다.성혜인은 같은 거실에 있으면서도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소윤은 성휘의 서류상 아내일 뿐만 아니라 SY그룹의 지분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라정옥은 돈을 얻고 싱글벙글 웃는 것도 잠시 곧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어야 했다. 5억이라는 큰돈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내놓는 걸 보니 성휘 일가의 부유함이 더욱 크게 와 닿았다. 하지만 소윤도 쓸모없는 딸을 낳았다는 게 문제였다.이때 라정옥에게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성훈에게 아들이 있다는 핑계로 성훈 일가를 전부 이곳으로 이사시키면 그들이 덜 고생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면 자신들도 덕을 보지 않겠는가?‘호호호, 우리 막내가 퇴근하자마자 바로 얘기해줘야겠구나.’라정옥과 성무일은 흐뭇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일단은 5억 원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는 성훈 일가를 별장에 들이고 나서 받아도 늦지 않았다.혼수상태에 빠진 채 병원에 있는 성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정옥은 지금도 성휘를 불효자로 여겼으니 말이다. 그녀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