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천천히 떠났고 윤단미도 자매사이의 깊은 정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윤선미를 차에 태워줬다.성혜인은 제자리에 서있는데 갑자기 반승제가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반승제는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었고 눈빛 속 잔잔한 물결은 이미 깨끗이 사라졌다. 마치 어젯밤의 제멋대로와 부드러움은 모두 착각인 것처럼 말이다.“페니.”그는 그녀를 불렀고 뭔가를 얘기하려고 할 때 돌아온 윤단미를 보았다.“승제야, 아래층에서 이미 아침을 준비해 뒀대. 승혜도 그렇고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을 테니 일단 내려가서 아침부터 먹자.”반승제가 성혜인과 이토록 가까이 있는 걸 보고 윤단미는 강한 위기감이 들어 얼른 다가왔다.“페니 씨, 선미는 이미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그 술에 관한 부분은 저희도 조사하고있고 선미도 이미 사과했으니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를 바라요.”그녀의 말은 강압적인 분위기였다.그러나 성혜인도 더 이상 추궁하기 귀찮았고 배도 고팠다.어제 저녁도 먹지 않았고 꿈속에서 오랫동안 육체노동을 한 것처럼 지금 그녀는 너무도 배가 고팠다.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그대로 굳어있는 반승혜의 손을 잡아당겼다“우리 밥 먹으러 갈까요?”반승혜는 정신을 차렸고 머리가 아파왔다.‘이게 바로 수라장인 건가?’반승혜는 아직 어린 터라 남자친구도 사귀어본 적 없어 지금 그녀는 그냥 거북이처럼 움츠러들고 싶었다.“아, 그래요.”성혜인은 그녀의 답을 듣고 아래층으로 향했다.반승혜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오빠, 단미 언니. 밥 먹으러 가요.”반승제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젯밤과 사뭇 다른 성혜인의 태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뜻이지?’아래층으로 내려가 성혜인은 자리에 앉았다. 종업원이 푸드트럭을 밀고 있었고 손님이 앉는 걸 보면 다가오는 시스템이었다.성혜인은 밖을 바라보았고 값비싼 해산물
성혜인은 멍해졌고 순간 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빌리지? 아니면 윤선미 그 일을 얘기하는 건가?’그녀의 시선은 윤단미에게로 향했고 지금 반승제가 특별히 윤단미를 데리고 온 걸 보니 윤선미에 관한 일을 얘기하는 걸로 보인다.“반 대표님, 전 별 생각이 없어요. 윤선미 씨는 이미 사과를 했으니 저한테 도리가 있다고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윤선미 씨도 확실히 피해자고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반승제의 기운이 갑자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그거 말고는?”그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없어?”그의 강렬한 포스에 성혜인은 숨이 막혔고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반승제가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건가?’“그러면 반 대표님이 보시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윤선미 씨는 당연히 저에게 사과를 해야죠. 만약 제가 운이 좋게도 오늘 나타나지 않았다면, 다들 저라고 오해했겠죠. 아무리 대표님이 그녀의 사촌 언니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 한 들 사실을 왜곡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면 안 되죠.”성혜인이 너무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윤단미도 반승제가 자신을 위해 화풀이를 해주려 한 다고 생각했다.‘역시.’그녀는 바로 달콤함에 젖은 눈빛으로 반승제의 팔짱을 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승제야, 이 일은 확실히 선미의 잘못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페니 씨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반승제는 답이 없었고 차갑게 성혜인을 바라보았다.매서운 귀티를 풍겼고 애써 매서움을 억누르려 했지만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다.성혜인은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만약 반승제가 정말 그녀와 따지려 한다면 그녀는 제원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녀도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이 일은 확실히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한참 후, 반승제가 예쁜 손을 내밀어 방금 건네준 따뜻한 우유를 윤단미의 앞으로 돌렸다. 윤단미의 눈빛이 바로 밝아졌다.“난 페니 씨한테 주는 줄 알았잖아.”“그냥 좀 뜨거워서 식으라
자신이 서민규와 같은 남자와 비교당한다는 생각에 반승제는 울화가 치밀었다.그는 천천히 한편에 있는 휴지를 들어 손바닥의 피를 천천히 닦아냈다.“밤새 회의를 했더니 피곤해서.” 온시환은 가볍게 웃었다.“어젯밤에 일찍 회의하러 갔다고 들었어. 그렇게나 바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되지.” “인젠 그러지 않을 거야.”반승제는 이성을 회복하고 일어나 한편으로 가서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주혁은 일층에 없었다.“승제야.”“주혁아, 나의 어젯밤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줘.”서주혁은 멈칫하였다.‘갑자기 왜 그걸 지운다는 거지?’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이유를 묻지 않고 한 글자만 내뱉었다.“응.”전화를 끊고 반승제는 멀지 않은 곳을 힐끗 보았고 성혜인은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떠나려 했다.윤단미도 이때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승제야, 다들 가려고 하는데 우리도 이만 가자.”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머뭇거림이 없이 자신의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윤단미는 그와 함께 차를 탑승하였고 성혜인이 오지 않는 걸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어젯밤 페니 씨가 우리 결혼할 때 자기를 초대하면 올 거래. 그때가 되면 네이처 빌리지의 집 인테리어도 끝날을 테니 아니면 초대할까?”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자 반승제는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얼굴 표정은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알아서 해.”말인 즉, 네가 초대하고 싶다면 초대를 하라는 것이다.윤단미는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반승제가 그녀에게 뜨거운 우유를 건네주면서부터 그녀의 눈매에는 기쁨이 가시지 않았다.아쉽게도 오늘 그녀의 명성을 더럽히지 못했고 선미가 고개를 들 지 못하도록 만들었다.집에 가서 선미를 잘 달래줘야 할 것 같다. 반 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 선미를 섭섭히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차 안.반승혜는 자신의 기사를 불렀고 그녀와 성혜인은 뒷 좌석에 앉았다. 성혜인은 차에 타자마자 그녀에게
성혜인도 조금 놀랐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그녀가 주동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반승제가 신분을 낮추어 그녀를 찾아갈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그때 사촌 오빠가 거절하지 않았어요?”반승혜는 남의 사생활에 대하여 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너무도 궁금했다.상대방은 사촌 오빠로, 그녀가 보기에 반 씨 집안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몇 번 거절했지만 결국 승낙했죠.”성혜인은 웃으면서 말했고 왜 반승혜가 갑자기 이걸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승혜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페니가 사촌 오빠와 잠자리를 하려고 이토록 노력했을 줄은 몰랐다.윤단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화나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하지만 반승혜는 이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러고는 가는 내내 침묵이 흘렀다.작업실 근처에 도착했고 성혜인은 차에서 내리려 하였다.차 문이 닫힐 무렵, 그녀는 반승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반승혜가 이때 입을 열었다.“페니 씨, 우리 앞으로도 친구인 거 맞죠?”성혜인은 멈칫하였다. 그녀가 반승혜의 성격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그녀가 자신이 미움을 받고 있었던 형수라는 걸 알게 되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승혜 씨가 원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친구예요.”그녀는 이렇게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어느 날 반승혜가 그녀와 친구 하는 걸꺼려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반승혜는 한숨을 돌렸다.“걱정 말아요. 저 그런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색안경을 끼고 페니 씨를 보지 않을 테니.”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닫혔고 차는 앞으로 향해 달렸다.성혜인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가 한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바로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작업실로 향했다.하지만 움직이면서 그녀는 자신의 일부 부위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반승제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던 날 밤 너무 시달리다 다쳤었고 그 이후로는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조금 걸었더니 뭔가 이상하
천천히 옷을 입고 그녀는 어젯밤에 발생한 일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수영장에서 신이한이 건넨 술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잠이 들었고 그 사이에 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 같다.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 않았다.혹시 꿈에서 꼬집었던 걸까? 어젯밤 확실히 야한 꿈을 꿨던 것 같다.그녀는 손을 들어 눈을 비볐고 다시는 다른 사람이 건네준 것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숙취 후 머리가 아파와 침대에 누워서 좀 쉬려고 하는데 강민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어젯밤 너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꺼져 있더라고. 아저씨가 곧 깨어날 것 같아.”성혜인은 순간 졸음이 가시는 것 같았고 얼른 몸을 일으켜 앉았다.“의사가 그래?”“응. 의사가 어젯밤에 너에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계속 휴대폰이 꺼진 상태라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만약 너의 사생활이 깨끗하다는 걸 몰랐다면 난 네가 분명 외간 남자와 잠자리하러 갔다고 생각했을 거야.”강민지는 생각하는 대로 내뱉는 스타일이다.성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남자가 어디 있어. 어젯밤에 휴대폰이 잠시 먹통이 됐어. 지금 병원으로 갈게.”강민지는 전화를 끊고 한편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신예준을 힐끗 보았다.이 집은 강민지가 산 작은 아파트이다.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이 작은 집을 살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성혜인에게 이 집은 그녀의 집 화장실보다 더 작다고 불평을 토로한 적도 있다.그러나 신예준이 좁은 식탁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니 행복감이 솟구쳤다.“예준 씨, 그만 닦아. 충분히 깨끗해.”신예준은 동작을 멈추고 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분리 수거함에 버리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민지야, 배고파? 오늘도 오후에 출근하러 가야 돼?”강민지는 신예준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자신은 줄곧 신분을 숨기고 있는데 만약 나중에 그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그녀는 강 씨 집안의 외동딸로 아버지는 분명 그녀가 가
강민지와의 통화가 끝난 뒤 성혜인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의사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어젯밤에 깨어나려는 기미가 보였지만 오늘은 다시 평온한 상태를 보이고 있어요.언제 깨날지 여전히 불확실해요.”성혜인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아파왔다.계속 운전해서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소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혜인아,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에 왔어. 그러니깐 네 아버지 일을 듣고 특별히 온거야.”성혜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다 서천 사람이고 그녀가 서천에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두 분을 뵈러 간 적이 없다.어머니가 그녀를 낳은 그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서천에서 원래 갓 결혼한 며느리는 한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아버지인 성휘는 큰 아들이고 집에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동생 편을 들었기 때문에 맏이인 성휘는 고생을 많이 했다.성휘가 임지연과 결혼을 한 뒤, 부부는 이튿날 낡디 낡은 별채로 배정되었다.신혼 첫날밤, 첫 끼에 밥 한알도 없었고 심지어 빌리러 가야 했다.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임지연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임지연이 있었을 때 며느리를 적지않게 꾸짖었다.하지만 막내를 대할 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였다.하여 성휘는 일찍이 임지연와 함께 제원으로 와서 분투를 하였다. 노점상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회사까지 설립했다.성혜인이 태어날 때도 그들은 손녀가 여자 아이인 걸 알고 아직 분만실에 있는 임지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성휘는 여전히 제원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었고 임동원과 이소애만 있어 임지연도 억울함을 당했다.성휘는 임지연과 어린 성혜인을 데리고 제원으로 왔고 그 뒤로 다시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성혜인은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가 이 일은 참 잘했다고 생각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를 탓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에게 복이 없다고만 생각했다.지금 노부부가 갑자기 제원에 왔다고 하고 성 씨 집안
성혜인의 시선이 차가워졌다.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사람과 단 한 번도 같이 지내본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서천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너무 어릴 때라 사실 기억이 좀 희미하다. 하지만 그녀는 또렷하게 두 노인이 빗자루를 들고 와서 어머니를 때린 걸 기억하고 있다.그때 아버지는 약간의 돈을 벌었다. 임지연은 효심이 있는 사람으로 돈을 벌었으니 부모님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하물며 그들은 확실히 성휘를 양육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임지연과 동생 임동원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두 사람의 관계는 나쁘지않다.하지만 집에 들어가기도 전, 두 노인은 그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돈을 달라고 하는 줄 알고 임지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빗자루를 휘둘렀다.“꺼져! 딸 밖에 낳을 줄 모르는 돼지 같은 년! 우리는 너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을테니 평생 우리 집 문에 들어올 생각 마! 꺼져!”“창피해 죽겠어. 겨우 딸을 낳은 주제에. 우리 막내 봐봐, 둘째도 아들을 낳았어!”성혜인은 그때 임지연 품 속에 안겨있어 빗자루가 등을 때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이것이 바로 성혜인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지금 아버지는 아직 혼수상태인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성 씨 집안으로 향했다.성 씨 집안 거실.성무일과 아내 라정옥은 값비싼 소파에 앉아 계속 여기저기를 바라보았다. 정말 멋진 별장이다. 막내의 30여 평의 집보다 훨씬 널찍하다. 밖에 정원도 있고 이렇게 많은 도우미들이 시중들고 있다.첫째가 제원에서 이렇게 큰돈을 벌었는데도 동생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들은 너무도 화가 났다.소윤은 싱글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버님, 어머님. 혜인이가 곧 돌아올 테니 하실 말씀 있으면 혜인이에게 하세요.”성무일은 콧방귀를 뀌였고 라정옥도 눈을 희번덕거렸다. 임지연도 이미 죽었는데 맏이의 재혼 아내가 낳인 자식마저 또 여자애
라정옥은 서천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잘못된 구시대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아들을 둘이나 뒀을 뿐만 아니라 일도 잘하고 있는 막내 성훈만 편애했다.맏이 성휘가 임지연과 결혼하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반대했는지 모른다. 임지연의 엉덩이가 자그마한 꼴을 보아하니 아들을 낳기는 틀려먹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휘와 한참 다투다가 결국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했었다.라정옥은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임지연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알고 나서는 또 얼마나 속앓이했는지 모른다. 만약 진작에 알았더라면 돈 낭비를 하면서 예물로 60만 원씩이나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라정옥은 곧바로 임신 사실을 숨기고 몸값을 올리려고 한 임지연을 삿대질하며 욕했다. 예물로 준 60만 원도 물론 다시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성휘 부부를 가장 작은 창고 방에 방치해 버렸다.임지연은 그림을 배웠다. 집안도 서천보다 큰 도시에서 장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사도 망하고 사람도 죽어 나간 마당에 지금은 말해봤자 소용없는 옛날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라정옥은 그녀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임지연은 결혼하면서 예단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성씨 집안에 시집간 이후에도 라정옥에게 하녀처럼 부림을 받기나 했다. 그 와중에 임지연의 편을 들어주는 성휘 때문에 집안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아이를 낳고 나서 성휘는 임지연을 데리고 제원으로 올라갔다. 라정옥은 두 사람이 무조건 잘 살지 못할 것으로 단정 짓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괜히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하지 못하도록 말이다.그렇게 포기해 버린 성휘 일가가 제원의 별장에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연락 한번 없이 말이다. 라정옥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숱한 돈을 팔아가며 키운 아들에게 단단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다.성혜인은 덤덤하게 소파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앞으로 죽어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은 할머니예요.”이는 성혜인이 임지연을 따라 서천에 내려갔을 때, 라정옥이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