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제 씨도 오늘 제원으로 오나?’어제 서천에서 반승제의 차를 보기는 했지만 자동차 정비소에 가야 하는 바람에 마주치지 못했다.지금은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호텔에 방을 예약했다.해열제도 몇 개 챙겨 나왔다. 당분간은 약 때문에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될 것이다.호텔 로비. 문제가 생겼다. 시스템 착오로 성혜인이 예약한 방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입실한 것이다.“정말 죄송합니다. 보상의 의미를 담아 스위트 룸으로 무료 업그레이드해 드렸습니다.”성혜인은 고개를 숙여 객실 카드에 적혀 있는 번호를 읽었다. 반승제와 같은 층이다.그 층에는 스위트 룸이 두 개뿐이다.성혜인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없이 카드를 집었다.지금은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성혜인은 구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반승제와 심인우가 모습을 드러냈다.뜻밖의 만남에 반승제는 눈썹을 들썩였다. 심인우의 눈빛도 의미심장했다.두 사람 역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심인우가 방금 전 하던 말을 이어갔다.“단미 아가씨가 탄 비행기가 오후 4시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5시로 레스토랑 예약해 뒀습니다.”익숙한 목소리에 성혜인은 눈을 떴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엘리베이터 벽을 통해 모든 사람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반승제는 엘리베이터 앞에 위치했지만 시선은 거울을 향했다.성혜인은 말없이 구석에 서 있었다. 잘 쉬지 못한 탓에 살짝 눈이 감겼다.눈매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성혜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깨져버린 어여쁜 옥석처럼 외롭고 나약해 보였다.반승제는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서천에서 밖에 서 있던 성혜인을 본 그 장면 말이다.그때 마침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성혜인은 그 햇빛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지금의 성혜인의 시선은 아래를 향했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했다.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반승제는
성혜인의 스위트룸. 이미 잠든 그녀의 눈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잠에서 깨어나니 이미 시곗바늘은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수를 마친 성혜인은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반승제의 방문 앞을 지날 때, 때마침 방문이 열렸다.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았다.‘오후 4시 입국이라고 하지 않았나? 2시인데 벌써 나가시네.’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반승제도 여느 남자들처럼 기다리기 힘든가 보다.“안녕하세요.”충분히 휴식을 취한 성혜인은 이제야 머릿속이 맑아졌다.반승제는 말이 없었다. 성혜인이 이 호텔에, 그것도 같은 층에 왜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다른 꿍꿍이가 없는 거라면 거짓말이지 않을까.무슨 속셈이 있다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그동안 다른 여자들처럼 얇은 옷을 걸치고 그의 방을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두 사람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성혜인은 1층 버튼을 눌렀다.문이 닫히고, 성혜인은 천천히 입을 뗐다.“대표님, 유창목 바닥재는 결국 못 구했어요. 다른 재료로 알아볼게요. 작업은 이미 시작됐고 제가 상황 지켜볼게요. 중간에 다른 아이디어가 생기면 언제든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아주 공적인 이야기였다.‘허,’성혜인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신이한에게 걸려 온 전화다.살짝 멈칫한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페니 씨, 제가 도와 주기도 했는데 밥 안 사줄 거예요? 그냥 넘어갈 거예요?”임남호의 일을 도와준 건 확실히 큰 빚이긴 하다.하지만 외삼촌과 외숙모가 내린 결론이 떠오르자 마음이 시큰거렸다.“당연히 식사 대접 해야죠. 그런데 일주일 후에 만나도 괜찮을까요? 제가 먼저 연락드릴게요.”같은 시각. 신이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감정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좋아요. 근데 일주일 후에 먹는 밥이라면, 지금 먹는 것과 다를 거예요.”성혜인은 그 말의 숨은 뜻을 못 알아들은 척하며 냉담하게 답했다.“네. 그럼 그렇게 하죠.”전
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한 성혜인. 소윤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미처 성혜인을 발견하지 못한 소윤은 의사에게 끊임없이 물었다.“저희 남편 언제 깨어나요? 들어가서 볼 수 없을까요? 최선을 다 해주셔야 해요.”그녀의 주위에는 두 간호사가 붙어있었다. 소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이미 몇 번이고 대답해 드렸어요. 3일 정도는 상태가 어떤지 천천히 지켜봐야 해요. 조급해 마시고 일단 앉으세요.”“안에 들어가고 싶어요.”“죄송해요. 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요. 나중에 면회시켜 드릴게요.”소윤은 마음이 놓였다. 들어가는 순간 호흡기 먼저 뽑아버릴 생각이었다. 절대로 성휘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후회의 여지는 없다.시야에 성혜인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곧바로 얼어붙은 소윤은 황급히 간호사의 손을 뿌리쳤다.성혜인은 복도 의사에 앉아 조용히 의사의 소견을 기다렸다.소윤은 좌불안석이었다. 손에는 이미 땀이 맺혀 있었다. 혹여 성혜인에게 꼬리라도 밟힐까 차마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그때,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혜원이었다.성혜인을 발견한 성혜원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하지만 금방 연약하고 불쌍한 목소리를 장착했다.“엄마, 아빠는 어떻대요?”성혜원이 오자, 소윤은 그제야 불안한 감정을 떨칠 수 있었다.“나도 몰라. 혜원아, 엄마가 너무 경황이 없네.”만약 성휘가 깨어난다면 경찰서에 신고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끝장이다.성혜원은 소윤이 성휘를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SY그룹의 지분도 아직 완전히 그들의 손에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괜찮을 거니까 걱정 마요. 하늘이 도와줄 거예요.”말을 마친 성혜원은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성혜인에게 시선을 돌렸다.“언니.”지난번에 그렇게 난리를 쳐 놓고, 마치 기억상실증이 걸린 듯 행동했다.뻔뻔한 건지, 대담한 건지.성혜인은 아무런 반응 없이 중환자실만 응시했다.“언니, 아빠가 큰 사고를 당했는데, 승제 씨는 와 보지도 않아?”역시
반승제가 막 차에 오르던 그때, 윤단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승제야, 나 벌써 20분째 기다리고 있어. 어디야?”반승제는 손목시계를 쳐다봤다.“이제 막 회의 끝났어. 20분 후에 도착해.”“넌 여전히 일이 먼저구나. 어떻게 날 이곳에 세워 둘 수가 있어!”“어디 들어가서 앉아 있어.”윤단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시울이 붉어질 뿐이었다.“너 변했어. 예전에는 안 이랬잖아.”반승제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손으로 문지르며 무덤덤하게 답했다.“곧 도착해. 레스토랑 예약해 뒀어.”그제야 윤단미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알았어, 기다릴게.”전화를 끊은 후, 반승제는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앞좌석에 앉은 심인우는 사이드미러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운전대를 돌렸다.20분 후, 차가 공항에 멈춰 섰다.윤단미는 진작 밖에 나와 있었다. 반승제의 차를 발견하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차 문을 열었다.“승제야!”애교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며 반승제를 껴안았다.“정말 보고 싶었어.”반승제는 그대로 굳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윤단미는 잠시 안겨 있다가 씩 웃었다.“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심 비서, 빨리요. 저 배고파요.”그녀는 반승제를 감고 있던 팔을 풀고 옆자리에 앉았다.반승제는 손을 뻗어 윤단미의 캐리어를 발밑으로 밀어 넣었다.윤단미는 아주 작은 캐리어만 하나 챙겨와 굳이 차 트렁크를 열 필요가 없었다.그의 행동에 윤단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반승제는 여전히 멋졌다. 여자를 대하는 모습까지 품위가 느껴졌다.윤단미는 발그레한 얼굴로 입꼬리를 귀엽게 올렸다.“아까 변했다고 한 거 미안해. 하나도 안 변했네. 여전히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데 말이야.”반승제는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정리하고 뒤로 몸을 기댔다.“외국 생활 어땠어?”“이제야 물어보면 뭐 해, 전화도 안 해주고. 내가 먼저 연락 안 했으면 나랑 평생 연락 안 할 생각이었던 거 아니야?”윤단미는 속상했다.윤씨 집안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윤단미는
윤단미는 대단한 스캔들이라도 들은 것처럼 토끼 눈을 했다. 하지만 금방 기분 나빠졌다.‘여기저기 꼬리 치고 다니는 여자네.’반승제와 이혼하기도 전에 벌써 다음 남자를 찾아놨다니.하지만 눈이 너무 낮았다. 신이한 역시 꽤 괜찮은 집안 출신이지만 반승제와 반씨 집안에 비하면 터무니없었다.어쩌면 신이한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걸지도.윤단미는 마음속으로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벌써 그분이랑 만나 본 거예요? 마음에 들어요?”신이한은 계속 웃었다. 의미심장한 미소였다.“물론이죠. 제가 많이 좋아해요.”반승제의 몸은 더 차가워졌다. 눈동자도 블랙홀처럼 검게 변했다. 그는 일말의 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좋아하면 양보해 드리죠.”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서류상으로 아내인 그 여자를 전혀 마음에 품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심지어 그 여자를 언급하는 순간 미간 사이에서 느껴지던 냉기가 더 강해졌다.“너무 좋네요. 대표님, 후회하지 마요.”반승제는 미간을 좁혔다. 의심쩍은 말이었다.‘취향이 이렇게 독특했나?’냉기를 머금은 눈빛을 거두고 반승제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그 뒤를 따르던 윤단미는 몸을 돌려 신이한을 보며 씩 웃었다.“걱정 마요. 승제는 후회 안 해요. 할아버지가 승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올린 결혼식이니까. 그것도 생판 모르는 여자랑요.”윤단미의 눈빛은 득의양양해 보였다. 최대한 숨기려 했지만 신이한의 눈에는 다 보였다.입구에 서있던 신이한도 그들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 역시 이곳에 식사하러 왔다.그가 예약한 위치는 반승제의 테이블과 멀지 않았다. 그러기에 반승제가 윤단미에게 메뉴판을 건네자, 윤단미가 빙긋 웃으며 그에게 하는 말이 다 들렸다.일 키우는 걸 좋아하는 신이한은 그 장면을 찍었다. 게다가 반승제와 윤단미가 따뜻한 시선으로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각도를 잡았다.그 사진을 성혜인에게 보내며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남편에게 곧 여자친구가 생기겠네요.」성혜인과 반승제 사이에
위층에 올라온 소윤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한 걸 벽면을 짚고 겨우 버텼다.이 고통을 견딜 수가 없던 소윤은 곧바로 성한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이를 듣고 화가 난 성한이 말했다.“어머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허진이 좋으면 옆에 두기만 하면 되잖아요. 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어떡해요!”소윤도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한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바람피우는 걸 성휘 씨가 봐 버렸어. 깨어나면 아마 우리 일가족 모두 쫓겨날 거야.”성한도 조급했지만, 허진이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이미 이 지경까지 된 거 절대로 성휘가 깨어나면 안 된다.하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소윤은 외도할 때마다 성씨 저택 별장에 데려갔고, 심지어 저번에는 별장에 돌아가던 성혜인과 하마터면 마주칠 뻔했었다. 그래서 이제는 정신 차리고 조심할 줄 알았는데 또 똑같은 짓을 한 것이다.“저는 도대체 걔가 어머니를 어떻게 홀렸는지 모르겠네요!”성한은 허진이 분명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아 표정이 일그러졌다.만약 성휘가 정말 죽는다고 해도 성씨 집안의 주식 지분을 남인 허진에게 절대로 줄 수 없다.“한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줘. 성혜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성휘 씨 옆에 있어서 내가 기회를 만들 수가 없어. 만약 성휘 씨가 깨어나면...”하소연할 사람이 생긴 소윤은 냉정을 많이 되찾았다.“어머니, 제가 방법을 어떻게 알겠어요. 요즘 성씨 집안 쪽도 난리예요. 사업이 전부 가로막히고 임원들도 아수라장인데, 어머니는 정말 일 벌이시는데 뭐 있어요. 정말 창피합니다!”아들한테 이런 말을 들으니, 소윤은 참기 힘들었지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소윤은 만약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로 허진 때문에 도우미를 내쫓지도 않을 거고 허진과 별장에서 불륜을 저질러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지 않을 것이다.성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신다 하더라도 말
위층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고 복도에서 조용히 11시까지 기다리다 일어난 성혜인은 다리가 조금 저린 느낌이 들었다.간호사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난 성혜인은 힘든 몸을 이끌고 차를 끌고 호텔로 돌아갔다.꼭대기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옆에 엘리베이터도 문이 열렸다.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반승제였다.양복을 입은 반승제는 커프스단추를 정리하고 있었다.뒤에 심인우가 없는 것을 보아 혼자 돌아온 것이다.성혜인은 졸린 눈을 깜박거리며 소리쳤다.“반 대표님.”두 사람 뒤에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문이 닫히고 천천히 내려갔다.이 층이 너무 조용한 탓인지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소리가 선명했다.반승제가 먼저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성혜인 쪽이 더 가까워 방으로 들어가려면 성혜인을 지나쳐 가야 했다.성혜인은 반승제 몸에서 나는 라이트한 향수 냄새를 맡았다.이 향은 여성의 향이다.‘윤단미와 데이트하고 이제 돌아오는 건가?’역시 첫사랑이라 반승제와 오랜 시간을 같이 있을 수 있었다.반승제 방의 문을 지나쳐야 하는 성혜인도 그쪽으로 갔다. 그러나 반승제는 대꾸도 하지 않았고 성혜인도 호의를 무시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그러나 지나칠 때 반승제가 물었다.“많이 힘들어?”성혜인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만연했고 심지어 다크서클도 있었다.“아, 괜찮아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반승제는 방키를 방문에 갖다 대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돌려 성혜인을 봤다.“또 남편과 관련된 일이야?”“아니에요.”아주 피곤한 성혜인은 말을 끝낸 후 하품이 몰려와 뽀얀 손으로 입을 가렸고 눈가는 촉촉해졌다.“반 대표님, 일찍 쉬세요. 안녕히 주무세요.”성혜인이 복도 다른 편으로 걸으려 할 때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페니, 결혼은 끝내야 할 때 끝내야 해.”발걸음을 멈춘 성혜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그러나 피곤한 성혜인은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반 대표님, 어떤 여자가 결혼하고 안 참고 살아요?”
윤단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클럽에 빠르게 퍼지면서 반승제와 윤단미가 한때 일이 있었던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반승제가 언제 이혼하고 윤단미와 합칠지 내기를 했다.신이한은 자기 무리 사람 몇몇과 같이 술집에 있었다. 이들도 모두 제원클럽 사람들이라 소식이 빠르게 번졌다.그러나 운단미는 사실 일반적인 돈 있는 집안이기 때문에 재벌 축에는 끼지 못한다.하지만 윤단미가 반승제와 함께 했었기 때문에 이미 제원 클럽에 들어왔다.“윤단미가 언제 반씨 집안에 시집갈 것 같아?”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한 사람이 이 얘기를 하자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이 말을 덧붙였다.“그래도 첫사랑인데 한 달 안에 시집갈 것 같은데. 그리고 반승제의 서류상 부인도 엄청나게 못생겼을 걸, 그러니까 사람들을 안 만나지. 아직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고 반승제 귀국 파티에서도 아무도 못 보지 않았어?”“그 자리에서 부인을 아는 사람이 있었어? 3년 동안 나오지 못한 거 보면 면목이 없는 걸 알 수 있잖아.”“들어 보니 반 회장님을 구했다던데, 운도 좋지. 제원에서 이런 기회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그래도 반씨 집안이고 반승제인데 나중에 쫓아내도 안 떨어질까 봐. 그게 걱정이지.”레드 와인을 손에 쥔 신이한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니 웃겼다.“왜 그 부인이 이혼하고 싶어 한다고는 생각 안 해? 반씨 집안이 집안도 회사도 다 좋고 반승제도 잘 생겼지. 그런데 어떤 여자들은 이런 거 신경 안 써. 금이니 다이아몬드니 아무리 좋은 걸 가져다줘도 어쩌면 웃는 모습 한 번 못 봤을 수도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안 비추는 건 어쩌면 이혼할 준비를 하는 거일 수도 있지. 조용하게 끝내고 싶어서.”자리에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지만, 신이한의 말을 듣자 모두 웃었다.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이한아, 장난치지 마. 만약 그때 반승제와 윤단미가 일찍 사귀지 않았으면 반승제를 쫓아 다니던 여자들 때문에 반씨 집 문도 부서졌을걸? 그때 윤단미와 사귀자마자 얼마나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