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클럽에 빠르게 퍼지면서 반승제와 윤단미가 한때 일이 있었던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반승제가 언제 이혼하고 윤단미와 합칠지 내기를 했다.신이한은 자기 무리 사람 몇몇과 같이 술집에 있었다. 이들도 모두 제원클럽 사람들이라 소식이 빠르게 번졌다.그러나 운단미는 사실 일반적인 돈 있는 집안이기 때문에 재벌 축에는 끼지 못한다.하지만 윤단미가 반승제와 함께 했었기 때문에 이미 제원 클럽에 들어왔다.“윤단미가 언제 반씨 집안에 시집갈 것 같아?”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한 사람이 이 얘기를 하자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이 말을 덧붙였다.“그래도 첫사랑인데 한 달 안에 시집갈 것 같은데. 그리고 반승제의 서류상 부인도 엄청나게 못생겼을 걸, 그러니까 사람들을 안 만나지. 아직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고 반승제 귀국 파티에서도 아무도 못 보지 않았어?”“그 자리에서 부인을 아는 사람이 있었어? 3년 동안 나오지 못한 거 보면 면목이 없는 걸 알 수 있잖아.”“들어 보니 반 회장님을 구했다던데, 운도 좋지. 제원에서 이런 기회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그래도 반씨 집안이고 반승제인데 나중에 쫓아내도 안 떨어질까 봐. 그게 걱정이지.”레드 와인을 손에 쥔 신이한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니 웃겼다.“왜 그 부인이 이혼하고 싶어 한다고는 생각 안 해? 반씨 집안이 집안도 회사도 다 좋고 반승제도 잘 생겼지. 그런데 어떤 여자들은 이런 거 신경 안 써. 금이니 다이아몬드니 아무리 좋은 걸 가져다줘도 어쩌면 웃는 모습 한 번 못 봤을 수도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안 비추는 건 어쩌면 이혼할 준비를 하는 거일 수도 있지. 조용하게 끝내고 싶어서.”자리에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지만, 신이한의 말을 듣자 모두 웃었다.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이한아, 장난치지 마. 만약 그때 반승제와 윤단미가 일찍 사귀지 않았으면 반승제를 쫓아 다니던 여자들 때문에 반씨 집 문도 부서졌을걸? 그때 윤단미와 사귀자마자 얼마나
성혜인은 생리하는 것 같은 통증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온몸에 오한이 났고 앞이 흐리게 보였다.성혜인은 생리가 시작됐다는 것을 직감했다.최근에 계속 바빴던 탓에 서천군에 있었을 때는 땀 때문에 옷까지 다 젖을 정도로 하루 종일 잤다. 그래서 이번 생리 기간이 특히 더 괴롭다.아파서 토가 나올 정도였지만 호텔은 잠시 머무르는 거였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성혜인은 창백한 얼굴로 손을 벌벌 떨며 호텔 인포메이션에 연락했다. 제발 누구라도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줬으면 했다.지금 오전 6시이지만 호텔 서비스가 좋아서 빠르게 생리대를 가져다줬다.성혜인은 축 처진 몸을 이끌고 문을 열었다. 호텔 직원은 성혜인의 핏기 하나 없는 얼굴과 심지어 혈색 하나 없는 입술을 친절하게 보고 물었다.“손님, 약 필요하신가요?”생리통이 항상 있던 성혜인은 매번 약을 가지고 다녔지만, 지금은 모두 로즈가든에 두고 왔다.“부루펜...”배를부여 잡고 있던 성혜인은 곧 쓰러질 것 같았다.“두 알만 부탁드립니다.”호텔 직원은 지체할 새 없이 빠르게 몸을 돌려 어떻게든 부루펜을 찾으러 갔다.그러나 호텔에 그런 약이 있을 리가 없다.호텔 직원은 근처 약국에서 구매한 후 다시 꼭대기층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할 때 회사에 출근하려는 반승제와 부딪혔다.반승제는 호텔 직원 손에 있는 진통제를 보자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또 호텔 직원이 들어간 곳이 성혜인의 방이기 때문에 반승제도 걸음을 멈추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지 않았다.심인우가 이 말을 외치기까지 말이다.“대표님?”반승제는 그제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방안에서 성혜인은 손을 떨며 부루펜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아랫배의 심각한 통증으로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몸도 오한 때문에 벌벌 떨고 있었다.성혜인은 오늘 병원에 갈 수 없어 강민지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병원에 가보라고 전화했다.강민지는 성혜인의 아픈 목소리를 듣고 말했다.“혜인아. 너 괜찮아?”“나 괜찮아.
침실 침대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어 찰랑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만 보였다.침대 머리맡에 켜져 있는 무드 등으로 침실 분위기는 따듯했다.반승제는 곧바로 달려가지 않았고 하얀 손을 들어 올려 문에 똑똑 노크했다.침실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반승제는 그제야 침실로 들어갔다.“페니?”성혜인의 룸 구조와 반승제의 룸 구조는 똑같지만, 인테리어가 살짝 달랐다.반승제가 룸 불을 켜자, 불빛 때문에 눈이 부신 성혜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반승제는 성혜인의 이마로 손을 갔다 대려 했지만,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성혜인이 눈을 떠버렸다.혈색 하나 없이 창백한 성혜인의 얼굴이지만 몸이 많이 좋아진 성혜인은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하지만 침대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반 대표님?”반승제는 핀 손을 양복바지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아파?”서천군에 있을 때 저녁부터 심하게 열이 났다가 오늘 생리가 터지는 바람에 몸이 매우 안 좋은 성혜인은 위에 안 좋은 걸 생각도 못 한 채 점심에 부루펜 세 알을 먹었다.자고 일어난 지금은 배의 모든 장이 뒤틀린 것처럼 아파 죽을 것 같았다.성혜인은 창백한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 다급하게 일어나 앉았다.침대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이때 반승제가 재빨리 손을 뻗어 부축했다.잠자기 전에 샤워한 성혜인은 캐미솔 잠옷을 입고 있어 반승제의 손이 어쩔 수 없이 성혜인 피부에 닿게 됐다.자세히 보니 옷 사이로 드러난 성혜인의 피부가 백옥같이 하얗고 손에 닿은 촉감은 부드러웠다.반승제가 입고 있는 깔끔하고 얇은 와이셔츠는 몸에 딱 맞게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성혜인을 부축하려 몸을 살짝 숙이자, 손목뼈가 드러났다.부추김을 받은 성혜인은 한숨을 내쉬고 반승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정신을 차린 뒤에 아직도 반승제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리고 나서야 반승제가 어떻게 자기 룸에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인포메이션에서 직원
성혜인은 반승제가 언제 돌아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새하얘졌다.문이 닫히고 방안에는 성혜인의 차가운 숨결만이 남았다.정신을 넋 놓고 있던 성혜인이 고개를 숙이자, 캐미솔 잠옷이 또 눈에 들어왔다.너무 얇아 등이 비친 잠옷은 시스루 수준이었다.옷에 비친 가슴은 누군가를 유혹하기에 딱 좋았다.성혜인은 다급하게 침실로 돌아가 겉옷을 걸쳤다. 그래도 이 낯 뜨거움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반승제가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여자가 이런 옷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며 배웅까지 했으니 말이다.얼굴을 감싼 성혜인은 반승제가 한 말이 또 생각이 났다.“계속 생각한 건데, 혹시 나 일부러 꼬시는 거야?”계속 생각했다.성혜인은 서천군에서 샤워 가운을 입고 반승제에게 약을 갖다줬던 일이 또 생각났다.일반 남자였다면 계속된 이런 상황 속에서 진작에 달려들었을 것이다.부끄러워 발까지 오므려 발톱까지 색이 변한 성혜인은 지금 당장 호텔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조금 전 반승제의 부축을 받은 허리 피부의 촉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 털이 바짝 서고 온몸이 간지러웠다.“하.”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성혜인은 이소애가 보내온 여러 통의 사과 문자를 발견했다.이 문자를 보자 조금 진정이 됐다.성혜인은 내용이 뭔지 보지도 않은 채 문자들을 바로 삭제했다.성혜인은 다시 소파에 앉아 남은 음식들을 천천히 마저 먹었다. 배가 조금 채워지자,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병원에서 나흘간 이런저런 치료를 받고 나서야 병원 쪽에서 성휘를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해왔다.나흘간 다른 걸 신경 쓸 수 없던 성혜인은 반승제도 보지 못해 그날의 일은 점점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이번에 성혜인과 같이 병원에 간 사람은 역시나 강민지였다. 강민지의 보디가드 두 명이 계속 병실을 지켰다.강민지는 성혜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보디가드들한테 아무도 못 들어가게 잘 지키라고
성휘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지만, 산소호흡기를 낀 채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머리는 상처 때문에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안 본 사이 10살이나 더 나이를 먹어 수척해진 느낌이었다.성혜인은 옆에 있던 의사에게 물었다.“아빠가 언제쯤 깨어나실까요?”“성혜인 씨, 원래 몸이 허약하신 성 어르신께서는 이번에도 큰 고비를 넘기셨어요. 몸이 많이 상하셔서 언제 깨어나실지는 모르겠어요. 오늘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 달 내에 깰 것 같아요.”성혜인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성휘가 일반병실로 옮겨진 소식을 알게 된 소윤은 좌불안석이었다.지금 성씨 집안 회사에 있는 소윤은 허진을 빠르게 찾아 당황한 기색을 하며 말했다.“어떡해? 성혜인 그 계집애가 보디가드는 또 어디서 데려와서 병실을 계속 지키고 있어. 그래서 기회를 잡기가 너무 힘들어.”얼굴이 일그러진 허진은 그렇게까지 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 성휘가 이렇게 명이 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윤아, 걱정하지 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혜인을 바쁘게 해서 병원에 못 가게 하는 거야. 그러면 성휘를 돌보지 못하니까 우리가 손 쓸 기회가 생겨.”조급해서 얼굴이 창백해진 소윤은 요 며칠 성혜인을 볼 때마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아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윤아, 이전에 성한이 성혜인한테 관심 있다 하지 않았어? 지금 우리 둘 그리고 성한도 다 회사에 있지만 성혜인은 회사 문이 어디로 열리는지도 모를 정도로 회사를 잘 몰라. 우리가 몰래 힘을 합쳐서 회사 지분을 전부 손에 넣는 방법을 찾아 보자. 그리고 성한이 손을 쓰는 거야. 제일 좋은 방법은 성혜인과 잠자리를 하면 성혜인도 우리 쪽에 설 수밖에 없게 돼.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것도 겁낼 필요가 없어.”소윤을 품에 앉은 허진은 눈이 반짝 빛이 났다.“성휘가 깨어난 후에 성혜인이 아빠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썼다고 알려. 그러면 성휘는 분명 화병에 그냥 쓰러질 거야.”이 말을 들은 소윤은 안정을 찾았다. 순간 허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바로
성혜인은 눈썹을 만지며 말했다.“지금 바로 BK 사에서 당신들 임원을 찾을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작업반장은 다급하게 가슴을 툭툭 치며 이에 응했다.성혜인은 그들과 더 이상 얘기할 기분이 아니어서 바로 BK사로 갔다.BK사 쪽은 이미 작업반장의 전화를 받아 BK사 대표도 지금 매우 불안해했다.성혜인은 반승제가 직접 뽑은 실내 디자이너고 BK사는 이 일로 서천군의 시공을 따냈다. 만약 이번에 성혜인의 불만을 사면 서천군 프로젝트는 물 건너가는 거나 마찬가지다.다급한 BK사 대표의 이마는 온통 땀 범벅이었고 저도 모르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소연했다.“저 인부들은 도대체 시공을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이런 잘못을 저질러. 만약 반 대표님이 이 소식을 알게 되면 우리 시공팀은 분명 전문적이지 않다는 불명예를 떠안을 거야.”“대표님, 그 인부는 나이가 조금 있고 집에 일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이미 퇴직금을 챙겨드리고 해고했고 또 그 인부도 지금 죄송해하고 있습니다.”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 지금 와서 책임 추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혜인이 더 이상 이 일을 크게 안 만들게 할지이다.대표는 또 다른 임원과 이 일에 대해 회의하자 이들에게 물을 따라주던 어린 임원이 이를 다 듣고 눈빛이 반짝였다.이 임원은 서민규의 사람으로 가장 비위를 잘 맞추며 학력이 낮은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서민규는 전문대 출신으로 대학이 자주 서민규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이 임원은 유도현으로, 나오자마자 자기 사무실로 가 혼자 고민했다. 성혜인을 아는 인맥을 찾을 수 있는지 만약 회사가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면 승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온갖 방법을 고민했다.이 자리에 벌써 삼 년 동안 있으면서 승진의 기미가 하나도 안 보였다. 평소에 남들 비위 맞추며 이런저런 허드렛일도 많이 했다. 아마 큰 게 한방 필요한 것 같다.“나 대신해서 페니와 누가 관계가 좋은지 알아보고 좋은 말 좀
서민규는 전화를 끊고 의기양양해하며 유도현을 바라봤다.유도현은 아직도 전부 믿지 않았다.“어디서 페니와 닮은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 아니야? 어떻게 페니를 알 수가 있어?”자기가 페니의 남편이라는 말이 서민규의 입 밖에 나올뻔했지만 어쨌든 가짜 결혼이고 그 사실이 밝혀지면 창피하기 때문에 꾹 참고 자랑하지 않았다.유도현은 서민규를 이리저리 보며 아까보다는 훨씬 좋은 태도를 보였다.“그럼 이렇게 하자. 페니가 이 일을 크게 안 벌이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바로 월급을 2배로 올려줄게. 지금 170만 원 받지? 이번 일 성공시키면 340으로 올려줄게.”서민규가 비록 학력이 남들보다 좋지는 않지만, 사실 일하는 능력은 좋았다. 그런데 유도현이 계속 괴롭히는 바람에 이 회사에 오래 있었어도 월급이 오르지 않았다.직장 내에서 동기들의 월급을 묻는 것은 금기이기 때문에 비록 다른 사람들이 얼마를 받는지는 잘 모르지만 자기가 아마 가장 적게 받고 있을 것이다.같이 하소연을 하는 임원도 이미 200만 원 정도까지 올랐다.유도현은 서민규가 대답하지 않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왜 이만큼이나 올려 줬는데 싫어? 밖에 나가서 조금만 알아봐도 전문대 졸업생이 이런 대우를 받는 사람은 없을걸.”서민규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유도현을 한참 욕을 한 뒤 고개를 들었다.“유 팀장님, 알겠습니다. 지금 내려가서 페니한테 말해보겠습니다.”유도현은 곧바로 복도를 나섰고 엘리베이터에서 BK사 대표를 마주쳤다. 대표의 이마는 온통 땀으로 가득했고 옆에 있는 비서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반 대표가 갑자기 와서 좀 보겠대? 이따가 페니도 도착하는데 둘이 마주치게 되면 페니가 굳이 찾아가서 보고하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다 알게 될 거야.”대표도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그러나 국내에서 반승제와 같이 협력하고 싶은 회사가 너무 많아 이번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면 양사가 협력한 사실이 이미 밖에 알려졌기 때문에 BK사는 분명 놀림거리가 된다.반짝거리는 눈으
이마가 땀으로 범벅이 된 서민규는 월급 때문에 팀장 앞에서 큰소리치고 나중에 대표 앞에서도 잘 보이려고 계속 큰소리쳤던 것이 지금 너무 후회스러웠다.만약 이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유도현이 더욱 못살게 굴 것이 뻔했다.“페니 씨, 전 BK사를 대표해서 온 게 아니라 상부 지시를 받고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려는 것뿐이에요. 지금 대표님이 다른 손님을 배웅 중이어서 지금 바로 페니 씨를 마중 나오지 못하셔요. 그래서 제가 자진해서 페니 씨를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미안해요.”서민규는 아까보다는 더욱 솔직한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다 꺼냈다.서민규는 친절하게 일어나서 데스크로 가 차와 간식을 가져왔다. “30분 정도 뒤에 대표님 지금 일정이 끝날 거예요. 그때 저랑 대표님 뵈러 가요.”서민규가 이렇게까지 말했고 심지어 신예준의 친구인데, 지금 강민아와 신예준이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어 성혜인도 일을 크게 만들기가 조금 그랬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왜냐하면 서민규랑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지 몰라 시간이 비는 틈을 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기존 설계도를 새로 수정하고 있었다.기둥을 없애면 조명도 바꾸어야 한다. 성혜인은 집중하며 인상을 쓴 채로 기존의 설계도를 계속 수정했다.서민규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으며 성혜인의 찻잔이 빈 것을 보고 조용히 새로운 물을 부어 줬다.성혜인은 한번 집중하면 시간을 보지 않아 30분이 금방 지나갔다.반승제 쪽도 이미 일이 끝나 BK사 임원과 BH그룹 임원이 모두 로비로 내려왔다.반승제와 BK사 대표는 맨 앞에서 걸어 반승제는 멀리 창 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성혜인은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고 옆에 있는 남자는 찻잔의 물을 붓고 있었다.남자와 여자는 서로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상하리만큼 사이가 좋아 보였다.반승제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가 시선을 다시 돌리고 계속 문으로 조용히 걸어갔다.BK사 대표는 발걸음이 잠시 멈췄던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냉기가 돈다고 생각했다.BK사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