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침대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어 찰랑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만 보였다.침대 머리맡에 켜져 있는 무드 등으로 침실 분위기는 따듯했다.반승제는 곧바로 달려가지 않았고 하얀 손을 들어 올려 문에 똑똑 노크했다.침실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반승제는 그제야 침실로 들어갔다.“페니?”성혜인의 룸 구조와 반승제의 룸 구조는 똑같지만, 인테리어가 살짝 달랐다.반승제가 룸 불을 켜자, 불빛 때문에 눈이 부신 성혜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반승제는 성혜인의 이마로 손을 갔다 대려 했지만,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성혜인이 눈을 떠버렸다.혈색 하나 없이 창백한 성혜인의 얼굴이지만 몸이 많이 좋아진 성혜인은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하지만 침대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반 대표님?”반승제는 핀 손을 양복바지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아파?”서천군에 있을 때 저녁부터 심하게 열이 났다가 오늘 생리가 터지는 바람에 몸이 매우 안 좋은 성혜인은 위에 안 좋은 걸 생각도 못 한 채 점심에 부루펜 세 알을 먹었다.자고 일어난 지금은 배의 모든 장이 뒤틀린 것처럼 아파 죽을 것 같았다.성혜인은 창백한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 다급하게 일어나 앉았다.침대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이때 반승제가 재빨리 손을 뻗어 부축했다.잠자기 전에 샤워한 성혜인은 캐미솔 잠옷을 입고 있어 반승제의 손이 어쩔 수 없이 성혜인 피부에 닿게 됐다.자세히 보니 옷 사이로 드러난 성혜인의 피부가 백옥같이 하얗고 손에 닿은 촉감은 부드러웠다.반승제가 입고 있는 깔끔하고 얇은 와이셔츠는 몸에 딱 맞게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성혜인을 부축하려 몸을 살짝 숙이자, 손목뼈가 드러났다.부추김을 받은 성혜인은 한숨을 내쉬고 반승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정신을 차린 뒤에 아직도 반승제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리고 나서야 반승제가 어떻게 자기 룸에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인포메이션에서 직원
성혜인은 반승제가 언제 돌아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새하얘졌다.문이 닫히고 방안에는 성혜인의 차가운 숨결만이 남았다.정신을 넋 놓고 있던 성혜인이 고개를 숙이자, 캐미솔 잠옷이 또 눈에 들어왔다.너무 얇아 등이 비친 잠옷은 시스루 수준이었다.옷에 비친 가슴은 누군가를 유혹하기에 딱 좋았다.성혜인은 다급하게 침실로 돌아가 겉옷을 걸쳤다. 그래도 이 낯 뜨거움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반승제가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여자가 이런 옷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며 배웅까지 했으니 말이다.얼굴을 감싼 성혜인은 반승제가 한 말이 또 생각이 났다.“계속 생각한 건데, 혹시 나 일부러 꼬시는 거야?”계속 생각했다.성혜인은 서천군에서 샤워 가운을 입고 반승제에게 약을 갖다줬던 일이 또 생각났다.일반 남자였다면 계속된 이런 상황 속에서 진작에 달려들었을 것이다.부끄러워 발까지 오므려 발톱까지 색이 변한 성혜인은 지금 당장 호텔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조금 전 반승제의 부축을 받은 허리 피부의 촉감이 아직도 남아 있어 털이 바짝 서고 온몸이 간지러웠다.“하.”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성혜인은 이소애가 보내온 여러 통의 사과 문자를 발견했다.이 문자를 보자 조금 진정이 됐다.성혜인은 내용이 뭔지 보지도 않은 채 문자들을 바로 삭제했다.성혜인은 다시 소파에 앉아 남은 음식들을 천천히 마저 먹었다. 배가 조금 채워지자,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병원에서 나흘간 이런저런 치료를 받고 나서야 병원 쪽에서 성휘를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해왔다.나흘간 다른 걸 신경 쓸 수 없던 성혜인은 반승제도 보지 못해 그날의 일은 점점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이번에 성혜인과 같이 병원에 간 사람은 역시나 강민지였다. 강민지의 보디가드 두 명이 계속 병실을 지켰다.강민지는 성혜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보디가드들한테 아무도 못 들어가게 잘 지키라고
성휘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지만, 산소호흡기를 낀 채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머리는 상처 때문에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안 본 사이 10살이나 더 나이를 먹어 수척해진 느낌이었다.성혜인은 옆에 있던 의사에게 물었다.“아빠가 언제쯤 깨어나실까요?”“성혜인 씨, 원래 몸이 허약하신 성 어르신께서는 이번에도 큰 고비를 넘기셨어요. 몸이 많이 상하셔서 언제 깨어나실지는 모르겠어요. 오늘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 달 내에 깰 것 같아요.”성혜인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성휘가 일반병실로 옮겨진 소식을 알게 된 소윤은 좌불안석이었다.지금 성씨 집안 회사에 있는 소윤은 허진을 빠르게 찾아 당황한 기색을 하며 말했다.“어떡해? 성혜인 그 계집애가 보디가드는 또 어디서 데려와서 병실을 계속 지키고 있어. 그래서 기회를 잡기가 너무 힘들어.”얼굴이 일그러진 허진은 그렇게까지 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 성휘가 이렇게 명이 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윤아, 걱정하지 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혜인을 바쁘게 해서 병원에 못 가게 하는 거야. 그러면 성휘를 돌보지 못하니까 우리가 손 쓸 기회가 생겨.”조급해서 얼굴이 창백해진 소윤은 요 며칠 성혜인을 볼 때마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아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윤아, 이전에 성한이 성혜인한테 관심 있다 하지 않았어? 지금 우리 둘 그리고 성한도 다 회사에 있지만 성혜인은 회사 문이 어디로 열리는지도 모를 정도로 회사를 잘 몰라. 우리가 몰래 힘을 합쳐서 회사 지분을 전부 손에 넣는 방법을 찾아 보자. 그리고 성한이 손을 쓰는 거야. 제일 좋은 방법은 성혜인과 잠자리를 하면 성혜인도 우리 쪽에 설 수밖에 없게 돼.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것도 겁낼 필요가 없어.”소윤을 품에 앉은 허진은 눈이 반짝 빛이 났다.“성휘가 깨어난 후에 성혜인이 아빠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썼다고 알려. 그러면 성휘는 분명 화병에 그냥 쓰러질 거야.”이 말을 들은 소윤은 안정을 찾았다. 순간 허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바로
성혜인은 눈썹을 만지며 말했다.“지금 바로 BK 사에서 당신들 임원을 찾을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작업반장은 다급하게 가슴을 툭툭 치며 이에 응했다.성혜인은 그들과 더 이상 얘기할 기분이 아니어서 바로 BK사로 갔다.BK사 쪽은 이미 작업반장의 전화를 받아 BK사 대표도 지금 매우 불안해했다.성혜인은 반승제가 직접 뽑은 실내 디자이너고 BK사는 이 일로 서천군의 시공을 따냈다. 만약 이번에 성혜인의 불만을 사면 서천군 프로젝트는 물 건너가는 거나 마찬가지다.다급한 BK사 대표의 이마는 온통 땀 범벅이었고 저도 모르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소연했다.“저 인부들은 도대체 시공을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이런 잘못을 저질러. 만약 반 대표님이 이 소식을 알게 되면 우리 시공팀은 분명 전문적이지 않다는 불명예를 떠안을 거야.”“대표님, 그 인부는 나이가 조금 있고 집에 일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이미 퇴직금을 챙겨드리고 해고했고 또 그 인부도 지금 죄송해하고 있습니다.”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 지금 와서 책임 추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혜인이 더 이상 이 일을 크게 안 만들게 할지이다.대표는 또 다른 임원과 이 일에 대해 회의하자 이들에게 물을 따라주던 어린 임원이 이를 다 듣고 눈빛이 반짝였다.이 임원은 서민규의 사람으로 가장 비위를 잘 맞추며 학력이 낮은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서민규는 전문대 출신으로 대학이 자주 서민규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이 임원은 유도현으로, 나오자마자 자기 사무실로 가 혼자 고민했다. 성혜인을 아는 인맥을 찾을 수 있는지 만약 회사가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면 승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온갖 방법을 고민했다.이 자리에 벌써 삼 년 동안 있으면서 승진의 기미가 하나도 안 보였다. 평소에 남들 비위 맞추며 이런저런 허드렛일도 많이 했다. 아마 큰 게 한방 필요한 것 같다.“나 대신해서 페니와 누가 관계가 좋은지 알아보고 좋은 말 좀
서민규는 전화를 끊고 의기양양해하며 유도현을 바라봤다.유도현은 아직도 전부 믿지 않았다.“어디서 페니와 닮은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 아니야? 어떻게 페니를 알 수가 있어?”자기가 페니의 남편이라는 말이 서민규의 입 밖에 나올뻔했지만 어쨌든 가짜 결혼이고 그 사실이 밝혀지면 창피하기 때문에 꾹 참고 자랑하지 않았다.유도현은 서민규를 이리저리 보며 아까보다는 훨씬 좋은 태도를 보였다.“그럼 이렇게 하자. 페니가 이 일을 크게 안 벌이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바로 월급을 2배로 올려줄게. 지금 170만 원 받지? 이번 일 성공시키면 340으로 올려줄게.”서민규가 비록 학력이 남들보다 좋지는 않지만, 사실 일하는 능력은 좋았다. 그런데 유도현이 계속 괴롭히는 바람에 이 회사에 오래 있었어도 월급이 오르지 않았다.직장 내에서 동기들의 월급을 묻는 것은 금기이기 때문에 비록 다른 사람들이 얼마를 받는지는 잘 모르지만 자기가 아마 가장 적게 받고 있을 것이다.같이 하소연을 하는 임원도 이미 200만 원 정도까지 올랐다.유도현은 서민규가 대답하지 않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왜 이만큼이나 올려 줬는데 싫어? 밖에 나가서 조금만 알아봐도 전문대 졸업생이 이런 대우를 받는 사람은 없을걸.”서민규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유도현을 한참 욕을 한 뒤 고개를 들었다.“유 팀장님, 알겠습니다. 지금 내려가서 페니한테 말해보겠습니다.”유도현은 곧바로 복도를 나섰고 엘리베이터에서 BK사 대표를 마주쳤다. 대표의 이마는 온통 땀으로 가득했고 옆에 있는 비서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반 대표가 갑자기 와서 좀 보겠대? 이따가 페니도 도착하는데 둘이 마주치게 되면 페니가 굳이 찾아가서 보고하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다 알게 될 거야.”대표도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그러나 국내에서 반승제와 같이 협력하고 싶은 회사가 너무 많아 이번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면 양사가 협력한 사실이 이미 밖에 알려졌기 때문에 BK사는 분명 놀림거리가 된다.반짝거리는 눈으
이마가 땀으로 범벅이 된 서민규는 월급 때문에 팀장 앞에서 큰소리치고 나중에 대표 앞에서도 잘 보이려고 계속 큰소리쳤던 것이 지금 너무 후회스러웠다.만약 이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유도현이 더욱 못살게 굴 것이 뻔했다.“페니 씨, 전 BK사를 대표해서 온 게 아니라 상부 지시를 받고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려는 것뿐이에요. 지금 대표님이 다른 손님을 배웅 중이어서 지금 바로 페니 씨를 마중 나오지 못하셔요. 그래서 제가 자진해서 페니 씨를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미안해요.”서민규는 아까보다는 더욱 솔직한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다 꺼냈다.서민규는 친절하게 일어나서 데스크로 가 차와 간식을 가져왔다. “30분 정도 뒤에 대표님 지금 일정이 끝날 거예요. 그때 저랑 대표님 뵈러 가요.”서민규가 이렇게까지 말했고 심지어 신예준의 친구인데, 지금 강민아와 신예준이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어 성혜인도 일을 크게 만들기가 조금 그랬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왜냐하면 서민규랑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지 몰라 시간이 비는 틈을 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기존 설계도를 새로 수정하고 있었다.기둥을 없애면 조명도 바꾸어야 한다. 성혜인은 집중하며 인상을 쓴 채로 기존의 설계도를 계속 수정했다.서민규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으며 성혜인의 찻잔이 빈 것을 보고 조용히 새로운 물을 부어 줬다.성혜인은 한번 집중하면 시간을 보지 않아 30분이 금방 지나갔다.반승제 쪽도 이미 일이 끝나 BK사 임원과 BH그룹 임원이 모두 로비로 내려왔다.반승제와 BK사 대표는 맨 앞에서 걸어 반승제는 멀리 창 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성혜인은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고 옆에 있는 남자는 찻잔의 물을 붓고 있었다.남자와 여자는 서로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상하리만큼 사이가 좋아 보였다.반승제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가 시선을 다시 돌리고 계속 문으로 조용히 걸어갔다.BK사 대표는 발걸음이 잠시 멈췄던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냉기가 돈다고 생각했다.BK사
반승제는 고개를 돌려 휘청거리는 유도현을 바라봤다. BK사에서 만난 적 있는 사람이라 아직도 인상이 남아있었다. 저번에 만날 때도 서민규를 욕하고 있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그 자식 도대체 페니랑 어떤 사이인 거야? 감히 여자 힘을 빌려 내 팀장 자리를 빼앗아? 그 자식 조만간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나는 BK사에서 나와도 갈 곳이 많다고. 그 자식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죽여버릴 거야!”“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아. 진짜 더러운 사람들이라니까!”‘서민규가 팀장 자리를 빼앗아?’반승제는 BK사에 함께 있던 서민규와 성혜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본인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이 와중에 남편 직장까지 신경 쓴 모양이다.‘뭐, 내 알 바는 아니지.’반승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도현 힐끗 보고는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유도현은 오늘 부자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고급 술집에 와 봤다. 이곳에는 재벌 2세가 아주 많았고, 서울에서 꽤 잘나가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윤단미도 마찬가지다.오늘 같은 술집에서 윤단미와 지인들이 환영회를 열었다. 명성이 꽤 좋은 편인 윤단미는 성격이 서글서글해, 특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서수연도 그중 하나였다.서수연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윤단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단미 언니, 왜 이제야 돌아왔어요! 언니가 돌아오고 나서야 제원에 빛이 도네요!”윤단미는 서수연에게 붙잡혀 중간에 가서 앉았다.환영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부담스러울 정도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반승제가 대외적으로 발표한 유일한 여자친구이기 때문이다.윤단미가 제원으로 돌아온 이상 이번 달 안에 반씨 집안의 며느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들 잘 보이려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반승제와 가깝게 지내기는 어렵지만 윤단미는 아니지 않던가.반승제는 외국에서 지낸 3년 동안 여러 금융 중심지에서 명성을 날렸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을 젊은 반승제가
윤단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곁에 앉아 있던 윤선미가 윤단민의 표정을 보고 참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네이처 빌리지의 실내 디자이너가 내가 말했던 그 사람이야. 형부랑 과하게 가깝게 지내는 게 아무래도 꼬시려는 것 같아. 조심해.”윤단미는 반승제에 대한 믿음이 아주 두터웠다. 소매 단추 사건 이후로는 자신의 위치에도 자신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실내 디자이너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이때 곁에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물었다.“네 환영회에 반 대표님은 왜 안 와?”윤단미는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기더니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방금 통화했는데 곧 도착한대.”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반승제와 온시환이 함께 걸어들어왔다. 온시환은 자신이 챙겨온 선물 상자를 윤단미에게 건넸다.“오랜만이야, 이건 귀국 축하 선물.”윤단미는 뭘 이런 것까지 준비했냐는 얼굴로 선물 상자를 받아 들더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반승제를 바라봤다.반승제는 깔끔한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금방 일을 끝내고 왔는지 정장 외투를 팔에 걸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났다. 그가 작은 액세서리 상자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윤단미는 미소를 지었다.“승제야, 너까지 선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는데...”반승제가 준비한 선물을 힐끗 본 온시환은 눈썹을 튕겼다. 작은 선물 상자 속에 담긴 건 재벌 집 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브랜드의 목걸이였는데, 가격이 한 400억 정도 되었다.돈은 무뚝뚝한 반승제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얼마를 쓰든 놀라울 건 없었다. 게다가 이 목걸이는 심인우를 시켜서 가장 비싼 것으로 산 게 분명했다. 온시환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만나자마자 400억짜리 선물이라니, 두 사람 여전하구나.”자신이 가장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