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서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는 보지 못했다, 그저 휴대폰 화면에 짧은 영어가 뜬 것만 희미하게 보았다.“승제 씨, 전화 안 받아요?”반승제는 임원이 건네는 술을 받으며 덤덤하게 말했다.“보이스피싱이야.”“아...”방이서는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휴대폰에 이름이 뜨는 걸 봐서는 분명히 저장된 번호였다.이때 한 임원이 말했다.“대표님, 이것 좀 마셔보세요. 셰프가 서천 특산품인 매실로 직접 담근 매실주예요.”반승제는 감사 인사와 함께 매실주를 한 모금 마셔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장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모두 이번 프로젝트에 진심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이서는 반승제의 표정이 약간 달라진 것을 느꼈다.인사치레로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자, 분위기는 한층 더 무르익었다. 반승제는 셔츠 단추 두 개를 풀며 프로젝트에 새로 더해진 조항을 간단히 설명했다. 군청 임원들은 흔쾌히 동의했고 다른 복지 시설도 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잠시 후 반승제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레스토랑과 화장실은 전부 별장의 1층에 있었다. 그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눈썹을 찌푸렸다.성혜인은 일부러 화장실 앞에서 반승제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별장 앞에서 잠깐 기다려 볼 생각이었는데 도우미들이 화분을 옮기는 것을 보고 손을 보태다가 어쩌다 보니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흙이 잔뜩 묻은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온 것이다. 남녀공용 화장실 앞에 서 있던 성혜인은 그렇게 의도치 않게 반승제의 앞길을 막게 되었다.“대표님?”반승제는 말없이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고는 수도를 틀어 느긋하게 손을 씻기 시작했다. 약간 위로 말아 올린 소매 아래로 자극적이게 튀어나온 힘줄이 은은하게 보였다.성혜인은 화장실 문 앞에 멈춰 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승제의 차가운 모습에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행히 손을 씻고 난 반승제가 물기를 닦아내며 먼저 물었다.“무
별장에서 나온 성혜인은 부끄러움에 몸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반복해서 심호흡하며 애써 진정했다. 지금으로서는 임남호의 일을 빨리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녀도 후련하게 서울로 돌아갈 수 있었다.성혜인은 이미 서기관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봤다. 그의 이름은 연흥민으로 꽤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공무원이었다. 책 잡을 게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단점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청부업자를 고용한 것은 임남호의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모양이다. 자식이 머리에 스무 바늘이나 꿰맸는데 화나지 않을 부모는 없었다.성혜인은 공개 웹사이트를 뒤지고 있다가 연흥민과 신이한이 개업식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그녀는 기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건너편에서는 금방 신이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랜만이에요, 페니 씨. 혹시 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성혜인은 신이한의 능글맞은 말은 못 들은 척 본론을 꺼냈다.“이한 씨, 지난해 서천에 왔을 때 연흥민 서기관님과 만난 적 있죠?”신이한은 회사를 물려받은 후로부터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그래서 지난해에 만난 작은 도시의 서기관이 기억날 리가 없었다.신이한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개업식 사진을 메시지로 보내줬다.“이 사람이에요. 혹시 기억나요?”신이한은 드디어 기억난 듯 피식 웃으며 물었다.“그건 왜 물어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성혜인은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이한이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BH그룹이 요즘 서천군에서 사업하고 있다지 않았어요? 엄청난 사업이라고 하던데 서천의 서기관이라면 저보다 반 대표님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성혜인은 신이한이 자신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말을 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탁하는 처지였기에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갔다.“대표님은 바쁘셔서 제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어요. 게다가 저희는 그저 평범한 고용관계일 뿐인걸요.”신이한은 미
성혜인은 잠깐 절망에 휩싸였다가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으로서는 임남호의 일을 빨리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반승제는 확실히 평범한 고용관계일 뿐이었다.성혜인이 임동원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부는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때 집으로 돌아온 하진희는 임남호가 감옥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냅다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웬일이야, 진짜! 이렇게 쓸모없는 남자랑 더 이상 같이 못 살아요. 위자료로 1억을 줘요, 저 이혼 할래요!”하진희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원래부터 임남호 부부를 무시하고 살아왔던지라 자신이 이 집안의 어른인 양 손가락질하기도 했다.“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더니, 쓸모없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네요. 하다 하다 싸움까지 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살겠어요? 이혼하게 얼른 돈이나 줘요!”임동원과 이소애는 따로 저금한 돈이 없었다, 집안 돈은 대부분 다 하진희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임남호가 가출한 다음에는 거의 돈이 들어오는 족족 그녀에게 보내줬다.하진희는 매달 적지 않게 소비했다. 그러면서도 집안에 체면이 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이것 또한 임동원 부부의 비굴한 태도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니, 남을 탓할 건 없었다.이소애는 또 자세를 낮추며 애원하기 시작했다.“진희야, 남호도 무조건 감옥에 가야 하는 건 아니야. 우리가 배상하면 되지. 이 집을 철거하면 배상금도 금방 마련할 수 있어.”하진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어쩌면 1년 365일 배상금 걱정만 하는 거예요? 이런 집에서는 단 일초도 더 못 있겠어요.”현관에 있던 성혜인은 처음으로 하진희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2억 원의 배상금을 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또 사고를 쳤으니 말이다.“삼촌, 숙모.”성혜인의 목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부랴부랴 현관 앞으로 걸어갔다.“혜인아, 어떻게 됐어? 대표님이 도와준대?”“고소는 없는 일로 해준다고 했어요. 근데 배상은 해야 할 거예요
“저희 일단 남호 오빠를 경찰서에서 데려와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사과부터 해요.”이소애는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 지금 바로 출발하자.”임동원과 이소애는 나갈 채비를 하면서 하진희에게 물었다.“진희야, 너도 우리랑 같이 갈 거니?”하진희는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콧방귀를 끼더니 오만한 자태로 팔짱을 꼈다.“그따위 후레자식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요.”이소애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성혜인도 화가 나기는 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이는 남의 집안일이었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임동원과 이소애를 데리고 경찰서로 갔다. 귀를 찢는 듯한 임남호의 울음소리는 경찰서 밖에서도 들릴 지경이었다. 이소애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부랴부랴 안으로 들어갔다. 임남호는 경찰서로 오는 길에 결국 얻어맞았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남호야, 괜찮아?”이소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임남호의 손을 잡았다. 임남호는 한심한 모양새로 눈물을 쏟아내기만 했다.“엄마, 빨리 혜인이한테 말해서 저를 풀어줘요. 저 감옥 가기 싫어요. 진짜 잘못 했어요, 진짜 잘못 했다고요.”성혜인은 이소애의 뒤에서 임남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임남호는 반성하는 것이 아닌 겁먹은 것이었다. 감옥으로 가면 더 심하게 맞고 살 테니 말이다.성혜인도 함께 온 것을 발견한 임남호는 무릎 꿇을 기세로 애원하기 시작했다.“혜인아, 우리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걸 봐서라도 날 좀 도와줘. 흑흑... 나는 네 사촌 오빠잖아.”자존심도 버리고 눈물을 흘릴 줄밖에 모르는 임남호의 모습에 성혜인은 짜증 나기만 했다.“책임질 능력도 없으면서 싸움질은 왜 한 거야?”이 말을 들은 임남호는 울음마저 그치고 멈칫했다. 성혜인은 피식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말 안 할 거면 그냥 혼자 품고 감옥에나 가. 나도 신경 쓰기 귀찮으니까.”“안 돼! 잠깐만!”임남호는 무의식적으로 성혜인의 옷깃을 잡았다.
“혜인아, 아무리 그래도 사촌 오빠를 때리면 어떡하니. 제발 이러지 말아줘, 숙모가 부탁할게.”이소애는 비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입술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임동원은 곁에서 벙어리처럼 무릎을 꿇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 가장이 그렇듯 말이다.임남호는 넋이 완전히 나간 표정이었다. 그리고 피비린내고 가득한 입을 살짝 움직여 부스러진 이빨을 뱉어냈다. 성혜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며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으면 도망을 가는 게 아닌 이혼을 해야 하는 거야. 만약 그때 회삿돈을 건드리지 않고 이혼했다면, 아빠는 오빠네 집안과 원수지지 않았을 거고, 삼촌이랑 숙모도 죄인이 되지 않았어. 오빠는 2억 남짓한 돈으로 밖에서 즐기고 있을 때, 하진희가 집에서 얼마나 행패를 부렸는지 알아? 삼촌이랑 숙모는 하진희의 도우미처럼 살았어. 그런데 지금 무슨 낯으로 아들 행세를 하는 거야? 오빠가 언제 아들 노릇을 한 적이나 있어?”임남호는 입가에 흐른 피만 닦아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찰서에도 정적이 내려앉았다. 성혜인의 뿜어낸 위협적인 아우라에 함부로 접근하거나 말을 걸려는 사람은 없었다.성혜인은 심호흡하고 이어서 말했다.“그건 그렇고 하진희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면서 왜 지금까지 이혼 안 했어? 반성문은 왜 쓰고, 외상은 또 왜 했어?”임남호는 머리를 숙이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빼돌린 2억 원 중에서 6000만 원만 주면 하진희가 아들을 낳아주겠다고 했어. 2억 원에서 쓰다 남은 1억 원은 네가 고등학교 때 쓰던 카드에 입금했는데, 이번 기회에 몰래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어차피 내가 빼돌린 돈은 아빠가 이미 다 갚...”짝!임남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성혜인이 또다시 뺨을 때렸다. 임남호의 얼굴은 돼지처럼 부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혜인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한심한 자식. 내 카드에 1억 원을 입금했다고?’성혜인이 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
믿을 수 없다는 임남호의 표정에 하진희는 픽 웃었다.“잊었어? 네가 돌아온 날 밤, 술에 취해서 나랑 잤잖아. 내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면 너희집에도 타격이 꽤 클 거야.”임남호도 그날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순간 쭈뼛거리기 시작했다.하진희와 이혼하면 새 배우자를 찾는 것은 물론 아이를 낳는 것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누가 임남호와 아이를 낳으려 할까. 결국 대가 끊기게 되겠지.이제 하진희가 임신을 했으니 부모에게 진 빚은 갚은 셈이 되었다.‘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하진희의 말에 임씨 가족들은 모두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성혜인은 분노가 확 올라왔다.“외삼촌, 외숙모. 정말 계속 데리고 있을 생각이에요?”임남호에게 외도도 들킨 상황에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임남호도 자신이 그리 좋은 남자는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도 재개발에 들어가고 수중에 1억 정도 있는 지금, 앞으로 셋이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상황에 온갖 사고를 치는 여자가 집에 남게 된다면 이 돈마저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이소애와 임동원은 성혜인의 눈을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성혜인 역시 그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짐작됐다.이때, 하진희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성혜인에게 손가락질했다.“이 자식이 왜 갑자기 나한테 이혼하자는 건가 했더니, 네가 옆에서 종용했구나? 이 나쁜 년! 네 집 일도 똑바로 처리 못하는 게 왜 참견이야? 당장 여기서 꺼져! 우린 네가 반갑지 않으니까!”하진희는 물컵을 들어 성혜인에게 뿌렸다.성혜인은 예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비 맞은 생쥐 꼴이 될 줄 말이다.임동원과 이소애는 더더욱 면목이 없었다. 임남호도 침묵을 지켰다.성혜인은 화를 내는 대신 옆에 놓여있던 가방을 집어 들었다.“실례했네요.”성혜인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었다.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핀잔 한 번 주지 않고 욕받이 역할을 해왔다.이소애도 그들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걸
반승제는 무미건조하게 시선을 거뒀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홀릴 것만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방이서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까지 붉어졌다.“심 비서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그의 반응에 방이서는 금방 시무룩해지더니 눈시울이 붉게 변했다.“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죠? 밥 먹을 때 화장실 간다 해 놓고 페니 씨 만났잖아요.”반승제가 자리를 벗어날 때, 방이서 역시 그의 뒤를 따라갔다가 화장실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을 발견했다.무언가 있는 분위기였다.게다가 반승제가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는 표정이 더 차가워 보였다. 그 뒤로 페니가 걸었던 전화도 들었다.방이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그래서?”반승제는 문 안쪽에 서 있었다. 차가우면서도 낯설었다.방이서는 그의 태도에 확신이 없었다.“페니 씨는 결혼했잖아요. 근데 승제 씨를 꼬시는 것 같아요.”성혜인을 저격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누가 그렇게 예쁘래?’방이서는 성혜인이 반승제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은 없었다.반승제의 표정에서는 어떤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표정에서는 냉기가 맴돌았다.“방이서, 나 결혼했어. 그러니 누가 날 꼬시든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심 비서에게 연락할게.”방이서는 붉어진 눈시울로 발을 굴렀다.“그렇게 쌀쌀맞아서 누가 승제 씨를 좋아하겠어요! 흑흑...”그대로 울며 자리를 떠났다.반승제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실내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잠시 후, 심인우가 새로운 서류들을 들고 왔다.“대표님, HS그룹의 신이한에게서 전화가 왔는데...”반승제는 볼펜을 들어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뭐라던가요?”“대표님 부인께서 문제가 좀 있으시답니다. 대표님께서 부인을 좋아하지 않고 해결해 줄 생각이 없다면 자신이 나서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쓰레기 같은 신이한, 남의 부인을 따라다니겠다고 남편에게 사전 통보를 하다니.반승제는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 문득 머릿속에 가식적인
반승제의 반응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이 씨가 곧바로 성혜인에게 다가가 이야기했지만 성혜인은 고개를 내저었다.“감사하지만 견인차도 곧 오니까 잠깐 기다리면 돼요. 제 차를 따라가야죠. 오늘 차를 수리하는 대로 제원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이 씨는 추워 보이는 성혜인이 그저 따뜻한 곳에서 몸을 녹였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하지만 성혜인의 말을 듣고 나서도 강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요즘은 견인차가 20분이면 오기 때문에 성혜인은 밖에 서서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고 재채기가 튀어나왔다.이 씨는 자신의 차를 뒤따라왔던 간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반승제에게도 말이다.개의치 않는다는 듯 창문을 닫는 것이 반승제의 반응이었다.20분 후, 견인차가 도착했다.성혜인은 곧바로 견인차에 올라타 자동차 정비소로 향했다.이런 차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운전기사도 꽤 유쾌하고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견인차 뒤로 차 몇 대가 줄지어 따라왔다. 모두가 시내로 향하는 길이었다.자동차 정비소에 도착한 뒤에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시동을 다시 걸 수 있었다.결제를 마친 성혜인은 옆 가게에 있던 약국에 들어가 감기약을 구입했다. 감기약을 목구멍으로 넘긴 후 제원으로 돌아가려 차로 향했다.그때, 이소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나 성혜인은 고민도 없이 ‘거절’ 버튼을 누르고 액셀을 밟았다.그 시각, 전화를 거절 당한 이소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담배를 태우는 임동원을 바라봤다.방 안에서는 임남호가 등신이라며 나무라는 하진희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임남호는 몇 번이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배를 쳐다보며 결국 말을 삼켰다....오후 4시. 성혜인은 제원에 도착했다.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로즈가든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임남호에 미친 그 여자와 또 마주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포레스트로 돌아가자니 오늘 제원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반승제가 떠올랐다.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