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방 안. 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진심 어린 대답을 들었다.“감사해요, 대표님.”반승제가 증오하도록 싫어하는 그 여자가 성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전제하에, 반승제는 성혜인을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두 사람에게 결혼이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결혼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는 입장이니 누구 한쪽을 나무랄 필요도 없었다.성씨 집안은 이 혼례로 이미 득을 봤기 때문에 반승제에게 부인을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모든 걸 그 여자에게 맞출 수는 없는 거니까.반승제는 말없이 눈꺼풀을 닫았다.쉬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에 성혜인 역시 입을 닫았다.오전 여섯 시.심인우의 목소리가 들렸다.“페니 씨, 여기 아침 식사입니다. 대표님을 간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니에요. 비서님 오셨으니 전 가볼게요.”“네. 다음에 정식으로 감사 인사드릴게요.”병실 문이 조심스럽게 닫혔다. 그제야 반승제는 눈을 떴다.깨어난 반승제를 발견한 심인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테이블을 폈다.“대표님, 식사부터 하시겠어요?”하룻밤 내내 열에 시달린 반승제는 입맛이 없었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성씨 집안의 일은 처리했나요?”“운영 중단시켰습니다. 성씨 집안은 아마 오늘부터 패닉 상태에 빠질 겁니다. 성휘가 회장님께 연락하지 못하도록 지시해 두기도 했습니다. 이제 회장님께서 그쪽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못하실 겁니다.”이제 귀찮을 일이 없을 것이다.성씨 집안에서 일이 터져 성휘가 반태승에게 연락한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게다가 반태승은 건강상의 이유로 집 밖을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성휘와 마주칠 일도 없다.이것으로 SY그룹이 파산하지는 않겠지만, 성휘에게는 고난의 시간이 될 것이다.반승제는 몸을 일으켰다. 심인우가 가져온 세면용품으로 샤워를 마친 뒤 호텔로 향했다.포레스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한편, 성혜인은 포레스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오늘 서천으로 가려 했지만 밤사이 반승제의 곁을 지켰더니 눈도 뜨지 못할 만큼 피곤했다.포레스트에
성휘는 온몸을 떨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어떻게 이모를 깎아내릴 수 있어! 혜원이도 말이야!”성혜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곧이어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했다.“아빠, 병원에 가서 쉬세요. 회사도 할 일 없을 거니까 휴가라고 생각하시고요.”성휘는 딸을 응시했다. 던진 베개로 인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니 조금 후회됐다.그는 한숨을 쉬었다.“내가 은퇴하려면 회사를 너에게 넘겨야 안심이 될 거다. 네게 지분을 좀 넘겨 당분간 내 자리를 네가 좀 채워야겠다. 지금 네 일은 조희준과 접점이 있는 데다 널 그렇게 못살게 굴지 않았니. 혜인아, 넌 할 수 있어. 네가 회사로 출근한다고 하면 내가 마음 편히 요양할 수 있을 거야.”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바에 딸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다른 사람은 성휘를 배신할 수 있지만, 딸은 그러지 않을 것이니까.성휘는 성혜인을 잘 알고 있었다. 외강내유라는 것을.성휘가 무탈하기를 바라는 딸이다.성혜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 옆에 있던 소윤이 분노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하지만 성휘에게 본심을 들킬까 봐 차마 끼어들 수 없었다.성휘에게 의심 살 만한 행동을 했을 때 꾀병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들키면 안 된다.소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망할 년!’오랫동안 성휘의 곁을 지켰지만 받은 지분은 겨우 10%였다. 그런데 전처의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다니!성혜인 역시 흠칫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성한은 다른 남자의 아들이다. 성휘가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아픈 게 아니라면 회사를 물려줄 일이 없을 것이다.성혜원 역시 환자다. 직장 내 스트레스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갈지도 모를 일이다.소윤도 회사에 있지만, 성휘의 부인이니 그 권리가 있는 것이지 사실 그럴 능력이 없는 여자다.이들을 다 제외하고 남는 적임자는 단 한 사람뿐, 성혜인이다.하지만 성혜인은 생각이 달랐다. 반승제의 집 인테리어가 끝나고 난 뒤 화실을
“성혜인, 대표님과 한 침대 써봤다고 정말 널 좋게 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침대에 쉽게 오르는 여자를 남자가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만, 곧 널 차 버릴 거야.”성혜인은 이미 액셀을 눌렀다.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그전까지 넌 옆에서 부러운 마음에 침이나 흘리고 있겠지.”성혜원의 가슴팍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에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젠장... 젠장...!’성혜인은 무표정으로 사이드미러에 비친 성혜원을 흘겼다.한동안 제원에서 머물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천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유창목 바닥재 일만 얼른 해결하면 반승제 쪽에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그녀는 커피 한 잔을 샀다. 너무 피곤하지는 않을까 싶어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졸음이 달아난 듯했다. 그녀는 그제야 노트북을 들고 서천으로 출발했다.때마침 반승제의 차도 서천을 향했다.반태승은 반승제를 성혜인과 엮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다. 이럴 때는 서천으로 몸을 피하는 게 나았다. 그동안 BH그룹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둘 생각이다. 반태승 역시 반승제가 눈앞에 없으면 잠시 휴전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반승제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등에 난 상처는 여전히 욱신거렸다.운전석에는 심인우가 앉아있었다. 차 안은 적막만이 흘렀다.심인우는 사이드미러로 뒷좌석을 슬쩍 확인했다.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단미 아가씨가 어젯밤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오늘 아침에 저에게 귀국 수속을 밟는 중인데 예정 일자보다 일찍 들어올 것 같다고 하십니다.”“네.”반승제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무릎 위에는 이번 서천 출장에서 필요한 서류들이 놓여있었다.한참을 달려 서천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하늘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그는 이번에도 하늘에 리조트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성혜인은 이번에 외삼촌에게 연락하지 않고 일반 호텔에서 묵을 생각이었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호텔 입구에 차를
“외숙모,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들어가시지 않고 뭐 하세요? 오빠는 뭐 하는데 도와주지도 않아요?”임남호가 있었다면 이소애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성혜인이 말하자 이소애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성혜인의 손을 잡았다.“혜인아, 나랑 돌아가자. 네 방 아직도 그대로야. 이전에 너한테 신세를 이미 많이 졌어. 이번에 남호를 데리고 온 것도 말이야.”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리는 이소애를 보며 성혜인은 한숨을 쉬었다.“오빠가 돌아오고 나서 진희랑은 화해했어요?”“아니, 크게 싸웠지. 확실히 남호가 잘못했으니 반성문을 쓰라고 하더라. 아마도 용서해 주겠다는 뜻인 것 같아.”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어카를 끌고 하늘에 리조트를 지나던 성혜인은 마침 계단 앞에서 반승제를 만났다.반승제는 정장 대신 흰 와이셔츠만 입고 심인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두 사람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침 저녁 모임에 참가할 예정이었다.지금 시각은 이미 여덟 시였다. 모임은 이곳의 임원들도 참가하는 것이었는데 모두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성혜인은 이소애를 도와 카트를 밀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반승제는 눈썹을 까딱거리더니 카트 안의 과일들로 시선을 돌렸다.오렌지에, 포도에, 바나나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성혜인은 당연히 자기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반승제가 서천에 나타날 리가 없었으니까.허리를 꼿꼿이 편 성혜인은 하늘에 리조트의 조명 아래에 우뚝 서 있는 반승제를 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의 날카로운 선들이 달빛에 융합되는 것 같았다.BH그룹에서 볼 때는 항상 엄숙하고 냉랭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셔츠 소매도 걷어 올린 상태여서인지 평소와 달라 보였다. 보아하니 잠시 후 있을 모임이 어려운 자리가 아니라서 다소 편하게 입은 모양이었다.“반 대표님?”성혜인이 긴가민가하면서 불렀다.계단 위에 선 반승제를 보며 계단 앞에 선 성혜인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반 대표님, 귤 하나 드실
이번 비즈니스에 과일 관련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반승제는 가볍게 웃었다.“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네요. 달 것 같습니다.”“맞습니다. 이런 귤은 다들 좋아합니다. 작년 이맘때에 한창 잘 팔렸었죠.”사람들이 멀어져갔다.반승제 뒤의 심인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표님은 이런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원에 있을 때도 해외에서 공수해 온 과일만 입에 댔었다.......성혜인은 이소애를 도와 리어카를 밀었다. 거의 집에 도착하는데 이소애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혜인아, 아까 그 사람과 아는 사이라면, 네가 리어카를 미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것 아니야? 네 체면도 있는데...”리어카는 너무 허름했다. 게다가 과일을 팔고 있었으니 하진희는 나이도 많은 이소애가 창피한 짓만 골라 한다고 했다.이소애가 길에서 이렇게 돈을 벌고 있을 때면 하진희는 친구랑 나가 놀면서도 이소애 앞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이소애는 성혜인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외숙모, 직접 일해서 돈을 버는 게 왜 체면이 떨어지는 일이에요? 반 대표님은 그런 걸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요.”이소애는 할 말이 없었다.리어카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성혜인은 안에서 임남호의 목소리를 들었다.“아버지, 저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 그냥 어머니 몫을 남기고 우리끼리 먼저 먹어요.”그 뒤에는 하진희의 목소리였다.“그러게 말이에요. 그 쥐꼬리만 한 돈이라도 벌겠다고 매일 이렇게 늦게 나가시는 걸 보면 제가 다 창피해요. 마주칠까 봐 친구랑 나가놀지도 못하겠다고요.”이소애와 성혜인은 밖에 서서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성혜인이 화가 날까 봐 걱정된 이소애는 급히 목소리를 높였다.“여보, 빨리 나와. 혜인이가 왔어.”안에서 반찬을 데우고 있던 임동원은 이소애의 목소리를 듣고 급히 뛰쳐나왔다.임남호는 성혜인이 왔다는 소리에 몸이 굳어버려 나가지도 못했다.하진희는 그저 옆에서 코웃음을 치고 젓가락을 가져가 혼자 식사를 시작했다.이소애를 도와 리어카
“혜인아, 걱정하지 마.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민하다가 다시 물었다.“유창목 바닥채 파는 사장님, 그 회사에 혹시 아는 사람 있어요?”임동원의 직업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직업이었다. 월급이 높지는 않아도 인맥은 꽤 넓었다.“조금 이따 물어볼게. 그리고 문자 보내마.”성혜인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호텔로 돌아왔다.그녀는 샤워를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침대에 커다란 검은 벌레가 있어서 침대에서 잠을 청하기 무서워졌다. 성혜인은 옷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하룻밤을 보냈다. 자고 일어나니 목이 아팠다.이튿날 아침 깨어났을 때 임동원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씨 아저씨가 오늘 밤 마침 그곳에 간다는 소리였다.「내가 이 씨한테 얘기해 놨어. 데리러 올 거야.」성혜인은 간단하게 죽과 옥수수를 먹고 호텔 입구에서 기다렸다.먼저 들어온 것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차량이었는데 가장 기본 디자인이어서 4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차였다.그 뒤로는 롤스로이스가 들어왔다. 성혜인은 바로 반승제의 차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설마? 생각하고 있는데 이 씨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 성혜인을 데리고 롤스로이스 옆으로 갔다.이전에 성혜인의 그림이 반 대표님의 마음에 들었었다. 게다가 성혜인은 반 대표님의 차도 타보지 않았던가.차 창문이 내려가고 반승제가 얼굴을 드러냈다.이곳에서도 반승제의 무릎 위에는 여전히 서류가 많았다.손목에는 비싼 파텍필립 시계가 있었고 손톱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손가락 마디마디는 정교한 조각 같았다. 게다가 손목은 어찌나 하얀지, 손등의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손은 그의 얼굴처럼 매력 있었다.“반 대표님, 이쪽은 그림을 그렸던 그 친구입니다. 마침 현장에 가서 시찰하는데 이 아이도 그 근처에 가거든요. 저희 차량에는 죄다 늙은이에다 담배까지 피워서 이 친구가 힘들어할 것 같은데, 반 대표님의 차에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이 씨는 예의를 갖추어 물으며 순수한 미소
반승제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었기에 성혜인은 방해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씨는 롤스로이스 옆에 와서 일단 반승제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먼 곳에 있는 별장을 가리켰다. “저곳에 네가 찾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일단 반 대표님을 모시고 아래에서 시찰할 테니 먼저 가 있어. 네 외삼촌의 부탁은 다 들어줬어.”성혜인은 반승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또 이 씨 아저씨에게도 감사를 드렸다. 그러고는 크게 발걸음을 떼어 별장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거절당하면 내 이름을 대.”성혜인은 살짝 의외라는 듯 놀랐다. ‘이곳의 사장과 아는 사이인가?’그렇다면 일이 쉬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눈도 초롱초롱해졌다. “감사합니다, 반 대표님.”점심의 태양은 살짝 강렬해서 성혜인에게 쏟아지는 빛이 반승제에게는 눈부셨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옆의 임원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성혜인은 이 별장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별장은 동양풍의 별장이었는데 높은 담장 너머로 심어놓은 나무들이 보였다. 이곳의 사장님의 취향도 독특한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용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성혜인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누구를 찾으시나요?”“안녕하세요, 방 사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오늘 집에 계시죠?”고용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문을 열었다. “방 선생님께서 오늘 집에 계신 것은 맞지만 미리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일단 들어오셔서 기다려 주세요. 방 선생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실지 여쭈어보고 오겠습니다.”성혜인이 단정하고 바르게 생겼기에 고용인은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 들어선 성혜인은 정원을 보자마자 공들여 가꾼 정성이 느껴졌다. 동양풍도 있었고 풍수에 관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스승인 주영훈이 대표적인 한국화 화가였기 때문에 유일한 제자인 성혜인도 이쪽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와서 나를 찾는 것을 보아하니 그 전에 목제 타일을 예약한 것이 아닌가 보군. 내 물론 그대를 좋아하기도 하고 주영훈 화가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대에게 조금 나눠줄 수 있지만, 우리 회사의 타일은 3년 전에 예약해야 하기에 지금 당장 나눠주기엔 나도 힘들어.”방태주의 말은 가식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그 얘기에 성혜인은 웃음을 지었다.“방 사장님, 제가 듣기론 몇 년 전에 고객의 예상 날짜가 틀렸다거나 혹은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취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몫을 나누어 주시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 몫을 제게 먼저 주실 수 있으실까요? 가격은 섭섭지 않게 해드릴게요.”방태주는 고민하지 않고 바도 대답했다.“이름이 뭐라고 했지?”“페니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제 스승님도 이렇게 불러주셨거든요.”방태주는 작게 웃었다.“그의 제자이기도 하고 내게 빚도 졌으니 남아서 그림을 한 폭 그려주게나. 이후에 누가 취소하게 되면 내 바로 연락하지.”“그렇다면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방 사장님.”방태주가 그녀한테 그려달라고 한 것은 어려운 그림이 아니었다. 원래 그리던 사람이 절반을 그렸는데 왜서인지 멈춰버려서 성혜인이 계속 그려야 했다. 하지만 원래 주인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살짝 난이도가 있었다.하지만 성혜인의 머릿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성혜인은 클리셰같은 그림 속에 생동한 포인트들을 넣어 이 그림이 더욱 진짜 같게 했다.세 시간이 지나서야 이 그림을 완성했다. 중간에 고용인이 그녀를 위해 차를 가져왔다.방태주는 차에 있어서도 매우 견해가 깊었다. 아주 급이 높은 대홍포였다.성혜인이 손을 내밀어 차를 들자마자 밖에서 발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오늘 승제 씨 온다면서요? 오전 내내 기다렸는데 왜 안 오는 거예요?!”그대고 굳은 성혜인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밖에는 예쁘게 치장한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여자는 성혜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