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무의식적으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방 안에는 그 아이가 있었다. 키는 더 커졌지만 여전히 영양실조처럼 보였고 입고 있는 옷은 몸에 맞지 않아 발목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원진은 시험지를 내려놓고 곧바로 아기를 보러 갔다. 그 여자는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껍질을 바닥에 뱉고 있었다.“애 보고 나면 저녁밥도 해. 우리 집에 살면서 밥 먹고 입는 게 공짜인 줄 알아? 네 부모도 없는데 우리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네가 어디서 굶어 죽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야.”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툴게 아기를 달랬다.그 여자의 말이 너무 지나쳤는지 옆에서 담당자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주자 그제야 여자가 당시연을 쳐다봤다.그녀는 당시연을 알아본 듯 순간 멈칫하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당시연 씨,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당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원진이 입고 있는 옷과 바지를 보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아줌마, 제가 원진을 후원하면서 반년마다 400만 원씩 보냈어요. 그 돈으로 옷 한 벌 못 사줄 정도인가요?”여자는 뻔뻔하게도 태연하게 대꾸했다.“아유, 먹고 사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요. 원진한테 물어봐요, 우리가 그 애를 굶겼나요? 학비도 다 돈이고 교재도 다 돈이죠. 설마 내가 그 돈을 가로챘다고 의심하는 건가요?”원진은 당시연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당시연은 깊이 숨을 내쉬고 말했다.“진아, 날 기억해? 작년에 내가 여기 왔었는데, 벌써 1년이 넘었네. 내 얼굴 아직도 기억나?”원진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금세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대답했다.“기억나요.”당시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좋아. 아줌마, 그 돈이 원진에게 쓰였다고 하셨으니, 그럼 원진에게 들어간 비용을 상세히 적어 주세요.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 내가 돈을 헛되이 쓴 건 아닌지 말이에요.”이 상황에서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 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그 여자는 자신은 새 옷을 입고
당시연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구석에 있던 소년은 마치 그녀에게서 빛이 나는 듯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그 여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며불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대체 이게 무슨 천인공노할 짓이야? 내가 말해두지만 원진은 우리 애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네가 뭔데 여기까지 와서 이래라 저래라야! 너 같은 도시 사람이 대체 어디까지 손을 뻗을 셈이야? 게다가 얼마나 오래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 애를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은 나야! 원진, 너도 생각 좀 해봐. 지금이야 이 여자가 네 편을 들어줄 수 있겠지만, 금방 갈 사람이야!”“원진을 제원으로 데리고 가서 학교에 보낼 거예요!”이 말은 충동적으로 튀어나왔고 당시연 자신도 말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안도했다. 원진을 이런 사람들에게 맡길 수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그녀는 원진에게 시선을 돌리고 손을 잡으며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아, 나랑 같이 제원으로 갈래?”당시연은 지금 번역 일로 충분히 돈을 벌고 있었고 원진을 후원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댈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자취방은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와 가까워 원진이 통학도 할 수 있었다.이제야 당시연은 자신이 모든 것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자는 여전히 발악하고 있었다.“안 돼! 이건 납치야! 당신들 당장 신고할 거야!”“좋아요. 그럼 내 후원금 천2백만 원을 돌려주세요.”당시연은 뒤로 물러서며 이 여자가 그 돈을 내놓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면 이미 그 돈은 다 써버렸을지도 모른다. 원진은 이 집에서 그저 값싼 노동력이었을 뿐이었다. 여자가 값싼 노동력을 위해 천2백만만 원을 내놓을 리가 없었다.당시연은 가방을 뒤져 또 4백만 원을 꺼냈다.“혹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걸 허락해 준다면 이 4백만 원도 드릴게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서로 관계없이 지내요. 이장님과 여기 계신 담당자분이 증인이 되어 서류
당시연은 원진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어쨌든 그녀는 그와 혈연도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갑자기 자신의 운명을 낯선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얼마나 불안할지 충분히 이해했다.하지만 원진은 당시연의 얼굴을 몇 초 동안 응시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가고 싶어요.”당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원진의 손을 잡았다.“좋아, 그럼 우리 가서 서명하자.”서명하고 도장을 찍는 과정은 아주 순조로웠다. 여자는 400만 원을 받자마자 마을 이장 집에서 바로 돈을 세기 시작했다.이장은 미안했는지 당시연에게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했지만 당시연은 정중히 거절했다. 이곳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더 오래 머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다.“진아, 앞좌석에 타.”원진은 차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자동차였다. 그는 서투르게 문을 열고 차에 탔지만 안전벨트도 어떻게 매는지 몰랐다.당시연은 운전석에 앉아 몸을 숙여 원진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원진은 지금 너무 말랐고 보기에도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제 겨우 16살이니 한참 성장할 나이였기에 영양 공급은 필수였다.당시연은 안전벨트를 매고 두 손을 운전대에 올렸다.“진아, 너 몇 살이니?”“막 16살 됐어요.”“그래? 그럼 내가 너보다 6살이나 많으니까 앞으로 나를 시연 이모라고 불러. 나는 당시연이야.”“네.”당시연은 약간 피곤했다. 차를 몰고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웠다.“여기 잠깐 앉아 있어. 내가 뭐 좀 사 올게.”원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전벨트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당시연은 손에 도시락을 몇 개 들고 곧 돌아왔다.“뭐 좀 먹자. 집에 도착하려면 저녁은 돼야 할 것 같아. 나도 여기서 한 시간 정도 쉬어야 해.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면 위험하니까.”원진은 도시락을 받아 들고 당시연이 조금씩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보고 침을 삼켰다. 그는 일회용 젓가락을 뜯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진은 워낙 식사량이
당시연은 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시연 누나.”눈을 떠보니 원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 그녀는 잠시 멍하니 원진을 바라보았다.원진은 손을 내리며 말했다.“한 시간이 지났어요.”당시연은 서둘러 의자를 세우고 얼굴을 살짝 두드렸다. 오랜만에 푹 잔 듯 기분이 상쾌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사십 분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한 시간 지나면 깨워 달랬잖아.”원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너무 편안하게 자고 있어서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가서 커피 좀 사 올게. 너는 뭐 마실래?”“안 마실래요.”당시연은 차에서 내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아까 나 뭐라고 불렀어?”원진은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누나가 젊으셔서 이모라고 부르기 싫어요.”당시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누나라고 불러.”그녀는 커피 한 잔과 두유를 사 들고 돌아와서 원진에게 두유를 건넸다.“뭐라도 마셔.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미리 말해. 아직 네 시간은 더 가야 하거든. 집에 도착하면 아마 저녁 7시쯤 될 거야.”“네.”당시연은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진아, 뭐든 마음에 두지 말고 이야기해. 나는 애를 키워본 적도 없고 동생도 없어. 네 생각을 어떻게 맞출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뭐든 하고 싶은 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바로 말해.”원진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네.”차가 두 시간쯤 달렸을 때 당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당시연은 받기 싫었지만 벨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댔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외부 스피커로 전화를 받았다.“아빠, 무슨 일이에요?”“성진이가 어젯밤에 네 자취방에 갔다가 너 못 만났다고 하더라. 너 어디 간 거야? 설마 외박했어? 시연아, 성진이랑 아직도 화해 안 했어? 성진이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번엔 네가 확실히 좀 잘못한 것 같아. 그 여자애랑 아무 일도 없었고 그냥 챙겨준 거라잖아. 나중에 직장 생활
차 안은 너무 조용했고 두 사람 모두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린 듯했다.당시연이 먼저 입을 열어 분위기를 풀었다.“진아, 아까 우리 아빠가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 제원에 도착하면 학교 알아봐 줄 테니까, 너는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다른 건 걱정하지 마. 내가 네게 보내는 돈은 내가 직접 번 돈이라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어.”원진은 마음이 따뜻해지며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네.”당시연은 그제야 그가 겨우 열여섯 살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도 없이 살아온 데다 속을 알 수 없는 고모 밑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걱정하지 마, 내가 너 다시 보내지 않을 거니까.”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도로에 시선을 고정했다. 원진의 불안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은 안정된 듯했다. 그는 몰래 당시연의 옆모습을 살폈다. 그녀는 정말 예뻤고 성격도 온화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당시연은 또래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자신을 돕겠다고 약속했던 순간 원진의 마음은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때는 자신의 계좌번호도, 제대로 된 연락처도 없었기에 그 돈이 정말 자신에게 올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고모는 그 돈 때문에 그를 마지못해 학교에 보내줬다. 그래서 공부를 못 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그때 당시연의 동아리가 도우러 왔을 때 연락처를 남겨 뒀기에 마을 이장에게서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내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편지를 부쳤지만 두 달 동안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원진은 그녀가 바빠서 편지를 읽지 못했거나 아니면 새로운 주소로 이사를 가서 편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그녀가 편지를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짧은 편지를 보냈다. 사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가 자신을 도와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차마 그런 부탁을 대놓고
당시연은 잠옷을 입은 채 원진의 방에 들어가 침대를 정리해 주고 1층 마트에 내려가 그를 위한 세면도구를 사 왔다.“부족한 건 내일 가서 더 사자. 이제 곧 배달 음식이 올 거니까 먼저 저녁부터 먹어.”당시연은 음식을 많이 주문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원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많이 먹어. 먹는 거로 절대 아끼지 마. 배불리 먹지 않으면 다 남겨서 낭비하는 거야.”원진은 고모 집에 있을 때 한 번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 고기라도 먹으려고 하면 항상 빈정거림과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런 생활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방에서 지내는 건 꿈만 같았다. 그래서 자꾸만 이 달콤한 꿈에서 깰까 봐 걱정되었다.당시연은 원진이 얌전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 떡갈비 좀 더 먹어. 내가 현장에서 먹어봤는데,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거라 깨끗하고 좋아. 너는 지금 단백질을 더 보충해야 해.”원진은 고개를 들어 당시연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시연 누나, 고마워요.”당시연은 마음이 따뜻해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차를 몰고 오는 내내 그녀는 자신이 너무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아직 자신도 학생인데 이런 큰 책임을 짊어지는 게 맞는지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원진을 마주한 이 순간 그녀는 그냥 이렇게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느꼈다.“고맙긴. 내가 너를 데리고 나온 이상, 네 모든 걸 책임질 거야.”원진이 저녁을 다 먹자 당시연이 일어나서 치우려 했지만 원진이 먼저 일어섰다.“제가 치울게요. 저도 요리할 수 있어요. 다만 집에서 하던 것들이라 단순한 가정식인데, 누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너는 요리할 필요 없어. 월요일에 학교 가면 공부량이 많아질 거야. 네가 마을에서는 우수한 학생일지 몰라도, 여기서는 그만큼 치열할 거야. 각오하고 있어야 해. 원진, 네가 이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
당시연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집안이 조용해진 후에야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김성진을 정말 좋아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와 사귀지 않았을 것이다.잠시 울고 난 뒤 당시연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카드를 주워 현관에 있는 열쇠 상자에 넣었다.손님방 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고 그 문이 다시 조용히 닫혔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원진은 문에 기대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래는 나가서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불편함이 자신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차마 나가지 못했다. 혹시 그녀가 마음을 바꿔 자신을 다시 돌려보낼까 봐 두려웠다.그는 몹시 불안했다. 긴장한 나머지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당시연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울음소리는 매우 억눌려 있고 작았지만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울음소리는 멈췄고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꽃잎들을 정리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그날 밤, 원진은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여전히 그 습하고 어두운 방에 있는 건 아닌지, 여전히 작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집어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는 행복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여기 있는 이불은 매우 따뜻했다. 반면 그가 평소에 덮던 이불은 얇은 한 겹뿐이었고 머리까지 덮으면 발이 드러났다. 겨울에도 그 얇은 이불로 버텼기 때문에 그는 늘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야 했다.결국 원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뭔가 아침을 차리려고 했으나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었다.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숙제 책을 꺼내 들고 조용히 거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당시연은 아침 9시에 일어났고 배달 음식을 시켰다.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한 뒤 당시연은 원진을 데리고 쇼핑몰로 향했다.하지만 원진은 옷의 가격표를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반팔 셔츠
두 사람은 오전 내내 밖에서 쇼핑을 했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연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원진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당시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방 한쪽에 있는 0.6평 정도 되는 빈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에 책상을 하나 놓아줄까? 아니면 네 방에 놓을까? 숙제할 때 편하겠지.”“방에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누나를 방해할까 봐 걱정돼요.”“그래, 그럼 방에 놓자. 그렇게 하면 너도 네 공간이 생길 테니까.”원진의 방은 6평 정도로 꽤 넓어서 책상을 놓기에는 충분했다.당시연은 그가 입을 새로 산 옷들을 옷장에 정리하고 새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두었다.“진아, 너 예전에 입던 안 맞는 옷들이랑 신발들은 버려도 되지? 이제 새 옷 입자.”원진은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제가 버릴게요.”“괜찮아. 네가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1층까지 내려가야 하거든.”당시연의 다정한 말투에 원진은 더 이상 큰 소리로 말하기가 어려웠다.그러나 저녁이 되자 당시연의 아버지 당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는 더 엄격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김성진이 또 무언가 불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당시연은 그 순간 더 피로감을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시연아, 성진이가 그러던데 네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하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돈이 드는지 알아? 그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라면 반쯤은 남자나 다름없잖아. 너 그 아이와 함께 지낸다고?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너 점점 말을 안 듣는구나!”당시연은 원래도 피곤했고 김성진과의 이별로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다. 그래서 한층 더 답답해졌다.“아빠, 성진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네가 잘못한 거니까 사과하고 선물이라도 사가서 화해해. 결혼 얘기까지 나왔던 사이인데, 어떻게 외부 사람 하나 때문에 헤어질 수가 있냐. 그리고 그 집에 데려온 그 아이,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빨리 돌려보내. 너는 언제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