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잊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나저나 우리 오빠한테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자신의 음침한 속셈을 들킬 수 없었기에 반승제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며 말을 꺼냈다.“진율이와 서율이 보러 올 시간이 없을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진열이 우현 씨 좋아하잖아. 전에는 진율이도 우현 씨 따라 배워서 바람둥이가 될까 걱정했는데 우리 진율이 다행히도 그쪽이 아니라 울보로 자라서 참 다행이야.”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혜인은 순간 그의 말투 속에서 약간의 우쭐함을 느낄 수 있었다.“반승제 씨, 괜한 생각하지 마요. 우리 오빠 정말 크게 상심한 것 같은데.”“알았어. 네 오빠면 내 형이기도 하지.”그렇다고?그런데 왜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지?*같은 시각, 장하리는 의사가 서주혁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알게 되었다.유리 조각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가 뼈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서주혁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휴지를 가져다가 건네주었다.이윽고 서주혁이 고개를 들어 장하리를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은 어느덧 창백하게 질려 핏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네가 닦아줘.”지금 만큼은 장하리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들어 서주혁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장하리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다 보니 서주혁은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 났다. 시간이 영원히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현재의 장하리는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아껴주고 있다.땀을 다 닦아주니 의사의 처치도 거의 끝나 갔다.오른팔을 다쳤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조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서주혁은 병원에서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의사에게 물었다.“선생님, 저 집에 돌아가서 요양해도 괜찮을까요?”“네, 하지만 상처에 물이 닿지 않도록 꼭 주의하시고 약도 제때 갈아줘야 합니다.”고개를 끄덕이고 서주혁은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장하리의 선택은 전부 아이 때문이라는 것은 서주혁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장하리가 그의 곁을 선택해준 것만으로도 서주혁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서주혁은 장하리의 마음이 여리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마침 비열하게 그 점을 이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주혁은 정말 장하리를 떠나 살 수가 없다. 막상 그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혀왔고 이 세상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아이는 그가 가진 모든 카드였다. 하여 서주혁은 일부러 매일 서보겸을 데려와 장하리와 함께 지내도록 전략을 짠 것이다.그는 알고 있다. 서보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게다가 장하리는 서보겸의 친엄마이다.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기뻐하는데 하물며 가장 가까운 혈육인 장하리가 어찌 아이를 저버리고 갈 수 있겠는가. 지난 한 달 동안, 장하리는 정말 서주혁의 계획대로 서보겸과 점점 더 가까워졌고 게다가 오늘 발생한 교통사고가 가져다준 충격으로 장하리는 진심으로 두려웠다.자신의 섣부른 결정으로 한 가족이 산산조각이 나는 건 아닐까 두려웠던 것이다.한편, 서주혁은 장하리를 품에 꼭 껴안은 채 마음속으로는 오늘의 교통사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과거 신예준 그 미친놈처럼 스스로 사고를 만들어 장하리를 몰아붙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하지만 그러기에 서주혁은 너무 두려웠다. 장하리가 그의 생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까 하고 두려웠다.서주혁이 장하리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하기에 장하리가 서주혁 때문에 결정을 번복하겠는가. 오늘날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모두 서주혁이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본 것을 봐서였다.서주혁은 감히 도박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서보겸을 희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주혁은 서보겸을 사랑한다. 아이를 내세워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건 서주혁도 원하지 않았다.이번 교통사고는 서주혁이 계획한 것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교통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서주혁의 계획대로,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잘 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며 서주혁은 밤중마다 저도 모르게 상처가 생겼던 부위를 긁고 싶어 이리저리 뒤척였다.서보겸은 두 사람 사이에 누워 잠을 청했고 장하리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싸늘하게 툭 내뱉었다.“자꾸만 움직이면 보겸이 깨어날 거예요.”서주혁은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결국 입맛을 다시며 묵묵히 응할 수 밖에 없었다.한편, 서보겸은 침대에 누운 채, 단잠에 빠져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기운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또 한 달이 지나고 장하리는 서보겸을 데리고 제원의 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이는 원래의 신분으로 복귀한 후 참여하는 첫 공식적인 파티였다.서주혁은 한 무리의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한편, 장하리는 성혜인과 강민지와 번갈아 수다를 떨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다행히도 그녀는 과거와 달리 많이 밝아졌다. 비록 서주혁에게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서주혁은 장하리가 그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개무량했다.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마음의 고통은 결국 인과응보인 셈이다.이를 잘 알고 있기에 서주혁은 장하리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그녀를 훔쳐볼 뿐이었다.한편,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그들의 남자친구가 다가왔다.유해은은 백현문에게 끌려갔는데 유해은이 아무리 짜증을 내며 그를 밀어내도 백현문은 여전히 접착제마냥 그녀에게 들러붙으며 멀어지려 하지 않았다.“유해은, 이제 그만해라. 아직도 스캔들이 부족해? 오늘 밤도 난 분명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바람을 당한 기분이 들더라고.”한편, 유해은은 최근에 큰 상을 받게 되어 기분이 좋은지라 일부러 손끝으로 백현문의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안 당하면 되지.”유해은의 말에 백현문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다른 한쪽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손끝이 움찔하고 움츠러들었다.“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그럼 무슨 뜻인데? 당신 말은 내가 허구한 날 남자들 꼬
같은 시각,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장하리는 여전히 옛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너무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옛 동료들과 제대로 된 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했었다.한편, 서주혁은 멀지 않은 곳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장하리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반승제는 술 한 잔을 들고 다가오더니 장하리를 향해 턱을 까딱하며 물었다.“마중 안 가?”이제 연회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반승제도 이제 성혜인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서 대표가 가만히 있는다고? 설마 오늘 밤 장하리를 혼자 돌려보낼 생각은 아니겠지.그러나 서주혁은 고개를 숙인 채 하이볼에 담긴 술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행복해 보이는데 조금만 더 내버려 두지 뭐.”서주혁이 나타나는 순간, 장하리의 얼굴에 그려져 있던 행복한 미소도 곧 사라질 테니까.반승제는 원래 비굴하게 땅을 파고 들어가는 서주혁을 조롱하고 싶었으나 막상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며 그들 중 오직 서주혁만이 줄곧 정해진 길을 따르며 냉정한 모습을 유지해 왔었다. 마치 미래의 모든 일을 진즉 준비해 놓은 것처럼 서주혁의 계획은 줄곧 철두철미했었다.과거 다들 여색에 빠져 온갖 연애에 정신이 팔렸을 때도 오직 서주혁만이 이성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단지 그의 신분에 맞는 여자, 그리고 말을 잘 듣는 여자를 찾아 아내로 맞는 것. 서주혁에게 있어 남녀 사이 사랑의 감정은 줄곧 중요하지 않았다. 하여 타인이 자신의 감정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도 서주혁의 머릿속은 아마 연구실의 각종 데이터로 가득 찼을 것이다.그랬던 서주혁이 현재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묵묵히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장하리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으니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반승제는 순간 말을 멈추고 서주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곧이어 반승제는 천천히 걸어가 성혜인을 데려갔고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장하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을 하나둘 데려갔
“어디가 아픈데요?”“몰라.” 이마가 뜨겁지만 않았어도 장하리는 서주혁이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녀는 다급히 가정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대에게 빨리 오라고 당부한 뒤, 먼저 서보겸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가 재워주었다.그러나 서주혁이 걱정되어서인지 서보겸은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장하리는 서보겸에게 이불을 덮여주며 부드럽게 다독여주었다.“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어 주면 돼. 곧 있으면 의사 선생님도 오실 거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보겸이는 먼저 코 자자. 아이들은 밤을 새우면 안 돼.”서보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앙증맞게 이불 속에 넣었다.장하리는 전에 서보겸을 데리고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전보다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장하리를 만난 후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다. 지금도 비록 하는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눈빛만 봐도 아이가 매우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장하리는 입구로 가 불을 끈 뒤,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서주혁은 혼자 소파에 기대어 누워있었고 이마는 어느덧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이윽고 장하리가 소파에 앉자 서주혁은 기다렸다는 듯 다급히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도착하고 서주혁의 상태를 살피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우선 침대로 부축해서 쉬게 하고 수액을 맞으면서 내일 열이 내리는지 천천히 보도록 하죠.”장하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사와 함께 서주혁을 안방으로 부축했다.곧이어 그녀는 또 몸을 숙여 그의 양복 외투를 벗기고 또 신발을 벗겨주었다.눈치가 빠른 의사는 진즉 등을 돌렸고 장하리는 서주혁의 벨트를 풀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그런데 그 순간, 서주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여보, 벨트는 왜 풀어?”“아프면 침대에 누워 계세요.”“그런데 나 아직 샤워 안 했어. 몸에서 술 냄새가
답답한 마음에 장하리는 알약을 손에 꼭 쥐고 으름장을 놓았다.“빨리 입 벌리고 약 먹어요.”그러나 서주혁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눈을 감고는 마른 침을 삼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쥐 죽은 듯 고요한 공간 속에서 땀방울이 방울방울 침대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서주혁 씨?”반응이 없었다.장하리도 슬슬 걱정되어 물수건으로 그의 땀을 닦아주며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많이 힘들어요?”그러자 서주혁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는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여기.”이렇게 보니 서주혁은 서보겸의 모습과 똑 닮았다.더욱 마음이 약해진 장하리는 서보겸의 목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안 먹어.”서주혁은 고개를 홱 돌리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딘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서주혁의 모습은 어른을 넘어서 서보겸과 너무 똑같아 보였다.하지만 약은 먹여야 하니 장하리는 눈살을 찌푸린 채 서주혁이 볼을 툭툭 건드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정신 차려요. 빨리 약 먹어야죠. 아직도 열나는데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하지만 서주혁은 여전히 입술을 짓이기며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결국, 방법이 없었던 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그의 턱을 꼬집고 약을 강제로 먹인 다음 몸을 숙여 입술로 틀어막았다.알약이 그의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흘러내리고 서주혁은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하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지 서주혁의 볼은 전보다 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뒤, 서주혁에게 물을 먹여주기 위해 물 한 잔을 들고 오자 서주혁이 놀란 눈빛으로 장하리에게 말을 건넸다.“선생님, 왜 저한테 뽀뽀해요?”손에 들고 있던 컵이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뭐라고요?”“어떻게 학생한테 뽀뽀해요? 선생님, 이렇게 하면 불법 아닌가요?”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서주혁은 정말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
장하리는 시달리다 지친 상태였고 또 30분이 흘러서야 서주혁은 그만두었다.일어나서 정리한 후 몸 구석구석 땀을 모두 닦아준 후에야 하리는 자리에 누웠다.이번에 서주혁은 오히려 얌전해졌고 호흡이 안정되었다.장하리는 그의 이마에 손을 대어 체온을 확인했다. 열을 조금 식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만큼 무섭지는 않았다.막 안도의 숨을 내쉬고 손을 거두려는데 그가 손목을 덥석 잡았다.“여보, 미안해.”“미안…”서주혁이 또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장하리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최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언제였던지 까마득했다.그동안 두 사람은 어색하게 지냈다. 그의 시선이 느껴지면 장하리는 늘 한발 먼저 눈을 피하곤 했다.“하리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미안해...”그의 입술은 여전히 건조하게 말라 있었다.장하리는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을 적셨다.그제야 서주혁은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다.침대에 누운 장하리는 눈을 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알람이 울리자 장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능숙하게 바늘을 뽑았고 또 서주혁의 이마를 닦아주었다.그의 편안히 잠을 자는 모습에 장하리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장하리는 옆자리를 더듬더듬 만졌다. 매일 일찍 일어나 옆자리를 비우던 서주혁이 오늘은 여전히 자리에 있었다.잠이 덜 깨 혼미한 상태에서 장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그의 목젖을 더듬어 올라가 이마에 손을 댔다.손바닥에 느껴지는 열기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열이 내린 듯했다.어젯밤 종일 잠에 들지 못했기에 장하리는 열이 내렸음을 확인하고 그제야 시름을 덜고 잠을 이어 자려 했다.그러나 이때, 그녀의 손이 무언가의 힘에 당겨졌다. 뿌리치려 애써도 덩굴처럼 점점 더 감아왔다.눈살을 찌푸린 채 장하리가 옆을 매섭게 바라보았다.옆으로 누운 서주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장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불 속에서 장하리의 손을 꽉 잡고 깍지 낀 채 말이다.“어젯밤에 내가 기절
서주혁은 안팎으로 조금도 놓치지 않고 장하리의 몸을 훑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오후가 될 때까지 침대에서 몸을 뒤섞었고 서주혁이 또다시 시작하려 몸을 움직이자 장하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주혁의 뺨을 내리쳤다.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장하리의 몸은 남는 구석이 없었다. 한편, 제대로 화가 치밀어오른 장하리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시간 좀 봐요. 보겸이는 그냥 놔둘 거예요?”부모가 아이도 돌보지 않고 오후까지 침대에서 뒹구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그러나 서주혁은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뒤로하고 장하리의 다리를 잡은 채, 일부러 모르쇠를 시전하며 말을 꺼냈다.“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할게, 여보. 응?”장하리는 당장이라도 서주혁을 발로 걷어차서 떨궈놓고 싶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결국, 장하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렴풋이 잠이 들고 말았다.깨어났을 때,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이윽고 침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서주혁과 서보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보겸은 책을 읽고 있었고 서주혁은 컴퓨터로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다.엉망진창으로 어질러져 있던 옷가지들도 어느새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방안은 다시 예전의 깨끗한 모양새를 되찾았다.물론 장하리의 몸에도 깨끗한 잠옷이 걸쳐져 있었다. 한편, 옆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바깥 하늘 아래, 크고 작은 두 얼굴이 비쳐 있으니 장하리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곧이어 장하리가 잠에서 깨어났음을 발견한 서주혁이 컴퓨터를 덮으며 그녀에게 물었다.“깼어? 배는 안 고파?”장하리는 확실히 배가 고팠다. 아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지경으로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그러자 서주혁은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음식을 가져다주며 말을 이었다.“좀 먹고 다시 자.”장하리도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순히 숟가락을 들고 국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옆에 앉아 물끄러미 장하리의 얼굴을 바라보던 서주혁은 옆에 있는 휴지를 잡아 그녀의 입가를 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