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는 조금 의외였다. 사실 장하리는 오후 내내 두려움과 당황함에 휩싸여 있었다. 어쨌든 서주혁의 집에 올 수 있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면 귀한 손님일 테니까.실수로 큰 인물에게 미움을 사서 서주혁도 덩달아 난처해지면 큰일이다.하물며 이 집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 그러면 서주혁이 어찌 그녀에게 아들을 맡길 수 있겠는가?그런데 서주혁이 이렇게 말해주니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지며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 났다.서주혁은 손끝으로 장하리의 볼에 남겨진 자국을 어루만져주며 부드럽게 물었다.“찜질은 했어요?”“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중요한 손님일까 봐...”“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그 말에 장하리의 마음은 더욱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감격에 겨워 막, 말을 하려고 하는데 서주혁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씨 집안에서 걸려온 전화 같았다.반갑지 않은 발신자에 서주혁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장하리의 턱을 놓아주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입니까?”“주혁아, 수연이가 돌아왔어. 그러니 저녁에 보겸이 데리고 와서 밥 먹어.”“됐어요. 보겸이는 가고 싶지 않대요.”“너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거니? 정말 우리한테 보겸이 평생 안 보여줄 거야?”“어머니, 제가 말했잖아요. 보겸이와 그 여자와 관련된 일은 더 이상 저와 상의하지 말라고.”서주혁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고 눈 밑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했다.게다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주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장하리는 옆에서 묵묵히 그들의 통화내용을 듣고서야 서주혁이 가족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게다가 말투를 들어보니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좋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그건 결국 서주혁의 사생활이라 먼저 묻기도 어려운 화제였다.저녁에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할 때, 장하리는 식탁 위에 놓인 과일주 한 병을 보며 슬며시 물었다.“이거 술이에요?”그러자 서주혁은 안색 한번 변하지 않고 담담하
사내대장부가 미모라니. 이건 결코 칭찬이 아니다.서주혁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장하리의 한쪽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며 물었다.“만지고 싶어요?”그러자 장하리는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서주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자신에게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하다.“그래도 돼요?” 입으로는 이렇게 물었지만 손은 이미 서주혁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남자는 피부도 좋았다. 게다가 골격도 그의 미모에 맞게 훌륭했다.이윽고 손가락이 미끄러져 서주혁의 목젖을 눌러버렸다.그 순간, 서주혁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맞잡은 손과 서주혁의 그윽한 눈빛 속에서 그녀를 유혹하려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다른 곳도 만져볼 수 있는데.”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장하리는 마치 먼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을 찌른 것마냥 끝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그저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다 보면 점점 빠져들고 점점 좋아졌다.한편, 서주혁은 장하리의 부드러운 손길에 온몸이 팽팽하게 굳어버렸다.술에 취한 사람은 이성을 잃은 상태이기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머릿속의 아주 작은 기억의 본능만을 따를 뿐이었다.그녀는 10분 동안 서주혁의 얼굴을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그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나 목말라요.”그것은 몸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조동이기 때문에 장하리는 점점 그 건조함 속에서 목이 말라진 것이다.그 순간, 서주혁은 장하리의 뒤통수를 감싼 채 사람을 끌어당겨 고개를 숙이고 바로 키스를 퍼부었다.30분 동안 키스를 하고 나서야 서주혁이 나지막이 물었다.“아직도 목이 말라요?”“아니요. 기분 좋아요.”서주혁의 호흡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아무리 애가 타도 정말 장하리를 건드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지난번처럼 장하리의 몸 곳곳에 입을 맞추었지만 결국 괴로운 건 서주혁 본인이었다.이윽고 서주혁은 장하리의 손을 끌어와 자신의 아랫도리에 올려놓았다.하
서주혁은 눈을 들어 몇 초 동안 그녀를 쳐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좀 쉬세요. 보겸이도 이렇게 컸으니 계속 같이 있을 필요 없어요.”“그럴 리가요, 그래도 제 일인데 같이 좀 다녀올게요. 아이들은 놀이터를 좋아할 거예요.”“괜찮아요.”“그럼 보겸이 이미 다녀왔어요?”“아니요.”“그런데 왜...”“장하리 씨.”서주혁은 또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말투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목소리는 더욱 쉬어 있었다.“별장에 가만히 있어요. 심심하면 보겸이와 아리 데리고 주위를 둘러봐도 되고요. 별장이 너무 커서 하리 씨도 아직 다 보지 못한 풍경이 많을 거예요.”장하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의 말투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을 눈치챘다. 마치 무슨 비밀을 짊어지기라도 한 듯...하지만 장하리는 쉽사리 추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기 온 첫날, 비서가 전한 의사를 보아도 그들은 그녀가 밖에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장하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서주혁은 의도적으로 그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 같았다.장하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서주혁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고 그 후 두 달 동안의 회의 역시 모두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수정해야 할 서류도 전부 거실에 두었다.그리고 보겸이와 노는 것도 전부 서주혁의 눈앞에서 이루어져야 했다.서주혁과 같은 회사 대표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서주혁은 거의 한 주일 내내 별장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일주일 후, 서주혁은 반승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나 지금 네 회사에 있는데 관리층 말을 들어보니 일주일 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며. 아파?”반승제는 서주혁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손에는 두 사람의 최근 합작 프로젝트에 필요한 서류를 들고 있었다.오늘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갈 일이 생겨 서류를 직접 가지고 온 것이다. 게다가 서주혁과 단둘이 나눌 이야기도 있고...“그런 거 아니야.”“그럼 뭐 하고 있는데?”“출장 중이야.”그 말에 반
성혜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펑펑 눈물을 흘리는 반진율에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반진율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반진율의 얼굴은 정말 반승제와 똑 닮았다.“그래그래, 넌 충분히 남자다워. 그러니까 울지 마. 응?”“끅, 흑흑흑, 끅.”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반승제는 손을 내밀어 반진율의 뒤 깃을 잡고는 아이를 한 손에 들어 올렸다.“너 남자다운 사내가 이렇게 우는 거 본 적 있어?”몸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온 반진율은 힘껏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아, 이거 놔주세요. 아빠! 이거 놓으세요, 흑흑.”반승제는 아이를 대롱대롱 들고 소파 옆으로 다가와 그를 소파 위에 내동댕이쳐버렸다.그러자 반진율은 푹신한 소파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더니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성혜인도 아이의 곁으로 다가와 무심코 입을 열었다.“오늘 민지가 집에 온다는데 듣기로는 다온이도 데리고 온다면서?”다온이는 강민지와 신예준의 아이로서 예쁜 여자아이이다.그 말을 들은 반진율은 순간 울음을 뚝 그치고 다급히 양 볼에 남은 눈물 자국을 벅벅 지우기 시작했다.“저녁 먹으러 오나요?”“응, 그리고 예준 아저씨도 같이.”그러자 반진율은 기대가 가득 찬 모습으로 소파에 손가락을 대고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성혜인도 반진율을 속인 건 아니었다. 오늘 밤 확실히 강민지네 가족과 모이기로 약속했다.잠시 후, 일찍 도착한 신예준은 익숙하게 먼저 주방으로 들어갔다.최근 몇 년 동안 회식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그가 요리사를 도맡았다.반진율은 귀한 양복을 벗고 고개를 숙여 채소를 고르는 신예준의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신예준을 바라보았다.“아저씨 정말 대단해요.”그러자 신예준은 피식 웃으며 반진율의 뺨을 부드럽게 꼬집었다.“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전 다온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돼요.”그러자 밖에 서 있던 설서율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부엌문을 열어버렸다.
성혜인은 반승제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전화했어요? 뭐라 하던가요?”“아무 말도 안 했어.”그러자 성혜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장하리가 떠난 지도 어언 4년이 넘었다. 물론 서주혁이 새로운 여자를 찾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마음이 편치 않을 뿐...서보겸은 장하리가 목숨을 다 바쳐 낳은 아이인데 다른 여자가 과연 장하리처럼 아이를 예뻐해 줄 수 있을까?게다가 서보겸은 자폐증을 앓고 있어 회식할 때에도 단 한 번도 말을 하지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의 애정도 전부 서보겸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서주혁 측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서주혁 씨, 오늘 저녁 네이처 빌리지에 식사하러 오시겠어요? 신예준 씨도 불렀는데.”“안 갑니다.”“승제 씨가 말하기로는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었다면서요. 뭐가 그렇게 바빠요?”“보겸이에게 책 읽어주느라요.”그 말에 성혜인이 실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마침 저도 보겸이 보고 싶은데 저녁에 서율이 데리고 보겸이 보러 갈게요.”“안 그래도 됩니다.”서보겸은 답답할 정도로 말이 없지만 반대로 설서율은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많은 아이였다. 하여 그녀가 서보겸을 에워싸고 계속하여 말을 걸다 보면 서보겸도 몇 마디 답해주곤 한다.예전 같으면 서주혁은 설서율이 그의 집에 가는 것을 매우 환영했을 텐데 지금은 단칼에 거절했다고?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성혜인이 전화를 끊자 마침 강민지가 다온이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이윽고 다온이가 매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이모, 아저씨, 안녕하세요.”다온이의 목소리는 마음이 사르르 녹을 정도로 달콤했다. 아이는 설서율과 반진율에게도 고개를 끄덕인 뒤, 신예준을 찾으러 부엌으로 달려갔다.“아빠.”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신예준은 곧바로 장갑을 벗고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물건은 다 샀어? 엄마는? 오늘 기분 좋으셔?”“좋아요. 오늘은 아빠 칭찬도 했어요.”그 말에
순간 환청이라도 들은 것 마냥 성혜인과 강민지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너 방금 뭐라고 했어?”그러자 서수연은 피식 냉소를 터뜨리다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우리 오빠가 꽤 열심히 숨겼나 봐. 너희들도 모르고 있을 줄 몰랐는데... 아무튼 장하리는 별장에 숨겨져 있어.”성혜인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이윽고 서주혁이 일주일 동안 별장에 있었던 것을 연상하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서주혁의 별장으로 달려갔다. 직접 보지 않고는 정말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물론 성혜인의 곁에는 강민지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장하리의 친구였으니까.그러나 막상 별장 밖에 도착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이윽고 초인종을 눌렀지만 한참을 울려도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또다시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도 서주혁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입니까?”그는 여전히 평소와 똑같은 냉랭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방금 당신 여동생을 만났는데 장하리 살아있다면서요. 심지어 당신 별장에 숨겨져 있다는데 서주혁 씨, 전 오늘 이 말이 사실인지 알아야겠어요.”그 순간, 서주혁의 눈빛에 악랄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원래는 서수연을 한 달 동안 제원에서 머무르게 할 계획이었지만 이제 보니 기껏해야 일주일 안에는 다시 보내버려야 할 것 같았다.한편, 서주혁이 아무 말도 없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니 서수연의 말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서주혁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친구라면 그의 거짓말은 더욱 어색해지곤 한다.결국, 성혜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하리 한 번만 만나게 해줘요.”“아직은 안 됩니다.”“왜요?”“하리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요.”성혜인은 똑똑한 여자이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서주혁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장하리가 기억을 잃어 사람을 별장에 가둬놓았다고? 결국, 장하리를 강
방금 혼인신고서를 손에 넣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서보겸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선생님.”서보겸의 시선은 그녀가 들고 있는 혼인신고서에 꽂혀있었다.장하리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하게 혼인신고서를 원위치에 가져다 놓고 어색하게 서보겸을 바라보았다.“응, 왜 그래?”“그거... 보고 싶어요?”당사자의 아이 앞에서 장하리는 당연히 인정할 수 없어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런 거 아니야. 그냥 실수로 손에 닿아서 그랬어.”고용인에게서 들은 바로는 서보겸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마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보겸아, 책 다 읽었어? 선생님이 다른 책 가져다줄까?”말이 끝나기 바쁘게 서보겸은 말없이 그녀에게 걸어오더니 작은 의자 하나를 옮겨왔다. 아직 키가 작아 캐비닛 안의 혼인신고서를 꺼내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이윽고 혼인신고서를 꺼낸 서보겸이 장하리에게 보여주었다.“보세요. 상관없어요.”아이의 시선이 너무나도 진지했던 탓인지 장하리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너무 비열하게 느껴졌다.“아니야, 괜찮아.”그녀는 혼인신고서를 건네받고 다시 원위치에 가져다 놓으며 캐비닛을 꼭 닫아놓았다.이곳은 서주혁의 방이다. 그러니 외부인인 장하리가 제멋대로 캐비닛을 여는 것은 이미 매우 잘못된 행동이다.“아니면 오늘은 콜라보레이션 게임으로 바꿀까?”그러나 서보겸은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장하리도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혼인신고서 때문인 것 같았다. 혼인신고서에서는 엄마의 사진이 있을 테니까.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하리는 더욱 미안해졌다. 애초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보겸아, 우리 생존 합작 게임을 해보자. 게임에서는 사냥과 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을 확보해야 해. 안 그러면 굶어 죽을 수도 있거든. 선생님이 가르쳐 줄까?”그러자 서보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거실에 앉아
장하리는 문득 서주혁은 대체 어떻게 그녀에게 호감이 생긴 것인지 궁금해졌다.알고 지낸 시간도 짧은데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매달리는 거지?제원에는 예쁜 여자도 얼마나 많은데... 장하리는 결코 자신이 최고의 미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두 사람은 그렇게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때, 서주혁이 먼저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무슨 일입니까”그 순간, 장하리는 왠지 모르게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마냥 심장이 아팠다.“저, 그게 보겸이와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가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앞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은 게임을 같이 하고 싶어서요.”장하리도 불편한 마음에 차마 서주혁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서주혁이 시선을 돌려 다시 장하리를 바라보자 장하리는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심장도 두근거리며 빨리 뛰기 시작했다.서주혁은 결국 또다시 먼 곳을 바라보았고 같은 시각, 서보겸도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는 다급히 손을 뻗어 장하리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옆에 있는 벽으로 끌어당겼다.당황한 장하리가 그의 목적을 묻자 서주혁은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서주혁 씨!”장하리는 그의 품속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을 쳤지만 서주혁은 장하리의 민감한 부분을 잘 알고 있는지라 손길 몇 번만으로 장하리는 온몸이 나른해지며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장하리가 눈살을 찌푸렸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그녀의 몸이 이렇게도 방탕했단 말인가?서주혁의 몸을 두드리던 손에도 힘이 점점 풀렸다.그러자 서주혁은 다른 한 손으로 장하리의 몸을 부축해주었고 두 사람이 현재 서 있는 곳은 비교적 은밀한 구석이었기에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두 사람의 콧속은 꽃향기로 가득 채워졌고 조금만 숨을 들이마셔도 숨결이 흐트러지는 기분이었다.서주혁은 그 상태로 잠시 입을 맞추더니 갑자기 이마를 짚고 무언가를 참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이에 장하리의 모습은 더욱 낭패해졌고 그녀는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