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지의 말에 신예준의 몸이 순간 굳었지만 그는 조희서를 곧바로 밀쳐내지 않았다. 조희서는 그를 더 꽉 끌어안으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도도한 강씨 집안의 딸이 자신과 신예준의 관계에서 단지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만큼 통쾌한 일이 또 있을까?벌써부터 견디지 못하다니, 앞으로 못 견딜 일이 더 많을 텐데.“나와 예준 오빠는 원래 이런 관계였어. 지금 보니 진짜 외부인은 너였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내가 더한 짓도 할 수 있는데.”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희서는 발뒤꿈치를 들어 신예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강민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이내 정신이 돌아온 강민지는 성큼성큼 다가가 조희서를 강제로 떼어냈다. 그리고 조희서의 뺨을 한 번 때린 것도 모자라 연달아 두 번 더 때렸다.조희서는 비명을 지르며 반격하려 했지만 몸이 약해 강민지를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그때 신예준이 나서서 강민지의 팔을 붙잡았다.“강민지!”강민지는 온몸이 경직되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신예준의 뺨을 후려쳤다. 짝! 하지만 그걸로는 성이 안 풀려서 세 대 더 때렸다.“저 여자가 너한테 키스했는데 왜 피하지 않았어? 신예준, 너 이 미친 여자랑 같이 미쳐가고 있는 거야?!”신예준의 입가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조희서는 신예준이 강민지에게 맞는 걸 보자 자신이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어 강민지의 목을 졸랐다.“이 더러운 년, 지금 뭐 한 거야!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죽여버릴 거야. 감히 내 약혼자를 때리다니!!”이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강민지는 원래 조희서의 공격에 반격하려 했으나 이 말을 듣고는 마치 몸이 얼어붙은 듯 멈춰버렸다.머릿속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고 조희서가 목을 조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숨이 막혀오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쩍이며 스쳐 갔다.신예준은 조희서를
강민지는 이 별장에서 반달 동안 지내며 휴대폰을 꺼둔 채로 세상과 단절된 상태였다.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원래 강민지의 성격대로라면 당장이라도 신예준을 찾아가 따져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겁하게 숨어버렸다.강민지는 과거의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조희서가 병들어 신예준은 강민지를 만났다. 강민지는 조희서에게 의사를 붙여줬으며 2억이 넘는 치료비도 대신 내줬다. 하지만 조희서는 신예준에게 키스했고 심지어 약혼자라는 말까지 했다...인체의 구조는 참 신기하다. 어쩌면 그녀의 잠재의식이 이 모든 걸 회피하고 있었던 탓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문득 병원에서 조희서가 자신에게 퍼부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상대가 미쳐 날뛴다고 여겼지만 만약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만약 이 모든 게 속임수였다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녀는 정말 어리석었다.감정에 속아 놀아나고 몸을 빼앗겼으며 결혼까지 생각했으니 얼마나 바보 같은가. 강민지는 지금껏 이렇게 비참하고 어리석었던 적이 없었다.최근 강민지는 TV도, 휴대폰도, 컴퓨터도 모두 꺼둔 채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지냈다. 배가 고프면 빵을 조금씩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정도로 지냈다. 그 결과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그렇게 지내기를 반복하던 중 강연지가 찾아와서 대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언니! 문 열어 봐. 큰일 났어! 언니, 큰일 났다고!”강민지의 세계는 여전히 혼란 속에 있었지만 강연지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에 마지못해 천천히 내려가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강연지는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왔다.“언니, 큰일 났어! TV 좀 봐!”이 반달 동안 강민지는 TV를 켜지 않았다. 외부의 모든 정보를 거부했다.강연지는 거실의 TV를 켰다. 화면에는 경찰이 강상원을 체포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씨 집안 대부분의 지분이 어떤 외부인에게 넘어갔다고 했다.그 외부인은 다름 아닌 신예준, 제이엔 쥬얼리의 새 대표였다.강민지는 머리
강민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 사무실이 혼란스러웠다는 것만 기억했다. 신예준의 뺨을 몇 번이나 때렸는지조차 모른다. 아마도 꽤 많이 때렸을 것이다. 결국 그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도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욕을 퍼부었다.강민지는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강씨 집안의 아가씨로 자라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당해본 적이 없었다. 신예준, 조희서, 서민규. 이 세 사람은 그녀를 철저히 가지고 놀았다. 그제야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희서가 그녀를 욕할 만도 했다. 신예준이 처음에 얼마나 거부했는지 강민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매력을 너무 믿었다. 참 웃기는 이야기였다. 정말 커다란 웃음거리였다.그날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강민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강상원의 교통사고로 당시 세 명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이었다. 그중 한 명은 신예준의 아버지였고 나머지 두 명은 조희서의 부모였다.그렇구나, 그래서였구나.신예준은 자기 약혼녀를 위해 일부러 강민지에게 복수하려고 했다. 신예준은 강민지를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그녀를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빨리 발을 뺄 수 있었다. 강씨 집안의 지분을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제이엔 쥬얼리의 대표가 되어 번개처럼 인사를 물갈이했고, 바로 조희서를 강씨 집안의 별장 옆에 있는 별장으로 데려갔다.신예준은 그 별장을 사서 조희서에게 선물했다. 한편 강씨 집안의 별장은 강민지 명의였다. 이곳은 강민지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곳이며 강상원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이제 신예준은 조희서를 옆집에 데려왔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그 후 한동안 강민지는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 거의 좀비처럼 살아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신예준이 정말로 그녀와 결혼하려 한다는
성혜인의 배는 이미 눈에 띄게 불러왔다. 반승제는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일 병원에 가서 모든 부분을 철저히 검사받을 수 있도록 예약해 두었다.“지난번에 이미 우현 오빠랑 같이 가서 검사했어요. 굳이 또 갈 필요 없어요.”“그래도 나랑 같이 다시 한번 가보자.”임신 중 중요한 검사를 놓쳐서 성혜인이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 반승제는 결코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성혜인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가 옆에서 휴대폰으로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 검색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반승제는 겨우 돌아와 이제야 ‘예비 아빠’라는 위치에 놓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전화해 물어보거나, 남은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급기야 그는 성혜인 몰래 ‘예비 아빠 모임’이라는 단체 채팅방에 가입하기까지 했다.그 단체 채팅방에는 총 서른 명 정도의 남자들이 있었는데, 다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평소에는 주로 아내 이야기를 나눴다. 반승제는 아내가 임신 중일 때 어떻게 하면 기분을 잘 풀어줄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룹 안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그깟 임신이 뭐가 대수라고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어. 한 번은 신맛이 당긴다 하더니, 또 한 번은 단맛을 찾고. 나도 일하느라 바쁜데 아내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어. 우리 엄마 말이 맞아. 여자들한테 너무 잘해주면 나중엔 더 큰 일 난다니까.][우리 집사람도 임신했는데 매일 나한테 저녁 도시락 싸서 가져다주더라. 야근 끝나고 자전거 타고 오는데, 난 괜찮아 보이더라. 임신한다고 뭐 별일 있나?][요즘 인터넷에서 남녀 대립이 심해진 건 다 여자들 탓이야. 다들 자기 자신을 공주로 생각하잖아. 예전엔 병원도 안 가고 잘만 애 낳았다고.]반승제는 이 댓글들을 보고 얼굴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특히 자랑스레 임신한 아내가 야근 후 자전거로
다음 날 아침, 성혜인이 눈을 떴을 때 반승제는 이미 침대에 없었다. 세수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반승제가 주방에서 요리사가 아침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리사가 옆에서 설명했다. “대표님, 이런 음식은 찬 성질이라 성혜인 씨가 드시면 안 됩니다.”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을 나올 때 성혜인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어쩐 일이에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잠이 안 와서.”소파에 앉자마자 반승제가 말을 꺼냈다. “원진이 곧 제원에 올 텐데, 식사를 대접하려고 해.”해외에 있을 때 원진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봉현마을 사건 때도 제일 먼저 반승제를 찾아준 게 원진이었다. 원진이 아니었으면 김상아에게 더 오래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빚을 졌으니 무조건 갚아야 했다.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반승제는 그녀를 대신해 줄을 서려 했으나 간호사에게 쫓겨났다. 간호사는 손가락으로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켰다.일부 검사 항목은 남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크게 ‘남성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다른 임산부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이때까지 살면서 반승제는 이렇게 당황스러운 순간은 처음이었다. 성혜인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긴장해서 그래요.”그 말에 주변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반승제는 간호사에게 이끌려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검사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검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서둘러 성혜인을 부축했다.“어때, 괜찮아?”“괜찮아요. 의사도 별다른 말은 없었고요. 결과 중 일부는 내일쯤 나올 거라고 했어요.”반승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찰나 원진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원진이 곧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원진의 얼굴은 워낙 눈에 띄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창문을 내린 채 턱을 괴고
성혜인은 결심이 서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다음 날 택시를 타고 당시연이 근무하는 학교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한편, 반승제는 백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이전에도 백겸은 반승제가 배현우를 제원에서 무사히 데리고 나오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때 반승제는 백겸에게 연구 기지에 관한 자료를 반드시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백겸의 아들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기에 윗선에서도 연구 기지를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이제 연구 기지의 일부 자료가 윗선에 전달된 상황이니 반승제는 곧 포상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전화에서 백겸은 배현우의 행방에 관해 묻고 있었다.당시 반승제가 배현우를 데리고 나왔으니 당연히 그를 무사히 돌려보내야 했지만 현재 배현우는 실종된 상태였다.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할아버지, 이번 일은 제 실수입니다. 제 사람이 그를 찾고 있습니다.”백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 찾고 있어. 그런데 서주혁이 네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던데?”“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습니다.”“그래, 몸조심해라.”백겸은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찾았나?”“거의 다 됐습니다. 최근에 나타난 장소를 확인했습니다.”백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 계속 찾아.”한편 지구의 어딘가에서. 진백운은 양팔에 붕대를 감고, 옆에 있는 죽을 집어 들어 진세운에게 먹여주려 했다. 하지만 진세운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한쪽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이미 실명된 상태였다.연구 기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그는 한쪽 눈을 잃었다. 그 상황에서도 진세운은 본능적으로 진백운을 보호하려 했다. 덕분에 진백운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진백운은 이 일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벌레만 잡으려 하지 않았더라면...“세운아,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미안하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실명된 건 나지, 네가 아니잖아.”진세운은 진백운의 손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널 도울 수 있다는 거야.”남자는 진세운의 실명된 한쪽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에게 이런 상처는 치명적인 타격일 것이다.“어때? 나와 함께 갈래?”진세운의 눈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다. 옆에 있던 진백운이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세운아, 나 정말로 작은 섬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하지만 진세운은 진백운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그의 이상과 진백운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달랐다.진백운은 그저 하늘을 보고 나뭇잎을 모으며 이 세상을 느끼고 싶어 했지만 진세운이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을 통제하는 것이었다.지금 자신은 이렇게 초라한데 반승제와 성혜인은 평온하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나하늘조차도 평안하게 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왜 그들만 그래야 하지?진세운은 이 평온을 깨트릴 돌멩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진세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거짓이 아니어야 할 거야.”“내가 뭐 하러 널 속이겠어? 내 목표도 반승제인데.”반승제와 똑같이 생긴 이 남자는 누가 봐도 일부러 성형한 것이 분명한데,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진세운은 깊이 탐구할 생각도 없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 하지 않았던가.그는 한 발짝 내디디며 바로 남자를 따라 가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진백운이 따라온 것이었다.“넌 왜 따라와? 작은 섬에 가서 살고 싶다며?”이 세상에서 진세운은 진백운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만약 진세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진백운은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진세운의 야망은 너무나 컸다.“나도 같이 갈래. 나, 나 이제 섬에 가서 살고 싶지 않아.”진세운은 진백운의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넌 꼭두각시야? 계속 기계처럼 행동하지 말고 제발 너만의 생각을 좀 가져!”진백운은 진세운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진세운은
한편 개인 공항에서 진세운은 조용히 그 남자의 뒤를 따라 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여러 개의 가면이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는 고위층 인사들이 자주 사용하던 가면이었다. 이는 진세운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남자는 고위층 인사이거나 고위층의 신뢰를 받는 사람일 것이다.만약 성혜인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 남자가 칸다에서 반승제로 위장해 그녀를 데려가려 했던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반승제가 마침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짐이 사라졌지만 그녀는 이 일을 반승제에게 언급하지 않았다.현재 방 안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이 남자는 반승제와 거의 판박이처럼 보였다. 반승제와 배현우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이 남자는 거의 완벽하게 복제된 수준이었다.진세운은 그가 기기 앞에 서서 복잡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기기에서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찾았어?”“찾았습니다. 오늘 밤 그들을 데리고 갈 겁니다.”“여석진은?”“여석진은 다리가 부러지고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죽였습니다.”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진세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상대방이 다시 물었다. “배현우는? 그와 나하늘은 첫 번째, 두 번째 실험체야. 반드시 둘 다 찾아야 해.”“배현우는 행방불명입니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우선 진세운을 데리고 와.”“알겠습니다.”남자가 손가락을 기기 위에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기가 꺼졌다. 이 장치에는 자폭 장치가 내장되어 있어 외부인의 지문이 감지되면 즉시 폭발하여 목숨을 앗아간다. 남자는 몸을 돌려 진세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넌 여석진보다 더 가치 있어. 이제 비행기에 오르자.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지.”진세운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진백운은 계속해서 진세운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비행기는 오랜 시간 하늘을 날았다. 진세운은 익숙한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