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의 배는 이미 눈에 띄게 불러왔다. 반승제는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일 병원에 가서 모든 부분을 철저히 검사받을 수 있도록 예약해 두었다.“지난번에 이미 우현 오빠랑 같이 가서 검사했어요. 굳이 또 갈 필요 없어요.”“그래도 나랑 같이 다시 한번 가보자.”임신 중 중요한 검사를 놓쳐서 성혜인이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 반승제는 결코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성혜인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가 옆에서 휴대폰으로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 검색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반승제는 겨우 돌아와 이제야 ‘예비 아빠’라는 위치에 놓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했다. 그래서 의사에게 전화해 물어보거나, 남은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급기야 그는 성혜인 몰래 ‘예비 아빠 모임’이라는 단체 채팅방에 가입하기까지 했다.그 단체 채팅방에는 총 서른 명 정도의 남자들이 있었는데, 다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평소에는 주로 아내 이야기를 나눴다. 반승제는 아내가 임신 중일 때 어떻게 하면 기분을 잘 풀어줄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룹 안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그깟 임신이 뭐가 대수라고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어. 한 번은 신맛이 당긴다 하더니, 또 한 번은 단맛을 찾고. 나도 일하느라 바쁜데 아내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어. 우리 엄마 말이 맞아. 여자들한테 너무 잘해주면 나중엔 더 큰 일 난다니까.][우리 집사람도 임신했는데 매일 나한테 저녁 도시락 싸서 가져다주더라. 야근 끝나고 자전거 타고 오는데, 난 괜찮아 보이더라. 임신한다고 뭐 별일 있나?][요즘 인터넷에서 남녀 대립이 심해진 건 다 여자들 탓이야. 다들 자기 자신을 공주로 생각하잖아. 예전엔 병원도 안 가고 잘만 애 낳았다고.]반승제는 이 댓글들을 보고 얼굴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특히 자랑스레 임신한 아내가 야근 후 자전거로
다음 날 아침, 성혜인이 눈을 떴을 때 반승제는 이미 침대에 없었다. 세수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반승제가 주방에서 요리사가 아침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리사가 옆에서 설명했다. “대표님, 이런 음식은 찬 성질이라 성혜인 씨가 드시면 안 됩니다.”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을 나올 때 성혜인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어쩐 일이에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잠이 안 와서.”소파에 앉자마자 반승제가 말을 꺼냈다. “원진이 곧 제원에 올 텐데, 식사를 대접하려고 해.”해외에 있을 때 원진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봉현마을 사건 때도 제일 먼저 반승제를 찾아준 게 원진이었다. 원진이 아니었으면 김상아에게 더 오래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빚을 졌으니 무조건 갚아야 했다.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반승제는 그녀를 대신해 줄을 서려 했으나 간호사에게 쫓겨났다. 간호사는 손가락으로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켰다.일부 검사 항목은 남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크게 ‘남성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다른 임산부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이때까지 살면서 반승제는 이렇게 당황스러운 순간은 처음이었다. 성혜인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긴장해서 그래요.”그 말에 주변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반승제는 간호사에게 이끌려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검사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검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서둘러 성혜인을 부축했다.“어때, 괜찮아?”“괜찮아요. 의사도 별다른 말은 없었고요. 결과 중 일부는 내일쯤 나올 거라고 했어요.”반승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찰나 원진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원진이 곧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원진의 얼굴은 워낙 눈에 띄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창문을 내린 채 턱을 괴고
성혜인은 결심이 서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다음 날 택시를 타고 당시연이 근무하는 학교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한편, 반승제는 백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이전에도 백겸은 반승제가 배현우를 제원에서 무사히 데리고 나오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때 반승제는 백겸에게 연구 기지에 관한 자료를 반드시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백겸의 아들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기에 윗선에서도 연구 기지를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이제 연구 기지의 일부 자료가 윗선에 전달된 상황이니 반승제는 곧 포상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전화에서 백겸은 배현우의 행방에 관해 묻고 있었다.당시 반승제가 배현우를 데리고 나왔으니 당연히 그를 무사히 돌려보내야 했지만 현재 배현우는 실종된 상태였다.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할아버지, 이번 일은 제 실수입니다. 제 사람이 그를 찾고 있습니다.”백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 찾고 있어. 그런데 서주혁이 네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던데?”“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습니다.”“그래, 몸조심해라.”백겸은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찾았나?”“거의 다 됐습니다. 최근에 나타난 장소를 확인했습니다.”백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 계속 찾아.”한편 지구의 어딘가에서. 진백운은 양팔에 붕대를 감고, 옆에 있는 죽을 집어 들어 진세운에게 먹여주려 했다. 하지만 진세운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한쪽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이미 실명된 상태였다.연구 기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그는 한쪽 눈을 잃었다. 그 상황에서도 진세운은 본능적으로 진백운을 보호하려 했다. 덕분에 진백운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진백운은 이 일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벌레만 잡으려 하지 않았더라면...“세운아,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미안하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실명된 건 나지, 네가 아니잖아.”진세운은 진백운의 손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널 도울 수 있다는 거야.”남자는 진세운의 실명된 한쪽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에게 이런 상처는 치명적인 타격일 것이다.“어때? 나와 함께 갈래?”진세운의 눈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다. 옆에 있던 진백운이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세운아, 나 정말로 작은 섬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하지만 진세운은 진백운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그의 이상과 진백운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달랐다.진백운은 그저 하늘을 보고 나뭇잎을 모으며 이 세상을 느끼고 싶어 했지만 진세운이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을 통제하는 것이었다.지금 자신은 이렇게 초라한데 반승제와 성혜인은 평온하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나하늘조차도 평안하게 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왜 그들만 그래야 하지?진세운은 이 평온을 깨트릴 돌멩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진세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거짓이 아니어야 할 거야.”“내가 뭐 하러 널 속이겠어? 내 목표도 반승제인데.”반승제와 똑같이 생긴 이 남자는 누가 봐도 일부러 성형한 것이 분명한데,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진세운은 깊이 탐구할 생각도 없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 하지 않았던가.그는 한 발짝 내디디며 바로 남자를 따라 가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진백운이 따라온 것이었다.“넌 왜 따라와? 작은 섬에 가서 살고 싶다며?”이 세상에서 진세운은 진백운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만약 진세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진백운은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진세운의 야망은 너무나 컸다.“나도 같이 갈래. 나, 나 이제 섬에 가서 살고 싶지 않아.”진세운은 진백운의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넌 꼭두각시야? 계속 기계처럼 행동하지 말고 제발 너만의 생각을 좀 가져!”진백운은 진세운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진세운은
한편 개인 공항에서 진세운은 조용히 그 남자의 뒤를 따라 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여러 개의 가면이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는 고위층 인사들이 자주 사용하던 가면이었다. 이는 진세운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남자는 고위층 인사이거나 고위층의 신뢰를 받는 사람일 것이다.만약 성혜인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 남자가 칸다에서 반승제로 위장해 그녀를 데려가려 했던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반승제가 마침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짐이 사라졌지만 그녀는 이 일을 반승제에게 언급하지 않았다.현재 방 안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이 남자는 반승제와 거의 판박이처럼 보였다. 반승제와 배현우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이 남자는 거의 완벽하게 복제된 수준이었다.진세운은 그가 기기 앞에 서서 복잡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기기에서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찾았어?”“찾았습니다. 오늘 밤 그들을 데리고 갈 겁니다.”“여석진은?”“여석진은 다리가 부러지고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죽였습니다.”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진세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상대방이 다시 물었다. “배현우는? 그와 나하늘은 첫 번째, 두 번째 실험체야. 반드시 둘 다 찾아야 해.”“배현우는 행방불명입니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우선 진세운을 데리고 와.”“알겠습니다.”남자가 손가락을 기기 위에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기가 꺼졌다. 이 장치에는 자폭 장치가 내장되어 있어 외부인의 지문이 감지되면 즉시 폭발하여 목숨을 앗아간다. 남자는 몸을 돌려 진세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넌 여석진보다 더 가치 있어. 이제 비행기에 오르자.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지.”진세운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진백운은 계속해서 진세운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비행기는 오랜 시간 하늘을 날았다. 진세운은 익숙한 도
진세운은 할 말이 없었으나 은은히 가슴이 벅차올랐다.자동차가 맨 안쪽 건물에서 멈춰 섰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백겸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반태승의 절친한 친구로서 반승제 역시 군대에 있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발탁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사람의 속이 이토록 검을 줄이야.진세운은 그저 피식 웃으며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을 사이에 둔 저 너머에 반승제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문 앞에 서서 눈앞의 방문을 두드렸다.“선생님, 그가 왔습니다.”그러자 방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를 만나러 올 필요는 없다. 가치가 남아있다면 남겨두도록 해.”그 말은 즉 가치가 없으면 죽여버리라는 뜻이다.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백겸은 산처럼 쌓아둔 자료 더미 앞에 앉아있었다.그 자료들은 모두 연구기지 내부에서 가져온 자료인데 아무리 기지 고위층이더라도 내부에서 제작한 약은 얻을 수 있지만 삼엄한 보안 속에서 그 누구도 고위층이 자발적으로 이 기밀 자료를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 또한 하나의 큰 추세가 되어버릴 것이다.서로 간의 견제가 있어야 연구기지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기지는 무너지고 자료도 모두 반승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니 반승제가 이 전쟁의 가장 큰 승자가 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잠깐 사색에 잠긴 백겸은 이내 콧등의 안경을 밀어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옆에 있는 앵글로 걸어갔다.암문이 열리고 그 안에 숨겨진 방 하나가 드러났다.안에는 두 개의 얼음 관이 있었는데 한 명은 그의 아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의 아내였다.백겸은 어느덧 고령의 노인이 되어버렸고 몇 년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그 뒤를 이어 아들도 그녀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반승제에게 전했던 말에 따르면 그의 아들을 포함한 많은 H국의 천재들이 연구기지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달리 그의 아들은 연구기지에
한편, 성혜인은 이미 대학에 와 있었다.이 대학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로써 순위는 제원대와 막상막하이다. 그런데 서른밖에 되지 않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연이 이곳에서 교수직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매우 우수한 인재임을 알 수 있었다.성혜인은 그녀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 배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에 목도리를 둘러 부드러움을 연출해낸 당시연의 시선이 곧장 성혜인에게 몇 초간 머물렀다. 이윽고 상황파악을 하던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천천히 다가가 망설이며 물었다.“괜찮으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십니까?”바로 그때, 성혜인이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한 공간에서 부딪혔다.그리고 당시연은 성혜인을 알고 있는 듯 조금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은... 혹시 S.M의 성혜인 씨?”올 한 해 동안 S.M이 워낙 눈에 띄었는지라 그룹 대표인 성혜인의 개인 정보도 이미 사람들에 의해 수백 번 털려버렸다.게다가 반승제와 스캔들까지 터지는 바람에 실검까지 올라갔었다.이에 조금 민망해진 성혜인은 비로소 자신의 특수한 신분을 깨닫고 다시 허리를 폈다.“아, 저 맞습니다.”그러자 당시연은 귓가의 머리카락 한 올을 뒤로 넘기며 입술을 오므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지난번에 병원 밖에 있을 때도 혜인 씨를 만났는데... 혜인 씨는 그때 저를 찾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혜인 씨 회사에 제 학생이 있습니다. 아직 정식 데뷔는 아니지만 대우가 좋다고 얼마나 칭찬해대는지...”그 말을 들으니 성혜인은 더 어색해지고 말았다. 원래 우연히 만난 척하면서 그녀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계획이었으나 당시연이 그녀를 알고 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임신하며 지능까지 수직으로 하락한 것인지 모를 노릇이다.“아, 그것참 영광이네요. 저도 확실히 시연 씨를 찾을 일이 있어요. 전에 들은 바로는 영어 선생님이시라면서요?”당시연은 그녀와 나란히 걸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나이 얘기가 나오자마자 한없이 작아지는 당시연에 성혜인은 또다시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혹시 원진이 아직 24살이라 30살인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너무 커서 감히 고백하지 못했던 걸까?하지만 원진이 먼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가 사랑에 빠졌을 때, 당시연은 약혼자가 있었던 것 같은데.그래서 원진은 줄곧 당시연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억누르며 지금에 와서 결국 참지 못하고 몰래 그녀의 삶을 염탐하면서도 그녀와 만나지 않는 것이다.“최근 승제 씨가 원진 씨에게 밥을 사주려고 하는데 시연 씨도 시간이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두 분은 이미 안면이 있으시고 저도 시연 씨와 친구로 지내고 싶으니 이 기회에 시연 씨도 같이 오시겠어요?”그러자 당시연은 처음에는 멍하니 넋을 잃더니 그 뒤에는 안절부절못하며 망설였지만 결국 입을 오므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성혜인도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기다려주었다.그렇게 10초 후에야 당시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하지만 그 사람은 저를 별로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어쨌든 당시 조금 불쾌하게 끝나버렸으니까요.”아마 약혼자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혜인은 순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다급히 말을 꺼냈다.“좋아요. 주소가 확정되면 보내드릴게요. 혹시 카톡 연락처 교환해도 될까요?”그러자 당시연은 즉시 QR코드를 제시해주었고 두 사람은 친구 추가에 성공했다.성혜인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일은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시연 본인이 원한 것이고 아무도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다.이제 서른 살이 되었으니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당시연도 잘 알고 있다.그리고 원진에 대해서도 감정이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그렇게 성혜인은 대학교에서 나와 차를 타고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반승제는 흰둥이를 훈련하고 있었다. 흰둥이는 높이 뛰어다니며 훈련을 즐겼고 한편, 겨울이는 다른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