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은 지금 설기웅을 구해낼 수 없었다. 일단 유리 상자 안의 사람이 사라지면 기지 전체가 내부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그러면 아직 탈출하지 못한 반승제 일행은 모두 발각될 것이고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반승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환기구로 돌아가서 자신이 던져버린 압축가스가 든 병들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혐의를 벗을 수 있다.“용호 씨, 먼저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최용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쟨 어떡하죠?”그는 설기웅을 가리켰다.반승제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직 심장이 뛰는 걸 보니 죽진 않았네요. 다만 지금 구해낸다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겁니다.”모두가 똑똑한 사람들이라 모를 리 없었다.최용호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고 반승제는 핵심 연구실로 돌아갔다.이 연구실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실험하고 있어야 할 사라 박사는 보이지 않았다.반승제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 환기구로 기어들어 가 모든 병을 회수해 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병들을 핵심 연구실에 놓았다.한편, 사라 박사는 밖에서 혼란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나왔다.그녀는 진세운이 그곳에 나타나 심지어 혼란 속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그는 한 여자를 끌어당겼다.사라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더니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그녀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연구원을 밀치고 진세운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사라와 진세운은 정식으로 만난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서로 잘 알지 못했다.다만 사라는 그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된 반감이었다.진세운이 잡고 있는 사람은 제로였다.제로는 반승제가 먼저 이곳에 보냈다. 진세운은 제로의 팔목을 잡고 있었다.그녀의 방호복은 이미 연구원들에 의해 찢겨졌고 얼굴에도 몇 군데 상처가 났다.진세운은 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곧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성혜인?”말하면서도 그는 스스로 애써 부
그는 단검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지고 제로를 진백운에게 넘겼다.“선생님께 여쭤봐, 여석진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그처럼 사람을 감금하는 변태가 정말로 나하늘의 딸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놔둘 리 없었다.진세운의 마음속에서 악질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만약 이 여자가 나하늘에게 모욕을 당한다면 여석진이 모욕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과연 나하늘은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었는데 여전히 순결을 지키고 있을까?모녀가 서로 같은 사람에게 침범당하는 시나리오는 꽤 재밌었다.그는 상상만으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비록 제로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단지 성혜인을 모방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그녀의 무술 실력은 별로 좋지 않았다. 진세운 같은 위선자 앞에서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었다.손이 묶인 그녀는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없었다.“절 놓아주세요.”“당신을 놓아줄 수도 있어, 다만 반승제가 어디 있는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반승제가 연구 기지에 들어온 걸까? 그런데 굳이 대역을 데리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면 이 여자를 먼저 보내 상황을 살피게 한 걸까? 자살 특공대도 아니고.진세운은 반승제가 연구 기지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역을 데리고 오는 데다 실력도 좋지 않은 대역을 데리고 온다니 순전히 머리가 돈 짓이다.제로는 입술을 오므린 채 몇 번이나 몸부림쳤지만 결국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그녀는 대표님이 자신을 보낸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이곳을 혼란스럽게 하고 연막탄을 던지는 것이었다.그러면 진세운은 더 이상 대표님이 여기에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제로는 멀리서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 여자는 방금 달려올 것 같았지만 얼마 정도 달리다 제자리에 멈추더니 마치 고정된 것만 같았다.진세운은 제로의 시선을 따라 옮기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라가 보였다.비록 그는 그토록 유명한 사라 박사와 거의 말을 나눈 적 없지만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사라는 흩어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정리하고 옆에 있던 휴지를 집어 들더니 입을 닦았다.“반승제 씨, 밖에 얼마 있죠?”반승제는 순간 그 지도가 그녀가 준 것임을 확신했다.다만 그녀는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원으로서 애초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기지에는 20여 명이 있고 외부라면 박사님이 원하시는 만큼 얼마든지 있습니다.”사라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더니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반승제는 그녀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지나갔다.그녀는 두 손으로 차가운 실험대를 꽉 잡았다.“얼마든지 있다고? 마음에 드는 답이네요.”“그럼 박사님의 정체는요?”사라는 눈앞의 약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사람이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여기서 나갈 겁니다.”그녀는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반승제를 찾게 되었다.지도를 보낸 것도 이미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아무리 연구 기지 내에서 충분한 신뢰를 얻었더라도 여전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박사님은 지도를 어떻게 보냈죠?”사라는 옆에 놓인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셨다.겨우 얼마 지났다고 그녀는 벌써 이마에 땀이 맺혔다.“죽을 각오로 보냈죠. 비록 지도를 너무 명확하게 그리지 못했지만 당신이 알아봐서 다행입니다.”반승제가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도 우연히 구금성의 비밀 통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로의 위치를 통해 역추적한 것이다.아마 일반 사람에게 그 지도를 준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그래서 다른 곳에 그려진 것이 연구 기지라고 추측했다.마침 그는 연구 기지를 조사 중이었기 때문에 거의 찍다시피 맞췄다.사라는 이마를 짚으며 정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이마에는 계속해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박사님께서는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 거죠?”“여석진을 죽여주세요.”반승제는 여석진을 죽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조에서 미움을 넘어 강한 혐오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래요. 여석진을 죽이면 박사님께서 나갈 방법이 있으신가요?”“아니요, 하지만 나
“그분은 사람을 완전히 홀릴 수 있는 약을 개발했지만 최선을 다해도 세 알밖에 만들 수 없었어요. 재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죠.”“박사님께서 저한테 말했던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약 말인가요?”그녀는 피식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환각을 일으키는 약은 가장 낮은 수준일 뿐입니다. 그분의 약은 사람을 순종적으로 만들 수 있고 지시하는 대로 할 수도 있어요. 전 아직도 그분이 어떻게 그 약을 개발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고위층도 모르죠. 어쨌든 그분은 이미 떠났을 겁니다. 그 후, 기지는 잠시 혼란에 빠졌고 그분을 잡으려고 수배까지 시작했죠.”결국 잡지 못했을 것이다. 반승우는 능력이 뛰어나서 어디든 숨어있을 수 있었다.“그분이 떠나고 나서 전 그 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계속 연구했지만 모든 데이터를 삭제했다 보니 이리저리 끼워서 맞춰보며 연구했어요. 그렇게 만든 약은 사람을 최면시켜 진실을 말하게 하고 저 대신 물건을 밖으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어요.”“지도는 아마 여석진이 가지고 나갔을 텐데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죠?”사라는 약간 놀란 듯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그 사람이라고 추측한 이유가 뭐죠?”“대담하게 추측해 봤어요. 박사님께서 그를 죽이라고 시켰으니 그를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나 연구 기지의 핵심 인원들은 거의 만나지 않으며 서로의 배경이나 신원을 알지 못하죠. 박사님께서 또한 진세운을 싫어하고 진세운의 스승도 싫어하지만 그들을 바로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이는 박사님과 여석진의 원한은 지울 수 없고 지 밖에서 생긴 것을 의미하죠. 박사님은 전에 밖에 나갔던 적이 있나요? 또한 박사님께서 몸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했고 갑자기 배현우를 언급하기도 했죠. 어쩌면 박사님의 몸에 두 가지 기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어요.”사라는 담배를 태우며 입꼬리를 치켜올렸지만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확실히 똑똑하신 분이네요. 제 기억은 완전하지 않아요. 전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들어왔고 그 이후로 기억은 조금씩 기억나기
반승제는 대답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있었다.“H 국에서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왔는데 박사님은 왜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거죠?”사라는 가볍게 웃었지만 눈빛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반승우처럼 의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얼마 되겠어요? H 국에서 보낸 사람들은 확실히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연구 기지 내부를 보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뛰어난 자들이죠. 그들 역시 한때는 천재였지만 여기서는 소처럼 일할 수밖에 없어요. 연구 기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은 천재 중의 천재에요. 이 몇 년간 H 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을 보내왔지만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었어요.”그녀는 계속 기다려왔다. 또 다른 협력자가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모두 실험에서 죽었다.오직 반승우만이 살아서 나갔지만 당시 약은 세 알뿐이었고 한 사람밖에 나갈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구금섬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했다.여석진은 아마 그녀의 몸을 그곳에 숨겼을 것이다. 그녀는 그 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했다. 만약 그 몸의 기억이 완전히 손상된 것이 아니라면 그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어쨌든 해파리 도장은 여전히 밖에서 떠돌고 있고 BK 조직은 아직 지도자가 없을 것이다.비록 여석진은 구금섬의 배후자이지만 너무 자만했다.사라는 다시 손을 들어 이마를 짚더니 말했다. “서둘러야 해요. 오늘 당신이 한 일은 이미 소란을 일으켰어요.”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옆에 있는 약을 들고 중앙 홀로 갔다.그가 떠나고 사라는 입가의 담배를 내려놓더니 손에 쥐고 세심히 관찰했다.언제부터 흡연했는지 그녀도 몰랐다.몇 년간 머릿속에 뭔가 계속 걸려 있었지만 방금 진세운의 대화를 듣고 마치 새로운 힘이 주입된 것만 같았다.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바로 그녀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했던 딸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아닌 모습이 되더라도
그는 수도 없이 반승제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이게 바로 자기가 기다려온 사람이라는 예감이 들었다.사라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럴 수도 있지.”“박사님은 저 사람을 못 믿습니까?”“나는 모든 사람을 믿었지만 그들은 매번 나에게 실망을 안겨줬어.”8호는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한 손으로 무심하게 목에 걸린 비취 구슬을 만지기 시작했다.사라는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하지만 계속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나갈 것이고, 너도 너의 가족을 만날 거야.”8호는 눈빛이 밝아지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좋아요. 가족을 만날래요.”그는 가족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고,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머릿속의 기억은 혼란해졌다.하지만 그는 누군가가 자기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었고 이 구슬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 가족을 만나려 했다.그의 기억은 이미 지워졌다. 그래서 이곳으로 어떻게 왔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기지 내부에서 있었던 일만 생각날 뿐이다.사라는 또 손을 들어 그의 귀를 꼬집었다.“계속 여기 있으면 그들이 그 연결구를 발견할 거야.”“지금 돌아가도 그들은 알게 될 거예요. 박사님이 저를 데려다주세요.”이 강력한 무기는 사라가 만든 것이며, 모든 실험체의 몸은 수많은 실험을 거쳤다.사라는 자기가 무언가를 잊었고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느꼈다. 그건 어쩌면 한 사람, 그녀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이 작은 집념 덕분에 그녀의 기억은 조금씩 이 육체의 기억을 압도했다. 그 당시 반승우도 집념으로 실험을 견뎌내고 살아남았다.그리고 앞에 있는 이 18세 소년도 집념 때문에 살아 있다.집념이란 정말 오묘한 것이다.센터 사람들이 8호 실험체를 찾느라 정신이 없을 때 사라가 핵심연구실에서 걸어 나왔는데, 손에 쥔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 바로 8호 실험체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즉시 실험체를 연구 상자에 가두었다.“이 실험체는 박사님의 말
진세운이 가자 여석진은 제로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연결구가 없어서 반승제는 내려갈 수 없었고, 여석진의 방에 CCTV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에 소리도 낼 수 없었다.그는 원래 이 약병에 담긴 액체를 여석진의 몸에 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제로가 있는 것을 봤으니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제로는 그가 고른 사람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여석진은 나하늘과 관련된 사람을 대할 때 유례없이 열정을 보였다.그는 손을 쓰긴 했지만 당장 행동을 취하지는 않고, 제로의 머리채를 잡은 채 그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통증을 느낀 제로는 즉시 약한 체하며 눈물을 글썽였다.이를 보고 여석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미소를 지었다.그는 갑자기 나하늘을 지하실에 가뒀을 때와 같은 쾌감을 느꼈다. 그런 만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눈이 괜찮네. 내가 나하늘의 눈을 멀게 해 놓고 오랫동안 아쉬워했었지. 그때는 도려내서 보관하지 못했는데, 이 눈은 가능할 것 같아. 말해봐. 이름이 뭐야?”제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여석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여자의 눈물이다. 여자는 나하늘처럼 강인해야 하고, 1년에 수백 번 도망가서 그의 변태적 욕망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앞에 있는 이 여자는 눈이 예쁘지만 성격이 너무 연약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사정없다.찰싹! 찰싹! 제로는 뺨을 열 몇 대 얻어맞고 얼굴이 부었지만 눈은 여전히 맑았다.여석진은 일어나서 구두 신은 발로 그녀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나하늘 외의 여자에게 그는 마음이 약해진 적이 없었다. 그에게 여자는 아무렇게나 굴욕을 줄 수 있는 짐승 같은 존재다.나하늘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그녀의 눈을 멀게 했다.‘여자는 천하고 당해도 싸다. 그때 나와 함께했다면 그 모든 일을 겪을 필요가 없었잖아?’여석진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후련함을 느꼈다. 연구기지에서 누구도 함부로 때리고 욕할 수 없었던 그가 끝내 사람을 시원
반승제는 진작에 핵심 연구실로 돌아왔고, 가져갔던 약품도 다시 가져왔다.그는 제로가 거기 있는 것을 보고 여석진이 곧 죽을 것임을 알았다.아니나 다를까 다시 여석진의 소식을 접한 것이 30분 뒤였는데, 방에 불이 났고 여석진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했다.반승제는 즉시 사라를 찾아가 이 결과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불길이 타오르기 전에 그는 이미 눈이 멀었으니 불길이 천천히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박사님, 우리 함께 탈출할 계획을 말씀해 보세요.”들어온 지 오래돼서 임신한 몸으로 밖에서 기다리는 성혜인이 무척 걱정할 것이다.그리고 연구기지를 빨리 파괴해야 H국에서 내린 지명수배도 하루빨리 해제할 수 있다.사라가 앞에 놓인 시약들을 보며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승제를 바라보았다.“방금 땅이 흔들리는 것을 못 느꼈어요?”반승제는 정말 느끼지 못했다.사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기지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는데, 이전에는 지진이 일어나 이곳의 모든 것이 파괴되길 바랐어요.”하지만 정말 지진이 일어나면 이곳의 대부분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방금 땅이 흔들리자 그녀는 좀 불안했다. 그녀는 원래 이것에 민감했다.“박사님, 이곳에 지진이 일어날까 봐 걱정되세요?”“네, 하지만 기지는 100여 년 동안 지진이 없이 무사히 존재했어요. 반승제 씨, 밖에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했죠? 우리가 이곳을 떠나는 순간 밖에서 지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목표가 너무 커서 산목숨으로 떠나기 힘들 거예요.”게다가 사라가 사라지면 연구기지에서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잡으려 할 것이다.사라는 오늘에야 철저히 정신을 차렸다. 이전에는 그저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준비를 했을 뿐이고, 왜 떠나야 하는지 몰랐다.이제는 안다. 나가서 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어떤 신분인지 모른다. 가장 결정적인 이 정보가 줄곧 생각나지 않았다.조직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