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접실 안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긴장해졌다. 모두가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손에 총을 든 채 신경을 바싹 조이고 있는 연태광은 마치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총을 쏠 기세였다.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상황에 부하가 보고하러 들어왔다.“가주님, 장로님께서 오셨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 앞에서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이 사람은 가면을 썼지만, 젊은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노예찬의 뒤에는 십여 명의 경호원이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갖은 고생을 다 겪어 본 모습이었다. 연태광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장로님, 오셨군요.”노예찬은 구창모를 보더니 다시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당신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죠?”연태광은 곧 자신이 의심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일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마침 이분을 알고 계시는 장로님께서 얼굴을 확인해 주시면 안 될까요?”화근을 없앰으로써 저에게 들이닥칠 재앙을 미리 막기 위해서 말이다. 만일 검은 로브의 남자가 반승제로 대체되지 않았다면 연태광은 큰 무례를 범하는 꼴이 되지만, 이제 이 기회를 노예찬에게 떠넘김으로써 노예찬이 검은 로브의 남자에게 무례를 범하는 꼴이 되었다.하지만 검은 로브의 남자와 노예찬은 원래부터 한 배를 탄 사이라서 원한을 사지 않을 것이다.노예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반승제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반승제의 바로 앞에 서서 검은 모자를 뒤로 넘겼다. 반승제의 얼굴이 반쯤 드러나자 노예찬의 손끝이 일순간 굳더니 그는 천천히 모자를 다시 내렸다. 거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고 자기 자신조차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연태광과 구창모의 각도에서는 이쪽이 아예 보이지 않았기에 반쯤 드러난 반승제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오직 노예찬 한 사람만 반승제의 얼굴을 보았지만 이제 다시 모자를 내려 얼굴을 덮어버렸다. 노예찬이 자리를 찾아 앉자 연태광이 대뜸 물었다.“장로님, 제대로 확
반승제가 죽으면 성혜인은 어떡한단 말인가? 노예찬은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위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수양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만 신경 썼다.하지만 성혜인이 잿더미에서 뼈를 줍던 장면이 계속 잊히지 않았다. 뇌리에 각인되기라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장로님.”“장로님?”누군가 부르고 나서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연태광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장로님, 두 분께 점심 식사를 준비해 드렸는데, 가서 식사하세요. 전 이만 방해하지 않겠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난 노예찬은 배현우를 지나칠 때 발걸음을 멈칫했다. 이 바보가 전에는 멍청한 표정뿐이더니 지금은 아주 예리하고 똑똑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본모습이었다.배현우는 노예찬이 멈칫하는 순간 눈매가 서서히 가늘어졌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 가면에 가려진 사람의 정체를 알았다. 그렇다. 이 사람은 노예찬이었다.배현우는 냉소를 흘리며 제자리에 서서 곁눈으로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노예찬의 뒤를 따라 나가는 것을 보았다.배현우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양옆에 늘어뜨린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반승제가 어떤 식으로 변장하든 절대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그는 반승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반승제의 매 순간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기에 절대 배현우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이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는 틀림없이 반승제였다. 반승제와 노예찬은 한패였다. 다만 반승제가 노예찬에게 대체 무슨 이득을 줬기에 노예찬이 반승제를 감춰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배현우는 속을 헤아릴 수 없는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 눈빛에 연태광은 적잖이 놀랐다.“배현우 씨, 왜 그러시죠?”어젯밤 그의 능력을 검증한 연태광은 더 이상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이는 연씨 가문이 4대 가문의 꼭대기에 설 수 있는 관건이었다. 배현우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제 손에
연태광은 즉시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배현우는 제자리에 서서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반승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다이닝룸에는 반승제와 노예찬이 앉아 있었다. 노예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음식도 건드리지 않았다.그건 반승제도 마찬가지였다. 등을 뒤에 기대고 노예찬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위기는 조용하면서도 미묘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노예찬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당신 K에게 원한이 있어?”“아마도.”“이번에 섬에 들어온 두 세력 중 하나는 K의 세력이고, 10분 전에 상륙한 다른 하나는 당신의 세력이야?”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매우 강압적이었다. 노예찬은 냉소를 흘렸다.“10분 전이면 내가 당신의 정체를 숨겨줬을 때잖아. 반승제, 당신 아주 계산이 치밀한 사람이네.”반승제는 전부터 구금섬 배후의 사람을 조사했지만 그 사람이 너무 깊숙이 숨어 있는 데다가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오늘 마침 이 배후의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그를 도와줬다. 반승제는 자신이 들어오며 내섬이 아수라장이 되고,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대 가문들이 연합하여 그에게 대적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이제 배후에 있는 사람이 그를 돕고 있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눈감아줄 수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차에 손끝을 적셔 천천히 두 글자를 썼다. 노예찬은 흘끗 보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응당 거절했어야 한다. 수양아버지의 명령에 한 번도 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노예찬은 계속 구금섬의 주인으로서 대 가문들을 휘둘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뭔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그는 저를 애지중지 바라보던 성혜인의 진지한 그 눈빛이 그리웠고, 그녀가 넋이 나간 채 잿더미에서 뼈를 줍던 장면이 그리웠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어렸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해봤고,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반승제는 원래 외부에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위험부담이 너무나 컸다.하지만 노예찬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데 도움을 준 것을 보고는 즉시 마음을 바꿨다.이제 그의 사람들이 섬에 들어왔으니 그 이후의 일은 더욱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저녁 식탁에 앉은 두 사람은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가정부가 쉴 수 있도록 각자의 방으로 안내하기 전까지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연태광과 구창모는 노예찬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노예찬은 피곤하다며 자리를 떠났다.반승제는 성혜인의 방 문 앞을 지나가면서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창문이 강화되어 있고 커튼이 완전히 쳐져 있어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는 잠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있었다. 밖에서 꽹과리와 장구, 북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윽고 누군가 방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가정부가 송편을 담은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곧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테니, 가주님께서 송편을 드시라고 합니다.”“무슨 경사스러운 일인데요?”“배현우 씨가 결혼합니다.”배현우가 결혼한다니. 대체 누구랑? 연씨 가문 또래의 여성과 결혼하는 걸까? 하지만 배현우의 성격상 자신의 평생이 걸린 일을 이런 섬에서 한다고?머릿속에서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배현우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배현우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배현우가 성혜인에게 결혼을 강요하지는 않을 터였다.성혜인이 임신한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으며 배현우 처럼 오만한 사람이 다른 남자 아이의 아버지가 되려고 하지 않을 거니까.반승제는 손에 든 송편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반면 노예찬의 경호원은 가정부가 들고 온 송편을 바로 거절했다. 노예찬은 송편은 보지도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잠긴 방의 문밖에 와 있었다. 그는 옆에 있던 연씨 가문의 경호원에게 물었다.“여기 누가 갇혀 있지?”“배현우 씨의 애인인데, 정신에 문제가 생겨서 가
누군가가 만지는 것을 느낀 성혜인의 미간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배현우가 몸 어딘가에 주사를 놓았는지 그녀는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노예찬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성혜인 씨, 그거 알아? 배현우랑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거.”성혜인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배현우는 미친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고 있는 그녀와 결혼이라니.이 남자는 누구이며 어디서 이런 소리를 들은 걸까?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말을 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노예찬의 미간이 좁아졌다.이런 의학적인 부분에 재능이 없는 노예찬은 성혜인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배현우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아닌 거야? 아닌 거면 눈을 깜빡여.”성혜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눈을 연거푸 스무 번 정도 깜빡였다.성혜인은 지금의 배현우가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였다.대답을 들은 노예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문밖을 지키고 있던 연태광은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장로님, 마침 잘 오셨네요. 경사에 참여하게 되셨으니.”노예찬은 이유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강요당한 사람이 다른 여인이었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왜 성혜인은 다를까.그는 연태광을 상대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의자에 앉았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연씨 집안 하인들이 결혼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둘 준비하는 것 같았다. 배현우라는 인간은 정말 한시도 기다릴 수 없는 듯했다. 노예찬은 반승제가 오늘 밤 무슨 일을 저지를 지 궁금해졌다.배현우와 결혼하는 이가 성혜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까?가만히 앉아 기다리기 힘들었던 노예찬은 아예 잠을 자버릴 심산으로 침대에 누워버렸다.한밤중에 노예찬은 K의 무리가 많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을 부하로부터 전달받았다
문 주변은 이제 한 무리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찬의 부하들과 연씨 집안 사람들이었다. 연태광은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지금 나선다면 노예찬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꼴이 될 테고 노예찬은 당장이라도 그를 눌러버릴 수 있었다.연씨 집안에서 나선 이들은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노예찬이 일이 끝난 뒤 추궁하더라도 연태광은 그들이 배현우의 사주를 받고 행동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앞으로 나서서 자신을 나타내지만 않는다면 연태광은 언제든 이 일에서 몸을 뺄 수 있었다. 배현우의 뒤에 서 있는 연씨 집안 사람들을 본 노예찬의 입가에 냉소가 감돌았다.“뭐 하자는 거지?”그의 옆에는 방금 발사된 총에 맞은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오늘 밤의 내섬은 필시 조용하긴 글렀다. 배현우가 망설임도 없이 손을 흔들었다.“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처리해.”그는 오늘 밤 내섬을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배현우는 미친놈 그 자체였다. 노예찬은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난 그때 양측의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서로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곧바로 20여 명이 땅에 쓰러졌다. 모두 큰 상처를 입거나 죽어버렸다.노예찬은 이미 몸을 숨겨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찾아 숨었었다.문 앞에 있는 기둥에 몸을 기댄 배현우는 공기 중에 피어난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그의 눈에 냉기가 차올랐다.배현우가 열쇠를 들어 성혜인이 있는 방문을 열었다. 모든 소음을 문밖에 차단한 채 곧장 성혜인이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여전히 움직일 수조차 없는 성혜인은 그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녀를 안아 든 배현우가 많은 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땅이 순식간에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존재했던 모양이었다.성혜인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배현우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그 장로라는 사람과 반승제, 둘 다 오늘 밤 연씨 집안에서 살아 나가선 안 돼요. 연가주님, 저한
오늘 밤, 모든 것이 혼란으로 뒤덮여 있었다. 성혜인은 도무지 배현우의 생각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은 배현우가 한 짓이 틀림없었다. 반승우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이 폭발물들은 틀림없이 누군가를 통해 사들인 것이 아니라 배현우가 직접 제조한 것이다. 폭탄 제조는 그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반승우는 이쪽 분야에서는 천재이기 때문이다.피비린내를 맡은 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폭발음 속에는 기괴한 통곡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배현우의 이런 수법은 누구에게도 살길을 주지 않았다. 연씨 가문에도 예외는 없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독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러 너무나 괴로웠다.배현우는 한 손으로는 그녀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천을 찢어내 피가 나오는 곳을 감싸고 있었다.“배현우, 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거야?”왜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걸까. 만약 이곳을 떠나고 싶은 거라면 반승제와 손잡으면 가능했을 일이었다. 애초에 세 사람이 함께 들어왔으니. 굳이 수고롭게 많은 일을 설계하고 폭발물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배현우는 반승제를 죽음으로 내몰고, K의 무리를 죽이고, 구금섬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그 틈을 타서 이 섬을 벗어나려 했을까? 왜 그녀를 데리고 가려는 걸까.만약 성혜인을 포기했다면 그는 이미 안전한 곳으로 도피 했을 것이다“입 닥쳐!”배현우는 다시 일어나 그녀를 안고 걸어 나갔다. 하지만 주변의 먼지가 너무 짙어 그가 기침을 몇 번 했을 때, 갑자기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를 내게 넘겨.”반승제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은 배현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오늘 밤 연씨 가문에 있어야 했다. 그곳은 폭탄의 수가 가장 많아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을까?먼지가 조금씩 걷히자, 눈앞에 있는 사람의 정체가 똑똑히 보였다. 확실히 그는 반승제였다.
배현우는 정말 놓기 싫었다. 그의 시선이 반승제로부터 성혜인에게 옮겨갔다. 얼마 후, 그는 차갑게 웃었다.“성혜인의 몸에 있는 그 주삿바늘들, 내가 빼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할 거야. 아니면 연구기지에 있는 사람들한테 찾아가서 도움이라도 구해볼래. 악마로 가득 차 있는 그 속에서 널 도와줄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지 혹시 알아?”반승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성혜인을 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에게 제압당해 있던 배현우가 별안간 소리쳤다.“반승제!”반승제의 걸음이 멈췄다. 배현우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배현우는 머리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왜...”“왜 좋은 건 항상 너의 차지야. 너만.”반승제는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끌고 따라와.”“예.”이들은 구지한 한테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에 타려던 순간, 반승제는 불빛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소위 신비한 장로로 받들리던 그 인물, 노예찬이었다.당시 반승제가 찻물로 테이블 위에 쓴 글자는 바로 ‘협력’이었다. 사실 그도 노예찬이 수락할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다행인 것은 그가 내섬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반승제도 바보가 아니었다. 노예찬이 항상 자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가 도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누구를 도왔던 걸까?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이득을 보는 쪽은 항상 자신이었다.그는 성혜인을 더욱 껴안은 채 불빛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노예찬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배현우의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구금섬의 진정한 주인은 노예찬이었다.아무리 배현우가 치밀하게 계획했을지라도 내섬의 모든 사람이 노예찬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리 대 가문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그를 따랐다.어떤 방식으로 그가 구금섬의 주인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섰으며, 이 사람들이 이토록 그에게 순종적인 이유가 무엇일까.노예찬은 마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