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다 한다?언제든지?하루 세 끼 식사를 BH그룹으로 갖다준다?어느 것 하나 반승제에게 낯선 말은 없었다.하지만 곁눈질로 본 성혜인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역력했다. 어떻게든 보상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말이 분명했다.문 앞에 서 있던 임남호는 그런 비굴한 성혜인의 모습을 봐줄 수 없었다.성혜인은 제원대학을 졸업한 인재다. 남자가 아무리 부자라 해도 이렇게 굴욕적으로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혜인아, 뭐 하는 거야? 최고 명문대까지 나온 애가 가정부를 자처하겠다고?”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뱉는 임남호에 성혜인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반승제는 임남호가 저렇게 성을 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굴욕’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들었다.애초에 성혜인이 제시한 조건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임남호의 말을 듣고 난 후, 반승제는 다친 손목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어느 호텔인지 알고 있지?”호텔에서 마주친 적이 있으니 모를 리 만무했다.성혜인은 지난번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얼굴을 붉혔다.그때 일이 다시 생각나니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성혜인은 차마 반승제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네.”“BH그룹으로 올 것 없어. 밤 9시에 호텔로 가져다줘.”성혜인은 사실 의구심이 들었다. 반태승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포레스트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이 왜 또 호텔로 가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물어볼 입장이 되지 않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임남호는 어금니를 꾹 깨물며 성혜인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반승제를 직시했다.하지만 180cm인 임남호가 187cm인 반승제와 눈을 맞추려면 조금은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이미 기 싸움으로 반은 지고 들어가는 셈이다.“명심해. 아무리 회사 대표라고 해도 혜인이를 괴롭힐 수는 없어. 우리 집에서 가장 성공한 아이라고! 제원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잔치까지 벌일 정도였으니까.”임
“그쪽 길에서 마주친 적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쪽에 분명 집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성혜인은 극적으로 변명거리가 떠올랐다. 그제야 반승제는 성혜인이 다리를 다쳤던 일이 생각났다.‘근데 방금 병원에서 따로 치료를 안 받은 것 같은데...’성혜인은 여태 불편한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참고 있는 건가?’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성혜인은 엑셀을 밟을 때마다 다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반승제도 자신 때문에 이렇게 크게 다쳐 파티에도 가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어떤 식으로든 반승제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정확히 어느 동에 사시는지는 잘 몰라서요. 이따가 길 좀 알려 주시겠어요?”성혜인은 끝까지 모른 척을 했다.뒷자석에 앉아있던 반승제는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성혜인은 뭔지 모를 따가운 시선이 뒤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통증 때문에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포레스트를 발견하자 또다시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포레스트 앞에 멈춰 선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보는 순간 반승제와 눈이 마주쳤다.반승제의 검은 동공이 조금 더 짙어졌다.“왜 여기에 멈춘 거야?”성혜인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에 등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다리가 아파서 좀 문지르려고요.”“아.”반승제는 눈을 희미하게 뜨며 감탄사를 툭 내뱉었다.‘천하무적인 줄 알았는데, 아픈 걸 알긴 하네.’하지만 너무나 절묘하게도, 멈춰 선 곳은 다름 아닌 포레스트 입구였다.유경아는 반승제의 차를 발견하고 급히 마중을 나왔다.“대표님, 파티는 끝나셨나요?”유리창 때문에 아직 성혜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반승제는 앉은 자리에서 창문을 살짝 내리고 ‘네’하고 답했다.유경아는 뭔가 이상했다.“사모님과 같이 안 오셨어요?”성혜인을 언급하는 순간, 반승제의 미간에서 짜증이 느껴졌다.“네. 오늘 집에 안 들어올 거니까 마중 안 나오셔도 됩니다.”유경아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반승제는
반승제는 눈썹을 들썩였다. 성혜인이 너무나도 과묵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응.”성혜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감동 그 자체였다.“네. 시간 맞춰 올게요.”진통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니 발목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성혜인은 고개를 숙여 구급상자를 정리한 후 현관 수납장에 가져다 두었다.닫히는 문틈 사이로 성혜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그럼 일찍 쉬세요.”반승제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굳었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먹먹하면서도 답답한 느낌.반승제는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넥타이가 손바닥의 상처를 쓸면서 통증이 올라와 미간을 좁혔다.‘어차피 별로 친하지 않은 여자일 뿐이야.’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성혜인은 반승제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리 만무했다. 그녀는 황급히 외삼촌의 가정사를 해결하고자 서천으로 향했다.하지만 임남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화가 솟구쳤다.성혜인은 관자놀이가 얼얼할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이 멍청한 사촌 오빠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서천에 도착한 그녀는 하루 정도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면 하진희를 빼낼 수 있다며 이소애를 위로했고, 병원에 치료비를 지불하기도 했다. 임동원의 응급 치료가 끝난 걸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포레스트 펜션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성혜인을 짓누르는 건 반드시 갚아야 하는 반승제의 16억이었다.성혜인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쉴 새도 없었다. 벌써 저녁 6시였다. 그녀는 급히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피곤했던 그녀는 모과를 자르다 하마터면 손을 벨 뻔했다.옆에 있던 유경아가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사모님. 드시고 싶은 국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할게요.”성혜인은 몰려오는 졸음에 눈조차 뜰 수 없었다. 결국 유경아의 만류에 칼을 내려놓았다.“모과를 넣은 갈비탕
성혜인이 어떤 말도 입에서 뱉지 않았지만 한지은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수치심이 올라왔다.조희준은 이상함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성혜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변에 어색한 기운이 무겁게 깔렸다.정신이 번쩍 들자 속에서 분노가 솟았다.“성혜인!”조희준은 하지은을 강하게 내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성혜인 역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 포인트에서 분노를 느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사장님.”성혜인은 예의를 잃지 않으려 했다. 협력 정신이고 뭐고 다 어긴 전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얼굴 붉히면서까지 다투고 싶지 않았다.“정말 대단하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때문에 신이한과의 계약이 물거품 됐다고! 3년을 봐왔지만 이런 사람일 줄이야. 다른 여자와는 다를 줄 알았더니, 역시 몸이나 내주는 여우였구나!”성혜인은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사장님. 먼저 계약을 깬 건 사장님이에요.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저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조희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노려보며 픽 웃었다.“신이한이 앞에서는 사람들과 짜고 널 저격해 놓고, 뒤에서는 널 도와주고 있었더라? 같이 밥도 먹었다던데, 네가 밤에 꽤 잘해줬나 보네.”“사장님은 반듯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성 비하를 좋아하셨군요? 이런 걸 자신의 무능을 남 탓으로 돌린다고 하죠?”“뭐?!”조희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신이한이 계약을 파기할 때 조희준은 곧바로 성혜인 탓을 하기 바빴다.때마침 한지은이 찾아와 성혜인과 같은 회사 사람이라며 접근했다. 성혜인에게 되갚아 주고 싶을 때에 제 편까지 생기고, 또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한지은을 거부하지 않았다.하지만 이곳에서 성혜인을 마주치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조희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한지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앞으로 너와 함께 일할 일은 없을 거야. 아는 회사에도 네 의뢰는 받지 말라고 다 말해 두겠어. 우리 인테리어 팀이 업
성혜인은 졸음이 쏟아졌다. 반승제가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벽에 기대 잠에 들었을 것이다.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에 눈이 번뜩 떠졌다. 고개를 든 그녀는 금방 자세를 고쳐 잡았다.“오셨어요.”반짝이는 혜인의 눈동자에 반승제는 심장이 간질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 감정에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반승제가 카드를 찍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성혜인 역시 그 뒤를 따라 들어와 티테이블 위에 보온 도시락을 올려놓았다.“오늘 드실 국이에요.”매우 고급지게 보이는 분홍색 도시락이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이 이런 색깔의 보온 도시락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성혜인은 업무상에서 늘 노련한 모습만 보였고, 할 말 있으면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그런 그녀의 취향에 조금 놀랐지만, 티 내지 않고 정장 단추를 풀었다.임무를 완수한 성혜인은 곧바로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다. 외로운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그럼 맛있게 드세요.”성혜인은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온 도시락, 안 가져갈 거야?”필요 없다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포레스트에 남아 있는 보온 도시락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성혜인은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리낌 없는 모습에 반승제가 오히려 흠칫했다.“그럼 다 드시고 나서 갈게요.”성혜인에게 반승제는 고객이기도 하지만, 곧 이혼을 앞둔 ‘남편’이기도 했다. 물론 법적으로 말이다.솔직히 할 거 다 한 사이인데, 일부러 피한다면 내숭처럼 보일 수도 있다.혹여나 성혜인이 밀당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라도 한다면 그게 더 문제다. 그래서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좋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반승제는 눈썹을 들썩였다. 원래는 스위트룸 안에 마련된 주방에서 요리를 시킬 생각이었다.이미 9시가 다 된 시각, 남자 클라이언트에게 국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모자라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호텔 방 안에서 기다리다니. 심지어 적
극작가인 온시환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특기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촉이 정확했다. 반승제와 성혜인은 정말 한 공간에 있었다. 물론 침대 위는 아니었지만.하지만 반승제에게는 이미 생각하지도 못한 전개였다.심지어 반승제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목선을 타고 흐르는 성혜인의 부드러운 피부가 시선에 들어왔다.남자의 옷을 걸치고 있는 여자라면 그게 누구든 특별한 분위기를 풍길 것이다.없던 감정도 생기는 이런 늦은 밤이라면 더더욱.반승제는 표정이 굳은 채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찬물로 씻었어야 하는 것 같다.한편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남자 고객의 방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잠에 들다니.과연 반승제의 쓸데없는 생각일까, 성혜인이 정말 다른 생각이라도 품고 있는 걸까?반승제의 시선이 침대 위에 놓인 담요로 향했다.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정장을 덮고 있던 성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거실로 나와 성혜인에게 담요를 대충 덮어주었다.하지만 그녀와의 적절한 거리를 두고자 최대한 얼굴에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 누웠다.야근이 없는 날에는 규칙적인 삶을 지키고 있어 열 시가 되면 무조건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하지만 몇 날 며칠 야근을 해야 할 때는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눈을 감는 순간, 거실에서 무언가 발에 차인 소리가 들려왔지만 반승제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잠에 들었다.한참 꿈나라에서 헤매던 성혜인은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좁히며 깨어났다.잠결에 눈을 비비던 그녀는 순간 이곳이 어딘지 떠올라 허둥지둥 일어났다.한참 웅크리고 있었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났다. 발도 다 낫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순간 그대로 티테이블을 향해 고꾸라졌다.그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티테이블 유리가 뒤집어지면서 위에 있던 보온 도시락과 유리잔 모두 깨져버렸다.이 소란에 반승제도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가운 끈을 묶으며 침실 문을 열었다.성
성혜인은 마음이 한결 놓였다. 피로에 온몸이 무겁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그래도 해 뜰 때까지 이곳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유리 조각을 깨끗이 치워 방 안에 있던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고 보온 도시락도 잊은 채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또 한지은을 마주쳤다.조희준에게 얼마나 시달렸던 건지, 걷는 자세마저 어정쩡했다.물론 성혜인 역시 다친 발목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했다.성혜인을 발견한 한지은은 피식 웃었다. 비슷한 자세로 걸으며 야밤에 호텔을 빠져나가는 성혜인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답안은 하나뿐이었다.‘고상한 사람처럼 굴더니, 몸이나 팔고 똑같은 여자였네.’엘리베이터 안. 한지은은 양손으로 팔짱을 낀 채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으며 픽 웃었다.“누구랑 있었어요? 고생 좀 했나 봐요.”무너지는 성혜인의 표정을 보니 꽤 고소했다. 그녀는 막말을 더 퍼부었다.“그분이 만족했겠는데요? 얼마 받았어요?”성혜인은 얼굴이 구겨졌지만 아무런 대답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대로 나갔다.그 모습에 화가 난 한지은이 큰 보폭으로 그녀의 뒤를 쫓아왔다.“오늘 밤 일은 모른 척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 당신이 호텔에 온 일 다 불어 버릴 테니까! 어차피 둘 다 한 배에 탔는데, 무서울 게 뭐야!”한지은은 당당했다. 사실 성혜인이 조희준과의 일을 회사에 퍼뜨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성혜인도 은밀한 사생활을 들켰으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바로 그때, 로비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자가 성혜인의 눈에 띄었다. 기가 꽤 세 보이는 여자였다.성혜인은 바로 몸을 돌려 한지은을 쳐다봤다.“조희준, 결혼한 거 알죠? 호텔에서 이렇게 뒹굴다가 부인에게 들키면 후폭풍이 상당할 텐데요.”한지은은 그녀의 말에 비웃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집에 있는 여편네는 신경도 안 쓴다고 사장님이 그러셨어요. 저만 좋아한다고요. 질투해요? 하긴, 3년이나 같이
반승제는 손에 붕대를 감은 채로 BH그룹에 도착하자마자 윤선미를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안하무인이던 윤선미가 사뭇 달라진 태도로 반승제의 손을 바라보았다. “반 대표님, 손은 어쩌다가...”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고 대충 대답했다. “다쳤어.”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는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윤선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마침 이때 카운터에서 사람이 올라와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윤선미는 급하게 다가가 문을 두드리려는 사람을 막아 나섰다. “예약은 하고 들어가려는 거예요?”카운터의 여직원은 확실히 예뻤다. BH그룹의 직원답게 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선미 아가씨, 대표님 앞으로 선물이 도착해서 가져다드리는 참이었습니다.”그 말에 윤선미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 바로 그 선물을 빼앗아 들었다. “내가 가져다드리면 돼요. 내려가서 카운터나 봐요.”살짝 조롱이 섞인 말이었지만 윤선미가 이러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고위층 사람들은 카운터를 지날 때 가끔 미소를 지어주곤 했다. 유독 윤선미만이 일반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콧대를 세우며 지나가곤 했다. 카운터의 직원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말 한마디 더 붙일 뿐이었다. “대표님의 디자이너가 보낸 선물입니다. 어제 호텔에서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다네요.”윤선미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 호텔이요?”카운터의 직원은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윤선미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지만 굳은 표정의 윤선미를 보니 속은 통쾌해졌다. 사실 그녀도 제대로 된 속사정을 모르지만 일부러 말을 보탰다. “디자이너분이 대표님 방에서 무슨 물건을 망가뜨렸나 봐요, 어제 두 사람이 같은 방을 썼나 보죠.” 아무렇게나 뱉은 말이 진실이라는 것은 둘 중 아무도 몰랐다. 윤선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이를 갈았다. “저급한 년! 사람을 꼬실 생각밖에 안 하지.”윤선미는 손안의 커프스가 더럽게 느껴져 확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반승제의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