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다가 남긴 문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문자를 이렇게 많이 남긴 걸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강하랑은 지금 연바다에게 전화를 걸어도 될지 약간 망설여졌다. 어젯밤 다퉜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서 꺼려졌던 것이다.만약 예전 같으면 그녀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저를 넘어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운전 중인 단오혁은 옆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강하랑의 고민을 보아냈다. 그리고 여전히 운전에 집중
강하랑은 이 일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며칠 동안 무슨 영문인지 깊이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다른 일은 괜찮았다. 하지만 연바다 혹은 과거에 관한 일이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래서 이건 신나게 놀러 나와서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놀러 나왔으면 최선을 다해 놀아야지. 여기서 골치 아픈 생각을 하는 건 주말에 야근하는 것과 다름없어. 효율 없는 쓸데없는 생각이야.’이렇게 생각한 강하랑은 복잡한 생각을 전부 떨쳐냈다. 마침 이때 차는 호텔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차량 뒷좌석에 잔뜩 쌓여 있는 잡동사니를
“우리 경기장에서 마주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데, 왜 이렇게 차가워요. 난 그냥 걱정하는 것뿐이잖아요.”버섯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아무 말이나 했다. 그의 태도는 마치 단오혁과 친구라도 되는 것 같았다.반대로 단오혁은 표정 한 번 안 변하면서 말했다.“필요 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떠났다. 상대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었다.단오혁에게 무시당한 버섯의 안색은 당연히 좋지 못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단오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잘난 척하기는. 경기 한 번 못 나가는 손가락 병신 새끼 주제에 아직
전화를 끊은 단오혁은 미소 머금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경기장에 가려는 팀원들에게 말했다.“난 점심 따로 먹을게. 동생을 데리러 갔다가 다시 오는 건 귀찮아서. 너희들끼리 점심 맛있게 먹고 경기 보러 가.”“뭐예요? 요즘 여자친구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XH의 팀원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오혁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어젯밤 복도에서 만났던 버섯을 발견했다.그 순간 단오혁의 얼굴은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XH의 팀원들에게 인사했다.“먼저 갈게
4강전은 오후 2시에 시작한다. 먼저 패자부활전이 있고, 그다음 4강전이 있는데, 이번 경기의 승자가 내일 XH와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틀 연속 경기하는 팀이 생긴다는 말이다.버섯이 속한 청훈도 오늘 경기가 있다. 그들의 현재 포인트 순위는 6위로 오늘의 경기에서 지면 바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패자부활전에 참가할 기회 역시 없었다.이게 바로 포인트가 적은 팀의 슬픔이었다.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건 대단하지만, 남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부활할 기회 하나 없었다.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청훈은 레전드가 될 것이다.
강하랑은 단오혁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우아하게 식사를 계속했다. 원래도 그를 놀리려고 한 말이기에 더 이상 따져 물을 것은 없었다.단오혁도 당연히 그걸 보아냈다. 그녀는 절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어제 그가 지하철역에서 구경만 한 일을 속에 담고 있었겠거니 했다.계속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기나 구웠다. 그리고 그릇을 거의 비운 다음에야 다시 말했다.“너 오후에는 경기장에 갈래? 아니면 나가 놀래?”강하랑은 이미 배불리 먹었다. 고기를 하도 많이 먹으니 느끼해서
단오혁과 달리 그녀를 대하는 단유혁의 말과 행동은 아주 부드럽고 다정했다.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강하랑의 얼굴을 보았다. 한참 지나서 그는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네가 오혁이랑 같이 있는 걸 알게 되었어. 마침 최근에 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끝났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쉴 겸 너 보러 온 거야.”“정말 우연이네요!”강하랑은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뜨다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슬쩍 단오혁을 돌려 까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마침 우연히 오혁 오빠가 오후에 다른
심지어 강하랑이 자리를 피하자 노란 머리 양아치는 그대로 따라와 질척였다.결국 참지 못한 강하랑은 노련한 모습으로 양아치를 어깨로 메쳤다.이 사건은 별다른 뜻밖의 사고 없이 원만하게 잘 해결되었다.하지만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은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특히 단오혁의 안색은 어두워지다 못해 잿빛이 되었다.숨 막히는 정적을 깬 사람은 단유혁이었다.“좋은 의도로 사랑이를 여기로 불렀다는 거 알아. 하지만 사랑이는 처음 혼자 외출해 보는 거잖아. 그래도 최소한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붙여줬어야지. 이 사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