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만약 강하랑을 정말 짐으로 생각했다면 애초에 병원에서 힘들게 빼 오지 않았을 것이다.강하랑은 짐이 아니다.연바다는 강하랑의 두 눈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하랑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할까? 네가 짐이라면 내가 왜 너랑 함께하겠어.”낮은 목소리가 속삭이자 품 안의 강하랑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마치 흐린 날의 햇볕에 비친 무지개처럼 말이다.발꿈치를 들어 연바다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 그녀는 입술을 뗀 후 바로 옆으로 도망가려고 했다.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연바다는 긴 팔로 강하랑을 붙잡고 품에 안았다.강하랑은
강하랑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믿고 싶지 않았지만 정답은 확실했다.눈앞의 이 괜찮아 보이는 남자는 어쩌면 기억 속의 연유성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거니까.그녀가 잊은 기억 속에서 연유성이 그녀에게 큰 실수를 해서 볼 때마다 메스껍다거나... 혹은 온몸의 상처가 사실은 연유성 때문이라거나...그래서 죄책감 때문에 잘해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그리고 강세미...전에는 강세미를 좋아하던 연유성이 지금은 그녀의 이름만 들으면 표정이 굳어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했다.어쩌
강하랑은 그의 차가운 말투를 듣고 짜증이 더욱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시선을 들고 연바다를 쏘아보며 얘기했다.“그래! 네가 보기 싫어! 이제 내 시야에서 좀 꺼져줄래?”말투는 꽤 공격적이었다.연바다에게 이렇게 소리 지르는 여자는 또 처음이었다.솔직하게 보면 얼마 전에도 강하랑은 비슷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하지만 기억을 잃고 난 후 이렇게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토끼처럼 주눅 들어 있다가 또 온순하게 복종하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두려워하면서 떠보는 듯이 연유성이라고 부른다.이게 연기라면 여우주연상감이었다.하지만 연기가
“하랑아, 어때? 이상한 것 같아?”연바다는 시선을 내리깔고 힘없이 떨어진 그녀의 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 강하랑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의심스러운 거야?”그는 허리를 숙여 강하랑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위로하듯 쳐다보았다. “하랑아, 그냥 솔직하게 말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가 앞으로 고칠게. 응?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난 네가 왜 화났는지 알 수 없는걸.”강하랑은 눈을 뜨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연바다의 눈을 마주했다.그의 목소리는 매우
강하랑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돈에 관한 일을 물어보려던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뭐... 돈도 필수품 중 하나니까. 그렇지 않으면 번거로운 일들이 가득할 것이다.그럼 이 옷들은...옷의 색깔을 훑어본 강하랑은 연유성이 매장에 가서 아무 옷이나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든 성숙한 남자들이 입을 법한 반팔을 보면서 주워 온 옷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건 연유성의 안목과는 너무 달랐다.하지만...강하랑은 시선을 돌렸다. 예쁜 얼굴에 미소가 드러났다.“연유성!”“...”연바다는 이름 석 자를 불리는 게 무
아까 그의 등을 봤을 때는 이 옷이 아주 못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연바다의 얼굴을 보니... 꽃무늬 셔츠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진정석은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선을 거두었다.“도련님, 이 옷은... 참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저...”“그저 뭐요?”연바다가 여전히 변함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진정석은 시선을 어디로 돌릴지 몰랐다. 그저 솔직하게 얘기했다.“지금 입기에는 추워 보입니다.”아무리 햇볕이 강한 시기라고 해도 이미 가을이라 기온은 여름처럼 따뜻하지 않았다.지금 가볍게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건
“네가 그 인간도 아니고 어떻게 장담-”의심의 말은 연바다가 핸드폰을 건넨 순간 멈췄다. 핸드폰에 뜬 내용을 확인하고 난 강하랑은 눈을 크게 뜨면서 생각했다.‘헐, 이런 건 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메일은 그들이 살던 전셋집의 집주인이 진짜 집주인이 아니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진짜 집주인은 얼마 전에 세상을 뜨고 외동딸 혼자 남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집은 진짜 집주인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남자에게 주어질 리가 없었다.그리고 남자는 시내에도 내놓은 집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집이라는 것은 자투리 공간을 나무판으로 가려서 만든
한주시.혁이들은 칠흑 같은 안색으로 연씨 가문의 별장에 앉아 있었다.연유성이 다치고부터 지금까지 시간은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지난 한 달 사이에 강하랑의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그동안 연유성은 위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심하게 다친 탓에 보름 전에야 겨우 눈을 떴다. 대화가 가능한 건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화상의 면적이 하도 넓어서 그의 얼굴은 미처 봐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주의 의사는 몸이 회복하는 대로 성형하는 것을 제안했다.그의 몸 상태는 또 생각보다 멀쩡했다. 그저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괜히 더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