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 됐어요! 선배님은 어떻게 됐어요?”박재인이 한 것은 한식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불고기였다. 하지만 한남정 특제 간장을 사용해서 특별한 풍미를 살렸다.한남정은 뒷마당에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직접 담가서 사용하기에 언제나 남다른 음식 풍미를 자랑했다. 간장 한 종지만으로도 밥 세 그릇 뚝딱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한남정의 직원 중에 마른 사람 하나 없는 것과 흰쌀이 항상 모자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박재인이 요리를 끝낼 무렵 강하랑도 플레이팅을 마무리하면서 말했다.“저도 다 됐어요. 이제 ‘심판’을 받으
박재인이 말을 꺼내자마자 분위기는 약간 미묘해졌다.강하랑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말리고 싶었다. 이덕환이 아무리 실력 좋다고 해도 퇴직한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밥 한 끼로 협박하면서까지 이덕환의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하지만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한참 주저하던 강하랑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가만히 박재인의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룸에는 잠깐 정적이 맴돌더니 이덕환이 먼저 마른기침을 했다. 그리고 빠르게 박재인의 숟가락을 쳐내고는 내장국밥을 한 숟갈 떴다.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덕환은 그 새로 발 빠르게 숟가락을 뻗어 내장국밥을 한가득 뜨더니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박재인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시선만 올리면서 말했다.“보긴 뭘 봐? 그릇이 빈 다음에 또 다 뺏겼다고 버럭하지 마. 난 오늘 하나도 다 빼앗았어.”오늘은 음식량이 많은 덕분에 굳이 다투지 않아도 두 사람 다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더구나 ‘박재인의 제자’를 속상하게 만든 이덕환은 그녀가 만든 음식을 빼앗아 먹을 면목도 없었다. 이덕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으니 말이다.박재인은 이제야 이덕환의 말뜻을 알아들은 듯 확인
강하랑이 연못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연유성은 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당기면서 물었다.“괜찮아?”연유성은 강하랑이 중심을 잡기도 전에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멀쩡히 서 있는 게 그렇게 어려워? 머리는 장식이냐?”강하랑은 놀란 가슴과 지끈거리는 다리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연유성의 질책에 열받고 언성을 높였다.“네가 뒤에서 갑자기 말 건 탓에 이렇게 됐잖아! 정신이 온전치 않으면 네 약혼녀랑 같이 정신과에 가, 여기서 사람 귀찮게 굴지 말고!”강하랑은 연유성을 팍 밀치더니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강하랑은 죽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이덕환과 박재인이 어느 순간부터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란 표정으로 문 앞에 멈춰 섰기 때문이다.‘언제부터 봤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이 꼴을 보인 것만 해도 이미 죽고 싶은데!’“연 대표, 이건...”이때 이덕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넋이 나가버린 박재인과 달리 그는 약간 놀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박재인도 뒤늦게 정신 차리고는 연유성이 아닌 강하랑에게 물었다.“선배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강하랑은 차라리 이대로 기절했으면 했다. 그래서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
“하! 나이가 많으면 어때서? 나이가 많더라도 난 하랑 선배님의 후배야!”박재인은 노발대발 언성을 높이더니 이덕환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따라갔다. 그리고 코너를 도는 순간 그를 기다린 듯 가짜 미소를 짓고 있던 연유성과 마주쳤다. 강하랑을 안고 있는 연유성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다.“처음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점장님은 제 아내를 선배님이라고 부르시네요. 그래서 제 아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았나 봐요. 지난 시간 동안 제 아내를 잘 보살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후배님.”말을 마친 연유
연유성은 위압적인 눈빛으로 강하랑을 바라봤다. 이때 강하랑이 차 키를 찾아내고 버튼을 달칵 눌렀다.잠시 후 연유성은 강하랑을 더욱 꽉 끌어안더니 차를 향해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차와 연유성 사이에 막힌 그녀는 말로 이루 설명하지 못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연유성...”강하랑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약간 놀란 눈빛으로 연유성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 지난 후에야 겨우 하려던 말을 내뱉었다.“차 문 열었어...”연유성은 강하랑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말했다.“문 열어.
또박또박 뱉은 다섯 글자에 연유성의 눈빛은 삽시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강하랑의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선을 지키자고? 강하랑, 우리는 같이 자랐어. 어릴 땐 침대도 같이 썼고, 바지도 같이 입었어. 근데 무슨 선을 지키자는 거야?”“그건 전부 어릴 때 일이잖아.”강하랑은 연유성을 향해 머리를 돌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이제 성인이야, 그것도 이혼한 성인. 남보다도 못한 사이라고.”“하... 우리가 같이 자라온 세월을 잘못된 3년 때문에 전부 부정하겠다, 이거야?”“연유성, 너 언제까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