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 출혈도 쓰러져봐야 정신 차리지!’강하랑의 말에 연유성은 미간을 더욱 구기면서 물었다.“내가 왜 너를 탓하겠어?”“닥쳐!”강하랑은 연유성의 말을 끊고 약을 묻힌 솜으로 상처 부근을 닦기 시작했다. 쌉쌀한 약 냄새가 통증과 함께 신경을 자극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을 줬다.핏자국이 서서히 닦여나가고 상처가 드러났다. 연유성의 방치로 전혀 아물지 못한 상처는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흉흉한 모습이었다. 칼이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뼈가 다쳤을 지도 몰랐다.“무서우면 그냥 내가 할게.”연유성은 강하랑이 자
강하랑은 연유성을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약품 상자를 마저 정리했다.“됐어, 이제 원래 자리에 가져가.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은 최대한 오른손을 건드리지 마. 의사를 집으로 부르든지, 병원으로 직접 가든지 해서 신경 좀 쓰라고.”강하랑은 무덤덤한 말투로 말하면서 정리를 끝낸 약품 상자를 연유성의 앞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물티슈를 뽑아서 손에 묻은 약물을 닦아냈다.연유성은 얌전히 약품 상자를 원래 있던 자리로 가져갔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과일을 준비하고 난 온서애가 강하랑과 꼭 붙
“저녁에 산길 내려가는 거 위험해요.”연유성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강세미의 상황은 완전히 안중에도 없는 채 말이다. 그러자 온서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평소에는 하등 문제없던 산길이 왜 하필 오늘에만 위험한 거니? 예전에는 밥을 다 먹기 바쁘게 도망가듯이 나갔잖니?”강하랑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묵묵히 물을 마셨다. 연유성이 떠나든 말든 그녀는 딱히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본가에 남기로 한 순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강하랑과 연유성은 청진 별장에서 여러 번 함께 밤을 보냈다. 그래서 이번 한 번
기억 속의 어느 한순간과 맞물리는 맛에 연유성은 순간 과거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한 입 베어 물었을 때는 그저 달콤한 맛만 느껴졌다. 달지만 느끼하지 않은 것이 확실히 잘 만들어졌다.조금 전의 느낌을 다시 한번 받아보고 싶은 듯 연유성은 자연스럽게 남은 약과를 양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약과에 닿기도 전에 온서애가 단호하게 쳐냈다.“하랑이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것을 하나 양보하면 됐지, 얼마 더 먹을 생각이니?”연유성은 고개를 들어 강하랑을 힐끗 봤다. 그녀는 못 들은 척 미소를 지으
강하랑의 위로에도 화가 풀리지 않은 온서애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네가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에 오히려 내가 위로받고 있구나. 강씨 가문 그것들은 인간도 아니야. 연유성 그 녀석의 대가리가 어떻게 됐는지 답답할 따름이라니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그런 덜떨어진 녀석한테 회사를 맡기지는 않았어. 강씨 가문에 퍼부은 돈으로 기부라도 했으면 천국에 가지 않겠니?”온서애는 이미 회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연유성이 대표 자리에 올라간 다음 HN그룹은 꽤 빠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건 다 지난 일이에요. 저는 이제 앞만 바라보며 살고 싶어요.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요.”강하랑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연유성은 그저 저한테 한때 중요했던 사람일 뿐이에요. 그리고 지금의 저는 약간의 호감을 위해 전처럼 막무가내로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강하랑은 이제 연유성에게 약간의 호감도 없었다. 그러니 그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강하랑의 인생에서 가장 빨리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연유성이기도 했다.연유성을
상황을 주절주절 설명하던 강하랑은 혁이들이 또 삐질까 봐 이곳이 어릴 적 지낸 적 있는 곳이기에 강세미를 피해 몰래 숨겨둔 물건들을 보고 싶어서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산길이 위험한 안전적인 이유도 있다고 말을 보탰다.혁이들이 절대 트집 잡을 수 없는 완벽한 설명에 강하랑은 피식 웃었다. 장문의 설명글을 타자하는 데 집중한 그녀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열린 다음에야 이상함을 눈치채고 머리를 들었다.예고 없이 시선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강하랑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연유
연유성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강하랑을 힐끗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말했다.“알았어. 네가 문을 열 수 있으면 당장 꺼져줄게.”이 말을 들은 강하랑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단이혁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을 때 문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도 떠올랐다. 그때는 연유성이 욕실에 있는 줄 몰랐던 때라 그다지 마음에 두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설마... 에이 설마...’강하랑은 머리를 들어 웃음기 서린 연유성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러고는 이를 꽉 악물면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역시나 문은 밖에서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