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의 여파가 사라졌다.윤혜인은 자신의 가슴 속에서 비명이 흘러나오는 기분이 들었다.“아악--!”윤헤인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에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이성을 놓은 듯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사모님!”주훈이 불안한 표정으로 자동차 시동을 껐다.그 순간, 주훈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그도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대표가 남긴 부탁만은 지키고 싶었다.윤혜인의 목에서는 이미 다 쉰 쇳소리만 나왔다.“나 좀 데려다줘...”그녀는 온몸이 떨리는 탓에 운전도 제대로 할 힘이 없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어떻게 가슴 좀 아프다고 사람이 죽을 것만 같을까?주훈은 윤혜인의 말을 바로 이해하고는 그녀를 차 뒷좌석으로 옮기고 차를 몰았다.5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바다가 있었다.윤혜인은 멍하니 새까만 바다만 뚫어져라 응시했다.여기였나?윤혜인은 차 문을 열었다. 내리기도 전에 두 다리의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사모님...”주훈은 다급히 윤혜인을 부축하려 했지만 윤혜인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달려갔다.주훈은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채 윤혜인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바닷물 속으로 들어서자 주훈은 곧장 윤혜인을 붙잡았다.“사모님, 더 가시면 안 됩니다.”윤혜인의 목소리가 마치 연기처럼 거칠게 들려왔다.“왜? 왜요?”주훈의 몸이 떨렸다. 그도 힘겹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차는 운전석을 떠나기만 하셔도 폭발하게 되어있습니다. 보안팀에서도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봤는데, 유일한 방법은 대체물이 같은 무게여야 한다는 겁니다. 남은 시간이 겨우 5분이에요. 다른 도구를 이용할 방법이 없단 말이에요.”주훈도 결국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감정을 토해냈다.“대표님께서는 타이머를 멈추는 선택을 하신 겁니다. 사모님을 대신해서요...”윤혜인을 구하기 위해 이준혁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윤혜인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폭발로 검게 물들어버린 바
윤혜인은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꿈속에서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끝도 없는 바다를 떠돌며 방황하고 있었다.바다는 매우 검었고 어둡고 추웠다. 단 한 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윤혜인은 지쳤고 혼란스러웠고 무기력했다...매번 한계에 다다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만 같던 때마다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인아...”주위는 암흑뿐이었다.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뚜렷하게 들렸다.그 목소리에 다시 기운을 차인 윤혜인은 상류로 가기 위해 계속 앞으로 이동했다. 마침내 그녀의 앞에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났다.윤혜인은 그 빛을 향해 헤엄쳐 갔다.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윤혜인을 깨웠다.천천히 눈을 떠보니 머리가 미친 듯이 어지러웠다.아직 흐릿한 시야에 크고 잘생긴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남자의 깊고 어두운 눈빛이 순식간에 그녀의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감정이 더는 주체가 되지 않았다.“준혁 씨...”윤혜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이준혁은 윤혜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조심해.”윤혜인은 머리를 그의 품에 묻은 채 조심스레 이준혁을 힘껏 안았다.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다.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없었다.남자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살이 더 빠졌어? 밥 제대로 안 챙겨 먹었지?”윤혜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남자를 끌어안은 채 울고 또 울었다...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혜인아, 강해져야 해. 알겠지?”윤혜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녀는 강해지고 싶지 않다고, 당신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목구멍이 막혀버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남자는 고개를 숙여 엄지로 윤혜인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울어, 눈 다 부어서 호두 같잖아.”윤혜인은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차를 우리고 과일까지 가져다주는 윤혜인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그녀가 깊은 잠에서 깬 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윤혜인은 단 한 번도 이준혁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예 묻는 것조차 꺼렸다.이럴수록 보는 사람은 더욱 불안해져만 갔다.윤혜인이 차를 우려오자 곽경천이 말했다.“혜인아, 얘기 좀 할까?”윤혜인은 서류에 있는 익숙한 필체를 보는 순간 손을 잠시 멈췄다.그녀가 조용히 대답했다.“오빠, 내가 과일 깎아줄게.”분명 대화를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곽경천은 더 이상 그녀를 이렇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그는 윤혜인의 팔을 잡아 소파에 앉히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아무것도 안 먹을 거니까, 일단 앉아봐.”조금 힘을 주었을 뿐인데 윤혜인은 균형을 잃고 자리에서 비틀거렸다.곽경천이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아팠어?”“아니.”윤혜인은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6개월도 안 지났지만 윤혜인은 벌써 종이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삐쩍 말라 있었다. 턱도 날카롭고 가는 것이 바람만 불어도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곽경천은 그런 윤혜인의 모습을 볼수록 더 마음이 아파졌다.“혜인아, 이건 걔가 너한테 남긴 거야.”윤혜인은 조심스럽게 서류 봉투를 열었다. “유서”라는 두 글자가 눈에 띄자 윤혜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얇은 종이 몇 장이었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유서 작성인: 이준혁, 남 xx90년 12월 26일 출생...문현미에게 증여된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재산은 내 평생의 사랑 윤혜인에게 증여한다...곽경천이 유독 직설적인 사람이었던 탓에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을 꺼냈다.“혜인아, 이선 그룹 안에서 누가 이준혁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나 봐. 내가 들은 데 따르면 내일 오전에 이천수가 기자회견을 열어서 이준혁의 사고사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한구운을 이준혁이 있던 자리에 올릴 예정이래.”곽경천의 주먹이 무의식
한편, 이선 그룹 기자 회견 현장.이선 그룹 대변인이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하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선 그룹에 대한 여러분들의 무한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대표 이준혁 씨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대변인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이선그룹 대표 이준혁 씨는 12월 9일,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돌아가셨습니다.”믿지 않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젊고 유능한 이준혁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발언을 마친 대변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이선그룹 대행이사 이천수 씨의 발언이 있겠습니다.”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이천수는 비서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낯빛이 창백한 이천수가 울먹이며 말했다.“몸이 좋지 않아 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준혁 대표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저의 곁을 떠날 거라고는…”눈물을 훔치는 이천수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천수가 말을 이었다.“비통한 심정을 잘 다스린 뒤에 공식적인 입장을 다시 발표할 생각입니다. 저의 아들 이준혁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원지민의 배 속에는 이준혁의 아이가 있습니다. 원지민 씨는 온진 그룹의 대표직을 맡게 될 것이고 저희 이선 그룹과의 합작도 추진할 것입니다.”카메라가 원지민 쪽으로 돌아가자 원지민은 눈물을 흘렸다. 명품 검은색 원피스에 진주 모자를 쓴 원지민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부의 모습이었다.이천수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이사회에서는 이선 그룹의 발전을 위해 저의 아들 이구운에게 임시 대표직을 위임하기로 했습니다. 이구운은 월 스트리트 금융 기관의 고위직을 맡았었고 고학력 인재입니다. 또한 이준혁을 롤모델로 삼고 노력했기에 이구운은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고 이선 그룹에 무한한 영광을 안겨줄 것입니다!”뭇사람들은 기자 회견 현장이 갑자기 흐름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천수는 가볍게 기침하고는 다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기자들은 셔터를 눌렀다.“그게 무슨…”이천수는 윤혜인을 욕하려다가 기사가 날까 봐 도로 참았다.“내 아들의 체면을 지켜주려고 했지만 허무맹랑한 말을 들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증거 자료를 함께 보시죠.”스크린에 이준혁이 운전하는 영상이 나타났는데 뒤에서 따라가던 보디가드가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각도였다. 조각처럼 빛나는 옆모습과 차분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윤혜인은 처음 보는 영상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영상은 일 분도 채 되지 않았고 이준혁의 차가 바다로 뛰어들면서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번졌다.펑!주훈은 낯빛이 하얗게 질린 윤혜인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사고가 난 뒤, 윤혜인은 여전히 이준혁이 살아있다고 믿었지만 그렇게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영상이 끝나자마자 이천수는 큰소리로 물었다.“이러고도 준혁이가 살아있다고 잡아뗄 건가?”윤혜인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뜨더니 차갑게 말했다.“이준혁 씨가 죽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요.”윤혜인은 목청을 높였다.“폭발하는 장면만 있고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요.”이천수는 화가 솟구쳐 올랐다.‘차가 폭발했으면 그 안에 있던 사람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이준혁이 살아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이때 윤혜인이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 증거를 내놓았다.“이준혁 씨는 사망한 게 아니라 실종된 거예요.”이천수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이 개같은 년이 일부러 저러는 것 같아.’경찰 측에서는 임세희가 도주한 뒤 복수하는 과정에서 이준혁이 사망했다고 하면서 사건을 급급히 종결했고 이천수는 사인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기자 회견을 열었는데 윤혜인이 실종 신고를 한 증거를 들고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천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헛소리하지 말고 나가! 종결된 사건이고 유가족이 사인까지 했는데, 이준혁과 이혼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실종이니 뭐니 하는 거야!”이천수는 윤혜인
여론의 힘으로 조사할 시간을 더 늘일 수 있다고 믿었다. 윤혜인은 이천수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이 회장님, 아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슬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종 전에 찍힌 영상 화면을 공개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윤혜인이 차갑게 웃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아들이 아닌 줄 알겠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이천수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천수는 사람들의 시선에 몸이 굳었고 윤혜인의 말에 식은땀이 흘렀다.이천수는 윤혜인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내 아들은 널 구하려다가 죽은 거야! 그런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고서 준혁의 유산을 차지하려고 하다니…”이천수는 사실을 왜곡했고 원지민을 가리키며 말했다.“내 손주는 원지민 배 속에 있으니 출생이 분명한 아이를 내세우지 말 거라!”윤혜인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이건 공증을 마친 유전자 검사 결과예요.”이천수가 이를 부득부득 갈자 윤혜인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준혁 씨가 아직 살아있으니 엄연히 말하면 유산은 아니죠.”윤혜인은 이천수, 이구운과 원지민을 훑어보더니 차갑게 웃었다.“저는 준혁 씨의 재산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주러 온 거예요. 원지민 씨 배 속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거예요.”기자들은 원지민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이준혁의 아이가 아닌가 보네. 재벌가의 일은 막장 드라마라니까.’원지민은 윤혜인을 노려보았다.‘임세희가 똑바로 처리했어도 저년이 죽는 건데… 죽어야 할 사람은 살아있고 살아야 할 사람이 죽었어.’이천수는 식은땀을 흘렸다.‘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원지민 배 속의 아이가 이준혁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나의 입지에 영향을 줄 거야.’이천수는 이구운한테 눈짓하더니 다급히 기자 회견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는 매체와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오늘 일어난 일을 보도하지 않기로 약속했다.윤혜인은 이천수가 기자들을 입막음할 것까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어!”원지민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억울한 듯 눈물을 흘렸다.“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문현미가 입을 열었다.“나한테 준혁의 생물학적 견본이 있으니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해보거라.”사실 문현미는 나오자마자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주훈이 만류했다. 약물을 과다복용한 사람의 말은 증언으로 인정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문현미는 원지민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이 악독한 년이 내 아들을 죽였어!’원지민은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괴롭힘당하는 연기를 했다.이천수가 재빨리 다가와 문현미한테 손찌검하려고 했다.“미친 여편네가 왜 여길 와서 난동을 부려!”이천수는 문현미가 미쳤다고 사방에 알리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같았다. 주훈은 이천수의 팔목을 붙잡았고 문현미를 보디가드한테 맡겼다.“지금은 잠시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윤혜인도 자리를 뜨려고 하자 원지민이 쫓아와 말했다.“별 볼 일 없는 가문의 사람이 감히 원씨 가문과 이씨 가문을 상대하려고 하는 건가요?”윤혜인이 차갑게 웃었다.“원지민 씨는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잖아요.”원지민은 주먹을 꽉 쥐더니 실성한 듯 웃었다.“당신이 뭐라고 떠들든지 상관없어요. 내 배 속의 아이는 이준혁의 아이가 틀림없다고요!”‘이준혁도 죽은 마당에 윤혜인과 정신이 나간 문현미가 뭘 어쩌겠어?’윤혜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원지민 씨, 보디가드가 죽었으니 다른 증거가 없다고 확신하는 건가요?”원지민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무슨 뜻이죠?”“원지민 씨가 저지른 일은 다 돌아가게 되어있어요.”윤혜인이 직설적으로 말했다.“당신이 임세희를 지시해 저를 죽이려고 했다는 증거를 꼭 찾아낼 거예요.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거라고요!”“법의 심판이라고요?”원지민은 깔깔 웃더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아, 정신 나간 문현미 사모님의 증언으로요?”윤혜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모르시나 본데 자주 연락하던 그
원지민은 갈라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네까짓 게 뭔데 감히 날 평가해! 네가 아니었다면 이준혁은 날 사랑했을 거야!”원지민은 어릴 적부터 이준혁을 좋아했고 남장을 한 채 다가가기도 했었다. 여자인 것이 밝혀진 뒤, 아버지가 아들을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며 설명했다.사실 원지민의 아버지 원정호는 사상이 개방적인 사람이라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상관없이 사랑해 주었다. 원정호는 아이를 더 가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설명한 뒤에도 이준혁은 원지민과 거리를 두었기에 원지민은 원정호의 핍박에 못 이겨 유학 가게 된 척하면서 동정심을 얻어내려고 했었다.원지민은 이준혁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곁에 남으려 했다. 해외에 있을 때도 이준혁의 근황을 조사했고 이준혁 곁에 임세희와 윤혜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이준혁이 임세희의 딱한 사정 때문에 보살펴 주었는데 그것이 이혼의 계기가 되어 존재감 없던 윤혜인은 자연스럽게 내쳐지게 되었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원지민은 윤혜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지만 이준혁이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사랑한 사람이 윤혜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원지민은 주먹을 꽉 쥐었고 눈에 살기가 돌았다. 이준혁의 벅찬 사랑을 받는 윤혜인을 죽여버리고 싶었고 질투심에 이성을 잃었다.원지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 너 때문이야. 이 악독한 년!”“원지민 씨가 오해한 게 있어요.”윤혜인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제가 나타나지 않았었더라도 준혁 씨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거예요.”사랑이란 감정은 나타난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처음부터 마음이 없었던 사람은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해도 사랑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것을 외면하던 원지민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미친 짓을 벌이고 다녔다.형사의 뒤에 있던 기자들이 몰려오더니 원지민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원지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