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운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사실 진작부터 원지민이 독한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형수님, 흥분하지 마요. 이게 형수님을 돕는 거예요.”“돕는다고요?”원지민이 차갑게 웃었다.“이구운 씨 본인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돕는 거겠죠. 서자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이 말에 이구운의 표정이 음침해졌지만 이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형수님, 지금 같은 상황이 되어야 형님도 형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겠어요?”이 말에 원지민이 멈칫했다.이구운이 설명했다.“잘나갈 때 도와주면 기억도 못 해요.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야 감격하지.”원지민은 이구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이준혁은 궁지에 몰린 상태다. 원지민을 제외하고는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이구운의 옅은 수로 이준혁을 흔들 수는 있어도 무너트리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조금만 흔들어도 원지민에겐 기회가 될 것이다.이준혁이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감사실 사람들이 비서실로 들어가 박스에 자료를 마구 쓸어 담기 시작했다.의외인 건 문현미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현미는 원지민을 부축하고 있었다. 이준혁을 보는 눈빛이 어딘가 흔들렸다.“준혁아, 엄마 말 들으면 안 되겠지? 지민이랑 화해해...”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문현미는 아직도 이준혁이 원지민을 받아들이면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믿었다.원지민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울면서 하소연했다.“준혁아, 난 정말 이구운 씨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어. 내가 되돌릴게.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당연히 공짜는 아니었다. 도움을 받고 싶으면 이준혁도 진정성을 보여야 했다.문현미가 얼른 맞장구를 치며 이준혁을 설득했다.“준혁아, 지민이도 몰랐다잖니. 나는 지민이가 너를 사랑한다고 믿어.”이준혁이 웃었다.“두 사람이 원하던 게 이거였나 봐요?”“준혁아, 오해야. 나는...”“원지민, 나는 네가 그래도 총명한 여자인 줄 알았어. 근데 이구운보다 덜떨어진 사람일 줄은 몰랐다.”원지민이 미간을 찌푸
“나는... 이거 지민이가 준 거 아니야.”문현미가 말했다.이준혁은 실망인지 냉정함인지 모를 눈빛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언젠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요.”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더니 몸을 돌렸다.문현미는 그 자리에 선 채 손까지 바들바들 떨었다.아무 지병도 없는데 지금까지 오랫동안 정신질환 치료 약을 먹어온 것이다.안 그래도 요즘 자꾸만 머리가 복잡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는데 몸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였다.이준혁의 말이 맞다면 원지민이 지금까지 그녀를 속인 것이다.‘내가 도대체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지른 거지? 그리고 혜인이...’이때 원지민이 문현미를 향해 걸어왔다. 문현미가 그 자리에 선 채 멍때리고 있자 얼른 부드럽게 물었다.“어머님, 여기 서서 뭐 해요?”“아무것도 아니야. 요즘 손이 자꾸 말썽이라니까.”원지민은 아무래도 약을 너무 많이 먹어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더니 문현미의 손을 잡으며 온화하게 말했다.“어머님. 준혁이 많이 타일러 주세요. 여자한테 홀려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니까요. 준혁이 몸도 생각하셔야죠.”문현미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대답했다.“응. 알았어. 내가 가서 타이를게.”“오늘 바로 가서 타이르세요. 준혁이 또 그 여자 찾으러 간 게 틀림없어요.”원지민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어머님은 아직 모르죠? 윤혜인 씨한테 애까지 딸린 거. 그런 애는 애지중지하면서 자기 핏줄은 나 몰라라 하니, 그게 다 윤혜인 씨한테 홀려서 그래요.”문현미가 이를 들으며 윤혜인과의 과거를 떠올렸다.윤혜인에 대한 인상과 의식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것 같았다. 문현미의 인상 속에 윤혜인은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였지만 의식은 원지민이 말이 맞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윤혜인이 요물이라고, 아들을 해치러 온 괴물이라고 말이다.문현미는 머리가 아파 얼른 이마에 손을 올렸다.“지민아, 머리가 아파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원지민은 기분이 잡쳤지만 밖으로
이준혁은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윤혜인은 그의 까만 눈동자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윤혜인이 멍해서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이준혁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턱을 윤혜인의 어깨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목소리가 너무 피곤해 보였다.“혜인아, 너무 보고 싶었어.”이준혁이 윤혜인에게 몸을 완전히 기대면서도 그녀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할까 봐 힘 조절에 신경 썼다.언제든 이준혁은 늘 그녀를 먼저 생각해 줬다. 몸에 밴 습관처럼 말이다.순간 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곽경천이 이준혁의 상황을 전부 들려줬다.오후에 이천수, 이구운, 원지민, 그리고 문현미까지 합세해 그를 핍박했다고 말이다.혈연관계가 있는 사람과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이 모두 그의 반대편에 서서 그를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 나 있었다.그를 향해 칼을 겨누는 그들을 보며 이준혁은 얼마나 마음이 시렸을까, 정말 갈 곳이 없는 게 아니라 집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었다.윤혜인이 그런 이준혁을 꽉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나도 있고 아름이도 있잖아요. 우리가 옆에 있어 줄게요.”이준혁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윤혜인은 늘 그랬듯 착했다. 그가 반한 모습 그대로 말이다.“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잖아.”윤혜인이 이준혁의 품에 머리를 파묻으며 웅얼거렸다.“네.”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윤혜인의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영원히 내 곁에 남아주면 안 돼?”이준혁의 눈빛은 마치 밤하늘 같았다. 어둡고 짙었지만 별처럼 빛나기도 했다.윤혜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이준혁은 오후에 겪었던 일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다시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 따듯함은 몸 구석구석 빠짐없이 녹여줬다.길고 뜨거운 키스가 끝나고 이준혁이 윤혜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혜인아,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윤혜인이 이준혁의 품에 기대어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준혁 씨가 그
“...”둘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푹 잤다.홍 아줌마도 이준혁이 왔다는 걸 알고 방해하지 않았다.윤혜인도 이렇게 안심하고 푹 잤다는 게 신기했다.에어컨을 틀어놓아 시원한 방에서 이준혁의 따듯한 품에 안겨 자는 게 참으로 포근했다.윤헤인은 이준혁이 아직 미간을 찌푸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걸 보고 시간을 확인하려고 몰래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주방으로 내려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신선한 전복이 보였다. 윤혜인은 그 전복을 꺼내 전복죽을 끓이기 시작했다.재료를 준비하고 가스 불을 켜자마자 윤혜인의 핸드폰이 울렸다.머나먼 외국에 있는 곽경천이 걸어온 영상통화였다.윤혜인이 손을 닦고는 전화를 받았다.“오빠.”곽경천은 윤혜인이 주방에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늦었는데 아직도 밥을 안 먹은 거야?”“응, 낮잠 자느라 늦었어.”“아까는 회의하느라 길게 얘기 못 했어.”“알아.”윤혜인이 바로 입장을 표명했다.“오빠. 우리 회사는 이선 그룹과 협력할 만한 프로젝트 없어?”“아이고. 한 달 나와 있었다고 벌써 팔이 밖으로 굽는 거야?”곽경천이 비아냥댔다.“가서 다시 뼈를 맞춰줘야 하나?”“오빠.”윤혜인이 투정을 부렸다. 곽경천이 농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준혁과 재결합하기로 한 날 윤혜인은 바로 곽경천에게 이 일을 알렸다.그때 곽경천은 만약 이준혁이 그녀에게 상처 준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됐어. 이제 나는 뒷전인 거지.”곽경천이 심장을 부여잡으며 오버했다.“아오, 심장 아파.”“장난 그만해. 오빠, 정말 준혁 씨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곽경천이 눈썹을 추켜세웠다.“나도 돕고 싶어.”곽경천은 오후에 상황을 다시 되짚어봤지만 어딘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이 장사에 뛰어든 지도 오래되었고 수많은 전설을 창조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무 실적도 없는 늙은이와 새로 올라온 아마추어에게 당할까?곽경천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동생을 달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윤혜인은 손을 귀에 갖다 대며 달려온 이준혁을 멍하니 쳐다봤다.“깼어요?”뚝배기에서 거품이 흘러나와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가 손을 덴 것이다.이준혁은 빨개진 윤혜인의 손끝을 보며 가스 불을 끄더니 얼른 싱크대로 데려가 손을 씻어줬다. 그러고는 그녀를 번쩍 안아 소파에 앉히더니 익숙하게 화상 연고를 가져와 발라줬다.윤혜인이 손을 흔들었다.“괜찮아요. 이쯤이면 얼음찜질하면 바로 나아요.”이준혁이 그 말을 듣고 얼음을 가져와 윤혜인의 손끝에 올려두고 문질렀다. 차가운 촉감이 참으로 시원했다.“바보같이 늦은 밤에 무슨 죽이야?”윤혜인이 말했다.“당신이 깨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두려고 했죠.”이준혁의 동작이 멈칫했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앞에 앉은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깨끗하고 순수하고 아무 계산이 없는 눈빛이었다.마음이 상하면 매정했지만 사랑할 때면 남김없이 다 퍼주었다.이준혁의 눈가에 웃음이 짙어졌다.어릴 적 바라던 것이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진 것 같았다.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하더니 갈라진 소리로 말했다.“근데 지금은 일단 너부터 맛보고 싶은데.”윤혜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다시 키스해 왔다.차가운 촉감이... 얼음이었다.얼음을 물고 그녀에게 키스한 것이다.뜨거운 혀로 얼음을 감싸자 혀끝의 신경이 극한의 자극을 받아 온몸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이준혁의 한 손은 윤혜인의 머리에, 다른 손은 윤혜인의 옷 속을 천천히 파고들었다.달콤한 키스와 말캉한 그녀의 몸에 이준혁은 점점 빠져들었다. 그녀를 자기 몸속에 녹아들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욕심내지 않을 것 같았다.윤혜인의 몸에서 고양이와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이준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그는 윤혜인의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차가운면서도 또 뜨거웠다.찌릿한 고통을 동반한 짜릿함이 곧 달콤함이 되어 온몸으로 퍼졌다.윤혜인이 두 팔로 이준혁의 몸을 감싸더니 약간은 서툴게 반응했다. 그런 반응이 이준혁에겐 더 매혹적으로 다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이준혁은 심플한 디자인의 하얀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묘하게 매혹적이면서도 섹시했다.듣기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돋는 목소리로 그는 느긋하게 자기가 느끼는 바를 말해줬다.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발길질했다.“준혁 씨, 그런 말을 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요? 그만해요.”이준혁은 허벅지로 자기를 향해 날아드는 발을 꽉 잡더니 윤혜인의 손목에 키스했다.“너한테만. 너만 좋으면 돼.”윤혜인이 고집스럽게 말했다.“누가 좋대요?”이준혁이 가볍게 웃었다.“그러면 오늘 오빠한테 애교 부리면서 나 도와주라고 한 사람은 누군데?”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졌다.“다 들었어요?”이준혁이 눈썹을 추켜세웠다.“우리 혜인이가 남편을 구하겠다면서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는 걸 내가 들었지”윤혜인은 귀까지 빨개졌다.“내가 언제 남편 구하겠다고 했어요.”“아니면?”이준혁이 눈까풀을 천천히 들더니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놀려댔다.“그러면 우리 혜인이 애인 정도는 되나?”“애인은 무슨 애인이에요… 헛소리 좀 하지 마요.”윤혜인이 성질을 부리며 그를 째려봤다.이준혁이 입을 앙다물며 말했다.“하긴, 이런 상황만 아니면 누가 애인하고 싶겠어.”이준혁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래서 말인데. 나 언제 정규직으로 승진시켜 주는 거야?”“…”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탄핵을 받고 의지를 상실한 사람 같지 않았다.윤혜인은 지금 이 상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이번에 정말 위험한 거 맞아요?”“갈 곳 없어서 너한테 왔잖아. 그게 위험한 거 아닌가?”윤혜인이 물었다.“그러면 대표 자리는 뺏기는 건가요?”이준혁이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린 채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럴 수도 있지.”윤혜인이 입을 악다물더니 말했다.“준혁 씨, 나한테 10조 원은 있어요. 아버지 말로는 엄마가 내게 남겨준 혼수래요. 아니면…”이준혁이 핵심을 잡아내며 살며시 웃었다.“혼수까지 주면서 구하는데 남편이 아니라고?”이준혁이 손을
연속 5일간 이준혁은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별장에서 윤혜인과 같이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처럼 한가롭지 못했다. 작업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윤혜인이 작업실에 가면 이준혁은 혼자 집에 남아있었다.홍 아줌마와 요리를 몇 가지 배운 이준혁은 윤혜인이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마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줬다.이준혁이 손수 만든 탕은 홍 아줌마가 몇십 년 끓인 탕보다 더 맛있을 정도였다.윤혜인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왜 이렇게 요리를 잘해요?”전에 만났을 때는 도련님이라 종래로 주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고 요리를 할 줄 아는지도 몰랐다. 솜씨로 보면 절대 한두 날 배운 솜씨가 아니었다.이준혁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어렵지 않아. 그리고 탕은 시간과 비율이 중요하거든. 시간이 조금만 오래도 감칠맛이 사라져. 너무 짧으면 또 맛이 깊지 못하고. 시간을 잘 맞추고 재료를 좋은 걸 선택하면 어렵지 않아. 영양가도 높고.”윤혜인은 이준혁이 시간과 비율, 그리고 재료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역시 모범생은 밥을 하는데도 계산이 필요했다.윤혜인이 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이렇게 말했다.“준혁 씨 덕분에 입맛이 까다로워지겠어요.”이준혁이 물티슈로 윤혜인의 입술을 닦아주며 말했다.“이렇게 거둬주는데 시중 들어주는 건 당연한 거죠.”“…”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준혁의 말투에서 묘하게 원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이준혁은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덤덤하게 물었다.“점심에 먹은 탕이 맛있어? 아니면 저녁에 먹은 게 더 맛있어?”“…”윤혜인은 그제야 기억났다.점심때 이준혁이 전화를 걸어와 도시락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윤혜인은 그때 고객과 밥을 먹고 있었다.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열정적으로 탕을 퍼주며 이렇게 말했다.“혜인 씨, 많이 드세요. 이 탕이 피부 탄력과 미백에 좋대요.”이준혁이 이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윤혜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시중들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이준혁의 갈라진 목소리가 매혹적으로 들렸다.“내가 벗겨줄게.”지퍼가 천천히 열리고 따듯한 물이 몸에 닿자 너무 편안해졌다.“...”물안개가 자욱하게 핀 욕실에는 듣기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소리로 가득했다.“읍... 거기는... 안 돼요...”이준혁이 우쭐대며 웃더니 고개를 들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만족해?”윤혜인은 너무 수치스러워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즐거움에 겨운 신음이 자꾸만 목구멍을 타고 새어 나왔다.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출근 안 하면 남자들 정력이 좋아지나? 어떻게 매번 유혹하는 방법도 바뀌지?’이튿날.이준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쳤다.윤혜인은 알람이 울리자 자기도 모르게 꺼버렸다. 잠깐 더 눈을 붙이던 윤혜인이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오늘 중요한 고객을 만나기로 한 날이라 절대 지각하면 안 된다.윤혜인은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너무 오래 잔 건 아니라서 시간이 충분했다.슬리퍼를 신은 윤혜인이 비몽사몽해서 씻으러 들어갔다.방으로 돌아온 이준혁이 칫솔을 입에 문 채 혼이 반쯤 나가 있는 윤혜인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이준혁은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며 양치를 도와주고는 세면까지 시켜줬다.윤혜인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자 이준혁이 부드럽게 말했다.“조금 더 잘래?”윤혜인이 머리를 이준혁의 어깨에 기대더니 나른하게 말했다.“안 돼요. 고객 만나기로 했단 말이에요. 이게 다 준혁 씨 때문이에요...”어젯밤 욕실에서 거울 앞으로, 그러다 끝내는 침대까지 올라가 또 한참 사랑을 나눴다. 몸이 탈탈 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윤혜인이 품에 기대자 기분이 좋아진 이준혁은 호수 같은 눈망울에 웃음이 번졌다.“그래. 다 내 탓이야. 잘 보이려고 너무 힘줬네.”윤혜인이 얼굴을 붉히더니 이준혁의 가슴을 솜방망이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다 이준혁이 슈트를 입고 넥타이까지 맸다는 걸 발견했다.“어디 가려고요?”윤혜인이 의아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