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가 고분고분 무릎을 꿇었다.원지민이 스스름없이 임호의 손등에 발을 돌려놓더니 뒤꿈치로 세게 지르밟았다.임호의 손등에 박인 굳은살을 다 긁어낼 때까지 사정없이 지르밟았다. 손등은 이미 볼품없이 갈라져 피가 철철 흘러서야 천천히 발을 내렸다.임호는 고문을 당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임호에게 이 정도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원지민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오늘 쪽팔려도 너무 쪽팔렸다. 크면서 이렇게까지 체면이 구겨진 적은 없었다.지켜보던 사람들의 맞장구에 그녀는 마치 따귀라도 연거푸 맞은 듯 얼굴이 얼얼했다.원지민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눈치 없는 새끼, 하마터면 내 일을 망칠 뻔했잖아.”원지민이 씩씩거리며 발로 임호의 머리를 걷어차려 했지만 임호가 발목을 잡았다.원지민의 안색이 순간 변하더니 소리쳤다.“개자식, 이거 놔.”임호가 원지민의 발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발치에 무릎을 꿇은 채 진지하게 말했다.“배에 힘주면 안 돼요. 아가씨. 제가 할게요.”임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차 뒤편에 놓아둔 골프채를 발견했다. 그는 골프채를 가져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머리를 내리쳤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임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그는 마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다시 한번 머리를 내리쳤다.비산된 혈액이 원지민의 얼굴까지 튀었다.“에잇.”원지민은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임호는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골프채를 들어 다시 머리에 갖다 댔다. 한 번만 더 내리쳤다가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됐어. 그만해.”원지민이 말렸다.아직 쓸모가 있었기에 지금 죽어버리는 건 살짝 아까웠다.임호는 지금 말하기도 버거웠다. 눈에는 피가 가득 차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아가씨...”“내려. 내 차 더럽히지 말고.”원지민이 매정하게 명령
원지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준혁아, 나 맹세할 수 있어. 이 아이 정말 너의 아이야.”“내 아이라고?”이준혁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나와 관계도 가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지는 거지? 혼자 가질 수 있다는 거야?”“나는… 나는…”원지민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준혁아, 믿어줘. 이 아이의 아빠는 너야.”“믿어달라고?”이준혁이 그런 원지민을 차갑게 쏘아보며 눈썹을 추켜세웠다.“원지민, 아무리 허기져도 너는 아니야.”이준혁은 원지민에 대한 역겨움을 대놓고 드러냈다.지금 생각하고 있는 걸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했다.원지민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비참하게 애원했다.“준혁아. 난 거짓말한 적 없어. 이 아이가 달갑지 않다고 해도 네 핏줄이잖아. 받아들여야지.”이준혁은 더는 원지민과 입씨름하기 싫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경고했다.“원지민,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리든 윤혜인은 안 돼. 그 선 절대 넘지 마.”“저번에 이미 명확하게 말했을 텐데. 자기가 한 언행에 책임지라고. 근데 지금 보니까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네. 온씨 가문에서 너의 멍청함을 책임질 수 있길 바라.”원지민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준혁아,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우리 가문에 무슨 짓을 하려고?”“기다려봐. 곧 알게 될 거야.”이준혁의 말투는 꽤 덤덤했지만 듣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했다.원지민은 이준혁의 수단이 어떤지 옆에서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다.원지민은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듯 목이 터질 것처럼 울었다. 임호 앞에서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준혁아, 우리 지금까지 잘 협력했고 성과도 좋았잖아. 정말 이렇게 매정하게 나올 거야?”“이 아이가 정말 너의 아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나를 이렇게 대한 걸 후회하게 될 거라고.”“후회하지 않아.”이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원지민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런 수모를 당한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사랑하는 남자한테 말이다.“앞으로 너도, 원씨 가문도 더는 체면을 봐주지 않을 거야.”이준혁은 이렇게 말하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원지민은 머리가 복잡했지만 일단은 이준혁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준혁아,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어.”원지민은 이준혁의 손을 달려가 잡으며 설득하려 했다.“준혁아, 너 지금 회사에서 어려운 상황인 거 알아. 해외 시장 루트도 이구운에게 뺏겼다고 들었어. 우리 원씨 가문이 해외 시장 점유율은 아직 꽤 되거든.”“우리 사이를 대외로 발표하고 아이를 인정한다면 우리 원씨 가문도 아낌없는 지원을 쏟을 거야. 거기에 너의 재능까지 더하면 이구운이 아무리 해외 시장 루트를 뺏어갔다고 해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원지민은 점점 차분해졌다. 그녀는 이준혁의 손을 내려놓으며 조리 있게 말을 이어갔다.“지금 우리 원씨 가문과 틀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봤어? 지금 회사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잖아. 누가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원지민이 이렇게 오래 기다렸다가 말을 꺼낸 건 다 이유가 있었다.이준혁이 지금 처한 난감한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예전에는 이천수가 이준혁을 몰아내려 했다면 지금은 이구운이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만약 다른 때에 임신 사실을 알렸다면 거의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 얘기하면 기회가 90%는 된다.이준혁은 장사꾼이었기에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대기업 오너 일가에서 가족의 난은 어쩌면 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나락으로 떨어져 다시는 올라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만약 이준혁이 이번 정략결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난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알 수 없다.“준혁아...”원지민이 나긋하게 말했다. 차키에 입술이 긁힌 상처가 어딘가 우스워 보였다. 그래도 마음을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내가 도울
임호는 일 처리가 깔끔했다. 경고받은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다.전화를 끊은 원지민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렇게 한참 침묵하던 원지민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는 서늘한 말투로 말했다.“그날 같이 도모하자고 했던 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윤혜인은 상가에서 바로 집으로 향했다. 우울했던 기분도 많이 풀렸다.지금 알 수 있는 정보는 이준혁이 원지민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반해 원지민과 문현미는 그 아이가 이준혁의 아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원지민만 우긴다면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문제는 문현미도 우긴다는 것이다.아무리 원지민을 좋아한다 해도 아들에게 남의 자식을 억지로 밀어 넣지는 않을 것 같았다.윤혜인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져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준혁이 그녀를 속인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이다.집에 돌아와 곽아름과 놀아주던 윤혜인은 시기가 조금 애매하니 이준혁을 아빠로 인정하는 일을 조금만 미루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곽아름은 꽤 어른스러웠다. 약간 실망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엄마 말에 따를게요.”윤혜인이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부드럽게 곽아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너무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윤혜인은 오늘 원지민의 위선에서 왠지 모를 매서움을 느꼈다.오늘 그런 수모를 준 데다 곽아름이 이준혁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면 원지민이 이성을 잃고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아무튼 곽아름에 관한 건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저녁.곽아름이 잠에 들었는데 도우미가 윤혜인을 찾아왔다.“아가씨, 대표님이 찾습니다.”윤혜인은 이준혁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했다.“이미 잠들었다고 하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다시 올라왔다.“아가씨, 그렇게 전달했는데 계속 밖에 계십니다.”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알겠어요. 상관하지 말고 쉬세요.”도우미가 가고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를 데리고 한 업소로 향했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뭘 하려는지 몰라 살짝 멍한 상태였다.이내 이준혁은 윤혜인을 한 유리창 앞에 서게 하더니 헤드셋을 끼워주며 말했다.“한번 확인해 봐.”이준혁이 안으로 들어가 리모컨을 눌렀다. 화면에 갑자기 외국 성인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몰입감이 좋다고 소문난 4D였다.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과 소리가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그 현장에 같이 있는 것처럼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윤혜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틀어막았다.이준혁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몸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윤혜인은 그가 어떻게 증명해 보이려는지 알 것 같았다.동영상은 길이가 45분이었다. 보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장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었다.윤혜인은 아예 헤드셋을 벗어버렸다. 정말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장면이었다.동영상이 드디어 끝났다. 이준혁은 화면을 끄더니 윤혜인을 끌어당겼다.“봤어?”윤혜인은 귀까지 빨개졌다. 정말 너무 황당했다.이준혁은 핸드폰으로 검진 결과 하나를 보여줬다. 큰 병원에서 발급받은 결과였다.“네가 떠나고 5년간 나는 여자를 만날 생각조차 없었어. 엄마는 이런 내가 걱정돼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지. 그때 받은 결과야.”검진 결과에는 환자가 마음의 상처로 발기 능력을 잃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문현미도 이 결과를 받아보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이준혁이 왜 원지민 배 속의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고 확신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몸이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오랫동안 그 어떤 여자도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하지만 윤혜인이 귀국하고 처음 마주친 그날, 잃어버린 그 욕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이준혁이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너만이 나를 설레게 해.”“그만해요...”윤혜인은 더는 낯 뜨거워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이준혁이 그녀를 안고
아까 원지민과 문현미가 먼저 현장을 빠져나갔다.그들이 서 있던 곳에 이 약통이 떨어져 있었다. 금이 도금되어 있었기에 비서가 흘린 것 아닌 것 같았다.자세히 살펴보니 위에 M라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하여 원지민이 흘린 것인지 문현미가 흘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도금한 문양으로 보면 젊은이가 애용하는 문양은 아니었고 문현미가 좋아할 만한 문양에 더 가까웠다.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엄마가 흘린 거야.”전에 문현미가 들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문현미에게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몸에 좋은 약이 들어있다고 했다.이준혁이 보낸 사람이 문현미를 조사해 봤지만 딱히 특이점은 없었다.문현미는 평소에 원지민과 쇼핑하고 즐기는 것 외에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문현미의 상태가 정말 이상한 것 같았다.이준혁이 약통을 받아서 들며 이렇게 말했다.“성분 분석 맡겨볼게.”“네. 아무것도 안 나오길 기대해야죠.”윤혜인은 혹시나 잘못 생각한 게 아닌지 두려웠지만 그래도 검사하고 안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돌아가는 길 내내 이준혁은 윤혜인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요즘 거의 못 잤어. 눈을 뜨든 감든 다 네가 생각나서.”윤혜인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못 느꼈는데요.”오늘 윤혜인이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면 이준혁은 그녀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이틀이나 자기가 뒷전이었다는 생각에 윤혜인은 심술이 나는 걸 어쩔 수 없었다.윤혜인의 말투에 애교가 섞이기 시작했다.이준혁이 웃으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치더니 키스했다.“읍...”윤혜인이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이준혁에 의해 몸이 등받이에 밀착된 상태였다.이준혁이 혀로 윤혜인의 이를 가르고 요지를 공략했다.윤혜인은 저돌적인 키스에 못 이겨 신음했다.이준혁이 미소를 지었다. 약간 가빠진 숨을 참으며 이렇게 물었다.“이제 느껴져?”윤혜인의 얼굴이 순간 터질 것처럼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전에 부사장으로 있던 원지민이 이준혁의 아이를 뱄다니, 정말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이준혁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원지민은 이구운과 손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까발려졌을 때 어떤 후과를 감당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는 의미였다.이준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나는 그 아이와 아무 관계가 아닌 것 없는데.”“준혁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원지민은 큰 모욕이라도 당했다는 듯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부드럽고 온화한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강했던 원지민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 조금 믿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했다.이구운이 느긋하게 다른 보고서를 꺼내며 웃었다.“형, 나도 혹시나 우리 이씨 가문이 핏줄이 아니면 어쩌나 해서 특별히 친자 감정까지 했어요.”친자감정서에는 혈연관계가 99.99%로 적혀 있었다.이구운이 웃으며 말했다.“이 증거로도 부족해요? 아직도 이 아이를 부정할 거예요?”이준혁이 대꾸하기도 전에 이천수가 안으로 들어오며 호통쳤다.“나쁜 자식. 지민이 임신시킨 것도 모자라 인정도 안 하는 거야?”이준혁이 덤덤하게 말했다.“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 아이가 아니라고요. 이 감정 결과도 충분히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어요.”이천수가 코웃음 쳤다.“지민이가 뭐가 모자라서 가짜 감정서까지 위조해서 너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우겠어?”이준혁이 세 불청객을 쭉 스캔하더니 차갑게 웃었다.“혼자 계획한 일이 아닐 거예요.”이천수는 이준혁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여 얼른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못 믿겠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한번 감정해.”이천수가 점잖은 척하며 말했다.“근데 요새 지민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회복하면 그때 다시 하는 걸로 하자.”이준혁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들이 준비하는 쇼를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 사람은 한편으로 보이지만 사실 한편이 아니었다.원지민은 이용당하고도 멍청하게 아무것도 몰랐다.아
이구운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사실 진작부터 원지민이 독한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형수님, 흥분하지 마요. 이게 형수님을 돕는 거예요.”“돕는다고요?”원지민이 차갑게 웃었다.“이구운 씨 본인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돕는 거겠죠. 서자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이 말에 이구운의 표정이 음침해졌지만 이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형수님, 지금 같은 상황이 되어야 형님도 형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겠어요?”이 말에 원지민이 멈칫했다.이구운이 설명했다.“잘나갈 때 도와주면 기억도 못 해요.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야 감격하지.”원지민은 이구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이준혁은 궁지에 몰린 상태다. 원지민을 제외하고는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이구운의 옅은 수로 이준혁을 흔들 수는 있어도 무너트리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조금만 흔들어도 원지민에겐 기회가 될 것이다.이준혁이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감사실 사람들이 비서실로 들어가 박스에 자료를 마구 쓸어 담기 시작했다.의외인 건 문현미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현미는 원지민을 부축하고 있었다. 이준혁을 보는 눈빛이 어딘가 흔들렸다.“준혁아, 엄마 말 들으면 안 되겠지? 지민이랑 화해해...”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문현미는 아직도 이준혁이 원지민을 받아들이면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믿었다.원지민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울면서 하소연했다.“준혁아, 난 정말 이구운 씨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어. 내가 되돌릴게.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당연히 공짜는 아니었다. 도움을 받고 싶으면 이준혁도 진정성을 보여야 했다.문현미가 얼른 맞장구를 치며 이준혁을 설득했다.“준혁아, 지민이도 몰랐다잖니. 나는 지민이가 너를 사랑한다고 믿어.”이준혁이 웃었다.“두 사람이 원하던 게 이거였나 봐요?”“준혁아, 오해야. 나는...”“원지민, 나는 네가 그래도 총명한 여자인 줄 알았어. 근데 이구운보다 덜떨어진 사람일 줄은 몰랐다.”원지민이 미간을 찌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