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이준혁이 마음을 그렇게 곱게 먹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준혁이 보상을 요구했다.윤혜인이 입을 삐쭉거리더니 어색하게 허리를 꿈틀거리며 물었다.“뭘 원하는데요?”이준혁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거 다 만족해 줄 거야?”“그런 일이라면...”수줍음이 많은 윤혜인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하여 콕 집어 말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말했다.“절대 안 되죠.”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맞추더니 웃음을 터트렸다.“그런 일이 어떤 일인데?”“...”윤혜인은 귀까지 빨개졌다.“너무하네요. 정말.”이준혁은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계속 묻고 있었다.그는 장난을 멈추고 윤혜인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나 잘 챙겨줘야지.”이준혁은 일초라도 더 윤혜인과 함께 있고 싶었다.“그게 다예요?”윤혜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이준혁이 이 기회를 빌려 과분한 요구를 제시하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의 일관적인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행보였다.“왜? 별로야?”이준혁은 최대한 윤혜인을 핍박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윤혜인이 이를 불편해했다. 이준혁이 입을 앙다문 채 웃었다.“뭐 네가 몸으로 때우는 걸 좋아한다면 나도 기꺼이 받아들일게.”이준혁은 일부러 몸으로 때운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윤혜인은 얼굴이 하얘졌다가 빨개지기를 반복했다.“꿈도 꾸지 마요.”윤혜인이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준혁이 그녀의 팔목을 잡고는 얇은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이렇게 가면 안 되지.”이준혁은 습관적으로 명령조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사실 이준혁은 그냥 윤혜인의 발이 걱정될 뿐이었다.겉보기엔 큰 문제 없어 보였지만 계속 신발을 신고 있으면 안 좋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기서 하룻밤 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싫어요.”윤혜인이 이를 거부했다. 아까 두 사람이 엉겨 붙어 나눈 키스가 떠올라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이준혁이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내가 이런 몰골로 설마 무슨 짓 하겠어? 응?”이준혁이 다친 것도 윤혜인은
윤혜인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졌다. 무력함과 수치심에 휩싸여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윤혜인은 참지 못하고 내뱉은 신음에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래도 얼굴을 붉히며 반박했다.“아니요...”수줍어하는 윤혜인의 모습에 이준혁이 가볍게 웃었다.“안 미덩.”이준혁은 윤혜인의 귀를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때? 만족해?”애정 행각을 수도 없이 해온 터라 이준혁은 윤혜인이 느낄 때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었다. 아까도 곧 절정에 다다를 만큼 느끼고 있었다.윤혜인은 이제 목까지 빨개졌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헛소리하지 마요.”“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다시 깨물어보면 알겠네.”“싫어요!”윤혜인이 목을 최대한 움츠리며 얼굴을 감추려 했다.하지만 침대는 전부 이준혁의 영역이었기에 도망갈 곳이 없었다.이준혁은 모든 면이 정상인 건강한 남자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5년 동안 금욕했다.전에는 이준혁도 마음이 호수처럼 고요했기에 다른 쪽으로 새 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번 윤혜인의 행방이 묘연해질 때마다 이준혁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그때 이준혁에게 남은 건 칠흑 같은 어둠과 인고의 시간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윤혜인은 이토록 생기 넘치게 이준혁의 앞에 서 있다.욕망의 문은 한번 열리면 잘 닫히지 않았다.특히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그때를 회상하면 뼈까지 사르르 녹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욕구가 밀려올 때마다 이준혁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지금 이 순간, 키스 한 번에 5년간 참아왔던 그의 욕구가 터져버린 것이다.윤혜인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강렬했던 적은 업었다.이준혁이 바짝 다가와 낮은 소리로 유혹했다.“혜인아, 우리... 하면 안 될까... 하면 되게 편안해질 것 같아...”노골적인 멘트에 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윤혜인이 이준혁을 밀어내며 긴장한 말투로 말했다.“준혁 씨, 나는, 음, 안 돼요...”“혜인아, 나 5년이나 참았는데... 정말 안 되겠어?”
특히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장면이 너무 예뻐 미칠 것 같았다.남자의 숨소리가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윤혜인은 오늘 알았다.들숨 날숨을 쉴 때마다 아주 규칙적인 게 색기가 가득 묻어났다.윤혜인은 재미난 공연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발끝까지 빨개졌다.더더욱 어려웠던 건 이준혁을 부축해 욕실로 가서 씻어줘야 한다는 뜻이다.이렇게 생각한 윤혜인은 화가 치밀어올랐다.“어떻게 보면 지금 내가 준혁 씨 도와준 거잖아요... 그러니 지난번 그 녹음은 제발 지워요.”이준혁이 섹시하게 휘파람을 불었다.“시간 선택이 참 탁월하다니까?”이준혁의 기분이 좋아졌으니 목숨을 내줘도 아깝지 않을 타이밍이었다.녹음을 지우고 나서야 윤혜인은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침대에 기댄 자세도 전보다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다.윤혜인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자 뽀얗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이 드러났다. 이준혁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윤혜인에게 바짝 다가가 누웠다. 이준혁이 가까워지는 걸 느낀 윤혜인이 순간 멈칫했다.“또 뭐 하려고 그래요...”윤혜인이 안으로 조금 비키더니 기세등등하게 경고했다.“자꾸 이러면 나 진짜 가요.”윤혜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준혁이 키스했다.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운 키스였다.윤혜인이 마침 이를 피하려는데 남자가 먼저 그녀를 풀어주었다.그는 깊은 눈동자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준혁은 목소리가 세게 잠겨 있었다.“내가 도와줄까? 응?”이준혁은 윤혜인의 민감한 부분이 어딘지 알고 있다. 전에 이미 수도 없이 사랑을 나누었기에 윤혜인의 몸은 어느덧 탐색이 끝난 상태였다.길게 기다릴 필요 없이 몇분이면 바로 쾌감을 절정까지 치닫게 할 수 있었다.윤혜인은 얼굴이 너무 뜨거웠다.“싫어요. 안 할래요. 잘 거예요.”윤혜인이 이렇게 말하며 이불로 두 사람 사이에 38선을 만들었다.이준혁이 웃으며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옆에 잠들어 있는 튼실한 남자를 보자 윤혜인은 갑자기 잠이 오지 않았다. 이준혁의
육경한의 차가운 눈빛에서 강력한 소유욕이 느껴졌다. 몇 초간 눈빛을 주고받다가 소원은 티 나지 않게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육경한의 보디가드가 그녀를 막아서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쪽은 탑승 불가입니다. 다른 엘리베이터 기다리세요.”소원이 이를 듣더니 파일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거의 닫히려는데 육경한이 기다란 손으로 문을 막으며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육경한의 지인이라는 걸 알고 보디가드도 잽싸게 물러났다.소원은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말했다.“됐어. 고맙지만 사양할게.”육경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쪽 발로 엘리베이터가 닫히지 않게 버텼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도발 같았다.주위에는 이미 구경꾼이 모이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소원의 동료도 보였다.결국 보고만 있기 민망했던 소원이 엘리베이터를 타며 차갑게 말했다.“고마워.”소원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육경한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엘리베이터 문을 발로 막은 채 서 있었다.하마터면 소원은 육경한의 가슴에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그 전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섰다.육경한과 눈이 마주친 소원은 그 눈빛을 피하지는 않았다. 육경한은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인 채 소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더니 몸을 옆으로 살짝 비켰다.원래도 크지 않은 엘리베이터에 육경한의 보디가드 네 명까지 더해지자 소원은 육경한의 뒤에 설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육경한이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순간 육경한의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이에 소원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거리를 유지했다.중요한 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에 소원은 한쪽이 찢어진 정장 치마를 입고 있었다. 육경한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시선을 살짝 아래로 늘어트리고 거울로 그녀의 옷차림을 훑었다.소원의 몸매는 한결같이 쭉쭉빵빵했다.똑같이 하얀 셔츠를 입어도 다른 사람이 입으면 작업복, 그녀가 입으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멋이 있었다.아무리 원래
소원은 육경한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라 잠시 멍해졌다.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보아 농담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러자 소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대표님, 요즘 여자들은 일편단심인 남자를 좋아해요. 당신처럼 몇 번이나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진 남자는 무릎을 꿇고 빌어도...”그녀는 육경한의 넥타이를 가볍게 정리하며 조롱하듯 말했다.“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요.”육경한은 자신이 한 여자로부터 이런 모욕을 당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즉 서울에서 내쫓아 다시는 이곳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하지만 소원이었기에 육경한은 말문이 막혀 화를 억누르려고 애썼다.여자의 푸른 눈동자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그가 예전에 자신에게 주었던 모욕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있었다.“소원, 네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가운 눈빛으로 육경한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복수하려면 다른 방법을 써. 이런 식으로는 날 화나게 할 수는 없어.”“대표님, 왜 그렇게 확신해요? 내가 복수하려는 거라고?”소원은 남자가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그 영상이 보고 싶다면 지금 보내드릴게요. 육 대표님도 예전에 찍었던 적 있으시잖아요? 친구들한테 보여줬던 거 아니예요?”그녀는 남자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보며 무심하게 물었다.“내 몸매가 좋다고 칭찬하던가요?”소원의 말 하나하나가 육경한의 마음을 할퀴며 상기시켰다.그가 예전에 했던 일들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철저히 비열했는지 말이다.“띵-”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왔다.소원은 말을 더할 필요 없다는 듯이 남자의 손을 힘껏 밀어내고 나가려 했다.그러나 육경한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내가 보상할게.”그러자 소원은 마치 엄청 재미난 농담이라도 들은 듯 크게 웃었다.“보상이라니... 어떻게 보상할 건데요?
소원의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흐릿해졌다.조금 전, 육경한의 앞에서 분노와 원망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충동적인 성격이라 그녀는 때로 그 증오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몸 안에 언제든지 튀어나올 것 같은 원령이 살고 있는 듯, 그것은 소원을 조여오며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그 모든 고통의 근원은 바로 육경한 때문이었다. 5년, 무려 5년이었다.처음에는 절망감에 휩싸여 수없이 죽고 싶어 했지만 이후에는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와 일하고 생활했다.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녀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달라 보였다. 그러나 그녀만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심장은 결코 치유되지 않았고 이미 썩어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살아있지만 마치 시체처럼 살아가는 기분이었다.그녀는 대량의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자신을 치료하려 했으나 그 이유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언젠가 후회 없이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코너를 도니 앞의 밝은 불빛이 눈부시게 비쳤다.소원은 쓸데없는 눈물을 삼키고 다시 무장하며 무너지지 않게 자신을 다잡았다.‘나만 이렇게 밤새 잠 못 이루고 고통받을 수는 없어...’회의가 끝난 후, 소원은 아인 그룹의 임원들과 함께 뷔페식 저녁 식사에 참석했다. 소원의 아인 그룹 상사는 권력 있는 반지음이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며 온화한 성격으로 소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사실 소원은 귀국하기 전 이미 사직했지만 반지음은 그녀가 귀국 후 회사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인 그룹의 한 프로젝트에 협력자로 참여하도록 초대했다. 반지음은 소원을 배려하여 아인 그룹의 큰 나무 아래에서 인맥을 넓히는 것이 그녀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원은 흔쾌히 받아들였다.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 회사 운영을 계획했기에 이렇게 하면 육경한의 의심도 피하기 쉬워지니 말이다.게다가 그녀는
한편 육경한은 예상치 못하게 두 걸음도 채 가지 않아 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에 의해 길이 막혀버렸다.그녀는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어느 집안의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는 가상했다.소원은 누군가가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바비큐가 준비된 뷔페식이 있었고 커다란 선풍기가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어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손에 있던 과일주가 거의 다 떨어져 소원은 뷔페 음료 구역으로 가서 다시 주문했다.이 과일주는 매실로 만든 것으로 새콤달콤하고 부담 없이 마시기 좋았다.그렇게 과일주를 다 받고 자리를 찾으려는 순간, 소원은 누군가와 부딪혔다.그 결과, 한 잔 가득 담긴 과일주가 소원의 치마에 절반 이상 쏟아졌고 일부는 상대방의 신발에도 튀었다.“네가 부딪힌 거야!”뱃살이 두툼한 기름진 중년 남자가 소원을 일반 직원으로 착각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남자가 먼저 자신과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보고 소원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응시하며 말했다.“그쪽이 저를 친 거잖아요.”“이런 하찮은 게... 너 눈멀었어?!”하지만 곧 느끼하게 생긴 중년 남자는 소원의 뛰어난 외모를 보고는 놀라 눈을 번쩍 뜨며 말문을 닫았다.“아니, 이렇게 예쁜 아가씨라니...”남자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소원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이렇게 예쁜 아가씨면 무슨 실수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아가씨, 아가씨 때문에 내 허리가 너무 아파. 어떻게 보상할 생각이야?”느끼한 목소리와 드문드문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정말 역겨웠다.사실 소원은 이 남자가 누군지 처음 보자마자 알아봤다. 그는 인심 그룹의 조 대표였다.그는 아인 그룹의 장기 협력 공급업체 대표였고 이번 아인 그룹의 입찰에서도 유력한 후보였다.소원의 이름을 건 회사도 이번 입찰에 참여했는데 인심 그룹의 아래 순위에 있었다.즉, 조 대표를 배제하면 소원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었다.게다
몇 번 밀어붙인 후 몇십만 원만 더 주면 말없이 따르게 될 거라 예상했다.‘어쩌면 여러 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업계의 규칙상, 이런 ‘뇌물’에 관한 일은 서로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여자가 고소할 수도 없었다.소원은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매혹적으로 웃었다.“그럼 마실게요, 조 대표님.”그녀의 웃음은 강력한 매력을 뿜어내며 조 대표의 혼을 쏙 빼놓았다.그는 소원이 망설임 없이 술잔을 들고 단숨에 마시는 것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그러고는 음흉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기억해내려 했지만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았다.마음이 이미 조급해진 그는 소원을 강제로 홀로 끌어들였다.“우리 위층에 가서 쉬자...”위층에는 회의실과 휴게실이 많이 있어 아무 방이나 찾아 즐길 수 있었다.소원은 조 대표의 손을 밀어내며 옆에 있는 작은 인공 숲을 가리켰다.“조 대표님, 위층에 가는 건 번거로워요. 저기 수영장 옆에 정자가 있잖아요...”그러자 조 대표는 눈빛을 번쩍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생각지도 못한 소원의 좋은 아이디어에 그는 더욱 흥분했다.야외에서 하는 것은 더 자극적이었다.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 생각했는지 그는 다급히 말했다.“아유, 이쁜이. 빨리 가자!”조 대표는 소원을 끌고 서둘러 걸어갔다.하지만 그때, 소원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조 대표님, 천천히 가요, 저 머리가 어지러워요!”“천천히? 오빠 못 참겠는데?!”아직 정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조 대표는 벌써 참지 못하고 소원의 허벅지를 만지려 하며 음흉하게 웃었다.“옷이 젖었네, 내가 벗겨줄게...”그러자 소원은 문득 뒤로 물러섰다.“조 대표님, 저 안 갈래요.”잠시 당황해 멍해 있다가 조 대표가 달래며 말했다.“그러지 말고 가자. 저기 앞이 얼마나 편한데, 누울 곳도 있어...”“저 안 갈래요. 방금 주신 술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몸이 너무 불편해요.”조 대표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