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끝마친 뒤, 그녀는 소원을 끌고 갔다. 이준혁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말이다.발목이 아픈 탓에 걸음걸이가 조금 어색했지만, 그녀는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정상적으로 걸으려고 애썼다.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녀와 달리 뒤에 있는 이준혁의 안색은 어두웠다.정유미는 지갑을 건네받으며 중얼거렸다.“준혁 씨 전처 친구라는 사람 진짜 무섭네요. 전처도 선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다행이에요. 이미 이혼해서.”이와 동시에 정유미는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이윽고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는 이준혁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와 마주했다.“정유미 씨, 누가 당신 말이 다 맞는 거라고 가르쳤죠?”얼음같이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정유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녀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준혁 씨, 나는...”정유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는지라 이준혁은 그저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 사람은 나한테 매달린 적 없어요. 내가 매달렸지.”정유미는 표정이 일그러졌고 마음도 상했다.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준혁 씨. 삼촌께서 분명히 앞으로 내가 준혁 씨 아내가 될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내 아내 될 사람은 아버지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이준혁은 더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자신의 지갑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이만 가보세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네요.”...IFC몰 입구.윤혜인의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른 것을 보고 소원은 화가 치밀어올랐다.‘이준혁 이 개자식!’걸으면 걸을수록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소원은 윤혜인을 부축해 입구에 도착해서 말했다.“내가 차 몰고 올 테니까 넌 여기서 나 기다려.”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입구에 앉아있던 윤혜인은 갑자기 코끝이 시큰거렸다.그러다 얼굴에 웬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고, 손을 뻗어 만져보고 나서야 그녀는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
한구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는 여자의 집에서 샤워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바라보았다. 화장기 없는 작은 얼굴은 유난히 하얗고 매력적인 분홍빛이 감돌았다.따스한 불빛 아래, 한구운은 심지어 그녀의 하얀 볼에 있는 작은 솜털까지 보아냈다. 입을 맞추고 싶은 얼굴이었다.한구운 역시 정상적인 보통 남자인지라 잠시 쳐다보고 있으니 곧바로 느낌이 전해졌다.그가 윤혜인에게 물었다.“그래도 괜찮겠어?”윤혜인은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후회스러웠다.“미안해요, 오빠.”그녀는 한구운을 이용할 생각을 조금 갖고 있었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바로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내 일을 나 스스로 해결해야지.’윤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수건 줄 테니 좀 닦아요.”그때, 한구운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의아해하며 돌아보는 윤혜인의 시선에는 반짝이는 한구운의 그윽한 눈동자가 들어왔다.“나 너 도와줄 수 있어.”여전히 의심스러워하는 윤혜인의 표정을 보고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내가 네 남자친구가 되어주면 되잖아, 맞지?”윤혜인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한구운의 목소리가 조금은 유혹적으로 들렸다.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구운은 일어나 외투를 벗고 손가락으로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샤워하러 갈게.”역시 한구운이 욕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윤혜인은 ‘딩동’하는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현관문 방범 렌즈를 통해 이준혁이 문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윤혜인은 문을 열지 말지 망설였다.뒤이어 이준혁은 벨도 누르지 않고 바로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윤혜인은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급히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이준혁의 시선은 바로 윤혜인의 얼굴에 떨어졌다.원피스 잠옷 차림에 머리카락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분홍빛을 띠는 것을 보아, 그녀는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것 같았다.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준혁은 몇 달 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 것처럼
윤혜인은 평소처럼 침착하게 몸을 돌려 수건을 가져와 화장실 안에 넣어주었다.“이 대표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이세요?”이준혁은 어리둥절했다. 더욱이는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웠다.한구운은 윤혜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대표님을 안으로 모셔야지, 왜 입구에 그냥 서 있으시게 만들어?”“시간이 너무 늦었잖아요.”윤혜인이 무표정하게 말했다.두 사람은 마치 이 공간에 이준혁이 없는 것처럼 친밀하게 행동했다.그는 얇은 입술을 꼭 다물고 새빨개진 눈으로 윤혜인을 바라보았다.“두 사람, 잤어?”상처받은 그의 검은 눈동자가 보이자 윤혜인은 잠시 혼란스러워졌다.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기며 버럭 화를 냈다.“너한테 묻잖아, 두 사람 잤냐고?!”한구운도 손을 뻗어 이준혁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그에게 세게 밀리고 말았다. 뒤이어 이준혁은 주먹을 높이 들고 한구운을 때리려고 했다.그러자 이번에는 윤혜인이 그를 단번에 그를 밀어내고 차갑게 말하는 것이었다.“이준혁 씨, 구운 오빠를 다치게 한다면 그냥 안 넘어갈 줄 알아요!”이준혁의 주먹은 공중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렸다.‘웃겨, 너무 웃겨.’전에 그는 윤혜인과 한구운이 정말 사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게다가 이준혁의 조사에 따르면 그들 두 사람은 부모님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연인 행세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래서 이준혁은 윤혜인이 한구운의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고 천천히 그녀를 빼앗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그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두 사람이 이미 잔 사이라니!다른 사람도 아닌 한구운이다. 그들의 결혼 기간 동안 줄곧 윤혜인에게 매달린 남자 말이다.한구운은 그들의 결혼에 여러 차례 도발을 행한 남자였다.‘누가 되든 다 괜찮은데, 왜 하필 한구운인 거야.’이준혁은 더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 심지어 조금 역겹기까지 했다.그는 손도 쓰고 싶지 않아 천천히 주먹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그 사람과 나는 가능성이 없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하고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시도해볼 만 하다고 생각해.”보여주기식 연기를 할 때 한구운은 꽤나 잘했었다.외모가 되는 사람은 원래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 쉽다. 게다가 한구운의 눈은 조금의 불순물도 없이 특히 깨끗하고 순수했다.윤혜인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약간 어리둥절했다.하지만 한구운 모습도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윤혜인은 그다지 방비하지 않았다.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어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저 아직은 연애할 생각 없어요. 이렇게 훌륭한 오빠한테는 더 좋은 여자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윤혜인, 자신을 비하하지 마. 내 눈에 너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야.”당당하고 진실한 한구운의 말은 정말 윤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윤혜인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가 또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네가 더 넓은 무대로 나가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닐 거야. 그러니 너무 서둘러서 거절하지 말고 내 체면을 봐서라도 한동안 좀 고민하고 결정해줘.”윤혜인은 그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남자의 이런 열렬한 고백을 별로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준혁에게서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녀와 이준혁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 그녀의 마음속에 이준혁은 신과 같은 고고한 존재였다.그가 그녀를 무시한 적이 없더라도 윤혜인은 자신이 이준혁과 사귈 자격이 없다 생각하며 항상 자신을 압박해왔다.사실 학생이던 시절 아무도 그녀를 쫓아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윤혜인은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타지에 남자친구가 있다는 거짓말을 지어내며 남자들을 막았다.나중에 결혼하게 되자 그녀가 속한 커뮤니티는 더욱 작아졌고, 거의 남자를 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윤혜인에게는 다른 마음이 없었다.한구운의 고백은 그저 구애에 가까웠지 강요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결정권은 여전히 윤혜인에게 있었다. 거절하려고 해도 그녀는
김성훈 그의 말이 독하다는 것을 보아냈지만 마음속으로 믿지 않았다.“괜찮을 거야. 그러게 왜 자꾸 돌아가서 혜인 씨 일 막아? 넌 할 일도 없냐?”이준혁은 술잔을 깰 것처럼 두 손가락으로 꽉 쥐고 있었다.“이번엔 진짜야. 앞으로 혜인이가 뭘 하든 나랑 상관없어.”김성훈이 또 물었다.“왜, 혜인 씨가 너한테 미움이라도 샀어?”육경한도 옆에서 별일 아닌 듯 치부했다.“여자한테 뭘 그렇게 마음을 써. 그냥 다른 여자 몇몇 만나서 놀면 전부 잊혀질거야.”이준혁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런건 흥미 없어.”육경한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혜인 씨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반응하지 않아?”그러자 이준혁이 그를 힐끔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거 아니야.”반응하는지 안 하는지도 사실 몰랐다. 애초에 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하지만 육경한이 말했듯이 이준혁은 정말 윤혜인을 만나야만 그런 일을 떠올리지 다른 여자에게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그는 초조한 듯 담배를 입에 물고 한 모금 빨아들였다.김성훈은 육경한을 가볍게 툭 차며 웃었다.“불난 집에 부채질 좀 하지 마. 내가 지금 여자 불러주면 너 하러 갈 거야?”육경한이 눈썹을 치켜올렸다.“하지, 왜 안 해? 김 교수님께서 쏘시는 건데 감사히 받아야지.”“꺼져, 인마.”김성훈은 배시시 웃으며 또 한 번 그를 가볍게 툭 찼다.“요즘 소원 씨랑 또 침대에서 뒹군다던데, 왜, 다시 합하게?”“아니, 그냥 요즘 꽤 흥미가 생겨서.”소원을 생각하니 육경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요즘 그녀는 매우 빠릿빠릿해졌다.소원이 지난번 자신이 육경한을 좋아한다고 말한 후부터 침대 위에서의 모습이 많이 변한 것 같았다.그렇게 육경한은 중독되게 되었다. 이전처럼 분출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김성훈이 말했다.“척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그러자 육경한은 고개를 돌렸다.“남자가 그걸 좋아하는 게 정상이지. 모두가 너처럼 동자 스님이라도 되려는 줄
김성훈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마음속에 네가 있으면 여자는 네가 몇 마디만 해줘도 마음이 사르르 약해져. 하지만 네가 마음속에서 사라지면, 그때는 네가 뭘 말해도 여자는 신경 쓰지 않아.”그의 말을 들은 이준혁은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그렇다. 윤혜인의 마음속에는 현재 그가 없다.심지어는 이준혁이 마음에 없을 뿐만 아니라 상처 주는 법까지 배워 그의 마음을 마구 찌르고 있다.그러나 다행히 이준혁도 이제 정신을 차렸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난 뒤로 그는 머리가 조금 냉정해졌다.“아버지가 정씨 집안의 대체 에너지를 원한다면 우리도 그 소원을 도와줘야지. 가능한 한 빨리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야.”김성훈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연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연기가 아니라 진짜야.”이준혁은 길고 예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정씨 집안도 그렇게 멍청한 건 아닐 테니 회사의 발전과 딸의 결혼을 엮자는 않을거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유리한 면이 보이면 정씨 집안도 자연히 흥미를 느끼겠지.”김성훈은 심장이 덜컹했다. 이준혁은 손을 쓰는 순간 상대방의 급소를 노리기 때문이다.그가 천천히 말했다.“네가 감정적인 문제에서 머리가 깨어있었다면 이혼에 이르지도 않았을 거야.”‘역시 하느님은 공평해. 다른 사람은 꺾을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너에게 주는 동시에 어느 다른 한 부분은 꼭 부족하게 만들었으니까.’이준혁은 이마를 어루만지며 불쾌한 듯이 말했다.“혜인이 더 언급하지마, 나랑 상관없어 이제.”김성훈은 어떤 기분인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웃었다.이준혁이 이렇게 거듭 말하는 것은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속이려는 것뿐....육경한은 나오자마자 오아시스 아파트로 향했다.이곳은 그가 소유한 수많은 건물 중 하나였고 최근 육경한은 이곳에 소원이 살 곳을 마련해주었다.건물 아래에 있을 때, 그는 단번에 18층의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소원이 집에 있다는 뜻이었다.육경한은 그곳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1
집 안에서.소원은 새빨개진 눈으로 쓰레기통에 있는 핏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침을 하며 뱉은 것이었다.얼마 전에 의사는 그녀가 중증 위궤양이라고 진단했다. 가능한 한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는 위암이라고 하면서 말이다.최근 회사에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녀는 고객과 함께 죽도록 술을 마셔댔었다.술자리에서 그녀는 절대 취하지 않는 인물로 유명했다.사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억지로 토를 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그렇지 않으면 소원과 같이 혼자 있는 여자는 취하면 쉽게 침대로 끌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토를 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탓에 위산이 역류하여 그녀는 위에 매우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그녀는 조금 짜증이 났다. 병원에서는 내일 재검사를 진행하라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녀는 매우 무서웠다.‘만약 정말 위암이면 어떡해...’소원의 부모님 모두 현재 건강이 좋지 않고 또 아이라고는 딸 하나밖에 없으니 만약 그녀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괴로워할 것이다.소원은 더이상 생각하기가 싫어 쓰레기봉투를 치우고 휴지로 덮은 뒤 공기 탈취제를 뿌렸다.그녀는 정성스레 음식을 한 테이블 차려놓고는 육경한과 함께 먹으려고 기다렸다.육경한은 항상 늦게 들어왔고 소원 역시 늦게 준비했기에, 그녀는 육경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10분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집?’소원은 화면에 보이는 ‘집’이라는 글자를 보고 넋을 잃었다.‘나랑 경한 씨의 집?’이곳은 기껏해야 그가 카나리아를 가두고 기르는 소굴일 뿐이다.오늘 백화점에서 계속 말을 하려다 마는 윤혜인의 모습을 보고 소원은 그녀가 분명히 자신의 몸에 있는 상처를 보고 걱정했을 것으로 추측했다.그리고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소원은 육경한이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사실 그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소원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은 육경한을 증오하는
‘한 번이면 충분하지, 또 나를 속이려 들어?’눈동자가 움츠러들더니 육경한이 또 한 번 독한 소리를 내뱉었다.“안 나가고 싶어? 되지. 그럼 너희 엄마한테 내가 손님 접대하러 갈 시간 있는지 물어볼까?”말을 끝마치자마자 그는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자 불편한 몸을 뒤로 한 채, 소원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나 갈 수 있어.”육경한은 경멸이 찬 눈빛으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소원은 아픈 몸을 이끌고 육경한의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차는 미친 듯이 달려 한 클럽에 도착했고 소원은 내리자마자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위산 역류가 너무 심해 소원은 티슈를 꺼내 입을 닦았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핏덩이가 한 움큼 묻어났다.불편함이 조금 해소되자 그녀는 몸을 곧게 폈고 육경한은 소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클럽에 들어섰다.소원은 서둘러 따라갔다. 어느새 이미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육경한은 그녀가 들어오려는 것을 봤음에도 냉정하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갑자기 엘리베이터에 끼인 소원은 하마터면 또 피를 토할 뻔했다.그리고 그런 소원을 보는 육경한의 눈빛에는 조롱이 담겨있었다.순간, 소원의 마음도 차갑게 가라앉았다.‘도대체 뭣 때문에 이러는 거지? 분명 요즘 우리 관계는 많이 좋아졌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거지?’그녀가 주저하며 물었다.“왜 그래, 경한 씨? 무슨 할 말 있으면 나랑 직접 얘기하면 안 돼?”곧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육경한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 룸에 들어가기 전, 그가 멈춰 섰다.“소원, 또 한 번 더 나를 갖고 장난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아니, 난...”육경한은 미소를 짓더니 동영상을 클릭해 보였다. 뒤이어 윤혜인과 나눴던 대화가 소원의 귀에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들려왔다.순간 그녀의 얼굴이 눈처럼 창백해졌다.“경한 씨, 진짜 이런 거 아니야. 이 동영상 뒤에...”육경한이 소원의 목을 세게 잡더니 그녀의 몸을 벽에 ‘쾅’하고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무자비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