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흥하고 코방귀를 뛰며 나갔다. 윤혜인은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을 만큼 후회되였다. 방금 무슨 쓸데없이 입을 놀리다니.남자를 아까워하면 재수가 없고 남자를 동정하면 불행해진다고 지당한 명언을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이준혁과 같은 침대에서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잤는지 의문이었다.그들은 지금 서로 사랑해서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이준혁이 오기를 기다려서 윤혜인 평온을 회복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준혁 씨,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돌아가세요.”이준혁은 그녀를 주시하며 냉소했다. “이제야 시간이 늦은 걸 알았어?”“한밤중에 남녀가 함께 있으면 오해를 사기 쉬워요.”윤혜인은 원래 새로 사귄 여자친구가 오해 할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또 괜히 질투한다고 여길까봐 완곡하게 일깨워준 것이였다. 이준혁의 귀에 닿은 말들은 흔히 의미가 바뀌었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한구운이 오해할가봐 두려운거지? 하긴 이미 6억원이나 쓴 여자가 나랑 자면 어떻게 되겠어?”이 말은 귀에 거슬려 윤혜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차거운 얼굴로 재촉했다. “그만 가세요.”이준혁은 오히려 더 밀어붙쳤다. 이불을 들치고 침대에 오르더니 윤혜인을 품안에 안았다. 그의 몸은 너무 뜨거워서 몸이 닿으니 마치 난로같았다. 윤혜인은 몸부림쳤지만 되려 그는 뒤에서 두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앞에서 깍지꼈다. 그는 위협적으로 말했다. “자중해. 함부로 나를 유혹하지 말고.”윤혜인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녀는 본래 배가 아파 그와 다투기도 귀찮았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그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큰 손이 줄곧 그녀의 아랫배를 문지르고 있어서 마치 따뜻한 난류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편안했다. 아랫배까지도 편해졌다. 고요한 밤, 이준혁은 눈을 내리깔며 그녀의 가늘고 하얀 목덜미를 잠시 보더니 목젖이 오르내렸다. 눈속에
문앞윤혜안운 마음이 갑자기 다급해졌다. 그것은 사람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당황함이였다. 그녀가 방금 자신이 집에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한구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당황했지? 소원한테 물었더니 네가 집에 있다고 하길래 밖에서 기다렸어. 급하지 않으니 일어나서 씻어.”갑자기 윤혜인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났다. 그녀는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고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으음...”옅은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윤혜인은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으며 그의 말에 대답을 하고 급급히 전화를 끊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남자를 자신의 몸에서 밀쳐내며 잠옷을 움켜쥐더니 화가 나서 손을 내들어 뺨을 때리려 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였다. 누가 아침부터 그더러 정당치 못한 일을 하라고 했던가.그러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가자 이준혁의 손에 되려 잡히고 말았다.그는 그녀를 흘겨보며 눈빛을 깊이 숨겼다. “내 여자만 때릴 자격 있어. 그래도 때릴 거야?”윤혜인은 즉시 손을 거두어들이며 때리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왜? 벌써 쫄기는, 다른 남자를 꼬실 땐 오히려 신나하더니.” 그의 눈빛과 어조는 마치 그녀가 외도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이 남자와 어울리기만 하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미 이혼한 이상 더는 다른 감정이 자신을 좌우지하게 해서는 안된다. “대표님께서 오해하셨어요.”윤혜인은 웃으며 말했다. “다른 남자가 아니라 제 남자 친구인데요.”“남자 친구? 그런데도 지금 나랑 이러고 있는거야?”이준혁은 입가에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윤혜인, 너무 까졌네.”윤혜인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를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오히려 한가지 일이 더 미쩍었다. “대표님, 뭣때문에 이렇게 집착하시는 거죠?”그녀는 눈동자를 깜박거리더니 마치 자신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한 것
전형적인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다.윤혜인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떤 일들은 확실히 해야 했다. “대표님, 가실 때 문 닫는 거 잊지 마세요. 그리고...“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 더 이상 이사하고 싶지 않아요.”이왕 끊을 거라면 깨끗이 끊고 싶었다. 그녀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이준혁은 약간 차가운 눈빛으로 윤혜인을 바라보며 가슴이 무시할 수 없을만큼 아팠다. 그녀는 다시 그를 좋아하지 않겠다고 완전히 포기한건가?윤혜인이 그의 앞으로 지나다가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네 말이 맞아. 널 사랑하게 된 것 같아. 너도 알잖아. 한가지 일에 확신하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거.”이준혁은 손을 뻗어어 윤혜인의 하얖고 부드러운 얼굴을 어루만지며 또박또박 말했다. “더 이상 고집 부리지마. 이번생은 나한테 벗어날 생각하지 마.”윤혜인은 그자리에 멍하니 굳어진채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녀는 고의적인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가 태연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인정하리라고 도무지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그를 이윽토록 응시하다가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변태에요?”방금 그를 향해 거드름을 피우던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소름뿐이였다. “이제야 알았어?”이준혁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이런 이준혁의 모습은 윤혜인더러 끔직했다. 그녀는 그가 수단이 많은 사람인걸 알지만 다만 전에 한 번도 그녀에게 쓴 적이 없었다. “준혁 씨, 미쳤어요? 날 사랑한다고 하면 내가 돌아갈것 같아요?”윤혜인은 화가 났는지 무서웠는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준혁 씨한테 돌아갈 일은 없을거에요.”“그래.”그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마치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이준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그녀가 주제넘은 행동을 비웃는 것 같았다. “모르지. 혹시 나한테 부탁하며 내곁으로 돌아오고 싶어할지도.”윤혜인은 손이 계속 떨렸다. 앞에 있는 무례한 남자
윤혜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재결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재결합할 생각이 없어요. 어젯밤에 제가 몸이 불편해서 그가 여기 남아 돌봐주었을 뿐이에요.”그녀는 한구운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혼한 후부터 그녀는 재결합할 생각이 없었고 이준혁과 죽어도 상종하지 않을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금 그의 말은 그녀를 두렵게 했다. 그가 심지어 한구운과 여유롭게 인사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자시가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할 수록 화가 났다. 그가 사랑하는 건 그녀가 아닌 관계를 나눌 수 있는 그녀의 몸이 었다. 한구운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다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금 무슨 말을 하려던 거야?”윤혜인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미안한 어조로 말했다. “선배, 우리 그만 만나야 될것 같아요.”한구운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며 물었다. “왜?”윤혜인은 한구운의 어두워진 안색을 보더니 의아해졌다. 게다가 손에 힘이 세서 그녀를 아프게 했다. 그녀는 할수없이 입을 열었다. “선배...”한구운은 그제야 알아채고 손을 떼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미안해. 혜인아, 실례를 범했어.”그의 다정한 웃음은 봄바람 같아서 윤혜인의 의혹을 날려버렸다. “괜찮아요.”“그럼 두 번째로 차인 거네. 또 이준혁때문이야?”윤혜인 부정하지 않았다. “전 선배의 사업에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워요. 아무래도 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한구운은 쓸쓸하게 웃었다.“이미 영향을 끼쳤다면 어떡할래?”윤헤인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나 AI에서 해고되었어. 거래를 조작해 앞으로 투자은행에 취직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한구운은 비록 가볍게 말했지만 윤혜인의 가슴에는 파도가 일고 있었다. 선배가 여러 해 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결국 자기
그 여자가 마약을 과다 복용해서 죽을 때,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구급차도 부르지 않았다.그는 죄가 있는 그 여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빤히 지켜보기만 했다.그는 슬픈 감정을 감추어 가며 말했다.한구운의 제안은 꽤 좋아 보였지만 윤혜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전 아직 그런 생각은 없어요.”그녀는 해외로 가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혼자서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한구운은 매우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급해하지 마. 아직 반년 남았어. 그때 가서 네가 가고 싶다면 내가 데리고 갈게.”윤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구운과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구운 오빠, 잠시만요.”그리고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그의 어머니가 준 돈봉투를 꺼내 한구운에게 건네주었다.한구운은 돈봉투를 보자 즉시 거절했다.“혜인아, 괜찮아. 그날 고생 많았어. 이건 당연히 네가 받아야 해.”하지만 윤혜인은 고집을 부리면서 끝내는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함부로 받을 그녀가 아니었다.집을 나선 후.한구운의 나긋나긋한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윤혜인의 망설임 없이 거절하던 모습을 생각하자 뜻밖으로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그러지 말아야 했는데.설마 그가 정말 윤혜인에게 관심이 생긴 걸까?휴대전화가 울리자 그는 전화를 받았다. 맞은 편에서 무슨 말을 했다.그러자 그는 고개를 돌려 윤혜인의 집 창문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행적을 그녀에게 알려 줘서 걸려들게 해.”...서울 정신 병원.임세희는 어둡고 작은 방에 갇혔다.그 방에는 창문도 없었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마치 죽은 사람 냄새 같은 악취가 났다.발밑에는 쥐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떤 쥐는 심지어 그녀의 발 위로 기어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놀라서 마구 뛰어다니다가 죽은 쥐를 밟는 게 더 두려웠다.이 방은 그녀가 도망치다가 실패한 징
그의 말을 들은 임세희는 멍해졌다. 남자의 목소리는 맑고 촉촉했지만 이준혁의 목소리는 아니었다.그러자 그녀는 재빨리 반응하며 말했다.“이 목소리는 준혁 오빠가 아니야. 그럼 넌 누구야? 누구냐고!”“나?”젊은 남자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널 구하러 온 사람이지.”임세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날 구한다고? 왜?”젊은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네가 임신했어. 알고 있었어?”“내가... 임신했다고?”임세희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굳어졌다.어쩐지 요즘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그녀는 방안의 악취를 너무 맡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임신했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럼 이 아이는 그 빌어먹을 송휘재의 아이일 것이다.게다가 그 기간 그녀는 이준혁을 속이기 위해 병든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주사를 많이 맞았다. 그래서 이 아이는 태어나도 기형아기에 절대 낳으면 안 되었다.그녀는 무릎을 꿇고 젊은 남자에게 빌었다.“제발 이 아이를 없애주세요. 기형아를 낳아서 절대 안 돼요.”“쳇.”남자는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지금부터 배 속의 아이를 지켜야 해. 괴물이든 기형아든 낳아야 해. 네 아이만이 널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임세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그럴 수 있어요? 제가 정말 예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그래.”남자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 떠났다.무거운 철문이 다시 쾅 하고 닫혀버렸다.임세희의 마음속에 다시 희망이 생겼다.그녀의 가족들도 모두 그녀를 포기했고 이제 모든 게 그녀 자신에게 달렸다.독이 묻은 해독제라 해도 살 수 있다면 그녀는 삼켜야 했다.그녀는 나가서 윤혜인에게 직접 복수하고 싶었다.‘모두 그 천한 년의 잘못이야. 빌어먹을 년. 죽어도 마땅해!’...화요일 아침.윤혜인은 제시간에 별장에 도착했다.이신우는 없었고 집에는 도우미 아주머니뿐이었다.이하진이 위층에 있다는 말을 듣고 윤혜인은 바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자
윤혜인은 오기 전에 이미 이하진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어떻게 그에게 당했는지 조사를 했다.이하진의 수단에 맞서야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어찌 됐든 그가 썼던 수단으로 그에게 거울 치료를 해야 했다.이하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누가 털도 다 자라지 않았다고 해요? 한번 보실래요...”윤혜인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이하진에게 이게 성추행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이하진은 순식간에 목이 메어왔다. 이렇게 어려운 상대는 처음이었다.“선생님은 정말...”말문이 막힌 그는 윤혜인을 한참 가리키다가 말했다.“뻔뻔하네요!”그러자 윤혜인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아까 누가 뭘 보여준다고 한 것 같은데.”도대체 누가 뻔뻔하냐고 되묻는 뜻이었다.이하진은 완전히 그녀의 기세에 밀렸다. 자신보다 더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그는 이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창피해서 차마 울지는 못하고 화가 나서 머리를 움켜쥐었다.윤혜인은 뒤에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얘야, 아니면 나랑 협력할래?”“전 아이가 아니에요!”이하진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의 키는 윤혜인보다 30cm 정도 더 컸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윤혜인이 성추행을 말했던 게 생각나서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그 모습을 본 윤혜인은 담담하게 웃었다. 자신이 그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문백 교육센터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업적도 없고 학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이하진을 잘 가르치는 것이 가장 빨리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이었다.그녀는 말을 이어갔다.“지난번에 했던 말이 기억나? 나랑 내기 한번 하자.”이하진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좋아요.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요.”“그럴 일 없을 거야.”“네! 그럼 다음 주 금요일로 하죠.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세요.”이하진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다음 주 금요일을 선택한 건 그날에 이신우가 해외로 가면 아무도 그를 단속할 수 없었기 때문
이신우는 긴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었고 셔츠 단추는 단 하나 남기고 다 풀어졌기에 크고 튼튼한 가슴 근육이 한눈에 들어왔다.윤혜인은 잠시 어리둥절해져서 어쩔 바를 몰랐다.흐트러진 옷을 입고 있던 여자가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서 윤혜인을 욕했다.“당장 꺼져.”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윤혜인은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고는 재빨리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문을 잠그고 나가려는 그녀를 본 이신우가 말했다.“잠깐만요.”이 말을 들은 윤혜인은 또 한 번 멍해져서 문을 등지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가는 것도 아니고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이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뻔했다.“내려가서 기다리세요.”그는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윤혜인은 재빨리 아래층으로 달려갔다.문이 다시 닫히는 것을 본 여자는 다시 이신우에게 자기 몸을 가져다 댔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는 아까처럼 흥분을 느끼지 못했고 몹시 냉담했다.그러는 모습을 보자 여자는 마음속으로 또 쳐들어온 윤혜인을 욕하기 시작했다.“여름 씨, 나가 주세요.”이신우는 냉담한 표정으로 일어나 옷을 정리하고 벨트를 다시 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방금 뜨거웠던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조여름은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그녀는 서울대의 엘리트였고 다른 사람의 소개로 이신우의 국내 업무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공항에서 이신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 경험이 많아 보이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그의 프로필에는 35세라고 되어 있지만 얼굴만 보면 그냥 서른이 조금 넘은 것 같았다.그의 이목구비는 나무랄 데 없이 잘생겼고 우월한 집안 형편과 좋은 교육을 받은 그는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남다른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진한 향수와 독한 술처럼 매혹적이었다.그 후 그녀는 일 때문에 그와 함께 승마장에도 가고 온천도 갔다. 그의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본 그녀는 더욱 이 훌륭한 남자에게 빠져들었다.오늘 그녀는
칠흑 같은 밤과 뼈저린 추위, 그리고 아까 맞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비까지, 모든 상황이 똑같이 맞아떨어졌다. 양아버지가 어린 윤혜인을 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달리다가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작고 연약한 어린 윤혜인은 포물선을 그리다 옆에 있던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어린 윤혜인의 몸과 얼굴은 흙이 잔뜩 묻었고 무성한 갈대에 가려져 시커먼 진흙과 한 몸이 되고 말았다. 어린 윤혜인이 겨우 몸을 일으켜 양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려는데 양아버지가 어린 윤혜인을 향해 힘껏 고개를 저었다. 넘어져서 몸을 다친 양아버지는 몸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윤혜인을 안았던 그 자세 그대로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어린 윤혜인은 그런 양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구덩이에 빠져있는 걸 양아버지도 분명히 봤는데 양아버지가 왜 그 자세 그대로 앞으로 내달리는지 말이다. 어린 윤혜인은 그렇게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빨간 스포츠카가 하늘이 떠나갈 것 같은 엔진소리와 함께 양아버지 뒤를 쫓았다. 앞에서 달리던 양아버지는 그렇게 차에 치여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린 윤혜인은 양아버지의 다리가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더니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걸 목격했다. 심지어 그중 한쪽이 어린 윤혜인 앞에 떨어졌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 다리였다. 바닥에 쓰러진 양아버지의 얼굴도 어린 윤혜인을 향해 있었다. 눈을 부릅뜬 모습이 마치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어린 윤혜인은 초점을 잃고 퀭한 양아버지의 두 눈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정말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어린 윤혜인은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범퍼가 깨진 스포츠카에서 빨간 벨벳 슈틀 입은 남자가 내려왔다. 어린 윤혜인은 얼굴은 매혹적이고 잘생긴 남자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는지 똑똑히 보았다. 남자는 몸통이 절반 뜯어져 나간 양아버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윤혜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배남준은 바로 사람을 데리고 원진우를 가둬둔 곳으로 향해 굳게 닫힌 문을 열었지만 안에 누워있는 사람은 원진우를 데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 도우미였다. 원진우가 입고 있던 하얀 슈트를 입고 있는 도우미는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CCTV를 확인한 배남준은 사각지대에서 나온 두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원진우’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이상했다. 원진우와 도우미는 체격이 달랐다. 이미 숨이 끊어진 도우미의 신발을 벗겨보니 안에서 진흙이 가득 나왔다. 다시 영상을 확인해 보니 뒤에서 걸어가는 도우미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때 이미 도우미가 바뀌었으니 가둔 사람은 원진우가 아닌 도우미였다. 도우미의 시신 상태를 보면 아마 원진우가 준 독을 먹고 문을 닫자마자 바로 독이 온몸으로 퍼져 숨을 끊은 것 같았다.이준혁은 영상에서 원진우가 입은 옷을 관찰했다. 전에 조사한 것과 다른 착장이었다. 이준혁이 조사한 데 의하면 원진우는 계절을 막론하고 구두를 신는다고 나왔지만 오늘 신은 건 긴 부츠였다. 이준혁은 바로 원진우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렇다면 곽경천도 위험을 피치는 못할 것이다. 이를 깨달은 순간 이준혁은 곽경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현재 북안도를 떠날 수 있는 구멍은 다 막힌 상태였다. 이준혁이 미리 상부에 연락해 모든 루트를 봉쇄하고 원진우를 수배했다. 이준혁은 원진우가 힘들게 윤혜인을 납치해 갔으니 절대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필요 없는 사람은 바로 죽이는 게 원진우 스타일이지만 윤혜인을 데려갔다는 건 쓸모가 있다는 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일지는 윤혜인도 알 수 없었다.원진우의 별장으로 향하는 길에 이준혁은 굉음을 듣게 되었다. 원진우의 별장이 있는 방향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연기가 솟아 올라오더니 버섯 모양의 구름을 만들었다.화들짝 놀란 배남준이 체면을 차릴 겨를 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경천아.”
곽경천은 갑자기 손으로 내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실종은 마음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비록 윤아름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윤아름에게서 받은 사랑은 적지 않았다. 윤아름은 곽경천을 친자처럼 아끼며 보살펴줬다. 그때부터 곽경천은 앞으로 엄마와 동생을 잘 보호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크면서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윤혜인도 옆에 있고 어머니와도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손을 뻗는데 급박한 전화 소리가 울렸다. 곽경천이 들고 온 건 위성 전화라 배남준만 알고 있었다. 곽경천은 전화를 받으면서도 여자의 머리만 뚫어져라 쳐다봤다.“여보세요?”“30초, 30초밖에 안 남았어요. 얼른 나와요.”수화기 너머로 들린 건 배남준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준혁이었다. 이준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그 지하실에 폭탄이 가득 설치되어 있어요. 얼른 사람들 데리고 나와요.”곽경천이 넋을 놓고 있는데 이준혁이 급박하게 말했다.“형님, 함정이에요. 원진우는 이미 도망갔어요. 처음부터 형님이 세운 계획을 알고 있었더라고요. 지금 당장 나와요.”곽경천은 이준혁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얼른 나가요. 얼른.”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곽경천이 같이 떠나길 기다렸다.“먼저 나가요. 명령이에요. 나도 곧 따라 나갈게요.”곽경천이 이렇게 말했다. 팀원들이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 밖으로 나가고 곽경천이 손을 내밀어 ‘여자’의 어깨를 잡고 돌렸다.데굴데굴.여자의 머리가 곽경천의 발치로 굴러떨어졌다. 깜짝 놀란 곽경천은 순간 목구멍에서 단내가 느껴졌다.‘설... 설마 엄마?’한 번 더 자세히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죽은 지 꽤 오래된 시신인지 목 부분에 부패가 시작되었지만 얼굴은 아직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북안도의 날씨가 유독 추웠기에
원진우를 기다리고 있는 건 한번 들어가면 굳게 닫히는 문이었다. 이게 곽경천이 세운 2번째 방안이었다. 첫 번째 방안인 술이 실패하면 원진우를 무력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데다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기에 일단은 특정한 방으로 유인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윤아름을 차질 없이 구해내면서 다른 사상자를 내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원진우를 안에 가둬놓는 것이었다.윤혜인은 원진우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져 다른 사람이 와서 술을 권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배남준은 현장에 원진우가 보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윤혜인에게 귀띔했다. 잘못하면 원진우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경계하면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윤혜인의 이어폰에서 비서 도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누나, 원진우 안에 가뒀어요.”윤혜인은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악당을 가뒀으니 곽경천도 일단 한시름 놓고 윤아름을 구해낼 일만 남았다. 윤혜인이 배남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배남준은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다른 사람에게 윤혜인이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일어난다고 하고는 현장을 빠져나갔다. 잠깐 얼굴을 비췄던 아이들은 너무 칭얼대서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사실 두 아이는 곽경천이 주문 제작한 인형이었다. 실제와 다를 것 없이 잘 만들기도 했고 미리 녹음한 아이의 녹음 소리를 안에 넣어뒀다. 곽경천은 처음에 밖에서 다른 아이 둘을 찾아 대체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윤혜인이 거절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가 곧 엄마에겐 목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심전심으로 자기 아이가 다치는 게 싫다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오늘 날씨가 추워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었기에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고 칭얼대는 소리로 퍽 리얼해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윤혜인은 방으로 돌아와 초조하게 곽경천의 소식을 기다렸다.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방안을 계속
윤혜인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들어 원진우를 향해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삼촌, 제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한 잔 먼저 마시겠습니다.”그러더니 금세 잔을 비웠다.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잔에 들어 있던 술에는 몇 시간 동안 상대를 잠들게 하는 특수 성분이 들어 있었다.그러나 윤혜인은 미리 해독제를 복용해둔 상태였고 원진우의 경계를 풀게 하려고 같은 술을 마신 것처럼 보이게 했다.원진우 같은 교활한 상대에게는 대화나 교섭보다는 이런 방법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윤혜인이 잔을 비워도 원진우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술잔을 들지 않았다.초조해진 윤혜인은 도우미를 다시 불러 그의 잔을 채우게 했다.“앞으로도 저 잘 봐주셨으면 하니까 또 한잔 올리겠습니다.”한국인 사이에서 ‘두 잔’은 최고의 예우를 의미하기 때문에 원진우도 어른으로서 이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만약 거절한다면 그의 인품에 오점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침내 원진우는 천천히 잔을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잔이 입술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아, 깜빡했군. 오기 전에 집에서 의사에게 받은 약을 먹었는데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세 시간 동안은 물도 마실 수 없다고 했어요.”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윤혜인은 분노로 속이 끓어올랐지만 원진우가 댄 이유가 합리적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계획은 명백히 실패한 셈이었다.곧 원진우가 자리를 뜨려 하자 윤혜인은 재빨리 다음 계획으로 전환했다.원진우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그녀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들은 바에 의하면 해외 무역에 아주 조예가 깊으시다고 하던데 저희 집도 국제 해운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시간 괜찮으신가요?”그러자 원진우는 잠시 멈춰서서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물어봐요.”이윽고 윤혜인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모두 해외 무역의 어
곽경천은 곧 다가올 파티에 계획에 이준혁도 포함시키기로 했다.자신은 원진우의 별장에 인원들과 함께 잡입할 예정이고 파티장에는 배남준 혼자였는데 그에게 온전히 윤혜인을 맡기기가 불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파티장에서 잠재적인 위험인물인 원진우를 감시하고 윤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그러나 윤혜인은 이준혁이 다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그가 파티에 등장하면 원진우가 의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곽경천의 우려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 계획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윤혜인도 잘 알고 있었다.파티장에 있는 사람들과 별장으로 잠입하는 사람 모두 위험이 따르는 임무였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해 추가 인원을 조정할 여유도 없었다.윤아름의 행방을 찾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원진우가 모레 회사 양도 계약서에 서명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게 되면 윤아름의 소식을 알아낼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된다.이준혁은 이번 파티가 배남준을 돕기 위한 행사라는 곽경천의 설명을 듣고 이를 납득했다.배씨 가문에는 생후 첫 파티 후 배남준이 독립적인 가장이 되어 호적을 옮길 수 있는 전통이 있었다.질투가 나긴 했지만 이준혁은 배남준이 윤혜인을 향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정하게 행동해왔다는 점을 존중하고 있었다.배남준은 숨겨진 음모 없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상대였다.다음 날, 드디어 생후 한 달 기념 파티가 열렸다.윤혜인은 밝은 빨간색 원피스에 회색 모피 외투를 입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사에 나타났다.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원진우도 파티장 정문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북안도에서 배씨 가문과 찰스 가문이 보내는 초대장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무언의 룰이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원진우는 크림색 벨벳 수트를 입고 문학적이고 온화한 인상으로 나타나 눈길을 사로잡았다.그러나 윤혜인은 그의 겉모습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이준혁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그가 자격지심을 느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윤혜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자존심 강하고 남들한테 존경만 받는 사람이 언제부터 저렇게 불안해하는 감정을 품게 됐을까?’그녀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었다.하지만 윤혜인에게 역시 억울한 감정이 있었다.이준혁을 기다리다 사무실에서 잠들었고, 깨어나니 주변은 새까맸고 홀로 추위 속에 거의 얼어붙을 뻔했으니 말이다.“왜 날 찾으러 오지 않았어요?”그녀는 작게 말했다.그 어둠과 추위를 떠올릴 때마다 서운함이 다시 피어올랐다.만약 이준혁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윤혜인은 사무실에서 잠들어 문이 잠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내 잘못이야.”남자는 말했다.“모두 내 잘못이야. 맹세할게. 앞으로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이준혁은 한때 그녀를 놓아주려는 생각을 했었지만 곽경천이 그녀와 거리를 두라고 말하자 그의 가슴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결코 윤혜인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윤혜인이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불편한 몸일지라도 이준혁은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결혼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았을 때, 그는 더 이상 방관자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녀와 아이들이 이준혁의 세상에서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들의 삶에 함께하고 싶었다.윤혜인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언제 이렇게 빨리 마음을 바꾼 거지?’얼마 전까지 차갑기만 했던 이준혁이 이제는 윤혜인이 듣고 싶었던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을 두고 돌아가지 않았던 일에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약간의 원망을 풀고자 윤혜인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날 혼자 두지 않겠다니... 무슨 뜻이에요? 나 유부녀인 거 알잖아요. 설마 남편 자리를 뺏으려고요?”그러자 이준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그녀가 아직 진실을 모른다는 걸 알아챘다.하여 윤혜인의 장단에 맞춰주고자 이준혁이 말했다.“상대가 너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배남준은 아버지가 원진우와 비밀리에 대화하는 것을 엿들었다.대화의 내용은 원진우가 북안도의 회사를 팔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과거에 원진우가 떠날 때마다 그의 행방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다. 심지어 이번에는 원진우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니 다시 그의 흔적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다.곽경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이번 계획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윤아름을 찾을 마지막 희망마저 잃게 될 것이니 말이다.곽경천은 고민스러웠다.‘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혜인이가 병에 걸리다니... 앞으로 3일 후면 파티가 열릴 예정인데 그때 무대에 설 수 있으려나?’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녀를 대신해 위장할 사람을 빨리 찾는 것도 필요했다....의식을 되찾은 윤혜인은 자신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머리는 무겁고 여러 혼란스러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준혁은 그녀와 등을 돌린 채 멀어져 갔고 아무리 그를 불러도 그가 남긴 것은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어때, 괜찮아?”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윤혜인은 눈을 깜빡이며 꿈속의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꿈에서 느꼈던 그 서운함이 현실로 밀려들어 왔다.“왜 나 무시했어요?”윤혜인은 불만스럽게 물었다.그러자 그녀의 말에 당황한 이준혁은 준비했던 설명조차 단숨에 잊어버렸다.눈가가 붉어진 채 윤혜인은 점점 더 억울해했다.“나... 꿈에서 계속 불렀는데... 준혁 씨는 나 무시하고...”그녀의 말을 들은 이준혁은 그것이 꿈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 후에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자신이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동정이냐 아니냐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중요한 것은 윤혜인이 이준혁의 곁에 있고 그녀의 꿈과 시선에 그가 있다는 것뿐이었다.“응. 내 잘못이야
“죄송합니다.”이준혁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번 일은 분명히 그의 책임이었다.만약 그의 부주의가 아니었다면 윤혜인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준혁은 자책하며 곽경천이 자신을 때려줬으면 싶을 정도로 후회하고 있었다.그때 주훈이 갑자기 ‘퍽’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곽경천을 향해 말했다.“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제가 혜인 씨에게 대표님을 보러 오라고 부탁했거든요.”그는 깊이 자책하고 있었다.만약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윤혜인이 사무실에 갇혀 얼어붙는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주훈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떠났는지 관심을 두지 않은 자신의 큰 실책이라 여겼다.이번 일로 이준혁이 자신을 탄페니아에 10년간 가 있으라 해도 감수할 각오였다.하지만 곽경천은 사건의 전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사실 윤혜인이 먼저 주훈에게 전화를 걸어 이준혁의 상황을 물어봤고 주훈은 그저 그녀에게 와보라고 덧붙였을 뿐이었다.주훈이 권하지 않아도 윤혜인은 이준혁을 찾아갔을 것이다.이준혁을 찾으러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전제하에 주훈의 말은 그저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다.곽경천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책망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비난을 하지 않았다.그는 주훈을 일으키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나요. 이 일은 주 비서님 잘못이 아니니까요. 혜인이는 스스로가 원해서 간 거예요.”이 말을 듣고 이준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곧이어 곽경천은 이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인이는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혜인이가 준혁 씨를 찾아간 것은 마음속에서 준혁 씨를 지우지 못해서였을 거예요.”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준혁 씨, 이준혁 씨도 혜인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리 없잖아요.”“이번 일을 계기로 혜인이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준혁 씨가 진정으로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사실 곽경천은 이준혁에게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