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희는 무척 당황했다.‘그, 그,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얼마나 철저했는데, 들켰을 리 없어! 이건 함정이야!’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 정말로 오빠한테 미안한 짓 한 거 없어. 내가 얼마나 오빠를 좋아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태도에, 이준혁은 헛웃음이 났다.“내가 인하 마을에서 돌아오고 나서, 검사하라고 윤혜인을 보냈던 그 병원 원장, 너의 아버지랑 오래된 동창이시더라? 그리고 무명으로 내게 보내진 그 사진들, 출처가 어딘지… 굳이 내 입으로 밝혀야 해?”임세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준혁이 다 알고 있었을 줄이야, 조금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인정하기엔, 정말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녀가 다시 눈물을 터트리며 이준혁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내가 한 일 아니야. 나 아무것도 몰랐어. 정말 나랑 상관없다고! 제발 나 좀 믿어줘, 오빠!”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준혁의 차가운 외면이었다. 처음 주훈의 보고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이준혁도 쉽사리 믿지 못했다. 한때 그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몸도 아끼지 않던 소녀, 위험한 물속에서도 포기하지 말라며 다독이던 소녀, 그 아름다운 소녀는 도대체 어디 갔단 말인가?김성훈의 말이 맞았다. 여자가 한번 사랑에 빠지면, 얼마나 미칠 수 있는지, 고려하지 못한 이준혁의 탓이었다.그의 표정이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본 임세희는 크게 절망했다.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에게 애원했다.“그래, 아줌마… 다 아줌마가 한 짓이야. 나랑 상관없다고!”이준혁이 눈가를 가늘게 뜨며 차갑게 말했다.“세희야, 네가 이번 일을 아줌마한테 떠넘기고 잘 넘어갔다 쳐.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건, 너에 대한 내 마지막 예우야.”이제 이준혁은 임세희에 대한 어떠한 마음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렇게 한때 아름다웠던 소녀는, 그의 마음에서 완전히 죽어버렸다.이준혁이 오만한 표정으로
하지만 임세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발걸음을 멈춘 이준혁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뒤돌아봤다.“한 번뿐인 인생, 너의 선택이지, 내 알 바는 아니야. 수술까지는 내가 그동안의 정을 봐서 준비했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마.”임세희가 수술받든, 말든, 그가 결정을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뭐라고?”임세희의 안색이 시체처럼 하얗게 질렸다. 오직 그녀만 바라보며, 다정하게 굴던 완벽한 왕자님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임세희는 이준혁이 오늘따라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아아악!!!!”그녀가 아무리 소리 높여 운다 한들, 바뀌지 않을 현실이었다. 임세희는 실성한 사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다 거짓이야. 다 거짓이라고! 오빠가, 준혁 오빠가 나한테 이럴 리 없어! 오빠가 날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 윤혜인 탓이야! 윤혜인 배 속에 있는 그 애만 아니었어도!”악독한 표정을 지은 임세희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죽여버릴 거야! 다 죽여버릴 거라고!’이때, 갑자기 핸드폰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세희는 설 힘도 없어 기어가 전화를 받았다.한참 대화가 오갔고, 임세희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계획을 변경해야겠어. 좀 더 독하게 가자.”전화를 끊은 임세희 얼굴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맺혔다. ‘준혁 오빠는 반드시 내 것이야 해! 윤혜인, 넌 이제 끝장이야!’한편, 윤혜인은 병원에 갇힌 채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를 가던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니, 그녀는 무기력함에 일찍 침대에 누웠다. 윤혜인은 자기 전 꼭 에어컨을 끄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 유난히 더웠던 날씨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잠결에 따뜻한 것을 찾아 움직였다. 그런데 마침, 무언가 뜨끈한 것이 옆에 닿았다. 윤혜인은 점점 그 알 수 없는 것에 파고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하고 깊은 잠이 쏟아졌다.이준혁은 온밤 윤혜인 전용 난로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그녀의 잠버릇이었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키스를 하기 위해 입술을 가져다 댄 순간, 갑자기 윤혜인이 그의 아랫입술을 깨물어 버렸다. 그렇게 가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끝까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였다. 그의 입술에서 주룩 하고 피가 나왔다. 이준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곧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눈 부신 햇살, 힘줄 돋은 팔뚝, 입술을 더 탐스럽게 만드는 빨간 핏자국, 어디 영화에서 본 듯한 뱀파이어 같은 피폐한 분위기까지, 윤혜인은 홀린 듯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그러다 문득, 늦게나마 자신의 추태를 자각한 윤혜인은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내가 좀 잘 생겼지?”이준혁이 물었다.“아니요.”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윤혜인은 괜히 인정하기 싫었다.이준혁이 코끝으로 간질거리듯 그녀에게 비비며 말했다. “임세희, 삼 일 뒤면 떠나.”그가 말했다.“그러던가요.”윤혜인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녀는 이미 이준혁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다.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윤혜인은 심세희가 이렇게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면, 이준혁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윤혜인을 달래기 위해 고생스럽게 임세희를 내쳤는데, 전혀 알아주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게 사실이면, 진짜 떠난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윤혜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에게 이 말을 들은 것도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 없었다. 그리고 매번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상처 입기를 반복했다.이준혁이 그녀를 달래듯 눈가에 입맞춤하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윤혜인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에, 고래를 돌려 그를 피해버렸다.윤혜인을 강압적으로 다루기 싫었던 이준혁은 입맞춤을 포기한 채, 그녀의 옆에서 조용히 허리를 끌어안았다.“좀만 더 자자.”이준혁은 시간이 지나면 윤혜인도 오해를 풀 거라 확신했다. “싫어요. 다른 방에 가서 자요.”윤혜인은 칼같이 거절했지만, 이준혁은 포기할 줄 몰랐다. 그가 윤혜인
송소미의 비명은 머리에 씌워진 두건으로 모두 막혀 버렸다. 그녀는 양손이 결박된 채, 비로 축축이 젖은 쓰레기통 옆에 던져졌다. 허리띠로 살갗을 내리치는 소리, 여자의 숨 막히는 비명, 남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송소미는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짓밟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남자가 송소미를 향해 침을 내뱉으며 말했다.“생긴 건 멀쩡한데, 왜 이렇게 딱딱해? 에이, 맛대가리 없어!”이때 송소미의 귀에 그들의 나누는 통화 소리가 들렸다. “주 비서, 여기 일은 잘 마무리됐어. 이제 여자구실 다시는 못할 거야.”통화가 마무리된 뒤, 두 남자가 떠나며 대화를 나눴다.“즐기면서 돈 받다니, 이런 좋은 날도 있네! 하하하….”“자기 여자를 달래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 정말 요즘 보기 드문 남자야….”송소미는 제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온몸이 피와 멍으로 범벅 된 것은 물론, 옷도 넝마가 된 채 제대로 걸칠 수조차 없었다. 그냥 지나가다 나쁜 마음을 먹고 저질렀 다기엔, 너무 잔인한 수법이었다. 누가 봐도 일부러 송소미를 노리고 벌인 짓이었다. 이때, 호화스러운 차 하나가 골목을 지나치다가 갑자기 후진했다. 차에서 한때 아름다웠던 송소미의 시절처럼, 우아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는 송소미를 지나치지 않고, 도리어 자기 자켓을 벗어주며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매우 놀란 듯,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송소미에게 물었다.“소미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송소미가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동자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세희 언니….”그런 다음 곧바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그러자 임세희는 그 즉시 경멸 어린 눈빛과 함께 그녀를 밀쳐냈다. 힘 좀 써 달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잔인하게 다룰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만 송소미가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우려 들 테니까.얼마 후, 송소미가 병원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트럭에 치
주훈은 이준혁의 비서였다. 비서가 대표의 지시 없이 함부로 움직일 리 없었다. ‘자기 여자를 달래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두 남자가 떠나면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송소미는 이 모든 것이 윤혜인으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 ‘역시 그년이 문제였어! 날 이렇게 만든 거야!’송소미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던 임세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의도했던 대로, 송소미는 이 사건의 원천으로 윤혜인을 지목한 것 같았다. 이제 송소미의 분노를 더 부추이기만 하면 됐다. 임세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일단 다 나을 때까진 어디 나가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겠지?”“왜요?”“윤혜인도 이 병원에 있으니까, 괜히 마주칠까 봐 그러지. 그 여자가 또 준혁 오빠한테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너 감당할 수 있겠어?”“뭐라고요? 그년도 이 병원에 있다고요?”송소미가 입술을 꽉 깨문 채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임세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했다.“나도 앞으로 널 도와주지 못할 것 같아. 윤혜인이 날 싫어해서, 준혁 오빠가 날 외국으로 보내려고 해. 너도 그 여자 조심하면서, 몸조리 잘해.”그 말을 들은 송소미는 놀란 동시에 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단순히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천하의 임세희도 외국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됐는데, 송소미는 심지어 윤혜인한테 잘못한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다 이준혁이 또 그녀를 노리고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제까짓게 뭔데, 이런 대우를 받아!’“윤혜인, 죽여버릴 거야!”“소미야, 왜 이래?”임세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연기하며 그녀를 붙잡았다.“제발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마. 준혁 오빠가 얼마나 그 여자를 아끼는지 알아? 일러바치기라도 한다면, 너 끝장날 수도 있어!”이 말을 들은 송소미는 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윤혜인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이유도 없었다. 이제 아래마저 찢어져, 영원히 하자 있는 여자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재벌 며느리로
그 뒤로 이틀이 지났다. VIP 병실은 거의 호텔 수준이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없었다.이틀 내내 이준혁은 윤혜인 옆을 떠나지 않고, 병실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했다. 윤혜인은 이런 이준혁이 신경이 쓰였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사게 될까 차마 말을 걸진 못했다. 점심, 윤혜인은 오늘 입맛이 없어 얼마 식사하지 못했다.밖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이런 날씨면 괜스레 기분이 울적해지곤 했다. 윤혜인은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곧바로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을 훑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의 눈에 국제학교를 다니던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는 글귀가 들어왔다. 문득, 윤혜인은 과거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는 매일 아침과 점심을 학교 앞 분식집에서 해결하곤 했다. 떡볶이 한 컵에, 김밥 한 줄, 이게 그녀의 일상이었다. 분식집 아줌마는 또 얼마나 친절했던가? 적게 먹는 그녀가 안쓰럽다며, 항상 몰래 삶은 계란을 챙겨주곤 했다. 그 분식집 덕분에 굶지 않고 이 정도 자랄 수 있었다. 임신한 탓인가, 그녀는 자꾸만 익숙한 입맛이 떠올랐다. 윤혜인은 그 시절 먹던 떡볶이와 김밥이 너무나 그리웠다. 하지만 주인장 아줌마가 은퇴한 탓에, 이제 다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한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윤혜인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이준혁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그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인상을 쓰며 열심히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로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있었다. 한참 일하던 이준혁이 핸드폰을 집어 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윤혜인은 다시 고개를 원래의 위치로 돌렸다.이때, 이준혁이 다가와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 버렸다.“임산부가, 너무 길게 핸드폰 보면 안 좋아.”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했다. 그런 다음, 외투를 챙기더니, 몸을 일으켰다. “자고 있어. 잠깐 나갔다가 올게.”이준혁이 병실 밖으로 나간 뒤, 윤혜인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서서히 잠에 빠져 들었다. 번쩍, 우르릉 쾅!
윤혜인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얼굴은 물론 귓불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녀가 돌처럼 굳은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본 이준혁이 걱정스레 다가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윤혜인은 시선을 어디에다가 둬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눈은 온통 살색으로 가득했다. 결국 한참 망설이던 끝에, 윤혜인은 겨우 말을 꺼냈다.“화장실 가서 갈아입으면 안 돼요?”“알겠어.”고분고분, 이준혁은 그녀의 말에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친 그는 어느새 가운을 입고 있었다. 식사를 끝낸 윤혜인이 이준혁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좀 전과 달리 그는 가운을 걸치고 있었지만, 가슴은 풀어헤친 상태였다.윤혜인은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쑥스러움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재빨리 그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들어갔다.씻고 나오니, 이준혁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었다. 지난밤들과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윤혜인은 오늘 자꾸만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이준혁이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아, 네.”윤혜인은 침대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이준혁이 순식간에 그녀를 뒤에서 끌어당기며, 품에 가둔 것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윤혜인은 긴장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준혁 씨….”이준혁이 솔직한 충동을 그녀에게 전했다.“하기 싫으면, 안 할게.”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러다 문득, 아까 궁금했던 것이 떠올랐다.“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분식 먹고 싶어 한다는 걸?”이준혁이 덤덤히 답했다.“누가 알려 줬어.”사실 이건 거짓말이었다. 그는 최근에 윤혜인이 식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SNS에 그녀가 분식집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것을 보고, 빗속에서 어렵게 사람을 찾아내 얻은 것이었다. 찾아서 다행이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필이면 분식집
임세희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얼굴은 물론 살갗이 드러난 모든 곳에 멍과 피로 범벅 되어 있었다. 두건을 쓴 세 남자 중 한 명이, 임세희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임세희가 눈물 젖은 얼굴로 이준혁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준혁 오빠, 나 좀 구해줘… 제발 좀 구해줘… 내가 오빠 목숨을 구해준 것을 봐서라도, 구해줘….”과거의 은혜를 들먹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역시나 임세희의 예상대로 이준혁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짝, 한 남자가 임세희의 뺨을 무자비하게 내리치며 위협했다.“쓸데없는 소리 왜 이렇게 많아.”한두 번 맞은 것이 아닌지, 임세희의 입에서 고인 피가 후드득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이준혁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죽고 싶어 환장했어?”재밌는 농담을 들은 듯, 남자들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들이 웃을 때마다 변조된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그쪽이 이 여자 남편이라면서? 돈도 꽤 많다던데, 맞아?”갑자기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옆에서 있던 윤혜인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이준혁이 이 호칭에 긍정하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혁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묵묵히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한 남자가 임세희를 향해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임세희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산 사람보단, 죽은 사람과 더 가까운 회색빛이 돌고 있었다. “감히 우릴 속여? 넌 내 손에 죽었어!”남자가 다시 발길질하기 위해 다리를 올린 순간, 이준혁이 힘들게 답을 내놓았다.“그래, 남편 맞아.”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별거 아닌 말 한마디였겠지만, 윤혜인에겐 너무나도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서서히 이준혁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하지만 온통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던 이준혁은 눈치채지 못했다.그의 답을 들은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렇다면 현금으로 3억 준비해서, 한동교 밑으로 와. 안 그러면….”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