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김성훈이 어쩔 바를 몰라 하다가 손수건을 건넸다.“일단 울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 봐요.”눈물은 일단 흐리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었다.윤혜인은 손수건을 받아 들고 아무렇게나 닦았다. 어깨를 파르르 떨며 숨을 참았더니 눈물은 그쳤지만 어깨는 여전히 들썩들썩했다.윤혜인이 이내 고개를 들어 물었다.“이준혁 씨 돌아온 거 알고 있어요?”“음...”김성훈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웅얼거렸다.“알아요.”“그러면 언제 돌아왔는지도 알아요?”윤혜인이 또 물었다.김성훈이 잠깐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어제 오전에 비행기에서 내렸어요.”이 말에 윤혜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어제 오전에 비행기에서 내렸다면 곽아름의 실종과 그녀가 부딪친 어려움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니 오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게 그녀와 곽아름을 위한 게 아니라 문현미를 위해서 온 것이었다.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손바닥만 한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불쌍해 보였다.“준혁 씨... 무슨 일 있어요?”이에 김성훈이 침묵했다. 잠깐 뜸을 들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윤혜인 씨. 인제 그만 해요.”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말이었다. 윤혜인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왜 그만해요?”김성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윤혜인이 캐물었다.“왜 그만해요? 목숨을 바쳐 나를 살렸는데 지금은 왜 그만하라는 거예요?”윤혜인의 예쁜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김성훈은 그런 윤혜인이 너무 마음 아파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윤혜인 씨. 내 말 들어요. 그냥 준혁이는 이제 없는 셈 쳐요.”그래도 친구였는데 김성훈은 윤혜인이 다치는 게 싫었다. 이준혁의 결심을 김성훈도 옆에서 지켜봤다.윤혜인에게 제일 좋은 보호는 바로 기대가 없다는 것이었다.“저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떻게 없는 셈 쳐요...”윤혜인이 입꼬리를 당기더니 못생기게 웃어 보였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으니
이준혁의 눈빛은 담배 연기에 가려져 흐릿했다. 마치 김성훈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김성훈은 그런 이준혁이 감탄스러워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안 믿어. 너한테 다 계획이 있겠지.”김성훈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내일 외국으로 나가봐야 해. 메리와 이 독액에 대해 연구할 생각이야.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너 죽게 안 놔둬. 땅을 파서라도 그 독액을 만든 사람을 찾아내서 조성표를 가져올 거야. 그러면 충분히 억제할 수 있어.”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김성훈이 말하는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 자기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김성훈은 마음이 착잡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승산이 얼마인지는 김성훈도 몰랐다.아까 엘리베이터에서 윤혜인에게 그만하라고 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친구로서 둘 중 그 누구도 다치지 말았으면 했다.김성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총명하기 그지없는 이준혁은 또 어떨까.김성훈이 손을 내밀어 이준혁의 손에서 담배를 하나 뺏어가 불을 붙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준혁아.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너의 행동이 맞다 틀리다 판단할 수 없는 거 알아. 네가 윤혜인 씨를 위해서 이러는 것도 알고. 근데 일방적인 생각일 수도 있잖아. 정말 이게 윤혜인 씨에게 좋은 일일까?”김성훈이 담배를 물고 이준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렇게 중얼거렸다.“네가 누워있을 때 내가 아무리 불러도 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어. 윤혜인이 다른 남자랑 도망갔다고 하자마자 바로 눈을 번쩍 떴던 거 기억나? 쓰러졌으면서도 너는 네 감정에 충실했던 거야. 나는 윤혜인 씨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이준혁이 담배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좀 닥쳐.”“콜록콜록...”김성훈은 독한 담배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와.”김성훈이 말했다.“니코틴으로 나 죽이려고 그러지. 너 따라서 죽으라고 그러는 거지.”
김성훈이 가고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이준혁은 차가운 달빛 아래 꼿꼿이 선 채 온몸으로 한기를 뿜어냈다.주훈이 다가와 물었다.“대표님, 좀 쉬실래요?”“응, 너 먼저 가서 쉬어.”이준혁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이준혁도 움직이지 않는데 주훈은 더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좋은 상담 선생님 찾아봐.”이준혁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주훈이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반응하고는 말했다.“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이준혁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너는 갈 필요 없어. 앞으로 그쪽 일에 네가 얼굴을 비치지는 마.”주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주훈도 다 알고 있었다. 이준혁은 그가 상담 선생님을 보냈다는 걸 윤혜인이 몰랐으면 했다.이준혁은 돌아오고 난 후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변한 것 같았다. 하지만 주훈은 수석 비서로서 이준혁이 여전히 예전의 그 이준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행실이 조금 더 은밀해지고 뜻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이었다.내부든 외부든 시름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 은밀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윤혜인이 깨어났을 때는 곽경천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혜인아, 깼어?”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키려는데 곽경천이 조심스럽게 부축했다.“천천히. 조심해.”윤혜인은 고개를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곽경천을 바라봤다. 곽경천이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오빠, 왜 그래?”윤혜인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물었다.곽경천이 말하려다 말고 윤혜인을 바라봤다.윤혜인은 곽경천의 이상한 눈빛에 심장이 덜컹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오빠, 도대체 무슨 일인데?”“할 말이 있어. 마음 단단히 먹어.”곽경천이 윤혜인에게 검사 결과를 건네주며 한숨을 내쉬었다.“너 임신했대.”윤혜인이 넋을 잃었다.‘임신?’윤혜인은 검사 결과를 받아서 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임신… 쌍둥이?”단어는 다 아는 단어였지만 붙여놓으니 어딘가 낯설었다.‘임신이라니. 그것도 쌍둥이를.’윤혜인은 선천적으로 한기가 많아
‘만약 준혁 씨가 임신한 걸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할까?’하지만 이내 이준혁이 했던 차가운 말들이 떠올랐다.“우리?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이혼했는데 사랑은 무슨. 너무 우습다.”“사랑했다면 왜 이혼했겠어?”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에 윤혜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윤혜인이 곽경천의 옷깃을 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오빠, 생각 정리하기 전에 다른 사람은 몰랐으면 좋겠어.”곽경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윤혜인은 몸에 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곽아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집에 돌아와 보니 단발에 네모난 안경을 쓴 여자가 곽아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윤혜인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홍 아주머니에게 물었다.“이 사람은 누구예요?”홍 아주머니가 대답했다.“새로 온 상담 선생님이에요. 전에 상담하던 선생님이 출장 가면서 이 선생님을 추천하셨어요. 도련님도 문제없다면서 오케이 하셨고요.”곽아름은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았고 상태가 매주 좋아 보였다.윤혜인도 옆에서 상담 선생님이 상담하는 걸 잠깐 지켜봤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이 상담 선생님은 전에 온 선생님보다 더 활발하게 다가갔고 곽아름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선생님은 곽아름과 잠깐 얘기를 나누더니 홍 아주머니에게 아이의 엄마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홍 아주머니는 윤혜인에게 확인하고 나서 선생님을 데리고 거실로 향했다.선생님은 윤혜인과 악수하더니 말했다.“안녕하세요. 이진화라고 합니다.”“선생님, 안녕하세요.”이진화가 손으로 쓴 보고서를 내밀며 말했다.“곽아름 어린이에 대한 분석 보고서입니다. 한번 확인해 주세요.”윤혜인이 보고서를 받아 들더니 자세히 확인했다.이진화가 말했다.“대화를 옆에서 지켜보셨으니 아실 거예요. 곽아름 어린이는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용감해요. 부족한 부분을 꼽아보자면 너무 외롭다는 거예요. 어머님도 자녀 계획이 있으시다면 지금부터 계획해 보는 것도 좋아요. 곽아름
그 뒤로 윤혜인도 며칠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천수 때문에 흐트러진 작업실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이준혁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다들 들었는지 윤혜인을 괴롭히던 고객들도 갑자기 태도가 좋아졌다.어떤 고객은 3배의 배상도 필요 없다면서 통쾌하게 계속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전에 이미 3배의 배상을 받은 고객은 다시 돈을 돌려주기까지 했다.고객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윤혜인은 의문을 품었고 평소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고객에게 이유를 물으려 했다.윤혜인은 상대와 상가의 한 식당에서 만나 밥까지 먹을 생각이었다. 마침 주변에 있던 윤혜인은 일찍 상가에 도착했다.위층으로 올라가려다 어린이용품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진열대에 비치된 옷들이 너무 깜찍하고 예뻤다.더 자세히 보기도 전에 두 사람이 매장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남자는 잘빠진 슈트를 입고 있었고 외모가 준수한 데다 체격이 일품이었다. 같이 온 여자는 거의 만삭이었고 선글라스를 낀 채 손에는 매장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쇼핑백은 무겁지 않아 보였다.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달콤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서 임산부의 아름다움을 다분히 느낄 수 있었다.윤혜인의 눈까풀이 세게 뛰었다.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데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윤혜인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원지민은 윤혜인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추더니 선글라스를 벗으며 웃었다.“준혁아, 윤혜인 씨네.”원지민은 다시 대범한 척하던 그때로 돌아갔고 윤혜인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하지만 윤혜인의 눈에는 오만한 웃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뒤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는 두 사람만 알았다.원지민이 덤덤하게 말했다.“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쇼핑하러 왔어요?”윤혜인은 한참 노력해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그러게요.”말하면서도 윤혜인은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익숙한 흔적을 찾아내려 했지만 이준혁은 낯설 정도로 차가웠다.원지민은 윤혜인의 눈빛이 아니꼬워 뭔
윤혜인은 머리가 복잡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이준혁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아직 전쟁을 치르기 전인데 먼저 마음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혜인 씨.”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윤혜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오늘 만나려 했던 사람을 여기서 마주친 것이다.윤혜인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차 대표님.”상대는 마케팅팀의 본부장이었다. 성격이 통쾌한 편이라 윤혜인과도 잘 맞았다.윤혜인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자 차 대표가 걱정스레 물었다.“왜 여기 이렇게 서 있어요? 몸이 안 좋아요?”윤혜인이 멈칫했다.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도 그녀가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발견했는데 이준혁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윤혜인의 안색이 굳은 걸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못 본 척했다는 건 정말 그냥 관심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차 대표가 관심했다.“아니면 다음에 만날까요? 일단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윤혜인이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웃었다.“아니요. 괜찮아요. 갈까요?”“뭐 먹을까요?”“갈치조림은 어때요?”윤혜인이 말했다.유명하다고 소문난 식당에 가보니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다행히 손님이 많이 몰릴 때가 아니어서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윤혜인 차례가 되자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갈치조림이요.”윤혜인이 말했다.원지민이 맛있다고 한 갈치조림이 어떤 맛인지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웨이터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합니다. 갈치조림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미 다 나가고 없어요.”차 대표는 열정적이고 사람을 관심할 줄 아는 여자였기에 윤혜인의 안색을 보고 몸보신을 시켜주려 했다. 하여 웨이터가 금방 내온 갈치조림을 보며 말했다.“저 팀은 두 사람밖에 없는데 다 드실 수 있대요? 혹시 좀 나눠줄 수 있는지 확인해 주실래요? 값은 맞춰서 드린다고 하세요.”아직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기에 차 대표도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윤혜인
윤혜인이 멈칫하더니 물었다.“무슨 말이에요?”차 대표가 무를 한입 베어 물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회사를 포함한 다른 회사도 여럿 물어봤는데 이선 그룹과의 거래가 막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연구해봤는데 거래가 막힌 정도와 전에 우리가 달밤을 괴롭힌 정도가 맞물렸어요.”윤혜인이 대화에 몰두하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우리는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었어요. 애초에 달밤을 괴롭힐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니까. 그냥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입장이었죠. 근데 우리가 관찰한 데 의하면 달밤을 제일 세게 괴롭혔던 회사들은 업무가 꽉 막혀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차 대표가 머리를 앞으로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이선 그룹이 달밤의 업무를 다시 찾아주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왜 다들 태도가 변했는지 알겠죠?”윤혜인이 생각을 정리하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죄송해요.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네. 그래요.”윤혜인이 조용한 곳을 찾아 주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혜인 씨, 무슨 일이죠?”주훈은 전에 윤혜인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호칭이 바뀐 게 누구의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윤혜인은 실망감을 감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주훈 씨,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전화한 거예요. 자료 분실로 인한 후폭풍을 막아줘서 고마워요.”주훈이 잽싸게 대응했다.“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윤혜인이 놀란 척 이렇게 되물었다.“주훈 씨가 도운 거 아니었어요? 오빠 말로는 이선 그룹에서 그런 의향을 내비치는 바람에 여러 회사에서 태도를 바꾼 거라고 하던데. 주훈 씨가 아니라면 설마…”이러다 이준혁의 이름이 나올 것 같았다.당황한 주훈이 이렇게 말했다.“저 맞아요. 꼭 비밀 지켜주셔야 해요. 대표님이 아시면 저 모가지 날아가는 거 아시죠?”주훈은 이준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혹시나 윤혜인이 이준혁이 지시한 일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떨떠름해진 윤혜인이 손을 거두더니 이준혁의 차가운 얼굴을 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지금 나 걱정한 거예요?”윤혜인이 뒤에 있는 펜스를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떨어질까 봐?”이준혁이 그런 윤혜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뭔가 비아냥대려는데 윤혜인이 이준혁의 입을 틀어막았다.“아무 말도 하지 마요.”윤혜인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나 아직 걱정하는 거 알아요.”이준혁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손은 닦았어?”이 말에 윤혜인이 하마터면 발끈할 뻔했다.이준혁은 마치 더러운 거라도 묻었다는 듯이 옆에 있는 수도를 틀어 입과 얼굴을 닦았다.윤혜인은 이준혁을 졸졸 따라와 이렇게 말했다.“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그때 다시 얘기해요.”“…”이준혁은 말문이 막혔다.윤혜인이 몸을 돌렸다. 기분은 이미 매우 좋아진 상태였다.아직 많은 의문이 남아 있었지만 윤혜인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걸 느꼈다.생사도 이별도 다 겪은 두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준혁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여러 번이나 목숨을 마다하지 않았다.윤혜인은 목숨을 바칠 만큼의 감정이 사랑이 아닐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작 몇 번 상처 준 걸로 그를 떠나 혼자 싸우게 한다면 정말 매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결과가 어떻든 간에 감정에 충실하고 사랑에 충실히 할 생각이었다. 절대 아쉬움을 남겨서는 안 된다.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윤혜인은 예상대로 이준혁을 찾으러 온 원지민과 마주쳤다.이준혁이 돌아오고 난 후로 원지민은 한시도 시름을 놓은 적이 없었다..윤혜인이 식당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준혁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따라 나갔다. 원지민은 너무 불안해서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준혁은 이번에 다시 돌아온 뒤로 그녀를 대하는 게 많이 부드러워졌고 약속까지 했다.분명 큰 경사였지만 원지민은 불안하고 걱정되고 무서웠다.한여름 밤의 꿈일까 봐, 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