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소리와 함께 삽시간에 방은 조용해졌다.얼핏 보기에는 그녀가 그의 뺨을 아주 강하게 때린 듯하지만, 사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어젯밤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먹지 못했고, 온 저녁 고열에 시달리다 보니, 때렸다고 해도 그저 스친 정도와 비슷했고, 박태준의 얼굴에는 기별도 가지 않았다.하지만, 뺨을 맞았다는 것은 실로 사람을 화나게 하는 법, 아픔보다 그 수모가 더 컸다!늘 다른 사람에게 아부만 받던 사람이 뺨을 맞다니?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침대에서 머리 들었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감히 내 뺨을 때리다니, 간이 부었어?”말투는 차분했지만, 매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는 화나 보였기에, 신은지는 다시 맞을 준비를 했고, 그가 그녀를 때리기만 하면, 다시 그의 뺨을 때릴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맞은 상처를 증거로 경찰서에 가서 가정폭력으로 진술하여 강제적으로 이혼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박태준은 그녀를 때리지 않았고, 그저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그녀는 조금 전 몸이 나아 작은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그녀를 식은 죽 먹기로 죽일 수도 있는 그녀는 지금 얼굴을 찌푸리고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키지 않은 듯.분명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그에게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게 했고, 두 눈은 유난히 맑았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그런 눈빛이었다.“박태준, 당신 정말 뻔뻔해.”박태준은 차갑게 웃었다. “지금 당신이 나를 때렸어. 그런데 내가 뻔뻔하다고? 왜? 다른 한쪽도 때리게 얼굴을 내어줘야 뻔뻔하지 않은 건가?”신은지는 그를 째려보았다. “염치가 있다는 사람이, 뒤에서 사람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그런 파렴치한 일을 저질러?”얘기를 들으니, 그녀가 왜 박태준의 뺨을 때렸는지 알 수 있었다.그는 갑자기 웃었고, 입꼬리는 치켜들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신은지는 몸이 허약했기에 박태준이 힘을 빼자, 다시 침대에 넘어졌다.남자는 일어서면서, 갑자기 옆에 있던
허 원장은 어색하게 허허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런 일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최근에 네가 다큐멘터리도 촬영하고, 전시회도 참석하고, 며칠 동안 밤을 지새웠기에, 그저 휴가를 주려고 그런 것이야. 푹 쉬라고. 너무 그렇게 일만 하면 몸이 망가져.”이렇게 얘기하니, 신은지도 더 이상 묻지 못했고, 허 원장이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있었다.연속으로 두 가지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박태준이 떠나기 전에 아침에 했던 얘기를 비춰보면, 아무리 빙빙 둘러서 얘기를 했다고 해도, 그녀가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바보 멍청이인 셈이니!전화를 끊고, 신은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짜증이 났다!옆에 있던 신지연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고, 해고당했어? 쌤 통이야!”신은지는 눈살을 찌푸렸고, 머리 돌려 매섭게 보면서 얘기했다. “넌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여긴 공적인 장소야, 내가 여기 있는데……”네가 허락해야 해?신은지는 그 말을 듣기 싫어서 가버렸다. 그 느낌은 마치 전력으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솜에 닿은 듯한 그런 느낌, 말을 독하게 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여 더 답답한 그런 느낌이었다!택시에 앉은 후, 신은지는 박태준에게 전화했고, 한참 지나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그녀는 더 이상 전화하지 않았다. 아침에 떠날 때 많이 화를 냈는데, 전화 받을 리가 없었다!됐다, 집에 가서 휴식이나 하자. 그녀는 이참에 차를 살 계획을 했다. 차가 없으니 어딜 가든 불편했다.이럴 줄 알았다면, 집을 나올 때, 그녀가 운전하던 차를 가지고 나오는 것인데, 그러면 이렇게 불편하진 않을 텐데.그녀는 다음 날에 차를 사러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변고가 생겼다.신은지는 배달음식을 시키자, 노크 소리를 들었고 이어서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집에 있어요? 있으면 문 좀 열어봐요, 내가 할 얘기가 있어요.”이 얘기를 듣자, 신은지는 마음속에 말 못 할 불안감이 생겼다. 그녀는 가서 문
신은지는 전화 끊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10분 뒤, 경철이 왔다. 상황을 알아본 후, 집주인 등 사람은 돌아갔다. 욕설하는 소리가 멀어지고, 그녀는 자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소파에 앉아, 인터넷에서 집을 찾아보고 있었다.오늘 밤, 집주인과 사이가 안 좋게 되었으니, 그녀는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마침 괜찮은 집을 보고, 자세히 보려고 할 때, 전화가 들어왔다. 외국의 낯선 번호였다.신은지는 외국에 친구가 없었고, 예전이었으면, 보이스피싱으로 간주하고 바로 끊었었지만, 이번에는……그녀는 전화에 찍힌 번호를 보고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전화 받았다. “여보세요.”발신자의 목소리는 익숙하고 낯설었다. “은지야, 아빠야.”신은지는 예상했었고, 짜증 나는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아빠는 그저 네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예전에……”신은지는 그의 말을 중단했다. “목적만 얘기해요.”엄마의 유품을 가져올 생각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신진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네 동생 어제 전화 왔었다. 유성이가 마음에 든 모양인데, 네가 기회를 봐서 두 사람 자리 한번 마련해서 소개해 줘.”신은지는 침묵했고, 이것 때문에 전화한 것을 짐작했다.그녀가 말을 듣지 않자, 신진하는 세뇌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네가 많이 힘들었던 것을 알아. 하지만 너와 지연은 혈연관계가 있는 자매잖아. 네가 박씨 가문에 시집갔지만, 둘 사이 관계가 안 좋다고 들었어……너를 버리는 것이 헌신짝을 버리듯 쉬운 일인데, 하지만 네 동생이 나유성에게 시집가면, 박 대표가 너와 이혼할 마음이 있다고 해도, 지연이가 너를 도와줄 수 있고, 여생은 편하게 살 수 있잖니.”신은지는 단도직입적으로 조건을 얘기했다. “엄마 물건, 돌려줘요.”“그 물건은 내가 미국에 가져왔어, 국제 택배가 엄격하다고 들었는데, 행여 잃어버리기도 한다면?”남아있는 물건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팔 수 있는 것은 팔고, 팔지 못하는
문자를 보내고, 신은지는 박태준이 회신을 하기 전에 바로 그를 블랙 리스트에 넣었고, 트렁크를 끌고 부동산 중개업체를 떠났다.지금은 출퇴근 시간이고, 택시 잡는 것이 힘들었기에, 그녀는 근처에서 호텔을 찾아 쉬려고 했다. 오늘 이사하고, 집을 찾고 했기에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띠띠”이때 블랙 차량이 옆에 멈춰 섰고, 신은지가 머리 돌려 보니, 차량 조수석의 창문이 열렸고, 나유성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은지, 너 지금 이게 뭐야?”“이사, 오늘 6시에 계약하려고 했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어.” 그녀는 초라한 모습을 나유성에게 보이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넌, 왜 여기 있어?”앞엔 병원이 있었고, 이 길엔 구멍가게가 많았다. 그리고 오래된 동네라 길도 좁고, 딱 보기에도 나유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나유성 “오늘 친구랑 등산했어. 돌아가는 길이야……일단 타, 여긴 주자 못해.”신은지에게 거절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는 차에서 내려 그녀의 짐을 차에 실었다. “어디 가? 내가 데려다줄게.”신은지는 조금 전 앱으로 찾아보았고, 제일 가까운 호텔은 3킬로 정도의 거리였다. 트렁크를 끌고 걸어가는 것은 힘들었기에, 그녀는 이참에 차를 타고 가려고 했다. “아무 호텔이나 찾아서 내려줘.”나유성은 차를 운전하면서 물었다. “전에 집은 어쩌고? 왜 갑자기 이사 해?”“잘살고 있었지, 근데 박태준이 자식이, 무슨 수단을 썼는지,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해.”그 사람을 생각하니, 신은지는 이가 갈렸다. “내가 집을 다시 구해서 오늘 계약하려고 했는데, 또 그 놈이 훼방 놓았고, 그 놈은 훼방꾼이야.”나유성 “……”아마 이 세상에서 박 대표를 이렇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일 것이다.그는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태준의 성격으로 보아, 이렇게 하는 건 그저 네가 항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일 거야.”그는 확신하는 말투로 얘기했다. 두 사람은 친구로 오랜 시간 함께했고,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
나유성은 메뉴를 보고 있었고, 그 얘기를 듣자, 그는 머리 들어 조용하게 레몬티를 마시고 있는 신은지를 보면서 추호도 주저하지 않고 얘기했다. “그런 일, 은지는 하지 않아요. 만약 진짜로 소개해 주고 싶으면, 은지는 먼저 나에게 내 의견을 물었을 겁니다. 신지연 씨, 사람 사이 이간질 하는 것을 즐기시면, 죄송한데 다른 자리에 가서 하세요.”신은지는 의아해했다.그녀와 나유성은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고, 예전 같았으면, 그는 그저 두 사람 사이가 어색하지 않게 말을 돌려서 했을 것이다.예전에 신지연보다 더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여자한테도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신지연은 얼굴이 빨개졌고, 난처한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비록 나유성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테이블 사이 간격은 크지 않았고, 주변에 이미 사람들이 다 앉았기에, 그녀는 모든 사람이 그녀의 흉을 보는 것만 같았고, 심지어 잘 들리지 않는 낮은 소리마저 그녀를 조롱하는 소리로 들렸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울먹이면서 얘기했다. “유성 오빠, 오해세요. 전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한 얘기는 전부 사실입니다. 진짜로 언니가 저희를 소개해 주려고……”나유성 “죄송합니다, 전 누군가가 저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저를 ‘나 선생님’이라 불러주세요.”신은지는 참지 못하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남자는 사실 모두 알고 있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구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속아주는지 아닐지에 좌우할 뿐이다.박태준은 속아주기로 했고, 그것도 기꺼이 알면서 속아주기로 한 것이다.이번에, 신지연은 진짜로 참을 수가 없었다. 나유성처럼 기품 있는 귀공자인 그가, 예의 없이 여자에게 이렇게 거슬리는 얘기를 하다니, 그것도 신은지가 보는 앞에서.이건 아예 그녀에게 체면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녀도 더 이상 겉치레를 하지 않고, 벌떡 일어서면서 눈이 벌개서 두 사람에게 얘기했다. “당신들 너무 해.” 말을 마치고, 돌아
박태준이 엔조이 클럽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은 이미 와 있었다.고연우는 그의 반듯한 정장 차림,그리고 넥타이까지 한 것을 보고 물었다. “너 설마 회사에서 바로 온 거야?”“맞아.”“참, 마누라가 도망갈 판인데, 그렇게 열심히 돈 벌어서 누구에게 주려고? 무덤까지 가져가려고?”“너랑 무슨 상관이야?”고연우 ‘배가 불렀구나, 아주 그냥!’박태준은 그의 옆에 앉았고, 그의 다른 한편에 나유성이 있었다.그는 웨이터가 따른 술잔을 들고, 나유성에게 건배했고, 그가 움직이자, 술잔의 액체는 불빛 아래에 흔들렸다. “은지, 네 아파트에서 나오게 해.”나유성은 그가 이 사실을 아는 것에 추호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기에, 속일 생각도 없었다. “태준아, 너 그렇게 하면, 너무 과분하지 않아? 여자야, 늦은 밤, 트렁크를 들고 밖에서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박태준은 무표정인 얼굴로 담담하게 얘기했다. “이건 우리 부부 사이 일이야. 유성, 넌 끼어들 자격 없어.”말투는 강하지 않았지만, 경고하고 있다는 것은 바보도 눈치챌 수 있었다.나유성은 눈살을 찌푸렸고, 얼굴에 지은 웃음은 사라졌다. “그렇기에, 넌 비즈니스에서 쓰던 수법을 그녀에게 쓰면 안 돼.”박태준의 분노는 극에 도달했다. “넌 무슨 자격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둘의 사이로 보아, 분위기는 눈으로 보아도 긴장 상태이고,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나유성은 그와 눈을 마주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씨 집안과 신씨 집안의 관계, 나와 은지는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 은지의 오빠와 같은 존재라고 해도 될 정도로.”박태준은 눈살을 찌푸렸고,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너 확실해? 그저 동생으로만 생각한다는 그 말?”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졌고, 곧 싸움이 일어날 기세였다. 옆에 있던 고연우는 일어나면서 나유성의 어깨를 툭 치면서 얘기했다. ”담배 사러 같이 가자.”이 핑계는 설득력이 없었다. 상 위에는 개봉하지 않는 담배가 몇 개 놓여 있었고,
신은지는 당황했고, 손으로 박태준의 어깨를 밀면서 얘기했다. “박태준, 흥분하지 마.”평소였으면, 그녀는 박태준이 자신에게 어떻게 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취했고, 취한 사람은 이성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역시, 그녀가 반항할수록, 남자는 더 거칠게 그녀를 상대했다.아파트는 크지 않았고, 문에서 침대까지, 10m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하지만 이 거리조차 그는 가기가 싫었고,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바로 키스했다. 현관에 있는 신발장 모서리가 그녀의 등을 불편하게 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편하지는 않았다.신은지는 힘껏 밀치면서 얘기했다. “나를 만지지 마.”그녀는 남자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남자의 힘이 너무 강했기에, 그녀가 어떻게 발버둥 쳐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박태준은 그녀 입술에 키스하지 못했고, 급하게 키스하지 않고, 그런 자세를 유지하면서 뚫어져라 그녀를 보았다.신은지의 하얀 얼굴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그의 힘으로 인해 그녀가 정말로 빠져갈 수가 없어서 그렇지, 아니면 박태준에게 뺨을 때렸을 것이다.그는 얼굴을 가까이하고, 낮은 소리로 웃었다. 정욕으로 가득한 웃음소리는 허스키했으며, 그는 손을 뻗어 신은지의 얼굴을 강제적으로 자신을 향해 돌렸다.강하게 그녀의 얼굴에 키스했고, 이어서 그녀의 얼굴을 타고 키스하면서 턱까지 내려갔다. 그녀의 하얀 피부에 핑크빛의 키스 흔적이 바로 생겼다.그저 밥을 먹고 올 생각에, 신은지는 셔츠에 니트를 입고 있었고, 겉에 긴 패딩을 입고 있었다.박태준이 다음으로 넘어가기 너무 쉬운 옷차림이었다.그녀는 비명을 지를뻔했고, 어떠한 발버둥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그를 욕하는 말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박태준은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은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 숨소리는 그녀의 얼굴에 닿았고, 조롱하듯 얘기했다. “걔가 오니, 당신은 순결한 척하는 거야?”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입술은 그녀의 몸을 떠나지
신은지의 당당하던 그 기세는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얘기했다. “입원하기 싫어도 해. 선생님, 입원할게요.”그녀는 박태준의 성격으로 결사반대할 줄 알았지만, 그는 조용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납할 때, 사람은 적었고, 신은지는 바로 수납을 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단독 병실에 갔다.신은지 “간병인 찾아줄까?”“난 잘 때 모르는 사람이 보는 것이 불편해.”“그럼, 밖에서 간호하라고 할게. 일이 있으면 부르면 돼.” 신은지는 조금 졸렸는지 하품했다.박태준은 차갑게 그녀를 보면서 얘기했다. “당신은 내가 뇌진탕이라도 걸린 줄 아는데, 내가 사람 부를 힘이 있겠어?”신은지는 아니꼬운 말투로 얘기했다. “뇌진탕이 걸렸다고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병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는 중단되었다.“태준아.”강혜정이 왔다.그녀는 박태준 이마의 상처를 보았다. 강 기사가 얘기한 것처럼, 이마 외에 다친 곳은 없었다.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얘기했다. “넌 다 큰 사람이 걸어 다니다가 넘어져? 조심할 수는 없었어?”박태준 “강 기사가 여기 있다고 얘기한 겁니까?”평소 이 시간이면, 강혜정은 취침할 시간이었다.“너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때야? 전화해도 받지 않고, 많이 놀랐어. 아는 사람이 이 병원에서 출근해서 망정이지, 아니면 난 네가 입원한 것도 모를뻔했어. 병원 로비에서 강 기사를 만났어. 이렇게 큰일을 나한테 얘기하지 않고, 이번 달 보너스는 없을 줄 알아.”사람을 보니, 강혜정은 마음이 놓였다. “은지야, 오늘 밤 네가 수고해 줘야겠어. 잘 좀 보살펴 줘.”강혜정이 신은지와 그를 대하는 태도는, 친정어머니와 계모가 대하는 태도처럼 완전히 달랐다.신은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강혜정은 두 사람 사이에 문제 있다고 생각할 터이니. “네, 어머님, 제가 병원 문 앞까지 배웅해 드릴게요. 지금은 많이 늦었으니, 들어가서 쉬세요.”두 사람은 모녀처럼 손을
정민아는 팔짱을 끼고는 고연우가 들고 있는 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연우 도련님, 이건 또 무슨 의미야?”“공 비서가 오늘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그래서?”주위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고연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정민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너무 진부한 이야기였다. 정민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논의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 담뱃갑을 더듬었다. 옆의 재떨이엔 얇은 층으로 쌓인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민아가 피운 것임을 립스틱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정민아가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면서도 막지 않았다.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민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담뱃불은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그녀의 눈을 비췄다. 그 순간, 눈 속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층 누그러져 보였다. 은빛 실처럼 가늘게 펴지는 연기 너머로 정민아는 당당하고 제멋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민아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고연우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다음 순간 정민아가 말했다.“고연우, 너 이상한 거 아니야?”“그렇지. 이상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거야.”고연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가리켰다.“시간 됐어. 레스토랑으로 가자. 예약해 놨어.”정민아는 이미 샘플 수정으로 지쳐 있었는데 고연우의 집요함이 정민아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고연우의 고급스러운 코트가 눈에 들어오자 정민아의 머릿속에 문득 나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그의 코트에 대고 눌렀다.‘치...’불꽃이 꺼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타는 냄새가 코트에서 퍼져 나왔다.정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꺼진 담배꽁초를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꺼져.”고연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의 타는 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민아의 손을 잡았다.“이 코트는 가격이 6자리 숫자야. 디자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어. 나와 저녁 정도는 함께 먹어줘야 하
고연우는 벨트를 풀며 말했다. 남자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그런 암흑 같은 분위기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아.”정민아는 원래 고연우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연우는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니 고연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정민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연우는 옷을 반쯤 벗었고 단단한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으며 술기운에 물든 피부는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치 곧 무언가가 터질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고연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정민아가 말했다.“요즘 운동 안 했어?”고연우는 어이없었다.“?”정민아는 손바닥을 고연우의 가슴 아래쪽에 대고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고는 평가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좀 줄었네.”“...”정민아는 마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연우를 응시했다. 고연우는 모른 척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옷을 다시 입고 정민아의 손을 자기 몸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문을 향해 나가며 화가 난 듯 정민아를 한번 매섭게 쳐다보았다.“네가 이겼어.”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며칠 동안 고산그룹 대표실이 있는 층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공민찬이 급한 서류 묶음을 들고 고연우에게 사인을 받으려 일어서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났다. 그때 최민영이 가방을 들고나와 미소를 지으며 공민찬에게 인사를 건넸다.“공 비서님.”공민찬은 다가서며 말했다.“최민영 씨.”최민영은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연우 씨 사무실에 있나요?”“최민영 씨, 잠시만요”공민찬은 그녀를 막아섰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우선 접대 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최민영은 눈썹
고연우는 짜증 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가세요. 나중에 송씨 아주머니한테 작업복 하나 달라고 하세요.”“도련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하린은 우유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저 예전에 마사지도 배운 적 있는데, 제가...”“그만 나가.” 고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피하다가 우유를 엎지르고 말았다. 우유가 쏟아지며 더럽혀진 셔츠를 내려다보며 그는 얼굴은 굳어진 채 입술을 오므렸다. 한참 후에야 한 마디 내뱉었다. “사모님께서 보낸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하린은 고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 정말로 사모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나가세요.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서재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린은 금수저 남편을 찾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취직했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봉투까지 건넸지만 고연우의 사늘한 태도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서재를 나오자마자 난간에 기댄 채 그녀를 쳐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모님...”하린은 갑자기 발걸음 멈추더니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를 품었던 그녀는 사모님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안했다. “도련님께서 드시지 않았어요...”비록 정민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하린은 괜히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침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번 더 가져다주세요.”하린은 정민아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재벌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걸까? 설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돈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다 사생아라도 생겨 상속 분배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쩔 생각인지.’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께서 송씨 아주머니한테 익숙해졌는지 저를 좀 꺼리시는 것 같아요. 아
다음 날.정민아와 사연희는 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야...”주소월이었다. 사연희는 정민아의 과거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소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을 챙기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절친이라도 남의 가정사에 깊이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초대장 몇 개 빼놓고 못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보내고 올게. 쇼에 관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주소월을 흘끗 쳐다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정민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소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어젯밤에 충분히 더 이상 정씨 가문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소월이 여전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겠니?” 정민아가 거절할까 봐 주소월은 서둘러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가 쇼를 열잖아? 오늘 밤 연회에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잠재 고객을 몇 명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어.”“지금 그 무리에서 잠재 고객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최민영의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못한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반면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좋은 사람은 고아 때문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주소월은 정민아가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데려오긴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이렇게 상처만 줬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저를 정씨 가문으로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또... 그 미친놈으로부터 구해줘서 고마워요.”마치 세월의 흔적을 덮은 한 자루의 칼처럼 서서히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민아야...” 주소월은 울먹거리며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그
정민아는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갈아신던 중 슬쩍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아주머니, 제가 전화드렸잖아요. 저녁 먹고 온다고,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렸어요?”송씨 아주머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직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연우라는 말을 듣자 정민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그렇군요.”“아가씨...”송씨 아주머니가 망설이며 그녀를 불렀다.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제가요?” 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왜요?”“도련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는데... 두 분 혹시 싸우신 거 아닌가요?”“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고 제가 달래줘야 하나요? 그럼 왕자님, 저녁 드세요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민아는 피식 웃더니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먹든 안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먹기 싫으면 굶으면 되죠.”송씨 아주머니는 시선을 정민아 뒤쪽으로 옮기더니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련님...”정민아가 뒤돌아보자 고연우는 난간에 기댄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고 옷자락은 허리선에 맞춰 깔끔하게 넣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를 뽐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배경처럼 흐릿해 보이게 만들었다.고연우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사실 그는 조금 더 튕기고 싶었지만 계속 자존심을 부리다 이 무심한 여자는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정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이미 먹었어.”“네가 장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해 줬더니, 겨우 도시락 하나 사주는 거냐? 정민아, 너 정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하자 덜 말려진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하얗고 맑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물방울까지 맺혀있어 고연우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그 어떤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방안에 가득 찬 정민아의 향기가 그림자마냥 고연우의 주변을 맴도는 탓에 고연우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주먹을 말아쥐었다.술기운이 뒤늦게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고혹적인 자세 때문인지 고연우는 머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에 정민아는 문을 열고는 손님을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내가 불편해지면서까지 다른 사람한테 맞추긴 싫거든. 그러니까 일단 최민영부터 죽이고 와서 사랑 타령해.”“... 다른 건 안 될까?”“다른 거 뭐?”정민아의 산만한 시선이 고연우의 몸에 머물렀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보는 듯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너한테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뭐 다른 게 있긴 해?”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욕적인 말임은 틀림없었다.하지만 웃긴 건 정민아의 말에 고연우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아무리 봐도 돈과 권력 외에는 정민아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없어 보이는 듯한 몸에 고연우는 고개를 들더니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기생오라비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어.”정민아가 혹여 듣지 못할까 봐 고연우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어려서부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던 고연우는 저에게도 이렇게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필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관심 없다는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얼굴 자랑 말고 가서 약이나 좀 사지 그래? 내가 너에 대한 흥미는 약의 자극을 받아야만 생길 것 같거든.”머리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아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도 입안에는 분노 가득한 험한 말들이 서러움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넌 앞으로 그냥 말을 하지 마.”
고연우의 질문에 정민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학 때 후배.”그 말에 고연우는 아까 정민아를 보던 임우빈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물었다.“쟤가 너 좋아해?”“응.”“...”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해버리는 정민아에 말문이 막혀버린 고연우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너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 좋아했었어?”정민아의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임우빈한테 유난히 관대한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민아 앞에서 주책맞게 떠들어 댄 게 자신이었다면 정민아는 진작에 제 머리를 비틀어 화분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정민아는 언짢아 보이는 고연우를 보며 말했다.“기생오라비 같은 게 아니라 어린 거야. 턱선이 당신처럼 뚜렷하진 못해 그래서. 그리고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건 격 떨어지는 일이야, 고연우 도련님.”고연우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올라가는 억양을 붙인 게 아무리 봐도 조롱 같았던 고연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턱선이 나보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려서 그렇다고? 그럼 뭐 나는 늙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를 탐내는 데 내가 얼마나 격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난...”고연우는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참아냈다.“곧 이혼할 건데 뭘.”“꿈 깨.”혈관 속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느낌에 원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완벽히 잡쳐버린 고연우는 정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난 이혼에 합의 안 할 거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사이에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어.”고연우의 말에 정민아가 문고리를 잡아 내리며 대꾸했다.“그럼 아직 살아있으니까 납골함이라도 직접 골라. 귀신 돼서도 네가 직접 고른 집에 있으면 기분이라도 좋겠지.”“정민아, 너...”고연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문이 “펑”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탓에 하마터면 거기에 얼굴을 맞을 뻔한 고연우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누가 이딴 식으로 짜증을 내고 들
말을 안 하고 앉아있는 정민아에 기사는 정민아가 슬퍼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낱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답답한지 기사는 의자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진심으로 좋아하면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알려줘야죠. 이런 식이면 남자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남자들이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여자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도 없어요.”“저도 남자예요, 믿어도 좋아요.”끊임없이 말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꾸했다.“응, 믿으니까 출발해 빨리.”정민아가 고연우를 시험하는 건 그가 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 씨 집안 간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지금 보니 이 길은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았다.임우빈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당기며 고개를 돌려 정민아를 바라보며 그 나이대 특유의 당찬 표정을 하고 말했다.“저렇게 양옆에 여자나 끼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홀려대는 남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누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죠. 저는 어때요?”임우빈은 제 이두근을 자랑하며 말했다.“젊고 잘생긴 데다가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일편단심이에요. 누나 말곤 아무도 안 봐요, 길가는 암컷 강아지한테 눈길 안 줄 자신 있는데.”“... 너희 엄마는 네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여자를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사실 아니?”정민아의 말에 임우빈은 툴툴대며 대답했다.“많이는 아니죠, 고작 세 살인데. 오버는 하지 말죠. 그리고 내가 정말 누나를 집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좋아할걸요. 적어도 앞으로 두 세대는 미모는 보장할 수 있으니까.”임우빈은 정민아의 대학교 후배였는데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정민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려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제대로 들이대 보지도 못하고 정민아가 퇴학을 해버리는 탓에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정민아가 있다는 경인시까지 와서 대학원을 다니고 여기서 취직
사연희는 잔뜩 감동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우리 가게 때문에 민아 씨만 고생했네요.”안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노 대표님의 생각을 바꿀만한 둘레의 허벅지를 찾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촉박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노 대표님이 술을 깨기 위한 시간이었다.사연희가 오해한 걸 알아차린 정민아는 해명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사연희를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그때 공민찬이 나오면서 말했다.“고 대표님, 방금 룸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고연우는 공민찬을 흘겨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너만 입 달렸어?”“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공민찬은 사과 하나는 빨리하며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사모님께 말씀은 하셨어요?”“...”“대표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사모님 마음 못 돌려요. 사모님이 최민영 씨한테 괴롭힘 당할까 봐 문 앞에 사람까지 세워서 지키시면 뭐해요, 이런 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시면 사모님은 영영 모르실 텐데요. 그럼 감동도 못 받으실 테고 사모님이 감동하지 못하시면...”그런 공민찬을 보던 사연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민아에게 귓속말을 했다.“안 되겠어, 나 여기 더는 못 있겠어.”밖으로 나가기 전 사연희는 한 번 더 공민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사연희가 만약 공민찬처럼 말 많고 사실만 얘기하며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비서를 뒀다면 얼마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을 텐데 무표정으로 듣기만 하는 고연우를 보니 허벅지 대표님의 성격은 꽤 차분해 보였다.“입 다물어.”그 차분한 고연우도 더는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공민찬 손에 들려있던 차 키를 뺏어 들고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가자.”“응.”정민아의 대답을 들은 고연우의 발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참 만에 땅에 닿았다.정민아의 조롱 섞인 거절이거나 분노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