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은 나유성이 신은지에게 다정하게 휴지를 건네는 장면이 몹시 거슬렸다.게다가 그는 아직 나유성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몰랐지만, 얼굴만 보고도 자기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박태준은 자연스럽게 나유성과 신은지의 가운데 서면서 그녀의 옷에 묻은 붉은 얼룩을 보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은지야, 집에 갈아입을 옷 있어? 올라가서 갈아입자.”고개를 푹 숙인 채 옷에 묻은 얼룩을 닦고 있던 신은지는 박태준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좋아.”나유성도 박태준을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강혜정은 신은지를 데리고 위층 옷방으로 향했고 거실에는 박태준, 나유성과 고연우가 남게 되었다.고연우가 박태준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먼저 말을 건넸다.“태준아,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경인에 돌아오기 전, 신은지는 박태준에게 그의 주변 사람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는 고연우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의형제 사이었지만, 이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그에게는 그저 낯선 사람에 불과했다.박태준은 자기를 여기저기 훑어보는 고연우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할 말 있으면 해.”고연우는 박태준의 다리를 한번 차면서 말했다.“얘가 뭐라는 거야? 형이라고 불러야지.”“뭐라고?”고연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네가 내 동생이니까 당연히 날 형이라고 불어야지! 예전에는 날 형이라면서 깍듯이 모시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기억상실을 핑계 삼아 발뺌하려는 거야?”박태준은 냉소를 지으면서 패기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절대 그럴 일 없어! 당신이 내 동생이었으면 몰라도 내가 당신을 형이라고 불렀을 리가 없어! 딱 봐도 반듯한 얼굴에 싸움 한 번 못 해본 것 같은 도련님이 내 앞에서 무슨 형님 타령이야!”고연우를 화내기는커녕 웃는 듯 마는 듯하면서 박태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훑어보았다.“상처가 많은 사람이 형이라면 네
박태준은 그녀가 말머리를 돌리는 게 못마땅했다.“아까 소개할 때 나한테 하지 않은 말이 없어?”“없어.”나유성과 복잡하게 뒤엉킨 관계에 대해서는 그에게 말할 생각이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가 지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 그에게 알려서 두 사람의 형제애에 영향을 줄 필요가 없다.박태준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 나유성이라는 사람이 널 좋아해.”“...”신은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꼬집으며 뾰로통하게 말했다.“나유성과 말도 몇 마디 안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상상하지 마.”“너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그는 낮은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냈다.“너도 걔를 유성이라고 친근하고 부르고.”“너랑 유성이 절친이고,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도 살아계실 때 그 집안과 가깝게 지냈었어. 그러니 성까지 붙여서 이름을 부를 수 없잖아. 사람들이 나를 교양 없다고 욕할 거야.”“외할아버지와 어머니도 걔를 알아? 그 집안과도 사이가 좋았다고? 왜 전에는 말하지 않았어?”“...”“그럼, 나와 걔 중에 누구랑 먼저 만났어?”박태준이 또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하자, 신은지는 급히 탁자 위의 보양탕을 들었다.“먼저 만났다고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난 지금 네 아내야. 계속 다른 남자와 연관 지으면 앞으로 손님방에 가서 잘 거야.”“어머니가 몸에 좋다고 특별히 너를 위해 끓인 거야. 얼른 먹어.”박태준은 보양탕이 한 그릇밖에 없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너는 왜 없어?”신은지 때문에 강혜정에게 매를 맞았던 과거의 기억이 사라졌기에 그의 첫 반응은 엄마가 TV에 나오는 눈가림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아들을 편애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신은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어머니가 특별히 너를 위해 끓인 거라고 하셨어. 빨리 먹어. 곧 식을 거야.”이건 아마 박태준의 몸에 맞추어 의사가 특별히 처방한 약선요리일 것이다. 방금 들고 올 때 은은한 약 냄새가 났다.강혜정이 평소에 잘해주기 때문에 신은지는 이걸 받지 못한 것을 대수롭지 않
신은지가 막 돌아서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박태준이 손을 뻗어 그녀를 욕실로 끌어당겼다.수증기가 없는 욕실에 마주 서니 탈의한 박태준의 몸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흉터가 한눈에 보였다.이전보다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생생한 이 흉터들을 볼 때마다 신은지는 폐창고에서 억지로 봤던 그 동영상이 생각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학대를 당하면서도 고집스럽게 기민욱에게 순종하지 않던 박태준의 모습이 떠오른다.이 흉터들을 수없이 보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그의 모습을 수없이 떠올렸어도, 신은지는 매번 바늘에 쿡쿡 찔린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그래서 그녀는 슬쩍 보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계속 보면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박태준이 의심할 것 같았다.의사는 그의 기억이 천천히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가 이 대목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길 바랐다.하지만 박태준은 신은지의 이 행동을 오해했다. 그는 입술을 오므린 채 속상하고 억울한 눈빛을 지었다.“너도 내 몸에 있는 흉터들이 싫어?”이 흉터들은 은지가 아내라는 것을 알기 전에 생긴 것이다. 부부라면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단 한 번도 그녀가 싫어할 것이라는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고연우의 귀띔도 있고, 그녀가 얼핏 보고 재빨리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신은지가 의아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무슨 허튼소리 하는 거야?”“너 방금 내 몸을 힐끗 보고 무슨 못 볼 꼴을 본 것처럼 1초도 멈추지 않고 시선을 돌렸잖아.”“...”박태준의 이런 반응이 어이없었던 신은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분명 마음 아파했는데, 그의 눈에는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욕실 안은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30초를 기다렸는데도 그녀가 대답이 없자 박태준이 조급해했다.“왜 말이 없어?”“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그는 이전에 이 흉터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샤워한 후 목욕 수건만 두르고 그녀의 앞에서
박태준은 잠시 멍해졌다. 이 일이 본능이라고는 하지만 기억이 없는 그는 처음 해보는 것이고 아무 경험도 없는 풋내기다.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격하게 나오니 박태준은 조금 당황했다. 게다가 거울을 마주하고 서 있어서 고개만 들면 거울 속의 욕망으로 물든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었다.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묶인 손을 풀었고 목젖이 움직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은지야.”신은지는 박태준의 목을 끌어안고 세면대에서 내려온 후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박태준은 그녀에게 밀려 뒤로 물러섰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등이 차가운 타일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차가운 자극을 견디지 못한 그는 앓는 소리를 냈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방금까지 뜨거운 열정을 보이던 그녀가 전혀 미련 없이 몸을 빼더니 두 발짝 떨어진 위치로 물러났다.곧이어 차가운 물이 쏟아져 그의 몸을 적셨다. 신은지가 샤워기를 열었던 것이다.“서프라이즈!”계속 쏟아지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천천히 씻어. 나갈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준이 손을 뻗어 신은지를 잡아당겼고, 그의 손을 묶었던 옷도 발 옆에 떨어졌다. 그는 그녀를 샤워헤드 아래로 끌어당겼다.“같이 씻자.”물이 좀 뜨거워지긴 했지만 아직 온도가 완전히 오르지 않은 상태라 흠뻑 젖은 신은지는 추워서 몸을 떨었다.샤워는 유난히 오래 걸렸는데, 끝난 후 그녀는 서지도 못해 박태준에게 안겨서 나왔다. 그의 품에 기댄 그녀는 열기 때문에, 그리고 지쳐서 잠이 몰려왔다.녹초가 된 그녀의 모습과 달리 박태준은 활기가 넘쳤고 심지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짐짓 엄숙하게 말했다.“이게 서프라이즈지.”“...”신은지는 욕하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하고 목도 아파 움직이기도 말하기도 싫었다.박태준은 그녀를 침대에 앉히고 불편할까 봐 베개를 가져다 허리춤에 받쳐주었다.“자지 마. 머리를 말려줄게.”“내가 할 테니 약이나 사다 줘.”그녀는 눈을 흘겼다.“너 방금 콘돔을 쓰지 않았
밥을 먹은 후, 박태준은 박용선과 함께 회사로 나갔다. 그는 신은지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필터링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에게 잔뜩 화난 그녀는 전혀 곁을 주지 않았다.“너에게 회사 상황을 다 설명했고 인수인계도 이제 끝났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오늘 오후에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얼른 물어봐.”한시라도 빨리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박용선의 말투에 그는 무심코 물었다.“내일 회사에 안 나와요?”“네가 회사 책임자야. 전에는 네가 치료를 받고 있어서 대신 관리했던 것이고,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돌려줘야지.”그는 당연한 듯 말했다.“네 엄마를 데리고 여행 갈 거야. 표도 다 예매했어. 내일 오전 11시에 떠나니 너한테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어. 오늘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회사 업무를 철저히 파악해야 해. 여행을 하면서까지 시간을 내서 너의 숙제를 지도해주고 싶지 않아.”“...”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진영웅과 왕준서가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박태준이 오늘 회사로 복귀한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여기서 기다렸다.그가 나오기도 전에 진영웅이 거의 달음박질해 박태준의 앞에 다가갔다.“대표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그동안 회사에 안 계셔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자나 깨나 대표님이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박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더니 전혀 망설임 없이 말했다.“진영웅?”“네.”그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진영웅은 흥분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대표님, 저를 기억하세요?”‘대표님이 병을 치료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잃었는데, 대번에 내 이름을 부르다니. 그의 마음속에서 요지부동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증거가 아닌가?’그가 미처 왕준서에게 자랑하기도 전에 박태준이 무자비하게 그의 뇌피셜을 박살 냈다.“은지가 말해줬어. 나한테 비서가 두 명 있는데, 멍청한 쪽이 진영웅이라고.”신은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뜻은 비슷했다.진영웅은 말문이 막혔고, 왕준서는 참지 못하고 웃음
“뭐가 기억나?”박태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신은지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망하지도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박태준이 과거의 기억이 돌아오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네가 이전에도 앞잡이라고 불렀기에 기억난 줄 알았어.”박태준이 우쭐대며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이전에 눈이 멀어서 그런 엉큼한 자식과 형제로 지낸 줄 알았더니, 그 자식이 나쁜 놈이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네. 그와 친하게 지낸 것도 집안 어른들의 체면 때문일 거야.”“아니야.”신은지는 그가 기억 못 하고 또 오해로 인해 나유성과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너와 유성은 정말 생사를 같이한 절친이야. 너한테 일이 생길 때마다 군말 없이 도와줬어.”박태준은 표정이 여전히 어두웠지만 신은지가 전화 받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그럼 스피커폰으로 해. 그 자식은 딱 봐도 착하고 순진한 척하면서 속에 꿍꿍이가 가득 찬 여우야. 뒤에서 내 험담을 하면서 우리 사이를 이간질할지도 몰라.”신은지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스피커폰으로 했다.“유성아.”“은지야.”나유성은 귀공자 스타일의 부드러운 음색을 가졌다.“진영웅이 나를 조사하고 있어. 태준이 시켰을 거야.”“...”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옆에 있는 박태준을 쳐다보았다.“왜 유성을 조사해?”박태준은 ‘이것 봐, 내 말 맞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당당하게 하소연했다.“뒤로 호박씨 까는 놈이라고 했잖아. 정말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있어.”나유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가 전화한 목적은 신은지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둘의 과거를 박태준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면 진영웅이 보고하기 전에 덮으라는 것이다.그런데 박태준이 옆에 있다가 이 말을 다 듣게 될 줄이야. 진짜... 잘하려다 일을 망쳤다.신은지는 그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진영웅한테 조사하라고 시키지 않았어? 유성이 억측으로
신은지는 속으로 역시 거짓 형제애라고 생각했다.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아직 봐야 할 서류가 많이 남은 박태준도 일을 봤다. 다만 30분 후 왕준서가 문을 두드리더니 배달 음식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유성 도련님이 보낸 물건입니다.”그는 책상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뭐가 들어 있는지 감히 말하지 못한 채 물건을 놓고 황급히 돌아섰다.봉지가 밀봉되지 않은 까닭에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봤기 때문이다.박태준은 신은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물건을 봉지에서 꺼냈다. 예쁘게 포장된 찻잎이었고, 검은색 선물 상자에 차 이름이 적혀 있었다.“...”차 이름을 본 신은지가 참지 못하고 웃으면서 박태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잘 어울려. 고급... 차야.”“...”‘내가 욕하는 말인 걸 모를 줄 알아?’그는 찻잎을 한쪽에 내팽개치고 퇴근할 때까지 다시 건드리지 않았다....박태준이 회사로 복귀했고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으니 신은지도 자기 일을 보기 시작했다. 이튿날 그녀는 박물관에 나가 휴가를 취소했다.그녀는 동료들을 위해 커피를 주문했고, 또 청소 담당 아주머니를 포함한 모든 동료에게 기념품을 선물했다. 조용하던 작업실이 갑자기 떠들썩해졌고, 동료들은 그녀에게 다가와 반년 동안 여행을 실컷 했냐고, 박태준과는 언제 결혼식을 올릴 거냐고 물었다.박태준이 아프다는 사실은 숨겼고, 신혼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휴가를 냈다.“혼인신고는 했고 결혼식 날짜는 아직 미정이에요. 확정되면 알려드릴게요.”어떤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했다.“나는 언제면 이렇게 운 좋게 재벌집 귀공자와 결혼할 수 있을까? 그때는 전 세계를 여행할 거야. 더 이상 할인 티켓을 위해 수많은 앱을 비교할 필요도 없겠지.”“은지가 시집을 잘 갈 수 있었던 게 단지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야. 능력이 있어서 박 대표님의 마음에 든 거지.”“...”휴가를 취소했지만 정식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다. 진유라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신은지는 동료들과 잠깐 얘
신은지는 진유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가 패배할 것임을 알기에 주문할 때 직접 4인분을 시켰다.곽동건이 재경그룹에서 온다면 박태준과 함께 올 가능성이 높다.예상한 바와 같이 진유라가 전화를 끊기도 전에 박태준에게서 문자가 왔다.“나랑 동건이 함께 갈 거니까 음식을 많이 시켜.”“알았어.”진유라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축 처진 모습으로 한숨만 연달아 쉬었다.“곽동건이 오겠대.”“응, 주문했어.”“왜 전혀 놀라지 않아?”“곽 변호사 앞에서 언제 한 번 이겨본 적이 있어?”“...”진유라는 변명하려 했지만 입을 벌린 채 말을 내뱉지 못했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그녀는 확실히 곽동건 앞에서 한 번도 당당했던 적이 없었다.그녀가 좀 떠벌리는 성격이긴 하지만 매번 그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법을 모른다고 곽동건이 일부러 법률 조항으로 그녀를 단속하는 게 분명하다.두 사람이 30분 넘게 얘기를 나눈 후에야 박태준과 곽동건이 도착했다. 그녀들이 왔을 때 이미 늦었는데, 또 30분 지체되니 식당에는 몇 테이블만 남았다.진유라가 투덜거렸다.“직원들이 청소하고 있어요. 퇴근이 늦어질까 봐 이쪽을 흘끔거리면서. 둘이 아무 데서나 먹으면 안 되나요?”박태준이 신은지 옆에 앉았다.“은지는 내 아내니까 당연히 나랑 같이 먹어야죠. 동건이 왜 왔는지는 직접 물어보세요.”곽동건은 말을 아꼈다.“네.”“...”진유라가 쏘아붙였다.“당신에게 물어봤어요? 왜 대답해요? 빨리 밥이나 먹어요. 배고파요.”샤부샤부를 먹길 잘했다. 한식이었으면 이때쯤 다 식었을 것이다.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박태준은 고개를 돌려 신은지에게 물었다.“쇼핑했어?”아까 밖에 있을 때 그녀의 옆에 있는 쇼핑백 더미가 보였다.“응, 쇼핑한 지 오래돼서 오늘 박물관에 휴가를 취소하러 나갔다가 오후에 마침 시간이 있어서 유라랑 쇼핑했어.”그녀가 출근한다는 말에 앞으로 낮에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박태준은 기분이 즉시 가라앉았다.“벌써 출근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