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유라가 미리 신은지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네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이 그들을 각진 테이블로 안내했다.그녀는 박태준과 신은지가 같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종업원에게 테이블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원형 테이블로 바꿔줄 수 있나요?”종업원이 원형 테이블로 안내하자, 진유라는 입꼬리가 휘어질 정도로 웃으면서 신은지의 오른쪽에 앉았다.한참 후 그녀는 곽동건과 박태준이 공적이 이야기를 나누는 틈을 타 신은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태준 씨가 너한테 왜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거야? 난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독이라도 타 먹인 줄 알았잖아!”“아마도 태준이가 수술을 마친 후 눈을 뜨고 본 첫 번째 사람이 나여서 그럴 거야. 게다가 회복하는 동안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 나한테 너 의지하는 거 아닐까?”진유라는 턱을 치켜들어 박태준을 가리키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설마... 태준 씨가 널 엄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켁!”물을 마시던 신은지는 진유라의 터무니 없는 소리에 놀라 사레가 들렸고 연신 기침하느라고 얼굴까지 빨개졌다.박태준은 신은지의 기침 소리에 곽동건과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등을 두드리면서 진유라를 계속 노려보았다.“우리 은지한테 무슨 말을 했죠?”진유라는 사나운 표정을 따져 묻는 박태준에게 화를 내려는 순간 신은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태준아, 유라랑 오래간만에 얘기하는 중이니까 끼어들지 마! 유라는 날 해칠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더욱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진유라는 신은지가 편을 들어주는 것에 치밀어 올랐던 화가 가라앉았고 눈시울까지 붉어져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은지야, 어떻게 네 남편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두 사람 당장 헤어져!”마치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진유라의 모습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고도 남을 정도로 훌륭했다.하지만 박태준도 이에 질세라 패기 넘치는
박태준은 신은지가 징그러운 곱창구이를 망설임 없이 먹던 장면이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고 최대한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완곡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용기 내 한 말이었다.신은지도 곧 박태준이 자기의 이마, 콧등과 눈을 바라보면서도 입술을 피하는 것을 발견하고 서운함을 느끼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태준아, 이제 나 싫어?”“아니야.”박태준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신은지의 물음에 답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고 뒤이어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잡고 가까이 다가갔다.신은지의 몸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박태준은 무의식적으로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신은지는 이미 그의 얼굴을 잡을 채 까치발을 들고 키스하기 위해 부드러운 입술을 점점 가까이 들이밀고 있었다.박태준은 또다시 신은지가 곱창구이를 먹던 장면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그녀의 키스를 피하려고 몸을 뒤로 젖혔다.신은지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실망과 섭섭함이 섞인 말투로 그에게 따졌다.“나 싫어하지 않는다면서!”“응...”“그럼, 내 키스 피하지 말고 똑바로 서 있어!”“...”신은지의 붉은 입술이 또다시 가까이 다가오자, 박태준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그의 뇌리에 또 곱창구이가 스치면서 키스하고 싶던 마음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박태준은 몇 초 고민하다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은지야, 우리 먼저 돌아가서 양치질부터 하는 게 어때?”신은지는 이제 눈썹까지 축 늘어뜨리며 실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그동안 내 키스를 거부한 적이 한 번도 던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에 대한 감정이 식은 게 분명해.”박태준이 수술을 하고 회복하던 어느 날, 너무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 신은지는 정오에 발코니의 소파에 앉아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박태준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신은지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를 탐구하고 있었고 방금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상태였던 그녀는 무의
강혜정은 신은지를 보자마자 굳어 있던 얼굴이 환하게 변햇고 양 팔까지 벌리면서 그녀를 환영했다.“은지야, 빨리 엄마한테 와!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설마 태준이 이 나쁜 자식이 또 네 속을 썩인 거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혜정은 매서운 눈빛으로 박태준을 노려보았다.“...”강혜정과 신은지는 친모녀처럼 서로 손을 잡고 마주보면서 웃었고 쉴새 없이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다정한 두 여자와는 달리 박용선과 박태준은 어색한 듯 한마디도 하지 않고 뒤를 따랐다.박태준은 몇 번이나 손을 뻗어 신은지를 붙잡으려 했지만, 강혜정이 그의 손을 찰싹 때리면서 꾸짖었다.“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걸을 때마다 은지가 옆에서 손을 잡아줘야 해? 은지랑 할 말 많으니까 네 아버지 손이나 잡고 따라와.”“...”박태준은 강혜정의 말에 박용선을 힐끗 쳐다보았다.박용선은 옆으로 늘어뜨렸던 손을 바지 주머니에 자연스럽게 집어넣으면서 아무 말 없이 박태준의 옆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박태준도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섭섭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버지, 어머니! 나 설마 주워온 자식이에요?”그제야 조용히 걷고 있던 박용선이 입을 열었다.“넌 우리 집이 고아원인 줄 알아? 줍긴 뭘 주워! 그리고 만약 우리가 자식을 주웠다면 너같이 하루종일 애만 썩이는 아들 말고 말 잘 듣는 착한 애를 주웠겠지.”박태준은 박용선의 직언에 마음이 상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조용히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다음날 회사로 바로 복귀해야 했던 박태준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은지와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박용선과 함께 위층 서재로 가서 그동안의 업무를 인수인계 받았다.물론 수술이 끝난 후 회복하는 중에도 간간히 통화로 업무얘기를 주고 받아 대체적인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통화로는 말 못한 많은 중요한 일들이 남아있었다.천재적인 사업능력을 갖고 있는 박태준은 박용선과의 통화 몇 번에 웬만한 회사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
박태준은 나유성이 신은지에게 다정하게 휴지를 건네는 장면이 몹시 거슬렸다.게다가 그는 아직 나유성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몰랐지만, 얼굴만 보고도 자기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박태준은 자연스럽게 나유성과 신은지의 가운데 서면서 그녀의 옷에 묻은 붉은 얼룩을 보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은지야, 집에 갈아입을 옷 있어? 올라가서 갈아입자.”고개를 푹 숙인 채 옷에 묻은 얼룩을 닦고 있던 신은지는 박태준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좋아.”나유성도 박태준을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강혜정은 신은지를 데리고 위층 옷방으로 향했고 거실에는 박태준, 나유성과 고연우가 남게 되었다.고연우가 박태준을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먼저 말을 건넸다.“태준아,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경인에 돌아오기 전, 신은지는 박태준에게 그의 주변 사람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는 고연우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의형제 사이었지만, 이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그에게는 그저 낯선 사람에 불과했다.박태준은 자기를 여기저기 훑어보는 고연우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할 말 있으면 해.”고연우는 박태준의 다리를 한번 차면서 말했다.“얘가 뭐라는 거야? 형이라고 불러야지.”“뭐라고?”고연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네가 내 동생이니까 당연히 날 형이라고 불어야지! 예전에는 날 형이라면서 깍듯이 모시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기억상실을 핑계 삼아 발뺌하려는 거야?”박태준은 냉소를 지으면서 패기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절대 그럴 일 없어! 당신이 내 동생이었으면 몰라도 내가 당신을 형이라고 불렀을 리가 없어! 딱 봐도 반듯한 얼굴에 싸움 한 번 못 해본 것 같은 도련님이 내 앞에서 무슨 형님 타령이야!”고연우를 화내기는커녕 웃는 듯 마는 듯하면서 박태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훑어보았다.“상처가 많은 사람이 형이라면 네
박태준은 그녀가 말머리를 돌리는 게 못마땅했다.“아까 소개할 때 나한테 하지 않은 말이 없어?”“없어.”나유성과 복잡하게 뒤엉킨 관계에 대해서는 그에게 말할 생각이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가 지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 그에게 알려서 두 사람의 형제애에 영향을 줄 필요가 없다.박태준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 나유성이라는 사람이 널 좋아해.”“...”신은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꼬집으며 뾰로통하게 말했다.“나유성과 말도 몇 마디 안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상상하지 마.”“너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그는 낮은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냈다.“너도 걔를 유성이라고 친근하고 부르고.”“너랑 유성이 절친이고,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도 살아계실 때 그 집안과 가깝게 지냈었어. 그러니 성까지 붙여서 이름을 부를 수 없잖아. 사람들이 나를 교양 없다고 욕할 거야.”“외할아버지와 어머니도 걔를 알아? 그 집안과도 사이가 좋았다고? 왜 전에는 말하지 않았어?”“...”“그럼, 나와 걔 중에 누구랑 먼저 만났어?”박태준이 또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하자, 신은지는 급히 탁자 위의 보양탕을 들었다.“먼저 만났다고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난 지금 네 아내야. 계속 다른 남자와 연관 지으면 앞으로 손님방에 가서 잘 거야.”“어머니가 몸에 좋다고 특별히 너를 위해 끓인 거야. 얼른 먹어.”박태준은 보양탕이 한 그릇밖에 없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너는 왜 없어?”신은지 때문에 강혜정에게 매를 맞았던 과거의 기억이 사라졌기에 그의 첫 반응은 엄마가 TV에 나오는 눈가림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아들을 편애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신은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어머니가 특별히 너를 위해 끓인 거라고 하셨어. 빨리 먹어. 곧 식을 거야.”이건 아마 박태준의 몸에 맞추어 의사가 특별히 처방한 약선요리일 것이다. 방금 들고 올 때 은은한 약 냄새가 났다.강혜정이 평소에 잘해주기 때문에 신은지는 이걸 받지 못한 것을 대수롭지 않
신은지가 막 돌아서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박태준이 손을 뻗어 그녀를 욕실로 끌어당겼다.수증기가 없는 욕실에 마주 서니 탈의한 박태준의 몸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흉터가 한눈에 보였다.이전보다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생생한 이 흉터들을 볼 때마다 신은지는 폐창고에서 억지로 봤던 그 동영상이 생각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학대를 당하면서도 고집스럽게 기민욱에게 순종하지 않던 박태준의 모습이 떠오른다.이 흉터들을 수없이 보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그의 모습을 수없이 떠올렸어도, 신은지는 매번 바늘에 쿡쿡 찔린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그래서 그녀는 슬쩍 보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계속 보면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박태준이 의심할 것 같았다.의사는 그의 기억이 천천히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가 이 대목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길 바랐다.하지만 박태준은 신은지의 이 행동을 오해했다. 그는 입술을 오므린 채 속상하고 억울한 눈빛을 지었다.“너도 내 몸에 있는 흉터들이 싫어?”이 흉터들은 은지가 아내라는 것을 알기 전에 생긴 것이다. 부부라면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단 한 번도 그녀가 싫어할 것이라는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고연우의 귀띔도 있고, 그녀가 얼핏 보고 재빨리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신은지가 의아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무슨 허튼소리 하는 거야?”“너 방금 내 몸을 힐끗 보고 무슨 못 볼 꼴을 본 것처럼 1초도 멈추지 않고 시선을 돌렸잖아.”“...”박태준의 이런 반응이 어이없었던 신은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분명 마음 아파했는데, 그의 눈에는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욕실 안은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30초를 기다렸는데도 그녀가 대답이 없자 박태준이 조급해했다.“왜 말이 없어?”“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그는 이전에 이 흉터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샤워한 후 목욕 수건만 두르고 그녀의 앞에서
박태준은 잠시 멍해졌다. 이 일이 본능이라고는 하지만 기억이 없는 그는 처음 해보는 것이고 아무 경험도 없는 풋내기다.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격하게 나오니 박태준은 조금 당황했다. 게다가 거울을 마주하고 서 있어서 고개만 들면 거울 속의 욕망으로 물든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었다.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묶인 손을 풀었고 목젖이 움직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은지야.”신은지는 박태준의 목을 끌어안고 세면대에서 내려온 후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박태준은 그녀에게 밀려 뒤로 물러섰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등이 차가운 타일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차가운 자극을 견디지 못한 그는 앓는 소리를 냈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방금까지 뜨거운 열정을 보이던 그녀가 전혀 미련 없이 몸을 빼더니 두 발짝 떨어진 위치로 물러났다.곧이어 차가운 물이 쏟아져 그의 몸을 적셨다. 신은지가 샤워기를 열었던 것이다.“서프라이즈!”계속 쏟아지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천천히 씻어. 나갈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준이 손을 뻗어 신은지를 잡아당겼고, 그의 손을 묶었던 옷도 발 옆에 떨어졌다. 그는 그녀를 샤워헤드 아래로 끌어당겼다.“같이 씻자.”물이 좀 뜨거워지긴 했지만 아직 온도가 완전히 오르지 않은 상태라 흠뻑 젖은 신은지는 추워서 몸을 떨었다.샤워는 유난히 오래 걸렸는데, 끝난 후 그녀는 서지도 못해 박태준에게 안겨서 나왔다. 그의 품에 기댄 그녀는 열기 때문에, 그리고 지쳐서 잠이 몰려왔다.녹초가 된 그녀의 모습과 달리 박태준은 활기가 넘쳤고 심지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짐짓 엄숙하게 말했다.“이게 서프라이즈지.”“...”신은지는 욕하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하고 목도 아파 움직이기도 말하기도 싫었다.박태준은 그녀를 침대에 앉히고 불편할까 봐 베개를 가져다 허리춤에 받쳐주었다.“자지 마. 머리를 말려줄게.”“내가 할 테니 약이나 사다 줘.”그녀는 눈을 흘겼다.“너 방금 콘돔을 쓰지 않았
밥을 먹은 후, 박태준은 박용선과 함께 회사로 나갔다. 그는 신은지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필터링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에게 잔뜩 화난 그녀는 전혀 곁을 주지 않았다.“너에게 회사 상황을 다 설명했고 인수인계도 이제 끝났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오늘 오후에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얼른 물어봐.”한시라도 빨리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박용선의 말투에 그는 무심코 물었다.“내일 회사에 안 나와요?”“네가 회사 책임자야. 전에는 네가 치료를 받고 있어서 대신 관리했던 것이고,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돌려줘야지.”그는 당연한 듯 말했다.“네 엄마를 데리고 여행 갈 거야. 표도 다 예매했어. 내일 오전 11시에 떠나니 너한테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어. 오늘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회사 업무를 철저히 파악해야 해. 여행을 하면서까지 시간을 내서 너의 숙제를 지도해주고 싶지 않아.”“...”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진영웅과 왕준서가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박태준이 오늘 회사로 복귀한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여기서 기다렸다.그가 나오기도 전에 진영웅이 거의 달음박질해 박태준의 앞에 다가갔다.“대표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그동안 회사에 안 계셔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자나 깨나 대표님이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박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더니 전혀 망설임 없이 말했다.“진영웅?”“네.”그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진영웅은 흥분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대표님, 저를 기억하세요?”‘대표님이 병을 치료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잃었는데, 대번에 내 이름을 부르다니. 그의 마음속에서 요지부동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증거가 아닌가?’그가 미처 왕준서에게 자랑하기도 전에 박태준이 무자비하게 그의 뇌피셜을 박살 냈다.“은지가 말해줬어. 나한테 비서가 두 명 있는데, 멍청한 쪽이 진영웅이라고.”신은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뜻은 비슷했다.진영웅은 말문이 막혔고, 왕준서는 참지 못하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