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이를 똑똑히 본 강태민은 코웃음을 쳤다.‘그 주제에, 나를 따돌리고 일을 벌이겠다?’자기 방으로 돌아온 박태준은 침대 시트도 갈지 않고 바로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하고 정돈한 후 30분 동안 회사 일을 처리했다. 이쯤 되면 강태민이 잠들었을 것 같아 그는 일어나서 살금살금 방문을 열었다.아무도 없는 복도에는 비상등만 따뜻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그의 방에서 신은지의 방에 가려면 중간에 강태민의 방을 지나야 한다.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걸으면 사락사락 소리 나긴 하지만 이렇게 미약한 소리는 무시해도 된다.그래도 강태민의 방문 앞을 지날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 소리를 죽였다.벌컥! 꼭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고 잠옷 차림의 강태민이 문 뒤에 서서 차가운 얼굴로 그를 내다보았다.“박 대표, 한밤중에 살금살금 어디 가세요?”“...”“들어와요. 마침 물어볼 일이 있어요.”이튿날, 하룻밤 푹 자고 난 신은지가 상쾌한 얼굴로 방을 나서다가 마침 피곤한 얼굴로 강태민 방에서 나오는 박태준과 마주쳤다. 그녀는 그를 쳐다봤다가 다시 방을 들여다보며 물었다.“이렇게 일찍... 왜 아버지 방에서 나와? 게다가...”게다가 딱 봐도 밤을 새운 모습이다.박태준은 눈을 겨우 뜨며 힘없이 대답했다.“아버님이 나를 붙잡아 밤새 장기를 두게 했다면 믿겠어?”“...”차라리 두 사람이 밤새 싸웠다고 하면 믿었을 것이다. 강태민이 박태준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먼저 찾았을 리 없잖아.박태준이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내가 밤에 널 찾아갈까 봐 방도를 대신 거야.”“하룻밤 장기를 둔 게 이 정도로 피곤해?”이전에도 박태준은 회사 일이 바쁠 때면 밤을 꼬박 새울 때가 많았지만 이튿날 똑같이 활기차고 평소랑 별 차이가 없었다. 혹시 나이 들어서 정력이 달리는 건가?박태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채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은 후 벽에 붙이고 서서 깊고 긴 키스를 나누었다. 남자는 아침에 몸이 민감하기 때문에 키스만 했는데도 반응이 왔다. 그는
내용을 보니 전부 영양가 없는 글들이었다. [여자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 [여자가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여자가 당신이 주는 집, 차, 보석과 돈을 받지 않는다면 당신을 갖고 싶지 않은 것], 심지어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8가지 자세]라는 제목도 있었다.이 파격적인 제목들을 보면서 신은지는 정신이 아찔해졌다.고개를 들어 박태준을 보니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꾸역꾸역 밥만 먹고 있었다. 그녀가 공예지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은 것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나 있나 보다.신은지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그 채널들을 하나하나 구독 취소했다. 일부 삽화와 글 제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다 몰래 지울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강태민이 보면 그녀가 무슨 에로물을 보는 줄 알겠다.전부 구독 취소한 후 신은지는 휴대폰을 박태준에게 던져주었다.그가 받아서 열어 보니 그녀가 카톡에 들어갔던 흔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는 볼 수 없어 그냥 넘어갔다.강태민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내가 지난번에 보낸 사진은 봤어? 맘에 드는 사람 없었어?”모자이크 처리된 그 사진을 떠올린 신은지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아버지가 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는 건 처음 봤다.“아버지, 이후에는 그런 사진을 보내지 마세요.”박태준은 식사하느라 여념이 없어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는 것 같았지만 벌써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그러니까 지난번에 신은지의 휴대폰에서 본 사진들이 강태민이 보낸 거였어?’“그런 사진이라니? 그건 내가 특별히 부탁해서 받은 거야. 모두 남포시의 청년 인재들이라고. 인터넷에서 대충 찾은 사진인 줄 알아? 내가 그렇게 품위가 없어?”“...”이건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게 진짜였다니.박태준이 훼방을 놓았다.“아버님이 속은 거예요. 어느 청년 인재가 누드 사진을 찍어요? 제비족이 돈 많은 여자를 낚기 위해 캐릭터를 지어낸 거죠.”강태민은 화가 치밀어 하마터면 그릇에
임 관장한테 지수호를 조수로 받겠다고 했고 지수호도 배우고 싶어 하는데 그냥 한쪽에 팽개쳐둘 수 없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팬이라고 했다. 팬이라면 당연히 더 잘해줘야 한다.지수호가 웃으며 대답했다.“네.”“그럼 오늘 도구 알아보기부터 시작해요.”그는 관련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그녀는 모든 도구의 이름과 용도를 가르쳐주었고, 그는 노트를 들고 열심히 기록하면서 가끔 질문도 했다.그가 이렇게 나오니 신은지도 더 열심히 가르쳤다.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좋아한다....공예지는 병원에서 나오다가 누군가와 부딪쳐 휘청거렸다. 그 사람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고 연거푸 사과했다.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던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 사람이 그녀의 손에 쪽지를 쥐여줬기 때문이다.그녀가 살며시 쪽지를 열어보니 ‘백야, 202’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온몸이 굳어진 채 고개를 쳐든 공예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백야라는 카페를 보면서 등에 식은땀이 돋았다.설마 그 사람인가?누군가가 카페 2층을 통째로 빌렸기 때문에 그녀는 올라간 후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서빙 직원도 없었다.그녀는 202룸 앞에 가서 노크했다. 손가락이 문에 닿으면서 똑똑 소리가 났고, 심하게 뛰는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와 어우러졌다.주변 공기가 반쯤 빠져나간 듯 너무 조용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이전에 친구와 함께 커피 마시러 왔을 때는 복도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음악 소리도 사라졌다.얼마나 지났을까? 공예지가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발이 저릴 때쯤 안에서 일부러 바꾼 남자의 목소리가 전해졌다.“들어와.”이 목소리가 그녀의 추측을 입증했다. 정말 그 사람이다.공예지는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룸은 크지 않았는데, 1m 길이의 칸막이 의자와 테이블을 놓으니 심지어 비좁은 느낌까지 들었다. 창가 쪽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감히 고
박태준은 곧 할 것이라고 말했다.신은지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어쩐지 박태준이 이 말을 할 때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역시 엄마인 강혜정이 자기 아들을 더 잘 안다. 그녀는 그 한순간의 이상한 낌새를 한눈에 눈치채고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신은지를 바라볼 때는 자애롭고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은지야, 나 좀 배고파. 저기 가서 케이크를 좀 사 올래?”신은지가 가자마자 그녀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미리 말해두는데, 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라면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줄 알아. 우리 집 며느리는 은지야. 다른 누구도 안 돼.”얼마 전의 스캔들을 그녀도 들은 바가 있다. 게다가 그 여자가 전예은과 좀 닮았다니 더 재수 없었다. 은지가 따지지 않았고, 또 자기가 끼어들면 오히려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질까 봐 걱정해서 가만있었지, 아니면 박태준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어머니.”박태준은 어이없었다.“무슨 생각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 며느리는 당연히 은지밖에 없죠.”그의 확답을 받고서야 강혜정은 못마땅한 기색을 거두었다. 그러나 박태준이 이전에 한 짓이 있기 때문에 한마디 잔소리했다.“너 그때 은지랑 결혼하고 싶어 내 앞에 무릎 꿇고 울 뻔했잖아. 어렵게 관계를 회복했는데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은지가 너를 용서할 의향이 있더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을 거야.”이 과장된 표현을 듣고 박태준은 머리가 아팠다.“... 울 생각이 없었어요.”신은지가 케이크를 들고 오자 강혜정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두 부자는 차를 가지러 가. 가는 김에 이 물건들을 차에 싣고.”그들이 간 후 강혜정과 신은지는 빵집에 한참 더 앉아 있다가 올 시간이 된 것 같아 케이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은지야, 이따 뭐 먹고 싶어?”“어머니, 아버님이랑 두 분이 가서 드세요. 오늘은 두 분 결혼기념일인데 저희가 따라 가면 뭐가 돼요?”그녀는 훼방꾼이 되기 싫었다. 어쩐지 박용선이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눈치 없다고 말하는
두 남자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마주쳤다. 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시한 후 웅크리고 앉아 강혜정의 상태를 살폈다.“어머니, 지금 좀 어떠세요?”약을 먹은 후 강혜정은 상태가 다소 호전됐다. 그녀는 박태준을 붙잡고 아까 그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기도윤... 방금.”박용선은 그녀가 감정이 격해지면 또 심장에 안 좋을까 봐 그녀의 말을 잘랐다.“혜정아, 기도윤은 20여 년 전에 이미 죽었어. 경찰이 DNA 검사도 했잖아. 죽은 게 틀림없어.”“그 사람 맞아. 내가 잘못 봤을 리 없어. 아까 그 사람은 틀림없이 기도윤이야.”기도윤 말고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왜 20년 만에 그가 경인시에,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마음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변태인 그는 좋은 마음 따위가 없다.강혜정의 감정이 다시 격해지기 시작하자, 박태준은 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알았어요. 제가 확인할게요. CCTV를 돌려서 기도윤이든 아니든 그 사람을 어머니 앞에 데려올게요. 흥분하지 마세요.”그는 일어나 한쪽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구급차가 이내 도착했다. 박용선은 강혜정과 함께 차에 타고 박태준과 신은지는 자가용차로 그 뒤를 따랐다. 구경거리가 없어지니 둘러싸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이내 흩어졌다.지수호와 그의 친구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줄곧 신은지가 떠나간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지수호를 보고 누군가가 장난쳤다.“저 여자가 수호 도련님의 혼을 쏙 빼놓았군. 보이지 않는데도 시선을 거두지 못해.”“저 여자를 쫓아다니고 있었어? 연상인데, 후려잡을 수 있겠어?”지수호는 피식 웃더니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여덟 살부터 여든 살까지 내가 후려잡지 못하는 여자는 없어. 두 달 안에 저 여자를 내 손에 넣을 거야.”“어떻게 된 거야? 수호 도련님은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예지 양을 쫓아다니는 거 아니었어? 언제 바뀌었지? 잘 만큼 잤으니 목표를 바꾼 건가?”옆에서 누군가가 상황을 설명하자, 한 무리
박태준은 신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어머니를 부탁할게.”그는 말하고 나서 돌아서더니 옆에 있는 왕준서에게 말했다.“가자.”왕 비서는 신은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신은지는 그가 원래 하려던 말이 이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박태준이 말참견하는 바람에 갑자기 말을 바꾼 것 같았다. 그녀는 불만스럽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흘겼지만 이미 떠난 사람은 이를 보지 못했다.박용선은 피곤한 얼굴로 병상 옆 의자에 앉아 강혜정의 손을 잡고 있었다. 신은지는 돌아가서 좀 쉬라고 말하려다가 눈에 아내밖에 없는 그를 보고 눈치 있게 입을 다물었다.“아버님, 집에 가서 어머니가 갈아입을 옷을 가져올게요.”“그래, 겉옷을 입고 자는 걸 싫어하니까 가는 김에 잠옷도...”말이 끝나기 전에 병실 문이 열렸다. 간다던 박태준이 문을 잡고 서서 약간 헐떡거리면서 의아한 눈빛을 하고 있는 두 사람 앞에서 주머니를 만졌다.“휴대폰이 없어졌어. 여기 두고 가지 않았나 해서.”신은지가 말하기도 전에 익숙한 벨소리가 박태준의 외투 주머니에서 흘러나왔다. 이따금 윙윙 진동까지 수반해 실버폰 소리와 매우 흡사했다.“...”이게 무슨 난처한 상황인가.박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휴대폰을 꺼냈다.“무슨 일이야?”“대표님, 어디 계셔요?”그가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니 대표님이 보이지 않았다.“병실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가지러 왔어. 차를 몰고 나와 문 앞에서 대기해.”그는 전화를 끊고 신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자. 데려다줄게.”“...”‘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병실에 두고 온 물건이 나였어?’돌아설 때 다리에 힘이 풀린 박태준은 무의식적으로 문틀을 붙잡았다.방금 아래층에 있을 때 꽃을 든 사람이 그를 스쳐 지나갔는데,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 상반부만 보였고 전혀 인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사람을 보고 그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은 착각
강혜정이 깨어났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주변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고 병실의 불은 꺼져 있었으며 구석에 있는 무드등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그녀는 애를 써서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알아볼 수 있었다.그녀는 입을 벌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자고 있는 사람을 불렀다."용선아."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잤는지 몰랐다. 물을 마시지 않아서 목이 탈 정도였다. 소리를 내려고 하자 모기 소리처럼 작은 소리가 났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그는 깨지 않았지만 그녀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뼈마디가 긴 큰 손이 빨대를 쥐고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녀는 목이 너무 말라 무의식적으로 두 모금 빨았다.따뜻한 물이 목구멍을 따라 흘러내려 목은 마침내 그 건조하고 떫었던 상태에서 벗어났다. 전보다 좀 나아진 것 같았다."왜 은지더러 여기에서 자게 했어? 집에 가서 자게 하지 않고. 소파에서 자는 게 얼마나 불편한데.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데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어떡해."무드등 불빛이 비치는 곳은 한정돼 있어서 소파에 있는 사람은 희미하게 그림자만 보일 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 할 수 없었다.그녀에게 물을 먹인 사람이 덩치가 큰 남자였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소파 위에 있는 사람이 신은지라고 생각했다."가서 은지를 깨워. 근처 호텔에 방을 잡아서 재우고 와."강혜정이 손을 뻗어 그를 재촉하려는데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낸 소리였다.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뻣뻣해졌다. 박용선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에서 뼈 소리가 들릴 정도로 경직된 동작으로 말이다. 남자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쳤지만 강혜정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당황했다.‘왜 잘 안 보이지? 용선이는? 소파에 있는 사람은 또 누구야? 깨어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저 사람은 왜 아직도 움직이지 않지?
신은지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한번 훑어보았다. 과연 그녀는 떼 지어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박태준을 보았고 그의 옆에는 공예지가 서서 다소 어색하게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공예지는 이런 파티에 오는 게 처음이라 아무리 등을 꼿꼿이 세우고 주눅 들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가난했던 생활환경 때문인지 이런 자리에 자주 참석했던 재벌 2세들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는 없었다. 그녀는 파티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아무리 자신의 처지를 신은지처럼 만들어도, 일이 생겼을 때 같은 반응을 보여도 신은지와 똑같아 질 수는 없었다. 신은지도 전보다 초라해지긴 했지만 그건 좀 지나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배워야 할 예의는 이미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배웠었다.진유라는 신은지가 전혀 놀라지 않는 걸 보고 말했다."박태준 씨가 공예지를 데리고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니네, 성씨 가문이 무슨 신분이라고. 그 집 딸의 약혼식은 말할 것도 없고 성씨 가문 할머니가 약혼한다고 해도 박태준을 초대할 정도의 지위는 안 돼.""초청받은 사람은 태준이가 아니라 공예지야."그날 차 안에서 신은지 앞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도도한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변했을뿐더러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속였다.‘접대가 있기는 무슨? 이게 무슨 접대야.'진유라는 의문이 들었다. 관계가 좀 복잡해서 그녀는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박태준이 공예지의 남자 파트너로 연회에 참석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소매를 걷어 올리려고 했다."이 여우 년이 어딜 넘봐? 내가 오늘 제대로 가르쳐줄게. 자기 것이 아니면 함부로 넘보지 말라고.""너 오늘 드레스를 입었잖아, 소매가 어디 있어. 일단 가지 마."신은지가 그녀를 제지했다.그녀는 오히려 공예지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는 지를 알고 싶었다. 의도가 무엇인지 말이다. ‘이 광경을 본 내가 질투 때문에 박태준과 말다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