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는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녀는 박태준이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박용선에게 이미 이 일에 대해 말했고, 계획 중이었다. 신은지의 멍한 모습을 본 박용선은 박태준이 그녀에게 아직 이 일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 ”사람은 좋은데 좀 바보 같아.” 한편, 진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진영웅은 어리둥절하며 이야기를 듣다가 한참 후에야 깨달으며 말했다. "나 대표님은 평생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좋은 남자예요. 저한테 딸이 있으면 사위로 삼고 싶을 정도예요.” 신은지는 말했다. "진 비서님이 연애하고 결혼해서 딸이 생기는 것보다 나유성이 할아버지가 되어있는 속도가 더 빠를 것 같아요.” "작은 사모님, 인신공격은 옳지 않아요. 저는 요즘 매일 야근을 하고 개보다 늦게 자고 닭보다 일찍 일어나는데 소개팅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요? 그런데 수다 떠는 시간은 꽤 많으시던데요.” “......” 신은지는 가짜로 임신이라 일반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인맥이 있는 사립병원으로 갔다.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신은지가 떠밀려 넘어져 유산했다는 소식이 재경 그룹에 전해지면서 직원들은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는 눈물을 흐리며 안타까워 주기도 했고 누군가는 비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말이 나온 곳은 회장실 비서팀이었다. 그녀들은 신은지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끈끈하게 지냈었는데, 다시 신은지를 만날 때 그녀의 신분이 회장 보좌관이자 박태준 사장의 전 부인이자 재경 그룹의 후계자의 어머니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진 비서마저 신은자가 부리게 되자, 비서팀 직원들은 오랫동안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제 기회를 생겼으니 그녀들은 대놓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거야.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부잣집에 시집가고 쫓겨나거 겨우 임신해서 버텼는데, 결국 이렇게 됐잖아.」 [박 대표님이 그녀와 이혼한 지 오래됐었잖아, 그런데 박 대표님이
간호사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 시트에 핏자국을 보고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죠? 어디 불편한 곳은 없나요? 제가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게요.” 간호가사 말을 마치고 급히 나가는 바람에 신은지는 간호사를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했다. 간호사는 병실을 나가며 진선호에게 말했다. "환자분 남자친구 맞으시죠? 아래층 매점에 가서 환자분이 사용하실 생리대랑 팬티를 사다 주세요.” "......” 신은지는 고개를 들고 얼굴을 감쌌다. 지금 이 순간은 신은지가 사회적으로 사망하는 순간이었지. 게다가 그녀는 진선호에게 매점에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정말 간호사가 말한 이 두 가지가 필요했기에 왕씨 아주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목욕 수건도 하나 사다 주세요. 샤워를 좀……해야 할 것 같아요.” 얼굴이 두꺼운 진선호도 매우 난처했다. 그는 여자친구도 없는 데다가 일 년 내내 군대에서 남자들과 함께 지냈기에 여자의 ‘그날’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런 유산 후의 돌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요. 더 필요한 건 없어요? 같이 사 올게요.” "아니예요. 그거면 됐어요. 빨리 가요.” 신은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지금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정말 감당할 수 없다. 간호사가 의사와 함께 빠르게 병실로 돌아왔다. 의사는 그녀가 유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그녀를 진찰한 후 말했다."큰 문제는 없으니 배를 따듯하게 하고 있으세요.”신은지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진선호는 전쟁터에서 인질을 구출하는 속도로 아래층에 있는 매점으로 달려갔다.생리대가 진열되어 있는 곳에는 생리대가 있었고 신은지가 평소에 무엇을 쓰는지 몰라서, 여러 종류의 생리대를 샀다.그리고 목욕 수건 진열대 앞으로 가보니 옆에 핫팩도 진열되어 있어 핫 팩도 한 상자 담았다.대부분 여자들은 손발이 차가운 것 같았고 신은지는 유
"왜 네가 왔어?” 신은지는 약간 놀랐지만, 물건들을 들고 들어온 사람이 박태준이라는 사실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어색한 광경을 진선호에게 한 번만 보였으면 충분하다. 박태준은 신은지의 반응에 마음이 쓰려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아니고, 설마 진선호 씨가 오기를 기다린 거야?” 박태준의 목소리가 매우 작아 신은지는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는 커녕 그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신은지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세히 물어볼 겨를도 없이 바로 박태준에게 다가가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낚아채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박태준만 제자리에 서서 울분을 토할 뿐이었다. 신은지는 편안하게 목욕을 하고 나와 회진하고 있는 간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간호사가 이렇게 자주 병실을 회진하는 것은 병원에 환자가 너무 적고 한가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샤워를 하면서 머리까지 감아 어깨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신은지를 보며 간호사가 말했다. "남자친구는요? 생리대 사러 가서 아직 안 왔어요? 환자분은 출산한 것과 마찬가지라 찬바람을 쐬면 안 돼요. 샤워하고 머리 감고 말리지도 않으면 어떻게 해요? 남자 친구분이......” 간호사는 원래 무책임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면 환자의 사게 될까 봐 걱정해 말을 아꼈다. 이 병원은 다른 병원 월급도 높았고 요구 사항도 다른 병원보다 엄격했다. 예를 들어 서비스 방면에 환자의 불만이 접수되면 불만 대상자에게 한 번에 십만 원씩 월급이 깎였다. 간호사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너무 늦게 오네요. 제가 머리 말리는 거 도와드릴게요.” 간호사가 말하는 남자 친구가 누구인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솥바닥처럼 새까맣게 어두워진 박태준의 안색을 본 신은지는 말했다."그 남자는 제 남자친구가 아니예요.” 간호사는 이미 신은지가 뭐라고 말하는지 관심이 없었고 그저 그녀를 재촉했다. "빨리 앉아요. 머리를 말려줄게요. 안 그려 먼 나중
박태준은 그녀가 나가는 것을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신은지는 대외적으로 유산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내려가서 밥만 먹고 오자. 옷 좀 두껍게 입고 가면 별로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아.”온몸이 안 쑤시는 곳이 없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걷기라도 하면 좀 좋아질 것 같았다.박태준은 말리려다가 신은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마주하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알겠어. 그럼 진짜 딱 밥만 먹고 오는 거야.”“응.”신은지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왕 부사장한테 납치되는 바람에 아침에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덕분에 추운 날씨에도 밖에 나가기 무리가 없었다.하지만 박태준은 안심이 되지 않는지 자신의 외투를 가져와 그녀에게 입혀 주었다. 그에겐 무릎정만 오는 외투가 신은지에게 입히니 그의 발목까지 왔다.신은지는 그렇게 외투에 파묻힌 채 병실을 나섰다. 다행히 밤이라 낮에 비해선 유동인구가 적어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아까부터 박태준의 핸드폰에서 카톡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는 평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면 전화나 이메일로 소통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카톡은 지극히 개인적인 지인들 빼고는 연락 올 리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자주 카톡이 울리는 것을 보니, 지인중에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박태준이 계속 카톡을 무시하는 것을 본 그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급한 일 있으면 먼저 가도 돼. 어차피 내일이면 퇴원이니까.”“아니야, 어차피 고연우야. 신경 안 써도 돼.”잠시 핸드폰을 힐끗 쳐다본 박태준이 답했다.“자기는 며칠째 집도 못 가고 있는데, 우리가 같이 있는 게 셈나서 그래.” 신은지가 물었다.“…왜?”박태준은 문득 저번에 신은지가 고연우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저절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가 탐색하듯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왜, 고연우가 신경 쓰여?”“….”신은지는 그가 느닷없이 예민하게 반응하자 할말을 잃었다.“정민아 씨한테
병원 입구에 24시간 영업하는 국밥집이 있었다. 신은지는 직원에게 국밥 한 그릇을 주문한 다음, 박태준에게 물었다.“뭐 먹을래?”박태준은 한참 카톡중이었다.“같은 거.”신은지는 그에게도 똑같이 국밥을 시켜 주었다.“고연우 씨, 속상하다고 공과 사를 구분 못하지 건 않겠지?”재경 그룹 프로젝트는 아직 한참 진행중이었는데, 신은지는 혹시나 고연우가 이 일 때문에 사업을 내팽개칠까 걱정됐다.“설마.”박태준은 신은지 앞에서 더 이사 고연우 부부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또다시 정민아를 소개해 달라고 할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거대가 그가 지금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 상대는 고연우가 아닌 오시은이었다.박태준이 카톡을 보냈다.[부대복귀하기 전까지 최대한 진선호가 혼자 움직이는 일 없도록 잡아 둬요.]그러자 오시은한테서 답장이 왔다.[뭐 잘못 먹었어요?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그가 다시 단호히 못을 박았다.[이건 제가 당신을 도와 회사를 되찾아주는 조건 중 하나예요.]오시은은 화난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던질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푼도 낭비할 수 없는 빈곤한 상태, 그녀는 겨우 다시 마음을 진정시켰다.“사지 멀쩡한 남자를 제가 무슨 수로 잡아 둬요? 그리고 진선호가 다시 여기로 돌아올 거란 보장도 없잖아요. 만나기도 힘들다고요.”오시은은 타자하는 것이 귀찮아져 음성 메시지로 다시 답장했다.박태준은 힐끔 신은지를 쳐다본 뒤, 최대한 볼륨을 줄려 음성을 텍스트로 전환했다. 그는 오신은이 원망하던 말던 전혀 개의치 않았다.박태준한테서 알아서 하라는 답장을 받은 오시은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얌전히 지내던 사람 앞에 나타나 먼저 회사를 되찾아주겠다고 손을 내민 건 박태준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내밀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게다가 진선호는 그녀가 이곳에 살게 된 후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얼굴조차 본적 없는 사람을 무슨 수로 잡아 놓는다는 말인가?그녀가 골머리를 섞이고 있던 순간
고막을 때리는 소리에 오시은은 깜짝 놀라 귀를 부여잡았다.“왜 고리 지르고 난리예요? 저 환자예요. 저 같은 사람한테는 상냥하게 대해줘야 된다고 의사가 말 안 하던가요?”그리고 눈을 흘기며 짜증스레 말했다.진선호가 남의 여자를 넘보지만 않았어도, 오시은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대며 여기에 머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시은은 탁자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반제품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주문을 맞추려면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데, 언데 진선호까지 신경쓴단 말인가?정말 성가셨지만, 지금 회사를 되찾기 위해선 확실히 박태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은 감히 진선호에게 성격대로 굴 수 없었다. 지금 진선호에게 쫓겨나면 박태준의 도움을 받기도 전에 다시 끌려갈지도 몰랐다.진선호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한 것을 보고 오시은이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것 좀 물어봤다고, 이렇게까지 성질 부릴 건 없잖아요.”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갸우뚱하고 있는 오시은을 바라봤다.“똑바로 서서 제대로 말해요.”오시은은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군인처럼 바로 세웠다. 만약 뒤에 덧붙여진 말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본능적으로 관등 성명을 했을지도 몰랐다. 진선호가 한숨을 내쉬며 오시은에게 본론을 꺼냈다.“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 말해봐요. 제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누가 알아요?”“그게….”그러자 오시은은 순식간에 눈가를 깜빡이며 울먹였다. “저 집에서 도망쳤어요. 부모님이 남아선호 사상이 좀 강하시거든요. 그래서 절 마을 입구에 사는 노총각한테 팔아 넘기고, 대시 받은 혼수금으로 남동생 지참금으로 쓰려고 하셨어요.”그리고는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그래서 도망치려고 이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는데, 다리가 부러진 거 있죠? 저희 동네에서 결혼하면 여자는 평생 집안일만 하며 애를 낳아야 해요. 제 여동생도 그렇게 억지로 끌려갔다가 죽었어요. 저 여기서 쫓아내면 정말 제 여동생처럼 될지 몰라요.”진선호가 그런 오
”나 멀쩡해. 내일 퇴원할 거고 간병인도 필요 없어. 그러니까 돌아가.”지금쯤 온 병원에 박태준이 그녀를 위해 생리대를 훔쳤다는 것이 소문났을 것이다. 신은지는 제대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심이 박태준의 유치함을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은지야….”“왕 부사장이 구치소에 있다고 안심하면 안 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상 분명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야. 여기서 내 간병할 시간에 가서 조사나 제대로 해. 안 그러면 또 누가 치고 들어올지도 몰라. 그때 가서 후회해 봤자, 쓸모 없어.”“곽 변호가 이미 갔을 거야.”왕지석은 현재 구금중이라 공식적으로 변호사 외에 그 누구의 면회도 허용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모두 곽동건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리고 면회는 안 되지만, 다른 루트로 사람을 시켜 그를 감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신은지는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나 지금 대외적으로 유산한 상태야. 당신도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이러다가 괜한 오해받게 하지 말고, 얼른 돌아가.”사립병원은 환자의 개인 생황을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워낙 입들이 많으니 다 관리하기는 힘들 것이다. 거기에 박태준이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은 탓에 사진까지 찍혔다. 온 병원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확실히 그가 여기에 오래 머무는 건 서로 좋을 게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박태준에겐 밀린 일도 많았다. 그는 신은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병원을 나선 박태준은 곧바로 고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전화 너머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너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야?”“좀 일이 있었어.”그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왕 부사장이 뭔가 털어놓은 거 있어?”“아니, 죽어도 입을 안 열려고 하고 있어. 그냥 돈에 눈이 멀어서 위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래. 실제로 그 증거로 채팅기록도 있고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있는데
박태준은 셔츠 위로 복부를 쓰다듬었다. 최근에 운동을 못해 좀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 복근이 존재하긴 했다. 그는 문득 저번에 신은지가 근육남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러다간 조만간 남은 근육마저 따 빠질 것 같았다.그때 되면 신은지도 정민아처럼 근육의 이유로 그를 차버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조급해진 박태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은지에게 문자를 보냈다.[은지야, 우리 이제 관계 정립 좀 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 이렇게 애매한 사이로 지낸지 꽤 됐잖아. 이제 남자친구로 인정해주면 안 될까?]이렇게 보내는 건 좀 따지듯이 느껴질 것 같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병원에 안 좋은 소문까지 났는데, 신은지의 기분을 더 거슬리게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질문 방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박태준은 타이핑했던 것을 지우고 다시 적었다.[나 프로포즈 반지도 다 준비해 놨어. 디자인이 마음이 드는지 한번 봐줄래?]하지만 이것도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내는 건 서프라이즈로 프로포즈를 준비할 때 감동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박태준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신은지 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중간에서 조율해준다면 직접 문자 하는 것보다 잘 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막 채팅창을 나가려고 하던 순간, 신은지한테서 먼저 문자가 왔다. 사실 그가 문자를 쓰고 지우고하는 동안 신은지도 채팅방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카톡 기능엔 상대가 글 쓰고 있으면 작성 중이라는 문구가 뜨는 걸 박태준은 잊어버리고 있었다.[무단 결근 4개월로, 당신은 제 남자친구 신분에서 해고되셨음을 통보드립니다. 그리고 육정현 대표님, 부디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움직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제가 임산부는 아니지만, 엄연히 공식적으로 막 유산한 상태입니다. 저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 사양해주세요.]“….”존댓말까지 쓰며 선을 긋는 신은지의 태도에 박태준은 순간 할말을 잃었다. 그는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