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우랑 나유성이 알고 있다는 건, 그의 부모님도 알고 있을 게 뻔했다. 박태준은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있으니, 아무리 신은지가 그에게 화가 났어도 결국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일한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박태준이 손에 들린 아기 베개를 바라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신은지가 그에게 아기 베개를 선물로 줬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박태준은 바보 같았던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신은지는 실망한 그의 표정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이럴 것 같아 시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결국 오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당신이 사라진 뒤에 주주들이 들고 일어서는 바람에, 아버님에겐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어. 안 그랬으면 난 재경 그룹에 발을 들일 수도 없었을 거야. 그럼 회사는 주주들 손에 넘어갔겠지.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려면, 이렇게 해야만 했어.”신은지가 말하지 않아도, 박태준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실제로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베개를 꽉 그러쥐며 힘겹게 말했다.“알겠어. 오늘은 일단 가볼게.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뻔뻔히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나유성이 눈에 들어왔다. 박태준이 그를 잡아끌며 말했다. “이 지경이 됐는데, 넌 왜 갈 생각을 안 하고 있어?”그러자 얼떨결에 박태준한테 밀려 나온 나유성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신경 꺼. 너면 모를까, 은지는 날 쫓아내지….”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 하고 현관문이 닫혔다. 그렇게 둘은 허망하게 문밖에 남겨지고 말았다. 신은지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인기척이 멀어지길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고, 드디어 두 사람이 유치하게 싸우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초딩 같
신은지는 그의 문자를 보고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은지야, 우리 진짜 아이를 가질까? 라니… 미쳤나 봐.’그런데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서둘러 실내화를 신고 문을 열러 갔다. 신은지의 예상대로 박태준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문을 살짝 연 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간 거 아니었어?”“나유성을 내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어.”그 말과 함께 박태준은 코를 으쓱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신은지를 품에 끌어안았다. 신은지는 별 다른 저항 없이 그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이번에 유성이 덕분에 회사도 많이 득을 봤어. 만날 때마다 신경전 그만 벌이면 안 돼?”“그건 그거고, 네가 걸려 있는 문제에 물러날 순 없지. 경쟁상대한테 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잖아?”박태준과 나유성은 친구로서 서로를 아끼는 것은 분명하나, 암묵적으로 연애 문제에선 서로 양보하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가 처음에 배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유성이 한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은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곧바로 바다로 향했다. 그만큼 둘은 연애와 우정에 모두 진심이었다.이때, 박태준이 품에 안겨 있던 신은지를 내려다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은지야, 네가 임신하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아. 우린 언제든지 만들 수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오늘 밤 어때?”그가 신은지의 귓불을 깨물며 욕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응? 은지야.”좀 전에 문자로 볼 때와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남자의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며, 그의 숨결이 닿는 곳마다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신은지는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짜릿함에 소름이 돋아 다리가 풀렸다. 하지만 박태준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있어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이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었다.“자주 여기 드나들면, 기민욱한테 들키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가 신은지 집이라는 것을 상기한 박태준은 긴장을 풀었다. 그는 얼른 샤워기 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로 바꿨다. 그런데 침묵이 길어지자, 그는 다른 의미로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박태준이 침을 꼴깍 삼키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은지야….”11월 경인은 한참 날씨가 쌀쌀할 때였다. 신은지는 화장실에 맴도는 차가운 기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안 추워? 네가 무슨 철인이야? 아니면 뜨거운 물 켤 줄 몰라? 내가 켜줘?”그녀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박태준이 답했다.“아냐, 뜨거운 물 켰어.”그가 거짓 하나 섞이지 않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뒤늦게 켠 건 맞지만, 거짓말은 아니었으니까.그리고 박태준의 말 따라, 어느새 화장실은 조금씩 수증기가 차기 시작했다. 욕실 안에 옅은 안개가 꼈다. 그런데 이때, 신은지의 눈에 그의 몸에 난 상처들이 보였다. 예전에도 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 전체적으로 보는 건 그녀도 처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나서인지 흉터가 많이 옅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니, 신은지는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계속 자신의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박태준은 조용히 물을 끄고 옆에 걸쳐져 있던 가운을 집어 들었다.“미안, 보기 좀 그렇지?”목욕 가운이 여성용이라 전체적으로 길이가 좀 짧았다. 하지만 품은 넉넉해, 팔다리가 좀 많이 빠져나왔어도 다른 부분을 가리는 데는 문제 없었다.박태준이 모욕 가운의 허리띠를 묶을 때, 갑자기 신은지가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으나, 그는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신은지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손깍지를 꼈다. “아니, 난 괜찮아.”그리고는 가운이 채 가리지 못한 그의 가슴 흉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많이 아팠어?”박태준은 그때 상황을 떠올렸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던 고문과 최면.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팔다리가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피냄새와 먼지가
물건을 건넨 배달 기사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박태준은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들어 있는 신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뺨이 발그레 달아오른 채, 잠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차마 이런 그녀를 깨울 수 없어, 손에 쥐고 있던 콘돔 박스를 침대 옆 서랍에 넣어두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신은지는 제일 먼저 박태준부터 찾았지만, 침대엔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너무 지쳐 그가 떠나는 줄도 모르고 잠들어버린 것 같았다. 신은지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팔로 지탱했다. 그런데 어젯밤 있었던 일 때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동시에 어제 욕실에서 박태준과 함께 보냈던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때 거실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곧바로 실내화를 신고 방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러자 박태준이 앞치마를 입은 채, 주방에서 아침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인기척을 느낀 박태준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손 씻고 밥 먹어.”신은지는 붉은 끼가 남은 얼굴로 물었다.“아직 안 갔어?”“갔으면 했어?”“….”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본 박태준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손에 힘이 안 들어가? 어제 좀 길었지?”신은지가 코웃음치며 반박했다.“애쓰는 건 좋은데, 시간이 길다고 테크닉이 좋다는 걸 의미하진 않아.”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박태준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앞치마를 벗고 그녀를 방으로 이끌었다.“내 테크닉이 좋은지 나쁜지는 해봐야 알지. 벌써 안 한 지 몇 달인데, 그 새 좋아졌을 수도 있지 않겠어?”테크닉이 좋지 않다는 것만큼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없었다. 박태준도 다르지 않았다. 신은지는 반응할 틈도 없이 그에게 끌려 부드러운 침대에 눕혀졌다. 이어서 그의 숨결이 가까워지면서, 깊은 키스가 시작되었다. 신은지는 반격할 틈도 없이 속수무책 그에게 리
한참 뒤, 행위가 끝나자 몸은 이미 땀 범벅이었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품에 끌어안은 채,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은지야, 나 돌아왔으니까, 재경 그룹은 내가 지킬게. 절대로 망하게 두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원한다면 사표 내고 다시 복원사로 돌아가도 돼.”그가 가쁜 숨을 들이켜면서 말을 이었다.“재경 그룹으로 들어간 뒤로, 너 얼굴이 너무 안 좋아졌어. 은지야, 난 네가 처음 이혼했을 때처럼 생기 넘치게 살았으면 좋겠어. 전에 다큐에서 네가 했던 말대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길 바라.”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신은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재경 그룹으로 들어간 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신은지는 박태준이 괜히 자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진 않아.”“알아. 내가 돌아올 동안 재경 그룹을 지키기 위해 애쓴 거. 이젠 내가 돌아왔잖아. 그러니까 나머지는 내게 맡겨, 응?”“….”신은지는 피곤함에 도무지 말을 이어갈 기력이 없었다. 밖에 해가 높게 뜬 것을 보니, 이미 출근 시간은 한참 넘은 것 같았다. 박태준이 낮게 웃으며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안 일어나면 또 한다?”그 말을 들은 신은지는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그녀는 얼른 박태준을 밀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마지막 순간 기지를 발휘해 침대를 부여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을 지도 몰랐다.신은지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욕실로 향했다. 더 이상 출근을 미룰 수는 없었다.얼마 뒤, 신은지는 드디어 회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평소 출근보다 많이 늦은 시각이었다. 멀리서 그녀를 발견한 두 여직원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빽 있는 사람은 다르긴 다르네요. 두 시간이나 지각했는데, 아무도 혼내지 않다니.”“하긴 직속 상사가 전 시아버지고 배에 전남편 애까지 있는데, 당연하죠. 아마 집에서 놀아도 월급은 그대로 지급될 걸요?”
육영그룹.박태준은 업무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사람, 기민욱이었다. 이틀만의 방문이었다. 평소에 똘망똘망하고 소년 같던 표정은 어디 가고, 눈에 핏발에 가득 선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기민욱의 등장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비서가 급하게 서류들을 정리하며 박태준에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 전 이만 가볼게요.”“그래.”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기민욱이 평소와 다른,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비서는 기민욱이 얼마나 박태준에게 집착하는지, 그 무해한 얼굴 뒤로 얼마나 지독한 본성을 숨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잘못 걸리면 정말 뼈도 못 추릴 게 뻔했다.그래서 기민욱과 마주치는 것이 항상 껄끄러웠다. 웃다가도 언제 한번 수틀리면, 어떻게 돌변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서는 두말없이 사무실 문을 닫고 모습을 감추었다. 사무실에 기민욱과 박태준, 둘만 남게 되었다. 기민욱이 박태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형 비서, 나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박태준은 기민욱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그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신은지와 다시 합쳤을 테니 말이다. 프러포즈 반지까지 다 준비해 놨는데, 기민욱 때문에 무한으로 연장되었다. 이젠 박태준으로 돌아가도 다시 연인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하지만 신은지가 그를 거부하지 않았으니, 희망은 있었다. 박태준은 하루라도 빨리 그녀가 임신하길 바랐다. 그래야 뭐라도 명분이 생겨 확실하게 옆에 붙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 출산, 후 결혼도 그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물론 신은지는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박태준은 그만큼 절박했다.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한 채, 태연히 기민욱과 대화를 나눴다.“네가 그렇게 무섭게 째려보는데,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 출근 안 하고, 여긴 어쩐 일이야
문을 연 사람이 신은지가 아닌 나유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신은지 집에서 쇼핑백을 든 채 나오자, 박태준은 그만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넌 여긴 어쩐 일이야?”마치 집주인처럼 자연스레 집에서 나오는 모습에 박태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은지는 어디 있어?”그 말과 함께 박태준은 나유성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유성은 그가 그러던 말던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면서 문까지 닫아버렸다. 박태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은지가 집안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안 좋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현관문으로 돌아와 보니, 박태준은 자신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히 신은지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연결할 수 없다는 안내 멘트를 듣고, 자신이 아직 차단당한 상태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나유성은 신은지 집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다. 차별 대우에 박태준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기분이 다시 저조하게 가라앉았다.박태준은 타깃을 바꿔 빠르게 나유성을 뒤쫓아갔다. 다행히 나유성은 물건을 옮기느라 아직 주차장이었다.나유성은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있었는데, 뒤에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박태준이 다가와 그가 담고 있던 짐을 뒤적거렸다. 쇼핑백 안에 여자 것으로 추정되는 옷들이 몇 벌 담겨 있었다.“은지 옷은 왜 들고 가는 거야?”“출장이야. 새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에 열흘 정도 사전 조사 가기로 했거든.”나유성이 트렁크 문을 닫으며 운전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박태준이 막아섰다.“지금 임신 중인데….”박태준의 말을 들은 나유성이 눈썹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임신 같은 소리 하네. 저번에 네가 베개를 받을 때, 나도 현장에 있었던 거 잊었어? 이제 와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정곡이 찔린 박태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곧 방향을 바꿔 다시 질문했다.“그래서 은지는 어디 있는데?”“지금 공항에 갔어. 난 아직 출발 전이라 잠깐 대신 옷 챙겨주러
나유성은 박태준이 오는 것을 보고 박용선에게 말을 건넨 뒤 신은지의 곁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신은지가 대답하려 하자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등이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유성도 이를 눈치채고 박태준을 올려다보며 일부러 그를 자극하듯 손에 든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 박태준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놈은 정말 한가해서 견딜 수가 없나 보다. 신은지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나유성을 너무 많이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그녀를 도와주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별일 없을 거야. 그리고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병원에 의사와 간호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늘 저녁일은 고마워, 가서 일찍 쉬어.” 나유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신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들었다가 내리며 말했다. “그래.” 나유성이 떠나자, 신은지도 밖으로 나가 박용선과 박태준만 남았다. 입원실 복도에는 에어컨이 켜있지 않았지만 찬바람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신은지는 박태준의 이름을 핸드폰 수신 차단해지를 한 후 아래층 매점으로 물건을 사러 갔다. 식당의 음식이 신은지의 입맛에 맞지 않아 그녀는 저녁을 많이 먹지 않았다. 나중에 신은지는 다시 뛰어다니며 수속을 밟느라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허기를 느꼈다. 신은지는 컵라면 하나를 사서 매점에 있는 뜨거운 물을 붓고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먹으며 진유라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진유라가 목욕을 하고 있는데 화면 속 장면이 너무 적나라해 신은지는 하마터면 라면을 내뿜을 뻔하였다. ”내 옆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 모습으로 영상통화를 받아?” “쇄골 밖에 보이지 않는데 무서울 것이 뭐 있어?” 진유라는 말하며 휴대전화를 눈앞에 들이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