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유선우는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백아현의 주치의가 그한테 말했다.“어젯밤 백아현 씨가 몸이 좀 안 좋았는데, 저희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서 지금은 컨디션이 매우 좋습니다. 물론 이건 병원 의료진의 힘을 합친 것이므로 저 혼자만의 공로라곤 할 순 없겠습니다만.”유선우는 소파에 기대어 미간을 집고 누르며 물었다.“은서는 어떻게 됐어요? 밤새 열은 다시 안 난 겁니까?”저쪽에서 의사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 하고 있었다.이상한 낌새를 차린 유선우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은서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의사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잘못 판단한 것일까. 대표님이 신경 쓰시는 분이 백아현 씨가 아니라 대표 사모님인 건가?더는 숨길 수 없다 생각되어 그는 입을 열었다.“어젯밤에 사모님께서 반복적으로 고열이 나긴 했습니다만, 저희 의료진 인원이 부족해서... 아! 다행히 옆에 계신 도우미 아주머니가 물리적 해열도 잘해주고 해서 지금은 정신이 꽤 돌아온 것 같습니다.”그는 가능한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하지만 이쪽 별장에 있는 유선우는 탁자에 있는 크리스털 재떨이를 세게 집어 던졌다.방금 자기가 뭘 들은 건지 믿을 수 없었다, 자기 와이프가 자기 병원에서 반복적으로 고열이 나는 데 물리적 해열을 하며 버텼다니.그녀가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얼른 일어나서 가보려고 하는데, 카펫 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다이아몬드로 된 커프스 한 쌍, 그것들이 고요하게 카펫 위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걸어가서 허리를 굽혀 그것들을 주어 보니, 거기에는 눈물 자국으로 의심되는 얼룩과 옅은 피가 묻어있었다. 원래는 눈부시게 반짝거려야 할 이것들이 얼룩에 가려져 광채를 잃었다.조은서가 산 물건인가. 그한테 주려고?그저께 밤에 그녀가 좀 일찍 돌아오라고 한 것이 이걸 주려는 것이었구나.섹시한 실크 가운까지 갈아입고 기분 좋게 해주려고 그를.그런 여자한테 기껏 했다는 말이 ‘네가 날 꼬시려고 입은 이
유선우는 목 안에 솜이 들어찬 것만 같았다.그녀를 다시 붙잡았을 때 원했던 게 바로 이런 거였는데, 그녀가 자기를 위해 이쁜 짓도 하고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거.하지만 그녀는 이젠 실망, 아니 절망에 절어있었다. 남편한테서 또 한 번 치 떨리게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커프스를 바라보며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이 커프스는 그녀가 유선우를 또 한 번 사랑했다는 증거였다. 이걸 살 때 기분이 얼마나 날아갈 듯했다면 그에 의해 책상 위에 짓눌렸던 기억이 얼마나 비참했다.그녀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그럴 일 다시 없을 거예요. 더는... 선우 씨, 우리 인제 그만, 그만해요.”피투성이가 된 마음을 안고 그녀는 짐을 챙겨 병실을 나왔다.임지혜가 퇴원 절차를 하러 갔다.병실은 텅 비었고, 조은서가 남기고 간 환자복과 속옷들만 남았다.그녀는 말한 대로 명품 속옷과 팬티들을 벗어서 유선우한테 돌려준 것이다.벗을 때 심지어 유선우를 피하지도 않았다.감정이 없는 로봇인 양 속옷들을 하나하나 벗어 임지혜가 사 온 값싼 옷으로 갈아입었다.울지도 않고, 조용하고 담담하게.옷을 다 갈아입은 그녀는 고요한 눈빛으로 말했다.“선우 씨. 당신과 부부가 못 된다고 하더라도, 원수지간은 되고 싶지 않아요. 인생 길잖아요. 피차 너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연락 기다릴게요.”그녀와 몸이 엇갈릴 때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잡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바람처럼 빠르게 스쳐 갔다.그녀가 병실을 나와 아래층에 다 내려간 후에야 유선우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그녀가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개어 놓은 옷가지와 환자복, 속옷을 그는 멍하니 쳐다봤다.그한테 시집올 때 혼수만 몇 트럭은 됐을 텐데, 떠나갈 때는 팬티까지 벗어주고 갔다. 떠나려는 결심이 얼마나 굳건하길래 이러는가 싶었다.유선우는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손바닥 안에 있는 커프스가 배겨
유선우는 무릎을 반쯤 꿇어 조은서를 끌어안았다.그녀의 온몸을 물들인 진붉은 피가 그의 손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었다.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그녀는 안 들리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손안에서 그녀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체온이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마치 그한테 쏟아부었던 그녀의 감정이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처럼.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의 얼굴을 적시고 가슴도 적셨다.......YS병원 응급실에 의사, 간호사가 분주하게 드나들며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치료에 임하고 있었다.유선우는 수술실 입구에 서서 얼굴을 손바닥에 파묻었다가 또 조급하게 고개를 들어 수술실 바깥에 켜져 있는 표시등을 빤히 지켜봤다.조금 전 외과의사가 한 말이 귓전을 계속 때리고 있었다‘대표님,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사모님 왼쪽 팔에 분쇄골절이 일어나서 앞으로 세밀한 동작을 요하는 일은 아마 못할지도 모릅니다.’무슨 뜻이지? 앞으로 바이올린을 켤 수 없다는 얘긴가?수술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한테 사형을 때린 거랑 별반 차이 없는 말에 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조은서가 깨어나서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일까.생각하기도 싫었다.그는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진 비서한테 전 세계 최고의 외과 서전을 모셔 오라 지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조은서의 왼팔을 무사하게 해야 한다고.저편에서 진 비서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대표님, 최고의 외과 서전은 우리 병원에 있습니다.”다만 그건 백아현을 위해 영입한 것이었다.......조은서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병실 안에는 무드등 하나만 켜져 있었고, 사방은 고요하여 바깥에서 바람부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밖이 많이 추운가보다.그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라 안 아픈데가 없었다.하지만, 다른 데는 여겨볼 새 없이 눈을 내리깔아 왼쪽 팔에 감긴 붕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분쇄골절.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온 그녀는 그것이 뜻하는 의미를 모를 리 없었
유선우의 다리가 무의식에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입술에서 독한 말이 나왔다.“내가 미쳐 돌아... 당신 애인한테 손대게까지는 하지 말라고요.”......유선우의 목울대가 잘게 아래위로 움직였다.한참 후,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네가 피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난 걔 안 좋아해, 내가...”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건 사실 은서 너라고, 백아현과는 남녀 간의 정 같은 거 아니라고. 그래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덮쳐 구한 건 와이프인 네가 아니라 백아현이었다고... 그런 개새끼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다.숨이 죽은 우거지상을 하고 그는 병실을 나갔다.조은서와 이제 더는 가능성이 없다.끝이다, 이제.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낯설고도 미움만 들어찼다.미워해야지, 그게 맞았다.그녀는 이제 음악가로서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는데, 자기가 그 말도 안 되는 애인을 구한다고 그녀를 나 몰라라 했다.그가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말, 그 말에 심술이 나 그녀를 괴롭히고 상처를 줬지만, 틀린 거 하나 없이 조목조목 맞는 말이었다.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아 왔다는 것부터? 이익만 추구하고 권력 지상이 신조였던 그한테는 가족애 따위는 필요에 따라 희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진작에 그녀를 놓아주었어야 했는데...그랬으면 그녀는 더 잘 살았을 것이다. 이지훈한테 가던지, 허민우한테 가던지... 그는 축복을 해줬어야 했다. 그녀한테 빚 갚는 마음으로.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그녀가 자신을 원망만 가득 찬 눈으로 노려봐도, 여전히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그녀를 갖고 싶었다.이것이 정말 남녀 간의 단순한 욕심뿐일까?그냥 욕심뿐이라면 왜 그녀의 우는 모습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익숙하고도 낯선 가슴속의 울림. 좋아한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자기가 사실은, 좋아하는 것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건 아닐까.구두 밑창과 복
조은서는 심하게 다쳐, 팔을 제외하고도 전신에 각종 타박상이 수두룩했다.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유선우가 돌보는 건 달갑지 않았다.그와 말도 하지 않고, 먹여주는 밥도 먹지 않았다. 몸을 닦아주는 건 더더욱 꺼려했다. 마치 유선우를 자기 세상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처럼 굴었다.쨍그랑 쨍그랑.그녀가 또 밥상을 뒤집었다.유선우는 바닥에 떨어진 밥과 반찬을 보다가 병상에 있는 그녀한테로 눈길을 돌렸다.“대체 원하는 게 뭔데? 지금 당장 이혼이라도 하자는 거야?”조은서는 목이 약간 메어오는 느낌이었지만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나 다른 병원으로 갈래요. 그리고... 이혼해요, 우리.”유선우는 뚫어질세라 그녀를 노려봤다.이때 간호사가 살금살금 들어와 바닥에 있는 음식들을 치우고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유선우는 창가로 걸어가 조은서를 등지고 서 있었다.흰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그는 뒷모습조차 항상 흐트러짐이 없었으나, 지금은 왠지 초조함이 섞인 느낌이었다.한참 뒤, 그는 걸어 나갔다.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심정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조은서를 보자마자 심정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조은서의 몸에 있는 상처들을 살피며, 눈물이 나오는 걸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통곡하며 울어버리고 말았다.“너한테 일 생겼다 그래서 아빠가 이틀 동안 잠도 못 자고... 내가 어쩔 수 없이 수면제를 좀 먹였다. 이곳은 선우가 물 샐 틈도 없이 사람을 배치해서 들어오지도 못해... 다행히 지혜가 요즘 우리 집에 있어서 소식을 들었어. 선우가 어쩜 그럴 수 있다는 말이냐!”심정희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말도 뚝뚝 끊기며 겨우 이어나갔다. 그러고는 조은서의 왼팔을 만져보더니 대성통곡하며 한 글자도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지 못했다.애가 이 지경이 됐으니 돌아가서 조승철한테 뭐라고 할 것이며, 하늘에 있는 조은서의 엄마한테 나중에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그녀는 조은서의 얼마 길지도 않은
심정희는 번쩍거리는 열쇠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미소를 지었다.“내가 올 때, 은서 아빠랑 이미 상의를 다 끝냈어. 간병인 두 사람은 이미 집에 돌려보냈고. 그렇게 큰 집도 우린 필요 없으니까, 오후에 새집으로 이사할 거야. 은혁이는... 유 서방이 마음이 가는 대로, 양심대로... 우리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우리가 다 늙어서는 볼 수 있겠지.”심정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리고 은서는...”잠시 숨을 돌린 후에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자네랑 부부로 같이 있은 시간도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인제 그만 놓아 줘. 걔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면, 어릴 적에 자네를 좋아한 죄밖에 더 있겠어? 유 서방, 사람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지, 그렇지?”유선우는 갑자기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들어 눈앞의 반백이 되어 아이들 걱정에 마음 졸이고 있는 부인을 주시했다. 조은서까지 저렇게 된 마당에 조씨 집안에 이젠 사람이 없으니, 그녀라도 나서서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말을 마친 심정희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넓은 사무실에는 그와 은은한 커피 향만 남았다.유선우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다가, 블라인드 틈으로 석양의 낙조가 비쳐 들어오자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이때 진 비서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 작은 소리로 그에게 소식을 알렸다.“사모님의 부모님들이 이사를 하셨습니다. 간병인 두 명도 돌아왔고요. 대표님...”주황빛 석양이 유선우의 얼굴을 비스듬히 비췄다.그의 표정은 읽어낼 수 없이 복잡했다.그리고 한참 뒤, 그는 차를 몰고 조은서 부모가 살고 있던 집으로 향했다.이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딱 해치운 모양인데 집안은 가구 한 점,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하게 텅 비어있었다. 사람 자취가 전혀 닿지 않았던 곳인 양.그는 조은서의 침실로 왔는데 역시나 텅텅 비어있었고, 분홍색 계열로 꾸몄던 인테리어 소품도 전부 가져가 아무런 살았던
유선우는 매우 담담한 얼굴로 병실에 들어섰다.눈부신 조명보다 껴안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그의 눈을 더 자극했다.어느 한순간은 그 혼자만이 가질 수 있었던 그녀의 따뜻한 품이었는데...유선우의 평온한 표정에 반해, 임도영은 차분하지 못하였다.그는 그녀 허리에 휘감은 팔을 천천히 내려뜨려 그녀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나오지 말라고 했다.또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 단추를 풀어 소매를 걷어 올렸다.느릿느릿한 동작이면서도 뭔가 짐승 같은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그건 유선우도 마찬가지였다.두 남자는 주먹으로 대화하기 시작했고, 상대방의 급소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임도영은 시뻘건 눈으로 치고받다가 짐승같이 부르짖었다.“은서가 뭘 잘못했길래 네가 이래? 왕년에 쟤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운동장 두 바퀴는 돌고도 남았어. 쟤가 눈이 멀었지, 네 딴 걸 다 남편이라고.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붙잡고 안 놔줘! 왜?!”“너도 좋아했겠네?”유선우가 차갑게 물었다.셔츠를 정돈하며 임서영은 통쾌하게 인정했다.“그래, 맞아! 좋아했다! 내가 고백도 하기 전에 네깟 거한테 시집갔더라. 됐냐, 이 개자식아!”둘은 또다시 맞붙었다.30분이 지난 뒤, 임도영은 외과 응급실로 들어갔고, 유선우도 여기저기 피 터진 채 소파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의료진이 그한테 처치를 해주려고 했으나 그의 눈빛에 겁을 먹고 병실을 나가버렸다.VIP 병실에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두컴컴했다.소파에 기대 긴 다리를 쭉 뻗은 유선우는 초조한 마음에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었다.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초조한 마음은 확실했다.회사에서 아무리 복잡한 사안과 프로젝트에 부딪혀도, 단 한 번도 이런 마음이 든 적이 없었던 그였다. 오직 그녀 때문에, 그녀만이 자신을 이토록 심란하게 만들어 버리곤 했다.임도영은 자기가 조은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체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는 그도 잘 모르지만, 요 며칠 전, 그녀와 같이 생활했던 나날들이 그립고, 그녀가 자신을 향해 웃는 모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조은서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캄캄한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그를 보면서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우 씨, 당신이 아프다고 해도 난 남아서 당신의 약이 되어 줄 생각은 없어요.”유선우는 얼굴이 창백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고 그가 아플지 안 아플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과거 유선우의 살뜰한 아내는 이미 유선우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다! 밤은 깊고 고요했다. 유선우는 소파에 앉아 의사가 약을 발라주는 것을 받고 있고 조은서는 조용히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저녁에 임도영이 가져다준 음악회 티켓이 들려 있었다.H시, 첫 클래식 음악회. 원래대로라면 조은서가 오프닝을 맡았어야 했다! 그녀는 그 티켓을 계속 바라보며 밤새도록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녀의 꿈뿐만 아니라 조씨 가족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 희망도 유선우가 직접 파괴했다. 유선우는 여전히 그녀가 돌아와서 다시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정말, 얼마나 웃긴 일인가!깊은 밤, 유선우는 복도 끝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벼운 담배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앞에 있는 재떨이에는 일곱, 여덟 개의 담배꽁초가 꽂혀 있지만, 그의 초조한 마음을 조금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는 조은서의 절망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절망은 그들 사이에 이미 끝이 왔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유선우는 여전히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너무 이기적인 건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목소리는 아주 조심스럽고 겁이 많이 섞여 있었다.“유선우 씨.”과거에 유선우는 사실 백아현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은혜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탐욕과 집착 때문에 조은서는 꿈을 잃고 그의 결혼도 끝으로 향해 가고 있으므로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증오가 생겨났다. 유선우는 뒤돌아보지 않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