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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조은서는 입안에서 쓴맛이 돌며 작게 웃음이 터졌다.

“당신이 그렇게도 아끼면 저 여자랑 결혼하지 그랬어요?”

그녀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닿는 곳에 작은 약병이 하나 있었다.

유선우는 그쪽에 다가가 약병을 가볍게 집어 살펴보았다.

사후피임약.

그는 고개를 돌려 조은서를 쳐다봤다.

조은서도 그의 눈길에 마주하며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어젯밤 당신이 콘돔을 안 써서 내가 약 먹은 건데, 무슨 문제 있어요?”

유선우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아니, 전혀!”

말을 마치고 그는 고개를 홱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가 자기 옆을 지나가자 백아현이 흐느끼며 소리를 냈다.

“선우 씨!”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그녀 이마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유선우는 문 앞에 있는 간호사한테 한마디 내던졌다.

“처치해요, 저거 흉터 안 생기게. 죽을 때 보기 흉하니까.”

병원 복도를 걸어가며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조은서의 그 한마디뿐이었다.

‘어젯밤 당신이 콘돔을 안 써서 내가 약 먹은 건데, 무슨 문제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와 함께 눈 내리는 황혼 속을 거닐며, 껴안고 그녀한테 아빠가 되고 싶다고, 예쁜 딸아이가 달려와서 ‘아빠 퇴근했어요’를 외치며 안아달라고 해주는 모습이 너무 기대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사람을 사랑 할 줄 모른다고 한다.

그건 그가 싫다는 얘기겠지.

사랑하고 밉고를 떠나서 그냥 단순히 그가 싫어졌다는 얘기였다.

뒤에 진 비서가 바짝 따라오며 조용히 말했다.

“대표님, 임원들이 아직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선우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먼저 돌아가라고 해. 다음 날 결정하자.”

진 비서는 감히 말을 못 꺼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차를 직접 운전하여 유선우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눈은 그쳤고, 별장 안에 히터도 빵빵하게 켜 놓았는데, 왠지 집안이 냉동창고같이 서늘하고 차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인들은 감히 한마디도 못 한 채 눈치만 보고, 유선우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와 서재에 들어가 앉았다.

책상에는 어젯밤의 흔적들을 여전히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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