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인은 다급하게 말했다.“맞아요! 짐들도 사모님이 직접 챙기셨어요!”“정말 제멋대로야!”유선우는 이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올랐는데 위층에 도착하고 시간을 보니 아직 기상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침대에 다시 누웠는데 베갯머리에서는 아직 조은서의 은은한 체향이 남아있어 그 향기는 유선우의 혼을 쏙 빼놓는 것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의 체향을 좋아했다.항상 깨끗하고 은은한 바디워시의 향기를 머금은 냄새였다. 하여 매번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에 머리를 파묻고 그녀와 바싹 붙어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유선우는 조금 견디기 버거웠다.씻고 옷을 갈아입을 때, 유선우는 조은서의 몸이 여리여리해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수요가 너무 큰 탓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조은서한테서 전화 한 통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조은서는 정말 자신을 냉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듯 했다....점심때 조은서는 H 시의 공항에 도착했다. H 시의 현장에 문제가 생겨서 협조할 사람이 필요한데 임도영이 혼자서 버거워서 조은서한테 한번 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조은서는 먼저 현장으로 갔다. 그녀는 책임자와 소통하여 초보적인 협상을 진행한 후 호텔로 가서 입주했다.H 시의 월드 호텔 싱글 스위트룸.조은서는 짐을 풀고 임도영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이 진행된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도영 선배,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 사람들이랑 초보적으로 협상을 마쳤어요. 아마도 좋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임도영은 아주 기뻐했다.“제가 제대로 된 분한테 부탁했네요! 역시 은서 씨가 나서면 다 해결되네요. 정말 큰 도움을 줬습니다.”조은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두 사람은 얘기를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서야 조은서는 배가 고픈 느낌이 들어 시간을 봤는데 벌써 저녁 5시였다.통으로 된 유리 밖에는 하늘이 황혼에 물들어가 아주 아름
유선우는 H시로 떠났고 차가 월드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였다.네온사인이 한창 비추고 있다.강남의 밤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유선우는 검은색 밴에서 내려 나란히 산책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을 보았다.자신의 아내와 다른 남자.초겨울 날씨에 조은서는 딥 브라운 색의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고 긴 흑발은 살짝 컬을 추가해 어깨 뒤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이 밤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그녀는 표정이 편안해 보였는데 조금 즐거워하는 느낌도 들었다. 특히 그녀가 허민우랑 얘기할 때면 시선을 집중한 모습이었는데 자신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냉랭한 눈빛이 아니었다.명품으로 치장한 유선우는 호텔 로비한 가운데 서서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저녁에 그가 사진을 보았을 때는 6시경이었는데 지금은 9시가 되었다. 그 말인즉 이 세 시간 동안 조은서는 계속 허민우랑 다정한 연인처럼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유선우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조은서가 유선우를 보자 얼굴에 있던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유선우는 다가가서 그녀의 곁에 섰지만, 허민우한테 말을 건넸다.“민우 선배, 여기서 선배를 만나다니 정말 기막힌 우연이네요.”잠시 공백이 있고 난 뒤 허민우는 살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죠.”두 남자의 말은 다 의미심장했다. 유선우는 조은서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한 남편처럼 얘기했다.“나 아직 식사를 안 했어. 나랑 밥 먹으러 가자.”조은서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선우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허민우에게 얘기했다.“내일 다시 얘기하죠, 민우 선배. 오늘은 시간이 늦었네요.”허민우는 유선우의 생각을 읽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선우가 조은서를 데리고 떠날 때 허민우는 갑자기 유선우를 불러세웠다. 네온사인이 뒤섞인 하늘아래서 그는 아주 진지하게 유선우한테 얘기했다.“정말 좋아한다면 눈물 흘리게 하지 말아요.”유선우는 조은서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운 공기 때문에 살짝
한참이 지나서야 유선우는 멈추었다. 그는 부드러운 조은서의 입술을 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그 사람 좋아하지 마!”조은서는 유선우를 밀어내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음식 주문할게요. 좋아하느니 안 좋아하느니 유치하지도 않아요?”조은서는 유선우에게 붙잡혔다. 유선우는 다시 조은서에게 키스했는데 이번에는 그녀를 높이 안아 들고 키스를 했다. 결혼한 지도 몇 년인데 조은서는 유선우가 밤일에 대해 이토록 미쳐있는 줄 몰랐다. 유선우가 그녀를 놓아주었을 때는 그녀의 가녀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며 치욕적인 기분이 들었다.유선우 이 짐승 같은 자식!단정해 보이는 외모는 그저 가식일 뿐이다. 유선우는 뼛속으로부터 여자와 관계를 맺는 일을 밝히는 저질인 남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더 미쳐있었다.조은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유선우를 깊이 사랑했었다. 조은서는 유선우의 고귀한 모습과 그의 재산을 일찍이 알고 있었고 필요할 때에만 보이는 다정한 모습까지도 알고 있었다...이 모든 것이 순수한 소녀한테는 저항할 수 없이 빠지게 되는 조건들이다.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한테 3년 동안 상처만 받았다.3년, 아무리 뜨거운 마음이라도 식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유선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만약 그가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면 방금 문 앞에서 자신한테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자신에 대한 호감은 사실 그저 놀음 같은 몸 정일 뿐이다.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은 그를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소유욕에 의한 것일 뿐이다!유선우가 충분히 자신을 갖고 논 다음에는 쉽게 떠날 것이다.그때가 되면 조은서는 자신의 마음만은 온전히 남길 수 있다....유선우는 사실 아주 바빴다. 요즘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다 직접 해야 했다.조은서가 심기를 건드려서 그는 H 시까지 쫓아왔지만, 회사의 많은 일은 나 몰라라 할 수 없었기에 저녁 늦게까지 회
유선우는 작게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렇게 좋아해?”조은서가 기뻐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조은서와 유선우의 관계는 이런 기쁜 일을 공유할만한 관계가 아니기에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얼버무렸다.“사고 싶었던 물건이 재입고가 됐어요.”유선우는 액세서리 같은 사치품인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뭐가 갖고 싶어, 내가 사줄게.”조은서는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을 들고 맨발로 옷방으로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유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핸드폰은 왜 계속 갖고 다니는 거야, 내가 무슨 비밀이라도 볼까 봐 그래? 또 어느 젊은 남자의 연락처를 추가했어?”조은서는 옷방에서 옷을 골라 갈아입었다.그녀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나한테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 H 시는 당신의 지역이잖아요. 당신은 지금 예전 만났던 사람도 만나고 아주 재미있겠네요!”유선우는 마음이 일렁였다. 그는 쫓아가서 문에 살짝 기대고는 그녀의 태연한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나는 그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야! 나는 그 여자한테 손을 댄 적이 없어. 그 사진은 그 여자가 몰래 찍은 거야.”조은서는 딱히 관심 없다는 듯 웃으며 검은색 스타킹을 신었다. 그녀의 가녀린 다리에 스타킹을 더하니 몹시 섹시하고 사람을 유혹하는 맛이 있었다.유선우는 당연히 좋지만, 아내가 이런 섹시한 스타킹을 신고 밖에 나가는 것은 어느 남편이든 싫어할 것이다. 그는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그걸 입는다고?”조은서는 그를 지나쳐 화장실로 갔다.“코트 안에 치마를 입는데 스타킹을 안 신고 맨살로 다니게요?”유선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더 두꺼운 거 없어?”조은서는 얼굴을 씻다가 고개를 들어 거울에서 유선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선우 씨, 만약 당신이 불만이라면 다음에 더 두꺼운 거로 입을게요. 아무래도 저는 지금 당신이 오빠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기를 바라는 처지라 당신의 말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어요.”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은 유선우의 심기를 건드렸다.하지만
“무슨 일인지 얘기해.”유선우는 서른도 안 되는 나이지만 성격이 차분하여 상업계에서는 태산처럼 묵직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진 비서가 하는 얘기를 들은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진 비서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백아현 씨가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걸 동의하셨잖아요. 이 일은 원래 제가 해야 했는데 요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조수한테 하라고 시켰어요. 근데 조수가 상황을 잘 모르고 진이 정원의... 열쇠를 백 씨 집안사람들한테 줬어요. 오늘 아침 백아현 씨가 그 안에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 피드 내용이 아주 가관이에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컨드죠.’라고 썼어요.”핸드폰을 쥐고 있는 유선우의 손가락은 하얗게 질렸다. 그는 5초 이내에 수습할 방법을 생각해서 말했다.“인스타그램의 관계자한테 당장 연락해. 얼마를 줘도 상관없으니까 얼른 백아현이 올린 피드를 삭제하라고 해. 나는 조은서가 이걸 보게 되는 걸 원치 않아.”진 비서는 사실대로 말했다.“그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피드는 이미 유저들에 의해 10만 번이 넘게 인터넷에 노출돼서 지금 그 피드 하나만 삭제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게 돼요...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에요!”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유선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그래도 삭제해야 해!”전화를 끊고 그는 조은서를 보았다.무대 중앙에 있는 조은서는 조명을 받고 있었지만 더는 눈이 부신 것이 아니라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그녀는 백아현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게 되었다. 도발적인 문구를 보았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는데 그녀가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백아현이 당당하게 진이 정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가 애지중지하던 곳으로 들어갔다... 백아현은 누구인가? 그녀는 유선우의 애인이었다!진이 정원은 유선우가 매입한 것이었다.지금 유선우는 자신의 애인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조은서의 어머니가 살았던 집안을 활보하면서
조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유선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하듯 바라보았다.“지금 바로 B시로 가서 처리할게. 너한테 영향 주지 않도록 이번 일 꼭 묻을게.”조은서의 눈동자가 희망을 잃은 듯 힘없이 바닥을 향했다.한참이 지나서 그녀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어떻게 묻어요? 무려 10만 리트윗인데. 어떻게 묻냐고요!”유선우는 손을 꽉 쥐더니 떠났다.백아연이 벌인 일은 조씨 가문과 YS그룹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YS그룹의 주식은 오늘 당장 하한가로 떨어질 수 있다.유선우가 극장의 출구로 걸어갔다.그가 참지 못하고 뒤돌아 조은서를 보았으나, 조은서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선 그녀는 그토록 연약하고 쓸쓸해 보였다.조은서가 극장 책임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혼자 있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그녀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던 책임자가 얼른 대답했다.“당연히 됩니다. 얼른 여길 정리할 테니 얼마든지 계세요. 우리 극장은 오후 6시에 마감합니다.”조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인사했다.사람들이 모두 극장을 떠난 후, 조은서는 다시 바이올린을 들고 눈을 감은 채 마스네의 을 연주했다. 이는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던 곡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어머니는 어린 은서를 껴안고 가볍게 흥얼거리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따스한 품에서 은서는 달콤한 잠을 청했다.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우울함이 담겨있다.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현이 끊어져 버렸다...조은서는 바이올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같은 자리에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조승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을 다시 걸어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서로가 말이 없다.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가쁜 숨결이 아버지가 이 일을 알고 있음을 알려주었다.조은서의 목이 메왔다.“아빠. 죄송해요.”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가 30여 초가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목멘 소리가 나왔다.침묵을 지
B시로 돌아온 조은서는 공항에서 차를 몰고 바로 산소로 향했다.초겨울의 찬 바람이 살을 에는듯하다.블랙코트를 입은 그녀가 한 손에 어머니가 생전 좋아하던 데이지꽃을 들고 서 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응시하며 찬 바람을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이 서 있다.어머니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기억 속의 어머니는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었고 아버지와 무척 사이가 좋았다. 저녁 무렵 진이 정원에 차 경적이 울리면 어머니는 그녀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먼저 어머니와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녀를 품에 안고 묻는다.“우리 은서 아빠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어요!”“오빠 하교하면 아빠랑 같이 데리러 가고 싶어요!”“오케이! 그럼 엄마 그림 그리는 거 방해 하지 말고 같이 데리러 가자!”...어린 은서는 검은색 캠핑카에 앉아 뒤차 창을 통해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어깨에 숄을 걸친 채 정원에 서 있다. 곁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예쁘게 꽃을 피웠고 어머니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눈물 한 방울이 속절없이 떨어졌다.조은서는 허리를 숙여 데이지꽃을 어머니의 묘비 앞에 내려놓았다.그녀는 생각했다. 이른 봄이 오면 이곳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겠다고. 이제 겨울이 다시 오면 어머니가 그녀를 안고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릴 것이다...*저녁 무렵 그녀는 별장으로 돌아왔다.그녀가 돌아온 것을 본 고용인이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말투도 몹시 조심스러웠다.“사모님 돌아오셨어요? 주인님께선 회사에서 전화하셨어요...”조은서는 유선우와 관련된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계단을 오르려다 걸음을 멈추고 낮게 말했다.“집에서 안 먹을 거니 제 저녁밥은 준비 안 해도 돼요. 수고하세요.”고용인이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조은서는 2층으로 올라가 큰 캐리어 하나를 끌고 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렇다. 유선우와 별거할 것이다.아직 그를 떠나 생활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할지라도도 그와 동침하고 한 지붕 아래서 함
빠져나가려는 그녀가 힘껏 유선우의 얼굴을 꼬집었다.얼마나 세게 꼬집은 건지 금방 멍이 들었다.잠시 후 조은서의 스타킹이 벗겨져 침대 끝머리에 던져졌다...유선우가 입술을 맞댄 채 연인처럼 중얼거렸다.“절대 가게 두지 않을 거야! 난 백아현 좋아한 적 없어. 근데 나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이란 게 있다고. 우리 전에 행복했었는데...”조은서의 검은색 머리칼이 흰 침대 시트에 늘어뜨려졌다.단정하게 입었던 옷이 마구 흐트러졌다. 나약한 몸은 저항조차 할 수 없다.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유선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제발 절 강요하지 마세요.”그의 눈동자가 깊어졌다.“뭐?”조은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우린 아직 공적으로 부부 사이죠. 선우 씨도 스캔들이 생기는 건 원하지 않겠죠? 더 이상 절 강요한다면 어떤 미친 일을 저지를지 몰라요. 내일, 모레, 혹은 일주일 후에라도 유씨 가문 대표가 아내에게 배신당한 뉴스가 B시 전체에 퍼져요. 대중들은 당신의 그 내연녀 뉴스보다 아내한테 배신당했는지 여부가 더 궁금할 것 같은데요. 그럼 당신의 비즈니스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당신은 또 어떻게 나가서 비즈니스를 논하겠어요?”유선우는 화내지 않고 되레 웃었다.“그런 건 누가 알려줬어? 아니면 혼자 터득한 건가?”조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유선우의 눈을, 표정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그제야 유선우가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렇게 자신을 싫어하는데, 더 이상 강요하면 정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지훈이나 허민우를 찾아가 작당할 수도 있었다.정말 독하기에 그지없다.청출어람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그를 놓을 수 있게 된 걸까. 어느 쪽이든 유선우에게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그가 몸을 일으켜 침대 옆에 서서 태연하게 말했다.“보내줄게. 근데 이혼은 안 돼. 너도 더 이상 날 조급하게 만들지마.”유선우에게서 풀려난 그녀는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이때에야 그녀는 두 다리가 나른해져 힘이 빠졌음을 느꼈다.유선우는 침실을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