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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5화

욕실 안에는 수증기가 피워낸 안개로 자욱했다.

진안영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방금 있었던 일들을 조용히 떠올렸다.

조진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다정했다.

하지만 너무 다정했던 나머지 그의 완벽함이 마치 공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 전의 조진범은 인간이 아닌 로봇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진안영은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처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불공평했던 결혼이었고, 처음부터 불공평했던 부부 관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철없는 짓이었으니까.

진안영은 몸을 오래 담그지 않았다.

조진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그녀는 몸이 풀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느다란 몸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 욕실을 나섰다.

안방의 샹들리에 불빛이 꺼져 있었다.

조진범은 무드등만 켜놓은 채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들고 비서에게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욕실에서 나온 진안영이 침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발견하자 그는 간단한 몇 마디만 전한 후 통화를 끝마쳤다.

진안영은 연고 하나를 들고 침대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직도 어딘가 부끄러웠지만 지금 바르지 않으면 다음 날 걷기가 너무 힘들었던 탓에 발라야만 했다. 조진범은 검은 눈빛으로 서투른 그녀의 손짓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그녀의 손에 있던 연고를 빼앗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내가 해줄게. 많이 아파?”

남자의 투박한 손길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기 마련이었다.

진안영은 입술을 꽉 깨문 채 감히 조진범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잠시 후, 진안영은 낮은 목소리로 사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진범 씨,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응?”

“내일이 제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이잖아요. 아버지께서 오늘 저한테 전화를 주셨는데, 괜찮다면 진범 씨도 같이 가지 않을래요?”

진안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진범이 고개를 들어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사실 진안영의 아버지 진철수가 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조진범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 남아프리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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