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혜선을 불러내기 전부터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 전화를 받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만남을 수락했을 때는 정말 뜻밖이었다.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도혜선이 의외로 매우 적극적이어서 불안했던 마음은 싹 가시고 편해졌다.오늘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도혜선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봤다.그녀는 똑똑하지만 시원시원했고 나아가 호쾌하기까지 했다.“먼저 만나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무슨 의도로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과는 해야 할 것 같네요. 죄송했어요.”그녀가 먼저 사과를 시작으로 어색하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나는 담담하게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혜선 씨를 탓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요, 하하.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그녀도 내 말을 듣고 담담히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듯이 입을 오므렸다가 놨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그녀가 어색하게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저는 핑계 대고 싶지 않아요. 사실 줄곧 신호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맞아요. 신호연이 매력이 있어 여자들에게 호감을 산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신호연이 그렇게 찌질할 줄은 몰랐어요. 일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책임하게 가버리더라고요.”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다른 여자한테서 들은 신호연에 대한 평가였다. 물론 나에겐 남편의 불륜 상대니 연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신호연이 글쎄 저를 호구로 보고 동생을 두둔하지 뭐예요. 제가 신연아에게 폭행당하는 걸 뻔히 지켜보면서 말리질 않더라고요. 이후엔 병원에 버려놓고는 모른 척하더군요.”도혜선이 말하면서도 치가 떨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분노를 품고 있는 그녀의 눈이 이글이글했다.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현재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나는 신연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조금의 창피함도 모르는 그녀의 단단한 멘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뻔뻔스러워 제삼자가 보면 내가 가해자인 줄 알 것 같았다. 얼굴에 미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고, 저렇게 저급하고 예의는 말아먹은 태도로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단다.“말해봐, 그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은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겹거든. 어디 그 뻔뻔한 낯짝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 뭔지나 들어볼까?”나도 지지 않으며 담담하게 맞받아쳤다.“피해자인 척 트집 잡지 마.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건 한지아 너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야. 둘 중 그 누구도 억울해하지 마.”이 말이 시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이가 없어 멍하니 신건우를 바라보았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문이 막힌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신호연이 마침 밖에서 돌아와, 내가 콩이를 안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신호연은 집안 모두의 안색을 살피더니 나에게 한마디 했다.“우리 집에 가자!”“오빠, 뭘 그리 바삐 집에 가. 나 아직 형수님한테 좋은 소식도 못 알려줬는데!”신연아는 어딘가 비꼬는 듯한 어투로 신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빤 아직도 한지아랑 집 갈 생각이나 하고 있어? 내 배 속의 아이는 아빠를 애타게 찾고 있는데!”머리가 ‘쿵’하고 울렸다. 마치 천둥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느낌. 순간 두통이 심하게 몰려왔다. 갑자기 몸을 지탱할 수 없어 비틀거리자, 신호연이 재빨리 와서 나를 부축했다.“여보...”신호연의 울먹거리는 역겨운 목소리에 나는 그를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아이?”신호연은 고개를 떨구고 감히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신연아의 말이 터무니없는 망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너랑 신연아의 아이?”나는 기가 차 되물었다.“연아와 호연은 친남매가 아니야. 애초부터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아이 몇 명을 낳든 문제 될 건 없어.”신건우가 파렴치하게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어서
뺨따귀를 맞은 얼굴은 후끈후끈 달아오르면서 아파졌다. 입가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콩이는 목이 쉴 정도로 내 다리를 끌어안고 울어댔다.난 맞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신호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이제야 네가 진짜 본성을 드러내네!”신호연은 당황한 듯 얼굴빛이 변하면서 동공이 흔들렸다. 이때 신연아가 태연하게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더니 말했다.“한지아, 좋은 말로 할 때 네가 뺏어갔던 것들 다 도로 뱉어내, 안 그러면 진짜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신연아, 꿈도 꾸지 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난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집안을 위해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신호연, 네가 오늘 때린 이 따귀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천배 만배 너에게서 다 돌려받아 낼 거야.”나는 할 말을 다 하고는 무서워서 울고 있는 콩이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신연아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 장면을 본 콩이는 꼭 끌어안고 있던 내 다리를 놓고는 작은 두 손으로 신연아를 밀기 시작했다.“고모 나빠, 저리로 가!”나와 신연아는 서로 머리를 끄집어 당기기 시작했다.신호연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둘 다 손 놓지 못해!”신호연은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나를 막았다. 내가 신호연에게 잡혀 움직임이 제한받자 신연아는 더 흥분하면서 그 틈을 타 내 얼굴 뺨을 두 번이나 연속 후려갈겼다.여러 번이나 억울하게 뺨을 맞은 나의 분노 지수는 최고치에 달했다. 나는 신호연이 끌어당기던 팔을 뿌리치고는 신연아의 얼굴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신연아가 맞자 신건우도 참지 못하고 끼어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울면서 작은 손으로 신연아를 밀고 치는 콩이가 눈에 거슬린 모양이었다.신건우는 손을 뻗어 콩이를 끌어당기더니 뒤로 뿌리쳤다. 나는 콩이를 신건우 손에서 빼앗아 오려고 했지만 콩이는 그저 힘없는 종이 인형처럼 뒤로 던져지고 말았다. ‘둥!’하는 소리와 함께 콩이의 울
나는 숨을 죽이고 의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미연은 내가 아플 정도로 나를 꽉 잡고 있었지만 난 아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의사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다행히 아이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뇌진탕, 두개내출혈, 안면 근육 손상 등 증상이 존재하고 지금 깨어나지는 않은 상황이라 24시간 동안 계속 관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 깨어날 가능성도 있고 제일 안 좋은 상황까지 예상한다면 아마...”나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쓰러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실에는 이미연뿐만 아니라 이미 떠난 줄 알았던 신호연과 시어머니도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서강훈도 있었다.나는 애써 몸을 일으키면서 이미연한테 물었다.“콩이는? 우리 콩이는 어디 있어?”“지아야, 콩이는 아직 중환자실에서 관찰 중이니까 너무 다급해 않아도 돼.”나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키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이미연이 이런 나를 막아 세우자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날 막지마, 콩이는 아직 어려서 내가 없으면 무서워한단 말이야! 의사를 제일 무서워한다고!”“여보...”“꺼져... 꺼지라고...!”나는 목이 찢어지라 신호연을 향해 외쳤다.“다 저리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눈앞에 서 있는 신씨 집안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나와 10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온 신호연도 그 순간에는 사람의 탈을 쓴 악랄한 짐승으로 느껴졌다. 두 눈을 뜨고 자기 친딸이 쓸모없는 걸레처럼 뿌리쳐 나가는 걸 보기만 하는 신호연은 털끝만큼의 양심도 없는 쓰레기였다.이번 일로 신씨 집안 사람들에 대한 모든 인상이 뒤엎어졌다.나는 이번 생을 돌이켜보면서 신호연 같은 쓰레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신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짐승 같은 놈이었다.나는 이미연의 동반하에 힘겹게 중환자실 앞까지 걸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힘없이 누워있는 콩이를 보자 나는
내가 중환자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여러 명의 의사가 콩이를 둘러싸고 검사를 하고 있었다. 한 분은 콩이의 뇌 CT를 들고 주위 다른 의사들한테 무언가를 얘기해주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사는 말을 마치고 또 자세히 콩이를 진찰했다.나는 밖에서 숨을 죽이고 병실 내부 상황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한 시간 후에야 의사들이 콩이에 대한 진찰을 마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유명하다던 신경외과 의사는 배현우한테 콩이 진찰 상황을 얘기해줬다.“배현우 씨, 아이 몸의 각 부위는 연약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 대뇌 신경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조금 후면 깨어날 겁니다. 하지만 뇌진탕은 아주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러 곳 근육 손상과 피하출혈도 있고... 제일 엄중한 건 두개내피하출혈 면적이 큽니다. 아이가 깨난 후 더 상세한 검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신호연도 배현우에게 의사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끊임없이 인사했다.콩이는 혼수 상태에 빠진 지 28시간 만에 깨어났다. 모든 사람이 콩이가 깨어난 걸 보고는 안심했다.배현우가 모셔 온 전문가는 콩이를 위해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검사를 해주었다. 콩이는 유달리 얌전했다. 큰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붙어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콩이가 무서워할까 봐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검사가 다 끝난 후 콩이는 배현우가 준비해 준 VIP 병실로 옮겨졌다. 내가 콩이랑 함께 병실에서 지내면서 콩이를 보살피는데 큰 편리를 제공했다.아무도 없을 때 콩이는 내가 슬퍼하고 걱정할까 봐 나를 위안했다. 내가 며칠 동안 들은 얘기 중에서 콩이는 복이 많고 명이 긴 아이여서 이번에 고생하고 나면 꼭 뒤에 복이 따라올 것이라는 말이 제일 설복력이 있는 위안이었다.신건우와 신연아는 일이 생긴 후로 지금까지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여러모로 좋았다. 아무튼 나도 그 두 사람 얼굴 보기가 싫었으니까.신호연과 시어머니는
나는 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서 마음이 조여왔다. 제자리에 멈춰서서는 문만 바라보았다.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신호연이었다. 그도 내가 집에 있을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이 휘둥그레해서는 밖에 서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나도 여기서 신호연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는지라 긴장되었다.저도 모르게 우리 두 모녀 옷들과 내가 버리기 아쉬워하던 기념 의의가 있는 물건들이 들어있은 캐리어를 나한테로 끌어당겼다.“여보… 언제 돌아온 거야.” 신호연은 기쁜 맘에 얼굴빛이 환해졌다. 아주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 나한테 다가왔다. “여보…”나는 뒤로 한걸음 후퇴하면서 신호연을 멀리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신호연은 언제부터인가 나에겐 이미 떠올리는 것조차 싫은 존재가 되었다.신호연이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거나 내가 신호연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역겨움, 공포, 증오, 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있었다.내 반응을 본 신호연은 잠시 멈칫하면서 얼굴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눈썹이 반달 모양으로 되면서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는 내가 끌고 있는 캐리어를 발견하고 나한테 물었다.“여보, 어디 가는 거야?”“물건 가지러 왔어.”나는 냉정하게 대답하고는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신호연은 갑자기 캐리어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아니야, 여보, 가지 마!”나는 깜짝 놀란 맘을 가라앉히고 신호연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성가시다는 듯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여보라고 부르지 마. 이후에도 날 그렇게 부르지 마.”“여보, 왜 그렇게 고집이 센 거야.” 신호연은 곤란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꼭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해야만 하겠어?”“나를 처음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내가 고집이 세서 너희한테 이렇게 당하면서 살아가겠네? 내가 너희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된 것까진 넘어가 줄 수 있어. 하지만 콩이가 죽을 뻔했잖아! 내가 고집이 센 대가를 치르고 있잖
신연아는 음침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면서 신호연을 비난했다.“신호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신호연은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놀란 듯 긴장해 하면서 화가 난 신연아를 쳐다보았다. 마치 아내한테 바람 핀 현장을 들킨 것처럼 당황해하는 표정이 아주 우스웠다.“한지아, 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왜 자꾸 신호연 옆에 붙는 건데, 아직도 신호연 잊지 못하겠어? 너무 파렴치하게 노는 거 아니야?”신연아가 입을 열면 언제 한번 이쁜 말이 나온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집안으로 성큼 들어오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았다.“우리 아빠 감옥 보내고 재산까지 다 뜯어내고 너 진짜 대단하다. 이미 다른 남자 생겼다며? 왜 자꾸 우리 오빠한테 집착하는 건데? 한심하기 짝이 없네, 그 좋은 별장에 살면서 여기에 있는 쓰레기 물건들은 왜 자꾸 가져가려고 해? 그냥 돌아와서 또 우리 오빠 꼬시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입 함부로 놀리지 마.”난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험한 말을 내뱉는 신연아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네가 만졌던 물건들 더러워서라도 안 가져.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신호연이 자꾸 나한테 감성팔이 못하게 단속이나 잘하고 다녀.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나한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처럼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네가 아닌 다른 여자한테 맘이 빼앗길지 누가 알아?”“한지아…”“쓰레기 같은 년, 너 오늘 내 손에 죽었어!”신연아는 소리치면서 나한테 달려들었다.나는 신연아의 배를 주시하면서 냉정하게 경고했다.“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힘 조절을 잘 못 해서 네 배 속에 있는 그 소중한 애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신호연은 내 말을 듣자마자 흉악하게 날뛰는 신연아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나를 쏘아봤다.나는 헛웃음 한번 치고는 말을 이었다.“그래, 네 아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그리고 건의 하나 할게. 애 낳고 DNA 검사해 보는 거 잊지 마!”“너…”난 웃으며 할 말을 다 하고는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뒤도 돌아보지
신씨 가문에 대해 큰 호감은 없었어도 수년 동안 나와 시어머니 사이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기에 그날 나에게 차갑게 대했다 해도 용서할 수가 있었다. 자기의 이익 앞에서는 누구나 이기적이었으니까.시어머니는 나를 신씨 가문으로 다시 들어와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에게 그곳은 지옥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나는 대화 할 장소로 시어머니 집 근처의 한 카페를 골랐다.시어머니를 만났을 때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 없었고 태도도 많이 누그러들었다. 아직은 노인까지 못살게 굴 수 없었다.시어머니의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며칠 못 본 게 다인데 정말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그녀는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사실 나도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시켜주고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그... 콩이는 괜찮지?”말을 마치고 시어머니는 바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콩이 만큼은 정말로 예뻐했다는건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그럭저럭 잘 지내죠. 하지만 전처럼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나는 그냥 덤덤하게 대답하고 끝내려 했지만 그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 어머니께서는 언제든지 콩이를 보러 와도 돼요...”이 말에 시어머니는 갑자기 용기가 생겼는지 나를 잡아당기면서 물었다.“지아야, 그냥 우리 가문 식구로 있어 주면 안 되겠니?”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에는 신씨 가문의 모든 사람의 호의나 접촉 같은 건 무조건 거부했는데 말이다.“어머니,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저라면, 바람 난 남자과 그 바람 난 상대랑 같이 살 수 있겠어요?”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나의 손을 천천히 놓으며 말했다.“나는 정말로 이렇게 살아왔어. 심지어 그 몹쓸 여자의 애까지 키워줬지.”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