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쯤 지나 나는 그 클럽을 떠나 미연이를 만나러 갔다.병실에서 문기태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 남자는 겉보기에는 차분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그날 밤 그의 패닉상태를 분명히 보았었다.둘은 서로에게 애정이 넘쳐 보였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문기태가 몸을 일으키며 미연에게 말했다.“먼저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금방 돌아올게요!”그는 나에게도 점잖게 인사를 하고 병실을 떠났다.나는 미연이를 바라봤다. 오늘 그녀의 상태는 훨씬 나아 보였고 얼굴에도 혈색이 돌았다.“혜선 언니는 어디 있어?” 미연이 나를 보며 물었다.“서강민 부인한테 일이 생겼나 봐, 어제 여길 떠나서 그쪽으로 갔어.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아직 연락을 못 했네.”나는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아 미연이를 응시했다.“네 얘기나 해줘. 새로운 진전이라도 있어?”미연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낯빛도 조금 창백해진 듯했다“너무 조급해하지 마. 좀 더 여유를 가져.”나는 그녀를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고 주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사실, 그와 함께 있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왔어. 그저 남미주가...”그녀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있었다.남미주가 어떤 사람인가? 평범한 여자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데 하물며 남미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혼인을 지키려는 것은 여자에게는 가장 흥분되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사실, 그들은 단지 약혼 상태일 뿐,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미연이 무기력하게 말했고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러니까, 실제로 혼인신고는 안 했고, 결혼도 안 한 상태라는 거야?”“맞아.”미연이 미소지으며 말했다.“문기태가 나한테 말했어. 그가 사랑하는 이유는 자유롭기도 하고 책임감도 있어서라고 했어. 날 수동적인 상황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말해줬거든.”“그전에는 몰랐어?”나는 의심스러워졌다.“전에는 몰랐어.
미연이는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아야, 똑똑히 알아둬, 언젠간 그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거야! 신호연이 신연아에게 드는 감정은 보호 욕구에 가까워. 네 앞에서는 늘 자기 부족함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압박과 불균형을 느끼고 있었지. 네가 자본을 모아 신흥을 설립했을 때부터, 모든 결정에서 그보다 한 수 위였지.“난 사실 그런 의도가 없었잖아!”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솔직하게 대했던 것들이 그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니.“슬프지만 현실이야. 그는 본능적으로 널 두려워하고 있지만 너에게 복종하고 싶지는 않아 해. 그래서 항상 그 상태를 바꾸고 싶어 했지. 진정한 사내대장부처럼 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할 능력은 없었잖아.”미연의 말에 나도 동의를 표했다.“거기에 신연아의 의도적인 유혹까지 더해졌지.”“맞아! 그래서 그는 신연아에게서만 자신의 강인함을 찾을 수 있었던 거야. 여자들이 그에게 의존하고 그를 존경하는 것을 즐기면서 허영심을 충족시키려고 했어.”“그래서 네가 아이를 낳을 때, 혼자 큰일을 성사시키고 싶어 했어. 그게 그가 너를 뛰어넘고 싶은 내면의 소원을 보여주는 거야. 그건 단지 신호연만의 약점이 아니라 신 씨 집안의 약점이기도 해. 그래서 그들은 너나 다른 사람들이 누가 신흥을 일으킨 진짜 주인인지 언급하는 걸 두려워하거든.”“진짜 소심한 남자라니까.” 나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이젠 신연아가 한술 더 떠 그 남자의 총애를 등에 업고 무례하게 굴고 있잖아. 마침내 그녀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고 자신이 이겼다고 의심의 여지 없이 생각하고 있잖아. 그래서 그렇게 오만해진 거야. 자신이 뭔가 믿을 뒷배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신호연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려고 하잖아.”“신호연도 그렇게 감싸주더라고!”나는 말을 이었다.“오늘 모두의 앞에서 신연아를 나약한 여자라고 말하더라고.”“너 좀만 기다려봐. 신호연은 조금씩 절망에 빠질 거야. 지금은 그가 강세에 처해 있다는 생각에 널 이겼다는 만족감에
그날 오후 우리 셋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시간이 늦어져 배현우가 전화로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고 나는 그제야 일어나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바로 그때, 문기태도 병실로 돌아왔다.계단을 내려가자, 배현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든지 그는 항상 군계일학처럼 무리 속에서 빛이 나는 존재였다.나를 발견하자 그의 차갑던 얼굴이 단번에 부드럽게 풀어졌고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피곤하죠?”“배고픈 건 사실인 것 같아요!”나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그럼 빨리 배 채우러 가야죠!”그는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야 집에 가서 내 배도 채워줄 힘이 있죠!”또 이상한 소리를 하는 배현우에 나는 바로 가시를 세웠다.그는 샐쭉 웃으며 나를 품에 끌어안고는 자신의 차에 태웠고 내 차는 그의 부하가 집까지 운전해 줬다.식당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다가왔고, 고개를 들어보니 우울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바로 한소연이었다.나는 피하고 싶은 사람과 사건일수록 하필 반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한탄했다.서울은 하도 작아서 어디를 가도 원치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원망스러웠다.한소연은 나를 노려보더니 배현우를 보고는 곧 웃음을 짓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현우 씨, 언제 돌아온 거예요? 왜 저는 몰랐죠?”배현우가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언제부터 내 일정을 소연 씨에게 보고해야 했죠?”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피곤해졌다.“그게 아니라,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다음 시즌 홍보 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일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배현우의 표정이 불쾌해지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음 시즌이요? 다음 시즌 소연 씨와 관련된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업무는 사무실에서 이야기해야죠.
“나중에 말해줄게요!”장난기 섞인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 모습마저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내가 계속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그가 눈썹을 씰룩거렸다.“질투하는 거예요?”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마음을 감추며 말했다.“그럴 리가요!”그는 과일주스를 따라 내 앞에 조심스럽게 놓고는 깊은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했다.“잠깐만요!”그는 손을 내밀어 내 턱을 받치며 손가락으로 내 입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다정하고 애정 넘치는 행동이었다.나는 어색하게 피하려고 했지만, 한소연의 시선이 계속 우리 쪽을 향해있어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어려웠다.나는 확신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아마 그녀의 뇌리에 똑똑히 박혔을 것이다.“뭐가 두려워서 그래요?”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물었다.“오늘 인터넷에 올라온 것들 못 봤어요?”나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방금 그의 행동에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그게 왜요?”그는 말하며 일부러 랍스터를 집어 소스에 푹 찍은 뒤 내 입에 가져다줬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내가 직접 할 수 있으니 이러지 말아요!”“내가 좋아서 그러는 걸요!” 그는 고집스럽게 다시 내 입가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이렇게 먹이는 게 좋아요! 내 꼬마 공주는 내가 아껴줘야죠!”그의 말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어린애도 아니고 꼬마 공주라니, 너무 과장된 것 같았다.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그가 내 입에 넣어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받아먹지 않는다면 또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다.그가 내 입에 넣어준 음식을 씹으며 나는 무기력하게 말했다.“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에 불을 붙이고 있는 거라니까요!”“그럼 더 바쁘게 만들어야죠!”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그의 말에 나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 웃었다. 한소연의 눈에 이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내가 어찌할
우리는 모든 동작을 멈췄다. 서로 눈을 맞추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그를 밀치며 말했다. “또 신씨 가문의 사람일 거예요.”그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몸을 숙여 다시 한번 내 입술을 깨물었다. “위층에 올라가서 기다릴게요.”“네!”그가 위층에 올라가는 것을 본 나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찾아온 사람은 신씨 가문의 사람이 아닌 한소연이었다. 나는 인터폰을 향해 일부러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문 열어!”그녀의 태도는 엄청 강압적이었다. 말을 마치고 짜증 나는 듯 또 벨을 몇 번 눌렀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나는 “풉” 웃으며 열림 버튼을 눌렀다. 인터폰 넘어 한소연이 대문을 벌컥 열고 씩씩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집 앞에 도착하자 나는 그녀가 힘을 들이기 전에 바로 문을 열었다. 그녀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손을 뻗어 나를 밀친 후 쳐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나쁜 심보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날 추궁하려고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그녀가 쳐들어와 거실을 한 바퀴 빙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어 순식간에 멍해지더니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뭐예요? 집에 혼자 있어요?”“누구 찾으려고요?”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알고 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지아 씨, 진짜 당신이 이런 사람일 줄 상상도 못 했어요.”그녀는 슬리퍼도 갈아신지 않은 채 약탈하려는 듯 기세등등한 태도로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태연하게 소파에 앉았다. 전혀 두렵지 않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가볍게 물었다. “제가 어떤 사람인데요?”그녀는 태연자약한 내 모습을 보더니 더 화가 나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날 기다렸다. “배현우가 내 남자 친구인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뻔뻔스럽게 그 사람을 꼬셔요. 심지어 이곳저곳 내 이름으로 사기를 치고, 너무 뻔뻔하네요.”나는 코웃음을 치며 나와 닮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제가 어떻게 사기를 쳤는데요? 무슨 사기를 쳤어요
그는 낯빛이 어두웠다. 온몸이 차갑고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배... 배현우 씨! 당신...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한소연은 주먹을 꼭 쥐고 불안한 눈빛으로 이상하리만치 냉랭한 배현우를 봤다.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그럼 한소연 씨,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나요?”배현우의 말이 끝날 때, 이미 소파 옆에 도착해 내 옆에 앉았다. 사람 홀리는 얼굴을 암울하게 쳐들고 전전긍긍하는 한소연을 바라봤다. “대답해요. 내가 언제 당신 남자친구라고 승낙했어요? 혹시 한소연 씨가 오해할 만한 일을 했나요?”“저... 그게...”한소연은 말을 얼버무리며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얼굴은 화난 건지 놀란 건지 푸르딩딩했다. “날 강제로 도덕적 납치를 해 내가 당신 남자친구라고 떠벌려 내 가족의 마음을 어지럽혀도 계속 참았어요. 그런데 주제를 모르고 집까지 찾아와 시비를 거는 용기를 누가 줬어요?”얇은 입술을 꾹 다문 배현우의 눈빛은 예리했다. 눈빛에는 특유의 위압감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분명...”한소연은 조금 좌불안석이 됐다. “그녀가 당신과 닮았다고요? 난 모르겠는데요?”여기까지 말한 배현우는 일부러 날 껴안으며 얼굴을 바라봤다. “당신의 세력? 나 배현우의 여자가 언제부터 남의 세력에 의지해야 됐나요? 제가 줄수 없나요?”배현우는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았다. 유난히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녀와 비교할 자격이 있어요? 우리가 원래 비공개적으로 조용히 살 생각이었는데 그게 당신이 말한 염치없는 짓이 된 건가요?”“저...”“누가 배현우의 여자를 입만 열면 재혼이라고 모욕할 용기를 줬어요? 그것보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곳저곳 내가 당신 남자 친구라고 떠벌린 당신이 더 비도덕적인 것 같은데요. 거리낌 없이 집까지 찾아와 시비를 거는 건 야밤에 주택침입죄로 경찰에 신고해서 쫓겨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당장 혼자 사라지겠어요?”배현우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매
나 온몸이 탈탈 털린듯해 이해월에게 전화 온 것이 아니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옆을 만져보니 이미 따뜻한 기온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이미 떠난 지 시간이 조금 지난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깨끗이 정리된 안방을 둘러봤다. 나는 마음속으로 몰래 푸념을 늘어놨다.‘이 남자가 진짜. 늑대세요? 날 산 채로 잡아먹을 일만 남았네.’후들거리는 다리를 한 채 간단히 씻었다.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내 눈에 이미 식탁에 차려진 아침밥과 메모가 보였다.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메모를 들었다. 지금 이런 게 유행인가?그의 필체는 강단 있고 예뻤다. 메모에는 체력 보충을 위해 밥 챙겨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바로 얼굴을 붉혔다. 마음속으로 이 남자가 부끄러움 없이 꼭 대놓고 말한다고 욕했다. 덮여있는 뚜껑을 열자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과 죽이 눈에 들어왔다. 체력 소모가 컸던 탓인지 나는 식욕이 폭발하여 차려진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운전해서 집 문을 나서 바로 회사로 갔다.인터넷에선 아직도 왈가왈부 중이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와 배현우가 사실이 어떤지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었다. 혜택을 받으면서 얌전히 굴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날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직접 국까지 끓여주다니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었다. 이것은 내가 신호연을 만나 얻은 불행을 단번에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장영식이 없으니 모든일이 나한테 왔다. 오후에 민여진이 찾아와 박람회에 간다고 말했다. 나는 조수를 데리고 가 자료를 많이 수집해 오라고 했다. 민여진이 가기 전에 이동철이 들어왔다. 그녀는 또 이동철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잠시 얘기했다. 나는 지금 내 사람들 덕분에 안심이 되었다. 그들은 전부 합이 잘 맞고 전혀 수싸움이 없었다. 이게 내 제일 큰 성공이다. 두 사람이 얘기를 마친 후 민여진이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내 말을 들은 이동철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그건 안되죠. 그 사람 경력이 많이 떨어져요. 안산은 새로운 구를 건립해 도시를 북쪽으로 옮길 생각이에요. 그러면 인천의 해안선과 인접하고 교통중심에도 더 가까워져요. 그렇게 되면 안산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이 일은 이미 도에서 결재했어요.”“그런데 구체적인 디테일은 아직 설계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권석주의 소식은 사실인데 그의 손에 프로젝트가 들어갔다는 얘기는 거짓말이에요.”이동철의 말이 내 마음속 욕망에 불을 지폈다. “수를 써서 내막을 잘 파헤쳐 봐요. 이 프로젝트를 탐내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알아봐요.”“네.”이동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점점 이 소식이 너무 유용하게 느껴져 왕필구에게 고마웠다. 그에게 이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것이 아닌가? 사람의 요점이 떠오르니 진짜 걷잡을 수 없었다. “아 맞다. 한 대표님, 요즘 이세림과 남미주가 엄청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이동철이 말했다. “예상했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일도 이세림이 손 쓴 걸지도 몰라요. 어제 신연아가 찾아왔었는데 말실수했어요. 그녀도 콩이 일에 엮인 게 확실해요.”“그래서 동철 씨, 신예 쪽 일에 신경 좀 써줘요. 인천 쪽은 모두 신연아 손바닥안이에요. 신호연의 수중에 놀이공원 프로젝트가 있는데 좀 알아봐 줘요.”이동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때가 아니에요. 조금 더 기다려봐요. 아... 맞다. 이랑은 해킹한 IP가 울산으로 특정됐어요. 해외 IP 주소가 사라지고 갑자기 울산에서 빈번하게 등록하고 있더라고요. 지금 그 사람이 울산에 온 게 아닌지 생각하고 있어요.”“아직도 들어갈 수 있어요?”내가 물어본 것은 당연히 계정이었다. “아니요. 암호화했어요.”나는 잠시 고민 후 이동철에게 말했다. “적당히 틈을 줘요.”“그 사람에게 미끼를 던지란 뜻인가요?”이동철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계기로 허를 찌르자고요?”“한신로얄 2차에서 손을 떼는 게 어때요? 전희가 계속 노력하게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