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타라이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차장에는 차를 댈 자리가 없었다. 한참이나 헤맨 끝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왔다.연회장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천우 그룹의 고객들이었다. 천우 그룹의 사업 범위가 하도 넓어 여러 업계에서 온 손님들이 가득했던 것이다.그제야 나는 내가 너무 격식 없게 입고 온 것을 깨달았다. 자리에 참석한 여성분들 대부분이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온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장영식은 나의 곤란함을 알아차린 듯 팔짱 낀 나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네가 제일 괜찮네. 다른 사람들 모두 너무 눈에 튀어.”그의 장난기 어린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달래줘서 고마워.”영식은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 웃음이 나의 모든 걱정을 안아주는 웃음임을 알 수 있었다.“달래는 게 아니라 한 바퀴만 돌아보고 싫으면 바로 돌아가자. 오늘 별사람들이 다 참석한 자리 같은데 오래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술잔이 오고 가는 홀을 보니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닝 파티처럼 북적거렸고 역시 우리한텐 어울리지 않는 장소 같았다.고객들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고객들을 위해 마련한 연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천우 그룹의 진정한 주인이 돌아왔는데 어떤 고객사도 허투루 지나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그때 누군가 소리쳤다.“저기 봐, 배 대표님이 오셨어!”모든 시선이 삽시에 입구 쪽에 쏠렸다. 거기엔 깔끔하게 떨어지는 맞춤 제작 검은 양복을 입고 버건디 스카프를 두른 배현우가 서 있었다. 그의 몸에 알맞게 제작된 슈트는 그의 잘생기고 쭉 뻗은 몸을 더욱 돋보여줬고 조각 같은 얼굴은 하늘의 은하수를 담은 듯 반짝였고, 온몸에서 범접할 수 없는 고상한 아우라를 풍겼다.그런 그의 옆에는 연청색 물결무늬의 A라인 롱드레스를 입은 한소연이 껌딱지처럼 팔짱을 끼고 붙어 있었다.보는 사람마다
그들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나는 이미 기진맥진 지쳐있음을 느꼈다.도혜선은 정신 차리라고 몰래 나를 꼬집으며 얼굴에는 미소를 띤 채 같이 있던 남성분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 우아한 남성이 무엇이라 말하는지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그저 형식적인 미소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나는 그저 로봇처럼 따라서 악수하고 안부를 나누고... 아무런 생각 없이 형식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영식은 열정적으로 그 남성과 악수하며 얘기를 나누었다.눈치가 빠른 도혜선은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 힘껏 나를 꼬집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나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지아야 정신 차려! 사실을 알기 전엔 냉정하게 행동해야 해.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어떡해? 여기 보는 눈도 많은데 놀림거리가 되면 안 되지.너 아직 할 일 많이 남았어, 나랑 연맹 맺자며, 그러려면 먼저 나한테 기회와 희망 정도는 보여줘야지!”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나를 위로해주는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눈가가 촉촉이 젖을 만큼 요동치는 감정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끄덕였다.도혜선은 우아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계속 소곤소곤 말했다.“목적이 무엇이든 난 언제나 너의 든든한 뒷배야, 그게 내가 그 사람이랑 같이 지내는 유일한 가치니까. 왜 날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거야? 같이 해보자며? 오늘 확실히 알려줄게, 지금부터 시작이야.”말을 마치고는 그 평범하지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남성을 향해 말했다.“당 선생님, 여기 둘 다 실력 있는 제 친구들이거든요, 그러니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그러자 그 남성은 호탕하게 웃으며 도혜선의 남자친구에게 말했다.”서 행장님, 보셨죠, 역시 혜선 씨도 목적이 있었다니까요.”서강민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도혜선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좋아하면 그걸로 된 거죠.”서 행장이란 사람은 도혜선의 남자친구 서강민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은행장 중에서도 처음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내 인상 속에서 이 사람은 선한 역인지 악역인지 분간 가지
무대 위 모든 조명이 당당한 모습으로 연설하고 있는 배현우를 비췄고 그에게 모든 관심과 이목이 쏠렸다. 그는 기세 좋게 발언을 이어나가며 자신을 믿고 따라주신 모든 손님에게 감사의 말을 표했다.그의 조각 같은 얼굴이 내 눈 속에서 점점 확대되며 깊이 박혔고 나는 애써 요동치는 감정을 제어하며 그를 잃게 되었을 때 어떻게 다시 그와 마주할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그때 웨이터 한 명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한 대표님, 옥상에서 누가 부르십니다.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해하는 사이 웨이터는 이미 없어졌다.의심스러운 마음에 옆을 둘러봤지만 다들 무대 위의 배현우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그럼 누가 날 찾는 거지?나는 인파를 파헤치고 홀을 빠져나왔다. 원래 있던 층이 제일 꼭대기 층이었기에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갈 수 있었다. 탁 트인 정원 형태의 옥상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열릴 듯 우아하고 아름다웠다.오늘의 연회로 인해 옥상도 개방상태였고 사람도 적고 홀보다 조용하여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엔 적합한 장소였다.내가 옥상에 왔을때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홀에서 오늘의 주인공이 발언하고 있어 자리를 뜰 사람들이 없었다.나는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 따윈 없었다.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에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돌아보자 한소연이 도도하게 걸어오고 있었다.오늘의 그녀 또한 이곳의 주인공이었다. 남자 주인공의 파트너로 등장해 배현우와 함께 모든 주목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해봐요,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 거죠?” 그녀가 오만한 자태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때 나의 사무실에 찾아와 소식을 물어볼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제... 제가 소연 씨를 찾았다고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한소연을 불러낼 이유가 없었다.“네? 웨이터한테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부르셨잖아요.”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이 날 바라보며 오만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한 대표
나는 떨어지는 구조물을 보며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잡아당기려 하였으나 그녀는 내 호의를 무시하고 내 손을 뿌리쳤다. 삽시에 구조물이 떨어지고 나와 한소연 모두 부상을 면치 못했다.다행히 내가 서 있던 자리는 구조물과 거리가 멀어 맞진 않았지만, 한소연은 내 손을 뿌리치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구조물에 다리를 짓눌렸다.옥상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소리를 지를 뿐 다가오지 못했고 누군가 뛰쳐 내려가 사람을 불러왔다.한소연은 다리가 깔린 채 대성통곡하며 나를 욕했다.나 역시도 발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또 다른 구조물이 떨어질까 봐 이를 악물고 일어나 그녀를 부축하려 하였다.“지아 씨, 어떻게 이렇게 독할 수가 있어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데요?”한소연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다친 곳이 없는지 먼저 일어나봐요, 말했잖아요, 제가 부른 게 아니라고... ”나는 그녀에게 사실을 설명하며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바로 그때, 옥상으로 많은 사람이 밀려왔고 한소연은 여전히 울고만 있었다.“현우 씨...저 다리가 너무 아파요...”이내 탄탄한 몸을 가진 누군가가 쏜살같이 달려왔고 나는 자리를 내어 한소연의 상처를 살펴보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발목의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서 있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고개를 들자 깊고도 차가운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에는 뜻 모를 깊은 심연이 담겨있었다. 몇 초간 시선을 맞추더니 그는 바로 몸을 굽혀 한소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아요?”“다리가... 너무 아파요...”그녀는 본능적으로 구조물 아래에 깔린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멍하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황급히 구조물을 치우고 조심스럽게 한소연의 다리를 문질렀다. 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현우 씨...아파요!”배현우는 곧바로 한소연을 안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한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한소연
한소연의 광팬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병원 앞은 혼돈 그 자체였다.병실의 창문은 깨지고 문은 파손당했으며 그들은 미친 듯이 나에게 날달걀과 쓰레기를 던져댔다. 병실의 상황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엉망이 된 채 길거리의 쓰레기통보다도 더러운 모습이었다.혼란 속에서 영식은 나를 보호하려다 온 얼굴에 날달걀을 맞아 엉망이 되었고 흘러내린 달걀이 온몸을 뒤덮었다.얼마쯤 지나, 병원 쪽에서 신고를 하였는지 경찰이 출동했고 앞장서서 난동을 부린 몇몇을 체포하여 데려가고 나서야 상황은 일단락됐다.소문을 듣고 찾아온 도혜선은 오물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스스럼없이 안고 울었다.어제 너무 울어서일까, 이미 눈물이 말랐는지 미친 사람들 때문에 무서워 몸이 떨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미연이는 화를 못 이기고 바로 한소연이 있는 고급병실로 찾아갔다. 원래 계획은 배현우를 찾아가 따질 생각이었지만 경호원들이 쫙 깔린 덕분에 허탕만 치고 왔다고 한다. 아마 한소연의 휴식에 방해될까 미리 손을 쓴 것이었다.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온 그녀는 분노에 휩싸여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이성을 붙들고 영식에게 냉정하게 말했다.“퇴원하자.”그는 머리를 끄덕이고 도혜선과 잠시 의논하더니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출장을 나간다고 알리고는 바로 퇴원 절차를 준비했다.나가기 전에 도혜선이 간단하게 세수를 시켜줬지만, 여전히 엉망진창인 모습 그대로였다.영식은 휠체어에 달걀 물 범벅인 나를 앉힌 채 밖으로 나갔다. 마침 복도에서 한소연을 보러 온 배현우와 마주쳤다. 시선이 엉키자 그 깊은 눈동자는 찬찬히 내 얼굴에 시선을 맞추더니 고정 장치를 끼고 있는 다친 발로 옮겨갔다. 배현우의 얼굴에는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고 온몸으로 냉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주먹을 꽉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나는 담담하게 눈을 피하고 무표정을 한 채 그대로 그를 지나쳤다.옆에 서 있
이동철은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와서 USB에 담긴 내용을 보여 주었는데, 안에는 사건의 자초지종이 담겨있었다.“사실 일이 있고 난 뒤에 장 부장님이 한지아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었고 제가 옥상 CCTV를 확인했지만 그 시간대의 CCTV가 해킹되어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스타라이트는 천우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호텔이기 때문에 감히 그들의 시스템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USB에 있는 이 자료들을 보면 분명 누군가가 우리보다 기술이 더 뛰어나고 ... 그러니까 아마도 이 자료들은 출처가...”이동철이 말을 계속하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기에 당연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USB에 인적, 물적 증거가 모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매우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고 이 자료들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고 한눈에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 사람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더구나 만난 적도 없는 헤라의 앞잡이 아린이었다.이동철은 나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지아 씨 계속 조사할까요? 저도 이 일이 아린이가 한 짓이라고 믿지 않아요. 그는 단지 희생양일 뿐인 것 같아요!”난 냉소를 지었다.“조사해요! 하지만 희생양이 있는 이상 단 한 명도 헛되이 희생시켜서는 안 되죠. 이 일은 반드시 끝을 맺어야 해요. 그렇다고 내가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은 건 또 아니에요!”이동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이해월과 법무팀에게 새로운 방안을 짜라고 해요. 기자회견을 진후 빌딩의 1층 로비에서 열 거예요. 시간을 모레 오전 10시로 정하고요. 명단에서 가장 심하게 난동을 부린 기자들을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모두 모셔요. 구 변호사에게 개인이든 단체든 아니면 기업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고소하고, 공개적으로 나에게 사과하라고 통보하세요! 경찰서에 가서 입건하고 돈을 받고 일한 매체, 악성 댓글 게시자들... 난 무조건 그들의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고 반드시 그들
그 기자들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하자 모두 주동적으로 길을 내주었고 이동철은 나를 호위하며 차에 타서 곧장 회사로 향했다.백미러로 나는 그 사람들이 흩어져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을 보았다.이때 회사 아래층에도 광적인 기자들이 웅크려 앉아 있었고 또 한소연의 팬들로 지하 차고까지 인산인해였다.다행히 이동철의 반응이 매우 빨라 조용히 차를 후진시켜 진후 빌딩을 빠져나갔고 나는 갑자기 경공관이라는 좋은 회의 장소가 떠올랐다.그래서 난 이동철에게 경공관에 모이라고 전달하게 했는데 회사랑 거리가 가까워서 얘기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경공관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내가 지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았고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보고 싶을 때는 아득히 먼 곳에 있더니 보고 싶지 않을 때는 눈만 들면 보이는 곳에 있었다.그 순간, 나는 몸이 굳어졌고 시선은 서서히 뭇 여자들을 매혹하는 냉담하고도 준엄한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 난 나를 부축하고 있는 이동철의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 순간 버팀목이 너무나도 필요했다.그러자 이동철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멋지게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여기에 계셨군요. 아, 이 대표님도 계셨네요!”“응, 일이 좀 있어서.”낮은 어조로 말하는 배현우의 눈은 계속 내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발은 괜찮아요?”나는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그리고 나는 계속 한쪽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이청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대표님, 돌아가시려고요?”그러자 이청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발을 살폈다.“이렇게 심각하게 다친 거예요? 아직도 안 나았다니, 푹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괜찮아요. 임시로 일이 있어서 온 거예요.”나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했고 이동철의 손을 잡았다.“들어가요! 이 대표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나는 배현우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이동철이 나를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갔는
우리 쪽에서는 준비가 한창이었고 내가 모레 기자회견을 한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들끓고 있어 또다시 사태를 고조로 이끌었다.일부 활동적인 네티즌들은 기자회견 때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팬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아마도 기자 회견 때 짚고 넘어가려는 듯싶었다. 난 그저 별 생각 없이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소동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종일 준비를 다 보니 기진맥진했고 이미연은 지친 내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아야, 일단 내가 널 집에 데려다줄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모레 기자회견은 우리가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계획했다고 해도 네가 컨디션이 좋아야 임기응변할 수 있어. 지금 네 상태 너무 안 좋아.”도혜선은 계속 이미연에게 눈짓하며 말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콧등을 쓱 만지고는 한숨을 쉬었다.“난 괜찮아. 기자회견이 끝나면 푹 쉴 거야!”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마음에 응어리가 맺힌 상태로는 아무리 쉬어도 제대로 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발을 백일 동안 땅을 밟을 수도 없는데 내가 어디에 갈 수 있단 말인가?기분을 푼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기분은 풀 수 없었고 세상 끝까지 갔다고 해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참 너에 대해서 좀 말해볼까?”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이미연을 바라보았다.“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 않아도 돼. 넌 내가 그날 밤의 일을 잊은 줄 알았어?”도혜선은 내 말을 듣고 이미연을 바라보았고 영리한 도혜선은 분위기를 순식간에 파악하고는 얼른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어보았다.“뭐야? 내가 모르는 게 또 있어?”이미연은 나를 쳐다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얼른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아이고, 말 좀 끊지 마. 물어보잖아, 집에 갈 건지 말 건지. 지금이 몇 시인데...”도혜선은 어렵게 짚은 대화의 포인트를 쉽게 놓칠 리가 없었다.“에이, 너야말로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 무슨 일이야?”“아무것도 아닌데?”이미연은 바보인 척했고, 나는 애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