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정을 놔줘.”이유희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신효정을 잡고 있는 가정부를 노려보았다. 그 목소리는 지옥에서 온 듯 나지막했다.두 가정부도 긴장한 듯 신효린을 향해 도움을 청했다.신효린은 이유희가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보자 신효정을 관심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꿈에 그리던 연인이 나타나자 순식간에 겁을 먹었다.‘이소희 그년 때문에 이씨 가문과 이미 틀어졌잖아. 이유희는 날 좋아할 리가 없어. 게다가 여긴 신씨 가문이고 우리 집이야! 이유희가 신효정을 도와줄 자격이 없어!’문득 이 생각이 들자 신효린은 오래된 원한까지 떠올라 이를 악물었다.“내려놓지 마! 여긴 신씨 가문이야, 너희들은 내 사람이고. 그럼 내 말을…….”그러나 예상치 못하게도 말이 끝나기 전에 비명이 들려왔다.“아!”신효린을 잡고 있던 가정부 한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유희의 사나운 발길질에 몇 미터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신효린은 살아 숨 쉬는 사람이 공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자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굳어졌다.이 장면을 본 다른 한 가정부는 급히 신효정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벌벌 떨며 잘못을 인정하며 이유희에게 허리를 굽혔다.“이, 이 도련님…… 잘못했습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아!”또다시 비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이유희는 가정부를 걷어차서 순식간에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다.신효린은 두려움에 떨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소문으로 듣던 ‘살아 있는 저승사자’라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신효린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모두가 겁에 질려 현장은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했다.“유희 오빠…….”신효정은 눈을 깜빡이며 다리에 힘이 풀려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이유희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긴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재빠르게 품에 안았다. 따뜻하고 가느다란 손바닥은 떨고 있는 신효린을 토닥거렸다.“오빠가 있으니 걱정 마.”신효린는 질투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자 날카
“난…….”신효린은 이유희의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에 놀라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건망증이 심한 것 같으니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경고할게.”이유희에게는 늑대 같은 사나운 기운이 맴돌았고 안색이 어두웠다.“효정은 내가 아끼는 여자야. 그녀를 괴롭히는 건 날 건드리는 거고, 이씨 가문을 건드리는 거야!”그 말소리가 홀에서 울려 퍼졌다.신효린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얼굴이 창백했다. 아쉽게도 신광구와 진주가 없어 아무도 그녀를 감싸줄 수 없었다.“네가 운이 좋았던 건 네가 신씨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선을 넘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신효린, 신효정을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거야. 신 회장님이 와도 소용없어!”이유희는 왼팔로 가녀린 신효정을 감싸 안고 오른손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그땐, 우리 두 가문의 20년 우정을 무시한다고 날 탓하지 마!”그가 말을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위층을 흘깃 쳐다보았다.진주는 싸늘한 눈빛이 어렴풋이 느껴져 당황한 나머지 뒤로 물러섰다.‘아니, 내가 왜 당황하지? 난 이 집의 주인이야, 이유희보다 어른인데 왜 무서워해!’신효린은 이유희의 말에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주변의 가정부들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효정아, 오빠랑 갈까? 둘째 오빠나 새언니에게 데려다줄게, 알았지?”이유희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머리가 어지러운 신효정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얌전한 고양이 같았다.이유희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신효정을 안고 사람들의 눈길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이유희! 신효정을 데려가지 마!”신효린은 울부짖었다.“신효정은 신씨 가문의 딸이야, 왜 데려가? 아버지께 물어봤어? 어머니께 물어봤어?”그녀는 당연히 이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질투심으로 인해 아마 사흘 밤낮으로 잠을 설칠 것이다.
정연은 비서일 뿐만 아니라 전문 경호원이기도 하다. 누군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눈썹을 찌푸리고 바로 이유희의 앞을 막았다.영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바로 무릎을 꿇었다.이유희와 정연은 깜짝 놀랐다.“도련님! 넷째 아가씨를 도와줄 수 있으세요? 네?”영이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애원했다.“연아, 일으켜줘.”이유희는 눈썹을 찌푸렸다.“할 말이 있으면 일어나서 말해.”정연이 몸을 숙여 영이를 부축하려 하자,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일어나지 않았다.“넷째 아가씨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시면…… 저는 안 일어날 겁니다! 제가 하찮은 가정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련님 눈에는 개미에 불과하죠! 하지만 목숨을 포기하더라도…… 넷째 아가씨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도대체 무슨 일이야?”이유희는 가슴이 떨려 정색하며 물었다.영이는 눈물을 열심히 닦으며 무릎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신효정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순간, 이유희와 정연은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소녀의 가는 팔에는 온통 멍투성이었다. 새로운 핏자국과 오래된 상처들이 섞여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이유희는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신효정을 안고 있는 그의 근육이 너무 팽팽해져 셔츠가 찢어지기 직전이다.“누구 짓이야.”아무리 화가 나도 이 간단한 말 한마디뿐이었다.하지만 정연은 소름이 끼쳤다. 그녀보다 이유희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매우 침착하고 가볍게 말할 때 종종 그가 정말 화가 났을 때이다.“셋, 셋째 아가씨 신효린의 짓입니다!”영이는 공손할 겨를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름을 불렀다.“신효린은 회장님과 사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집에서 넷째 아가씨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욕설을 펴부으며 때리기도 하고…… 정말 악마입니다! 신효린은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둘째 도련님이 집에 계실 때는 손찌검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장이신 도련님은 관해 정원에 자주 있지 않습니다. 넷
진주는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손톱 줄로 새빨간 손톱을 여유 있게 손질하고 있었다.신효린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오늘 밤처럼 집에서 수모를 당했다면 진주는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나서서 도와줬을 것이다. 어쨌든 신효린은 진주가 가장 아끼는 딸이고, 자신의 영역에서 함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주가 지나치게 조용했다.‘아래층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불명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도와주려 내려오지 않았지?’“신효린, 앞으로 우리 집안에서 오늘 밤 같은 일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아. 효정이도 내 친딸이야. 너희는 피를 나눈 자매인데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때릴 수 있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시면 널 잘 키우지 못한 내 탓으로 돌릴 거야. 넌 이제 스물다섯 살이야. 왜 아직도 조증 환자처럼 무모하게 행동해? 매일 네 동생이 정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너도 똑같아!”진주는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엄마,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신효린은 진주에게 달려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내가 이 도련님과 아래층에서 다투는 걸 다 봤어?”진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봤어, 왜?”“계속 보기만 한 거야? 봤으면서 왜 날 도와주지 않았어?”신효린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도와주지 않은 건 둘째치고, 이유희가 신효정을 데려가는 것까지 내버려 둬? 어떻게 이럴 수 있어?”“왜 그러면 안 되는데?”진주가 냉정하게 웃으며 물어보자 신효린은 멍해졌다.“엄마…….”“나도 이유희를 포기했는데, 넌 아직도 포기 못 했어? 참…… 대단해. 나처럼 이렇게 똑똑한 여자가 왜 너 같은 일만 망치고 사랑에 눈이 먼 딸을 낳았을까?”진주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난 지금 모든 것을 너에게 걸었어. 이유희가 네 동생을 좋아한다면, 그냥 그 뜻을 이룰 수박에 없어. 그리고 효정이도 내 친딸이야. 이유희가 선천적 결함이 있어도 개
이유희는 신효정을 안고 차에 태웠다. 정연이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고 관해 정원을 떠났다.차 안에서 신효정을 안고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는 이유희는 마음이 아프고 씁쓸했다.오늘 밤 신경주를 찾아 술을 마시려고 관해 정원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이런 떠들썩거리는 현장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이유희는 영이가 고통스럽게 말한 말들과 신효정의 팔에 있는 끔찍한 흉터를 떠올렸다. 그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몸에 피가 날카로운 칼날로 되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아픔이 느껴졌다.이런 강한 아픔은 처음으로 느껴봤다.구아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도 가슴이 아팠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은 지금 이 순간과 비교할 수 없었다.이유희는 숨을 깊이 내쉬고 날카로운 턱을 소녀의 머리에 기대었다. 그리고 분노로 빨갛게 충혈된 눈을 천천히 감았다.‘프리지아, 내가 평생 지켜줄게. 나 이유희는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야.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게.’“도련님, 저희…… 이제 어디로 갈까요?”정연이 백미러를 통해 이유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이유희는 그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비록 신효린 앞에서 신효정을 데려가겠다고 말했지만, 다 큰 소녀를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신경주가 알면, 날 죽이겠지?’“프리지아, 둘째 오빠에게 데려다줄게. 아니면 새언니에게 데려다줄 테니, 오늘 밤 거기서 잘래?”이유희는 눈을 내리깔고 다정하게 물었다.그러나 신효정은 고통스러워 눈썹을 찌푸리더니 손을 뻗어 왼쪽 귀를 가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효정아, 효정아?”이유희가 몇 번 더 불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귀를 막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중얼거리기만 했다.“아파…… 아파…….”“어디가 아파?”신효정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에는 여전히 신효린이 때린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다.눈물에 젖어 초롱초롱하고 반짝이는 눈과 마주치자 이유희는 가슴이 설레었다.“유희 오빠…… 미안해요…… 저한테 말하는 거 알지
아람은 고요한 분위기를 참지 못했다. 눈썹을 찌푸리더니 할아버지 앞에서 경주를 명령했다.“뭘 봐,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 빨리 옷을 벗어!”“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경주는 망설이며 물었다.“왜? 상남자가 뭐가 두려워? 네 몸에는 다른 남자가 없는 것이 있어? 아니면 다른 남자가 있는 것이 너에게 없는 거야?”경주가 머뭇거리자 아람은 점점 짜증이 났다.옆에서 듣고 있던 한무는 소름이 돋았다.‘사모님의 말이 너무 야…… 아니, 너무 빠르네. 예전에 사모님이 사장님에게 말할 때 다정하고 부드럽게 소곤거렸는데, 지금은 말에 가시가 돋쳤네.’경주는 창백하지만 준수한 얼굴을 들고 다정하게 아람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그 뜻이 아니라…… 약을 바르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충분해.”아람은 눈을 부릅뜨더니 짜증을 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뻔뻔한 문파가 있다면 신경주가 바로 그 문파의 창시자겠네!’“에헴……. 경주 말이 맞아. 우리가 여기서 걱정해도 아무 도움도 안 돼. 호 선생과 소아만 있어. 소아가 의술을 알아서 호 의사에게 도움이 될 거야. 우리는 이만 나가자!”눈치가 빠른 신남준은 경주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맞아요. 소아도 의술을 알아요. 요 며칠 계속 제 곁에서 돌봐주었거든요.”경주는 아람을 깊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호 선생님은 약을 두고 먼저 퇴근하세요. 아람이만 있으면 돼요.”사람들은 저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람을 바라보았다.‘짜증 나, 때리고 싶네!’결국 사람들은 모두 나가버렸고, 아람과 경주만 남았다.방은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다.“옷 벗어.”아람은 심호흡을 하더니 냉정하게 명령했다.“그래.”경주는 얌전하게 아무 말 없이 옷을 벗었다.채찍에 맞아 찢어진 셔츠를 벗으려 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커서 등에 난 상처를 건드렸다. 통증이 느껴진 그는 나지막하게 소리를 질렀다.사실 많은 전쟁과 어려움을 겪은 군인인 그에게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갑자기 경주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아람이 다시 한번 그에게 알 수 없는 익숙한 느낌을 주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녀가 의료 키트에서 호 의사가 남긴 소독약과 연고를 꺼내 능숙하게 그의 상처를 처리했다.“아람아.”경주는 그녀를 부드럽게 불렀다.아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색을 했다. 경고하듯 손놀림의 힘도 세졌다.경주는 아픔이 느껴져 얼굴을 찡그렸지만 여전히 말을 이어갔다.“아람아, 너를 보면 누군가가 생각이 나. 나의 옛 지인.”아람은 그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처리해 주며 무심코 물었다.“누구?”“몰라.”“모른다고? 왜 몰라.”“그러게. 왜 모르지. 그냥 모르겠어.”경주는 얼굴을 옆으로 하고 엎드려 있었다. 아득한 기억에 사로잡힌 듯 눈을 반짝이며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의연하고 고집스러웠던 가냘픈 모습이 떠올랐다.“내가 위해 부대에 입대했을 때 전쟁터에서 그 여인을 알게 되었어.”의료용 솜을 집고 있던 아람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방이 너무 고요해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이상한 반응을 하여 정체가 드러날까 봐 걱정했다.다행히 경주는 아람을 등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허점투성이 표정을 볼 수 없었다.“그때 우리 팀은 성공할 수 없는 미션을 받았어. L 국의 테러 조직에 갇힌 인질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해 안전 지역으로 옮긴 후 D 국의 대사관으로 호송해야 했어. 우리 대원 수는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많은 탄약과 무기를 가진 테러 조직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 당시 나는 아무런 욕심도, 걱정도 없었어. 그래서 살아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았어.”경주는 자조 섞인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비둘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를 수용소로 데려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격려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아.”“비…
아람은 입을 살짝 벌렸다. 가슴이 쿵쾅거리더니 잠시 멍한 채로 굳어졌다.그해 전쟁에서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겪은 고통은 오직 자신만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주도 잊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심지어 그녀를 향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다른 여자라면, 경주의 능력으로는 바로 찾았을 것이다.아쉽게도 그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찾던 ‘비둘기’는 그와 결혼했던 백소아이자 구씨 가문의 아가씨이다.아람은 L 국에서 경주와 작별을 고한 후 모든 행적을 지웠다. 구만복이 그녀의 행방을 찾고 해문으로 데려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국경 없는 의사를 할 때 거짓 신분과 거짓 이름을 사용했었다.기발하고 똑똑한 그녀는 경주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찾지 못할 것이다.“아람아, 왜 말이 없어? 내 말투가…… 많이 심했어?”경주는 그녀가 다시 침묵한 것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부드럽게 말했다.“미안해. 혼낼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내 태도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야. 비둘기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나는 정말 그녀에게 나쁜 의도가 없어!”이 말을 듣자 아람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그 당시 김은주와의 사랑이 뜨거웠잖아. 김은주와 함께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싸우고, 심지어 굶으면서 의기소침했어. 그때 네가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겠어. 목숨을 구해준 비둘기조차도 여자로 보이지 않았겠지.”귀에 거슬리고 가시가 돋친 말들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경주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자 아람은 놀라서 낮게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경주의 눈빛은 그녀와 뜨겁게 얽혀 있었다.아람은 숨이 막혔다. 손에 쥐고 있던 솜이 떨어지는 김에 경주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너무 세게 잡아서 다섯 손가락이 서서히 빨갛게 달아올랐다.“신경주! 너, 너 뭐 하는 거야……. 아파!”“구아람, 내가 예전에 잘못한 게 너무 많아. 나도 후회되고 뉘우치고 있고, 너에게 속죄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