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는 마치 불이 붙은 폭탄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 달려들려고 할 때 아린은 죽기 살기로 수해의 손을 잡았다.“안 돼, 오빠.”윤진수는 윤씨 가문 도련님이고, 아린은 구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수해는 다르다. 아린은 수해가 자신을 위해 점점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수해가 움직이기도 전에 아람이 먼저 공을 차듯 윤진수의 얼굴을 찼다.“아!”아람의 발차기에 짐승 같은 윤진수는 앞니 두 개가 빠졌다. 입에 피가 가득 찼고 윗니에 우스꽝스러운 검은 구멍이 남았다. 경주는 숨을 들이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순간 아람은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의 여주인공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 생각을 하자 경주는 눈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활력 있고 솔직한 아람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으, 동생이 왜 이렇게 무서워. 계속 사람을 때리네. 이 성격으로 하느님도 이기겠어.”유지운은 아람의 살기에 소름이 돋았다. 몸을 기울이며 팔을 구윤의 몸에 문질렀다.“형님이라는 사람이 처남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어? 둘이 결혼하면 신 사장님께 생명보험에 가입해 줘. 얼마나 배려가 있는 행동이야.”“유 선생, 많이 한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도 있어?”구윤은 차갑게 말했다.“구아람, 화를 내, 화를 내 봐.”윤진수는 피투성이가 된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증거가 없어서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너와 신경주는 날 때렸어. 너희들을 감옥에 보내서 명예를 잃게 할 거야!”“그게 다야? 내가 무서울 줄 알아? 나 구아람이 겁만 먹고 자란 것 같아?”아람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도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주먹을 쥔 손에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계속 말하면 이빨을 싹 뽑아버릴 수도 있어.”윤진수는 겁에 질려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언니, 형부, 저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했어요.”아린은 나약하게 수해의 품에 기대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이 일은 여기서 끝내요. 정말 충분해요.”아린은 소심하고 겁이 많지만 사
백소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합의이혼서를 바라보았다. 서류엔 이미 남자의 이름이 사인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젖은 눈동자 속에 비친, 신경주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뒷모습은 마치 어서 빨리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재촉하고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사인을 끝냈으니 당신도 어서 하세요. 은주가 돌아오기 전에, 저는 당신과의 모든 법적 절차를 끝내고 싶어요.”신경주는 양손을 등 뒤에 짊어진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결혼 전에 이미 재산 공증을 했기 때문에 재산 분할을 할 필요는 없지만, 소아 씨 당신한테는 그간 정이 있으니 40억 상당의 서부의 별장 한 채를 더 넘겨줄게요. 어쨌든 당신이, 이 집을 나가야 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 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요.”그의 말에 백소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눈앞이 번쩍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저랑 이혼하려는 건 아세요?”“모르면 뭐 어때요. 그게 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꺼라 생각해요?”그녀는 여윈 몸으로 서 있지도 못하고 책상에 겨우 몸을 지탱한 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경주 씨……, 우리 꼭 이렇게까지 이혼을 해야 해요?”그 말에 마침내 신경주는 돌아서서 짜증 섞인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녀를 쳐다보는 남자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가슴 떨리게 했다.“왜요? 이 결혼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왜냐하면……, 전 여전히 경주 씨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백소아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랑한다구요, 경주 씨. 전 경주 씨의 아내로 그냥 있고 싶어요. 당신이 저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더라도 그냥 옆에만 있게 해주세요…….”“전 이제 지긋지긋해요. 사랑도 없는 이 결혼생활 저에게 일분일초가 지옥 같아요.”신경주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녀의 말을 계속 들어줄 인내심조차 없었다.
저녁 식사 시간, 김은주는 신씨 가문의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화목한 분위기 속, 신경주 한 사람만은 굳은 표정으로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백소아는 구윤의 차를 타고 그 사람과 함께 떠났다.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말이다. 40억 원에 달하는 별장을 포함한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았다.“소아는? 왜 아직도 밥 먹으러 안 오는 거니?”신 회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저희는 이미 이혼하기로 결정했고, 합의서에 이미 사인했습니다.”신경주가 담담하게 말했다.“곧 법원에 서류를 제출할 예정입니다.”“뭐? 이혼? 왜?”신 회장이 말했다.“아이고, 여보. 제가 진작에 말했잖아요. 우리 경주랑 소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두 사람은 어르신께서 억지로 결혼시키신 거잖아요.”진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아이는 3년이나 힘들게 참으면서 지냈어요. 이제야 소아가 경주와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어찌 보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을 수도 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경주가 사랑하는 사람은 은주잖아요.”“경주야, 결혼은 장난이 아니야. 하물며 그 아이는 말이야…….”“아버지, 이미 이혼 합의서도 다 썼고, 그 사람도 이곳을 떠났어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맨몸으로 집을 나갔어요.”신경주는 답답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허, 그렇게 안 봤는데 꽤 고집 있네?”신효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바깥에 가서 우리 신씨 가문이 자신을 푸대접했다고 함부로 말하면 어떡해요?”신경주는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난 기색이 역력했다.“경주야, 이번에는 네가 경솔하게 행동한 듯하구나. 할아버지는 아직 입원 중이셔. 이 일을 할아버지께 어떻게 설명할 거야?”신회장은 이 일로 어르신의 노여움을 살까 봐 초조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다음 달에 결혼 소식을 알리고, 은주를 정식으로 제 아내로 맞이할 거예요.”김은주는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감동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헛소
해문 구가네 집, 해장원.고급스러운 저택 마당 앞. 롤스로이스 한 대가 레드카펫 중앙에 자리를 잡고 멈추자, 구가네 둘째인 구진이 직접 마중 나와 여동생을 위해 문을 열어줬다.“우리 집 공주의 귀환을 환영합니다.”구아람의 얼굴은 화려한 등불에 비쳐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는 차에서 운동화를 벗고 높은 하이힐로 갈아 신은 뒤, 마치 여왕처럼 도도하게 차에서 내렸다.“오빠, 다들 별일 없었지?”“그럼, 네가 돌아와서 다들 너무 기뻐하고 있어. 불꽃놀이 예쁘지? 내 생일 선물이 도시 전체 시민의 관심을 끌어서…… 글쎄 인터넷 실검에 올랐지 뭐야?”구진의 수려하고 잘생긴 얼굴은 아람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다. “응. 봤어. 엄청 아름다웠어.”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구진은 코를 훌쩍이며 감격하여 그녀를 품에 안았다. “아람아, 이제 어디 안 가지?”“안 가. 쫓겨난 마당에 가긴 어딜 가?”구아람은 더는 묻지 말라는 표정으로 그의 등을 살짝 때렸다.“아이참,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네. 3년 안에 남자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으니…….”그녀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꾹 참았다.그녀는 신씨 가문을 나서면서 다시는 신경주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더 이상 그에겐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신경주, 이 빌어먹을 놈. 감히 내 여동생을 차다니. 내가 내일부터 그놈 뒷조사를 철저하게 할 테니, 내일 넷째 형님한테 시간을 내라고 해야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게…….”그러자 구아람의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아멘. 오빠, 장난치지 마.”구윤이 말했다.“맞아요. 사랑과 평화를 중요시해야죠.”그러자 구진은 씩씩거리며 버럭 소리쳤다.“어쨌든, 난 절대 그냥 못 넘어가. 내 여동생을 괴롭힌 것들은 내가 똑같이 배로 되돌려 줄거야.”구아람은 팔짱을 끼고 오른손으로 구진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세 남매는 웃으면서 오랜만에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한편
5일 뒤, 신경주는 비서를 사무실로 불렀다.“백소아에 관한 일은 조사했어?”신경주가 물었다. 그는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우뚝 솟은 몸매는 위압적인 카리스마를 풍겼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한준희는 긴장했는지 몸을 떨며 말했다.“그리고 그날 밤 떠난 후, 사모님께서는 전에 일하셨던 요양원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직접 사모님의 고향으로 달려가 확인했는데, 그 주소는 가짜였고, 거기에는 백씨 성을 가진 집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주소가 가짜라고?”신경주는 몸을 돌려 비서를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네, 현지 경찰을 통해서도 찾아봤지만 그런 집은 하나도 없었습니다.”그 말에 신경주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럼 그와 3년 동안 같이 산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설마 비밀 스파이 요원은 아니겠지?“그럼 그때 구윤이랑 같이 갔는데 구윤을 조사해도 아무런 단서가 없어?”“사실, 구윤 대표님께서 정말 작정하고 사모님을 숨기신다면,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신경주의 눈빛은 미묘하게 흔들렸다.“구윤 그 사람, 인품은 단정해 보이는데 어떻게 유부녀를 건드릴 수가…….”“사실 따지고 보면 도찐개찐 아닐까요?”신경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준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준희는 깜짝 놀라 숨을 고르지 못하고 헛기침만 했다. 그날 밤 구윤이 다정하게 구아람의 허리를 감싸고 가는 것을 본 신경주는 가슴이 왠지 답답해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구아람의 매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기로 소문난 구윤마저 사로잡았단 말인가? ‘이혼 안 하면 안되냐고? 사랑한다고? 거짓말쟁이.’신경주의 온몸에서는 매서운 한기를 풍겼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생각을 멈추고 김은주의 전화를 받았다.“은주야, 왜 그래?”“오빠, 나 신씨 그룹 로비인데, 좀 데리러 나올 수 있어요? 제가 직접 만든 딤섬을
이 말에 고위층 인사들은 구아람을 볼 면목이 없었다.“말도 안 돼요. 사장님은 구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소리죠?”조수석에 앉은 비서 임수해는 화난 얼굴을 했다.“괜찮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써. 난 전혀 개의치 않아.”구아람은 말하면서 임수해의 볼을 어루만졌다. 임서해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아람아, 너는 미래의 KS 그룹 대표야. 그러면 권력자의 면모를 보여야 해. 사람들한테 너무 가볍게 보여선 안 돼.”구윤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왜? 남자들은 여자 비서를 희롱해도 되고, 내가 내 비서 얼굴을 만져도 안 된다는 거야?”구아람은 얼굴을 찡그렸다.그러자 구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위층 간부들은 두 사람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갔다.호텔 부사장은 그들을 VIP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때, 구아람이 입을 열었다.“먼저 식당에 가보고 싶어요.”“네.”막 호텔에 들어서자, 인사치레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호텔을 둘러보았다.부사장은 두 사람을 뷔페로 안내했다.구윤은 구아람 뒤에 서서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투명 인간’이 되어 그녀를 조용히 수행했다.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미 차례차례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구아람은 요리를 스윽 훑어보더니 갑자기 해산물 코너에 멈춰 섰다.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을 유리 상자 안에 넣고 수백 마리의 새우 중에서 죽은 새우 한 마리를 정확하게 집어 들었다.“어떻게 된 거죠? 누가 설명 좀 해줄래요?”“아, 이건 아직 죽지 않았어요.”부사장은 말을 더듬었다.“그럼, 제가 이 새우로 오늘 부사장님 점심 대접할까요?”구아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사장님, 보시다시피 새우가 아주 많잖아요. 하나 정도 죽어있는 건 정상적인 일입니다.”“새우가 죽는 건 정상인데, 죽은 새우를
신경주라는 이름은 구아람의 가슴속 깊이 가시처럼 박혀 있다. 울리는 휴대전화를 보니 마음 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받아?”구윤이 물었다.“받아!”구윤은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말을 안 했다.“구사장님, 제 아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까?”신경주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구아람은 아내라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것을 느꼈다.“신 사님장, 말 조심해요, 난 이제 니 부인이 아니야, 전처 일뿐이에요.”“백소아, 너 역시 그 사람과 같이 있네.”신경주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라앉았다.“설마 나보고 당신 집에서 이불에 돌돌 말려서 밖으로 내던져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 말인가요?”참 각박하다.한편 신경주는 얼굴이 먹물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 아직 이혼 절차가 진행중이야, 이혼 확인서가 없는 이상 당신은 여전히 내 와이프고. 우리 집안과 당신의 체면을 좀 생각 해야지.”“우리가 이혼을 안 했을 때 당신은 김은주를 그냥 관해정원에 데려와선 나보고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했어요. 그때 내 생각을 해봤어요?”구아람이 냉소적으로 말했다.“단지 이에는 이일 뿐이에요. 내가 신씨의 체면을 고려야 할 필요가 있어요? 어차피 사장 부인 자리까지 다 내줬으니 그녀한테 가요!”구윤은 살며시 눈썹을 치켜 올리고 차를 마셨다.이게 구아람의 진짜 모습이었다. 지난 3년 동안 그 집에서 억울하게 지냈던 그 얌전하고 온순한 아내는 그녀가 신경주를 위해 만든 컨셉일 뿐이었다.그의 동생은 언제나 완벽했지만, 그는 한때 세상을 놀라게 했고 거침없고 위험한 사랑을 택했었다.다행히 그녀가 돌아왔다.“난 지금 당신 이랑 말장난 할 시간이 없어.”신경주는 피곤한 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지금 병원에 계시는데, 너를 꼭 만나겠다고 아우성치고 약도 안 드셔.”아람의 마음이 갑자기 흔들렸다.설령 그녀와 신경주가 헤어졌다고 해도, 3년 동안 신씨 어르신은 그녀에게 매우 친절했다. 그 집에서 혈혈단신으로, 아무 것도 바란 적 없고,
병실 안.아픈 신남준은 구아람을 보자마자 되살아났다. 눈에서도 빛이 났다.“소아야, 어서 와! 어서 할아버지한테 오너라!”구아람은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고, 얌전하게 신남준 옆에 앉았다.“할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어디가 아프세요?”“아무리 아파도, 너를 보니 다 나은 거 같어! 니가 내 만병통치약이야.”신남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애타게 물었다.“소아야, 이놈이 그러는데 너희들 이혼했다고 한 게 사실이야?”“네, 할아버지, 우리 이혼했어요.”구아람은 긴 속눈썹을 떨궜고, 마음도 텅 비었다.“너 이 한심한 놈, 이렇게 좋은 손주 며느리를 두고 또 누구랑 결혼하려고?”신남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신경주는 할아버지의 몸이 걱정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할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제가 먼전 이혼하자고 했어요. 저랑 경주씨도…… 같은 생각을 했나 봐요.”구아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남준의 등을 두드렸다.신경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할아버지 앞에서 원망하지도, 하소연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를 이용해 복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의외였다.설마 이런 발칙한 방식으로, 그의 마음을 다시 잡으려는 건가? 이미 끝난 인연을 다시 만회하려고?‘백소아, 넌 뭘 믿고 네가 나를 다시 니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소아야, 설마 우리 집에서 억울한 일 당했니? 진주가 너를 괴롭혔어?”신남준은 안쓰러운 말투로 구아람에게 물었다.“아니에요 할아버지, 저랑 경주 씨랑 잘 맞지 않는 거 같아요. 그래서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라면, 차라리 헤어지는 거 낫다고 판단했어요.”구아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경주 씨한테 화내지 마세요. 지난 3년 동안 좋은 추억을 남겼으니 그거로 충분해요. 우리 둘 다 후회하지 않아요.”신경주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 살짝 흔들렸다.신경주는 백소아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와 형식적인 결혼식조차 하지 않았다.두
수해는 마치 불이 붙은 폭탄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 달려들려고 할 때 아린은 죽기 살기로 수해의 손을 잡았다.“안 돼, 오빠.”윤진수는 윤씨 가문 도련님이고, 아린은 구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수해는 다르다. 아린은 수해가 자신을 위해 점점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수해가 움직이기도 전에 아람이 먼저 공을 차듯 윤진수의 얼굴을 찼다.“아!”아람의 발차기에 짐승 같은 윤진수는 앞니 두 개가 빠졌다. 입에 피가 가득 찼고 윗니에 우스꽝스러운 검은 구멍이 남았다. 경주는 숨을 들이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순간 아람은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의 여주인공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 생각을 하자 경주는 눈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활력 있고 솔직한 아람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으, 동생이 왜 이렇게 무서워. 계속 사람을 때리네. 이 성격으로 하느님도 이기겠어.”유지운은 아람의 살기에 소름이 돋았다. 몸을 기울이며 팔을 구윤의 몸에 문질렀다.“형님이라는 사람이 처남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어? 둘이 결혼하면 신 사장님께 생명보험에 가입해 줘. 얼마나 배려가 있는 행동이야.”“유 선생, 많이 한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도 있어?”구윤은 차갑게 말했다.“구아람, 화를 내, 화를 내 봐.”윤진수는 피투성이가 된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증거가 없어서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너와 신경주는 날 때렸어. 너희들을 감옥에 보내서 명예를 잃게 할 거야!”“그게 다야? 내가 무서울 줄 알아? 나 구아람이 겁만 먹고 자란 것 같아?”아람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도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주먹을 쥔 손에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계속 말하면 이빨을 싹 뽑아버릴 수도 있어.”윤진수는 겁에 질려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언니, 형부, 저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했어요.”아린은 나약하게 수해의 품에 기대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이 일은 여기서 끝내요. 정말 충분해요.”아린은 소심하고 겁이 많지만 사
“윤진수, 정말 완벽하게 꾸몄다고 생각해?”구윤의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무언가가 공처럼 굴러들어 왔다. 고통스러운 울부짖음도 함께 들려왔다. 윤진수의 비서였다. 윤진수는 소름이 돋아 가슴이 쿵쾅거렸다.“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비서는 맞아서 얼굴이 터졌고 고기만두처럼 묶여 팔과 다리가 부자연스럽게 처졌다. 손과 발의 힘줄이 모두 뽑혔다. 익숙한 구윤의 손길이었다. 그리고 따라 들어온 사람은 매혹적으로 눈을 떴다.“어휴, 이 집에 내가 없으면 어떡해?”지운의 맑은 얼굴에 드물게 걱정하는 표정이 보였다. 알고 보니 오늘 밤 유씨 그룹의 사람도 초대를 받았다. 국내 최고의 의료 수준을 보유한 유씨 그룹은 초대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다문 유씨 가문 가주는 사랑하는 딸 유민지가 구만복의 첩이 되었다는 게 화가 났다. 그래서 구씨 가문 사람들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유씨 가문은 피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J 그룹이 직접 초대장을 전달하여 거절하지 못했다.지운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운을 보냈다. 사랑하는 남자가 보고 싶었던 지운은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목격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람의 새언니라고 생각한 지운은 당연히 나서야 했다. 구윤은 담담하게 유지운을 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비서를 보았다.“네가 말할 거야, 아니면 내가 대신 말할까?”비서는 주저하며 말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건드릴 용기가 없었다. 구윤이 강요하려하자 지운이 대신 나른하게 말했다.“우리 구 사장님의 성격이 안 좋아. 방금 너도 당했었잖아. 네가 말하는 것과 구 사장님이 말하는 건, 다른 일이야.”갑자기 지운은 눈웃음을 지었다.“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내 수술칼이 구 사장님의 단검보다 깔끔해.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말, 말할게요!”비서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윤 사장님이 구아린 씨를 가지지 못해 매우 화가 났
윤진수는 당황한 나머지 비명을 지르더니 순간 물웅덩이가 몸 아래로 천천히 흩어져 카펫을 적셨다. 한때 오만하고 거만했던 윤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겁에 질려 오줌을 쌌다.아람이 화를 내며 흉기를 들자, 경주는 큰 손으로 아람의 손목을 잡았다.“날 막으려는 거야?”아람은 숨을 헐떡이며 손목을 떼어내려고 애썼다.“나보고 침착하라고 하지 마. 내 동생을 괴롭혔으면, 윤정용이 와도 소용없어!”“막으려는 게 아니야. 나도 너와 같아.”경주는 숨을 쉬며 다정하게 달랬다. 경주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 아람 손에 있는 파편을 잡았다.“네 손을 더럽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다칠까 봐 걱정돼.”아람은 입을 꼭 다물고 이성을 되찾고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경주는 차갑게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더니 파편 소리가 들렸다. 아람은 경주가 맨손으로 파편을 가루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대박, 너무 멋있어. 카리스마가 넘쳐! 하지만 손이 안 아픈가?’경주는 담담하게 손에 묻은 가루를 털었다.“너를 상대하는데 왜 그렇게 귀찮게 굴어야 해? 손가락만 움직여도 네 목을 꺾고 몸을 부숴버릴 수 있어.”“신경주, 구아람. 감히 날 건드려?”윤진수는 서지 못해 바닥만 내리쳤다.“내가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아빠와 형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너희들 죽었어!”“정말 잘됐네, 예전부터 윤씨 가문이 싫었어. 마침 화풀이할 곳이 없었는데.”아람은 이를 악물며 날카로운 힐로 윤진수의 손을 밟았다. 마치 손등에 못을 받은 듯 세게 밟아 윤진수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이제 직접 건드리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어? 다음에는 윤민주야. 누구도 도망칠 수 없어!”‘윤민주? 설마 은밀하게 계획한 것을 알아냈어?’윤진수는 경주와 아람에게 맞는 것보다 결혼을 못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열심히 변명했다.“구아람, 왜 생각을 안 해? 내가 네 동생을 가지려는데, 이런 수단까지 써야 할 것 같아? 우리 아빠가 말했어. 나와 구아린이 결혼할 거야. 좋든 말든 결국 나한테 시집올 거
사실 아린이 윤진수에게 방으로 끌려가 옷을 벗기고 성추행당했을 때 간헐적으로 의식이 있었다. 그저 힘이 없고 눈을 뜰 수 없어 저항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린에게는 더 잔인한 일이었다.차라리 완전히 기절하거나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다. 생각에 잠긴 아린은 눈물이 고인 눈을 뜨자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수해의 품에 안겨 몸부림쳤다.“만지지 마, 날 만지지 마!”“아린아, 잘 봐봐, 내가 누구야?”눈물을 흘리며 수해는 아린을 꼭 껴안았다. 가슴은 무딘 칼로 잔인하게 찢어진 것 같았고 활기차고 튼튼한 심장을 날 것으로 뽑아 내고 부시는 것 같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아린의 눈빛이 반짝였다.아린은 수해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는데 한참 지난 후 조심스럽게 불렀다.“수해, 오빠?”수해는 울컥하여 말이 안 나와 고개만 끄덕였다.“눈이 왜 그래?”아린은 수해의 피투성이가 된 눈을 보자 자신의 안위는 잊은 채 수해 걱정만 했다. 아린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화가 치솟았다. ‘왜 이 커플을 괴롭히는 거야? 무슨 잘못이 있어?’이 순간 원망과 분노는 구만복을 향했다. 윤진수도 확실히 혐오스러운 사람이었지만, 구만복이 아린을 유성에게 시집 보내지 않았더라면 윤진수는 아린에게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윤진수는 아린에게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부하며 심지어 더럽게 손까지 댔다. 구씨 가문에게 의지하여 윤씨 그룹의 권력을 얻으려고 아린을 이용하고 있었다. ‘아빠가 모든 것을 시작했어!’“괜찮아, 나 괜찮아. 아린아, 가자. 오빠가 데려다줄게.”수해는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며 그저 아린을 데려가고 싶었다. 수해가 안으려고 하자 아린은 몸부림치며 수해를 밀어냈다.“오빠, 우리 헤어지자.”수해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 아린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아린아, 그런 말 하지 마. 죽어도 헤어지지 않을 거야. 싫어!”“헤어지자, 난 이미 더러워졌어.”아린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는 수해의 가슴을 찢었다.“난 오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수해는 최악의 결과까지 생각했다. 만약 아린이 정말 순결을 잃었다면 절대 원망하지 않고 여전히 결혼할 것이다. 어떤 일을 겪어도 마음속에는 항상 아름답고 거룩한 여인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아람은 욕설을 퍼부으며 후회했다.“나 구아람의 명성이 이 짐승 때문에 망쳤어. 아린에게 더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수술대에서 죽게 내버려둘 걸 그랬어!”“내가 바로 사람을 보내서 윤진수의 친한 친구들을 몰래 조종할게.”경주는 결심하고 행동했다.“윤진수는 불구자야. 혼자 이런 사악한 것을 꾸밀 수 없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고 있을 거야.”순간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 구윤 손에 있는 십자가 단검이 어떻게 반짝였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눈빛은 단검보다 더 소름 끼쳤다.“내 단검도 오랜만에 쓰겠네. 윤진수 그 짐승이 직접 찾아왔으니 참 고맙네.”...아린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윤진수에 의해 방으로 끌려들어 갔다. 큰 침대에 던져져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수줍어하며 부드러운 입술을 반쯤 벌리고 숨을 내쉬는 모습이 정말 유혹적이었다. 윤진수는 탐욕스럽게 입술을 핥고 원숭이처럼 옷을 벗었다. “젠장, 무슨 일이야!”곧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발기가 되지 않았다. 윤진수는 숨을 헐떡이며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여전히 물렁물렁하고 반쯤 죽은 상태였다. 예전에는 체력왕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쓸모가 없었다. ‘소문이 나면 내 체면은 어떡해? 약이 떨어지면 구아린은 곧 깨어날 거야. 그때 난 성추행자가 되잖아!’윤진수는 갑자기 아람을 원망했다. 분명 수술을 했을 때 신경을 건드려 무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이 돌팔이!’하지만 오늘 밤 무조건 아린을 가져야 했다. 오늘 밤이 유일한 기회이다. 그래서 윤진수는 쇼할 수밖에 없어 아린의 옷을 찢었다. 가느다란 허리와 부푼 가슴이 보였지만 윤진수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젠장, 왜 이러는 거야!”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자 윤진수는 깜짝 놀라서 이불
가죽 구두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구윤은 식은땀을 흘리며 뛰면서 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통하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구윤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어렴풋이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렸다. 구윤은 심장이 쿵쾅거리며 소리를 따라 발코니를 찾았다. 아린의 핸드폰은 바닥에 있었고 오빠라는 화면이 떴다.“아린아, 어디에 있어, 아린아!”구윤은 발코니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오빠, 아린이 왜 갑자기 사라졌어?”아람과 경주가 서둘러 도착했고 뒤에는 다친 수해가 있었다.“여긴 보안이 삼엄하고 손님 출입이 기록되는데, 아린이가 사라져요? 안 믿어요. 아린은 무조건 연회장에 있어요,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수해는 마음이 급해 눈시울이 붉어지며 쓰러지기 직전이었다.“내 탓이야, 내가 소홀했어!”구윤은 자책하며 난간을 내리쳤다.“아홉째 아가씨는 별일 없을 거예요. 오늘 밤과 같은 장소에 구 회장님도 계시는데, 감히 구 회장님의 딸을 건드리면 죽을 거예요.”경주는 아람의 떨리는 어깨를 잡고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핸드폰을 주었으면,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CCTV를 찾아봐요.”구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내가 사람을 보내서 조사할게!”“늦었어, 1분만 늦어도 아린의 위험도 더 깊어질 거야!”아린은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렸다.“오빠, 성능 좋은 컴퓨터를 찾아줘요. 내가 컨트롤해서 시스템에 들어갈게요. CCTV는 물론 모든 보안 시스템을 해킹해 버릴 거야!”구윤과 수해는 너무 긴장하여 그제야 생각났다. 아람은 일류 해커였다. 그 능력은 최고 요원이었던 신우가 직접 가르친 것이다. 경주는 깜짝 놀라 아람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 여자는 정말 신이야. 진작에 알았어야 했어.’...구윤은 즉시 사람을 찾아 연재 시장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노트북을 보냈다. 아람은 화면을 응시하며 키보드를 내리쳤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세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서서 열심히 쳐다보았다.아람은 알아보지 못할 영문을 쳤
아린은 윤진수의 모욕을 당하고도 구만복과 구윤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을 참으며 얼굴이 붉어진 채 혼자 연회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린은 웨이터와 부딪혔다. 갑자기 벌에 쏘인 것처럼 팔에서 작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금세 사라졌다.“아, 죄송해요, 아가씨.”웨이터는 즉시 사과했다.“괜, 괜찮아요.”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웨이터는 떠나는 아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저녁 바람이 아린의 흑단 머리를 날렸다. 아무도 없는 발코니에 서서 청량한 달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수해 오빠가 있었다면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하지만 아린은 이미 사랑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이제부터 아린의 인생에는 수해가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전화해서 명확하게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아린은 여러 번 생각하고 마침내 격렬한 가슴앓이를 견디고 떨면서 핸드폰을 켰다. 신호가 연결되자마자 수많은 전화와 메시지가 밀물처럼 눈에 쏟아져 들어왔다. 수해는 연락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 순간, 매 단어마다 사랑이 가득했다. 아린은 손으로 답답한 심장을 움켜쥐었다. 마치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아팠다.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나도록 참았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수해 오빠, 너랑 헤어지기 싫어!”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연약한 몸이 심하게 비틀거렸다.“아홉째 아가씨, 왜 그러세요?”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린의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윙윙거렸다. 순간 남자의 품에 안겼다. 심지어 큰 손이 자신의 부드러운 어깨를 음란하게 만지고 있었다.“누구야, 손대지 마!”아린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힘을 쓸 수 없었고, 불안에 눈물이 가득 찼다. “허허, 긴장하지 마요. 긴장 풀어요.”남자는 음흉하게 웃으며 입술로 오랫동안 탐내던 볼을 음란하게 문질렀다.“내가 많이 아껴줄게요.”...구윤은 KS 사장으로서 권력자와 부유층 사이를 오갔다.
아린과 수해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많이 없다. 윤씨 가문도 그중 하나이다. 수해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사람도 윤씨 그룹이다.“수해야, 어떻게 들어왔어?”경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윤씨 그룹의 사람에게 공격을 당했어요. 경호원 중 한 명의 출입증을 빼앗아 억지로 들어왔어요.”수해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허. 윤씨 가문이 널 막으려고 참 애썼네!”경주는 화가 났다. 하지만 아람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너 많이 다쳤어. 전에 상처까지 있어서 지체할 수 없어. 한무보고 병원에 데려주라고 할게.”“안 돼요, 못 가요. 반드시 아린을 만날 거예요. 아린을 데려갈 거예요!”수해는 소리를 질렀다.“임 비서, 정신 차려.”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원래 네 아가씨의 도움이 있어 아홉째 아가씨와 같이 있을 희망이 있었어. 오늘 밤 소란을 피워서 구 회장님을 건드리면 그 희망이 깨질 거야.”“희망? 구 회장님은 이미 윤씨 가문의 청혼을 받아들였어요. 이미 엎어진 물이에요. 아린은 마음이 약하고 겁도 많아요. 부모님을 위해, 가족을 위해 약속을 지킬 사람이에요. 제가 쟁취하지 않으면 무슨 희망이 있어요?”경주는 절망에 가득 찬 수해를 바라보자 마음이 아팠다. 신씨 그룹의 사장님으로서 경주는 권력이 있고 신남준의 도움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걸어서야 아람과 오늘까지 왔다. 수해는 아람의 부하이다. 구씨 가문 앞에서 임씨 가문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린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수해가 직면해야 할 어려움은 경주 못지않다.“수해야, 널 때리라고 명령한 사람이 누구야?”아람은 화가 나서 수해 대신 복수하고 싶었다. 수해는 고개를 흔들었다.“원래 쳐들어가고 싶었는데 윤민주가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막았어요. 곁에 있는 건 윤진수의 비서였어요. 그래서 시킨 사람이 윤민주인지 윤진수인지 모르겠어요.”아람은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리며 눈빛이 차가웠다.“윤 씨들은 몸속에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어! 누군지 모른다면 그냥 모두
경주는 아람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가슴이 아파 꼭 껴안았다.“알아, 네 동생을 위해서 그러잖아. 네가 한 모든 것은 네 동생과 윤씨 가문의 혼인을 막으려는 거야.”경주는 잘 알 수록 아람의 마음이 더 아팠다. 경주의 품에서 중얼거렸다.“내가, 내가 아직 강하지 못해서 너무 싫어.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아. 내가 참 웃기지?”경주는 울컥하여 아람의 등을 토닥였다.“아니, 똑똑한 것 같아.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야. 그리고 안드레도 이것 때문에 구 회장님을 원망하시지 않을 거야. 진정한 사업가는 이익을 따질 줄 알아. 여전히 KS를 선택할 것 같아. J 그룹과 협력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있으니 윤씨 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람은 가슴이 설레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비록 거물인 아버지, 능력 있는 오빠들이 있지만 고집스럽고 독립적인 성격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려움은 스스로 소화하고 해결하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경주는 아람이 처음으로 기대고 싶은 사람이다. 평생 경주에게 기대고 싶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로 조용한 분위기를 깼다.“누가 있어!”두 사람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향해 바라보았다. 이때 한 남자가 지나갔다.“경주야, 저 숨은 사람을 잡아야 해, 몰래 들었을 수도 있어!”아람은 차갑게 말했다.“방금 한 얘기는 사업 기밀에 관한 거야. 윤씨 가문 귀에 들어가면 곤란해져!”경주는 차갑게 고개를 끄덕이며 쏜살같이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능력이 좋은 경주는 바로 사람을 잡았다.“거기 서, 내가 손대게 하지 마.”그 사람은 등을 지고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였다.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뒷모습이 익숙하여 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당신.”“신 사장님.”경주는 천천히 돌아섰다. 달빛에 비친 수해의 상처투성이 얼굴을 본 경주는 눈을 부릅떴다.“임, 수해?”이때 아람도 재빨리 달려왔다. 수해의 양복이 먼지로 뒤덮여 너덜너덜해진 것이 보았다. 특히 왼쪽 눈은 구